[PRESS] 이상해도 괜찮아(Stay Strange) – 2022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글 입력 2022.07.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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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영화를 좋아한다면, 매년 여름 빼놓을 수 없는 영화제가 있다. 사방에 유혈이 낭자함은 물론이요,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이미지들 사이로는 저마다의 광기가 삐져나오다 못해 철철 흘러넘친다. 그 광기의 현장 한가운데서 관객은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는 동시에 기이한 아름다움과 경이에 빠져들기도 한다.

 

올해로 26회를 맞이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그런 의미에서 장르 영화에 목말라 있는 이들을 위한 광기의 축제라 불릴 만하다. ‘이상해도 괜찮아(Stay Strange)’라는 문구를 공식 기조로 삼고 있는 만큼 부천영화제에는 정말이지 이 정도로 이상해도 괜찮은가, 싶은 작품들이 매년 부지기수로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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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란에 따르면 부천영화제는 ‘비주류의 감성에 환호하고 변방에 밀려난 재능을 발견하여 (영화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영화제이고자’ 한다고 밝혔다. 공포/호러를 중심으로 한 각종 장르 영화를 선보임으로써 이 광기의 축제가 다양한 영화제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노선을 걸어왔음은 분명하다.

 

올해 부천영화제는 7/7 목요일부터 그다음 주 7/17 일요일까지, 무려 11일간 개최되었다. 일반적으로 5일에서 일주일 남짓 진행되는 여타 영화제와 비교해보아도, 부천영화제는 가히 독보적인 축제 기간을 자랑한다. 그만큼 출품되는 장르 영화의 수가 많고,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의 수요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뜻일 테다.


평소 접하기 힘든 비주류의 장르 영화를 일주일이 넘는 기간 내내 볼 수 있다니. 실로 엄청난 기회가 아닌가. 그래서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애증의 공간을 장장 일주일 동안이나 찾았다. 평일에는 일을 마치자마자 부천으로 달려갔다. 약간의 피곤함과 부푼 기대감을 안고서 한두 편의 영화를 관람하고 오는 날이면 늘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집까지 가는 데는 1시간 30분이 조금 넘게 걸렸으므로 졸다가 일어나 책을 읽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다시 잠들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졸면서 부지런히 출석한 결과, 7일간 14편의 영화를 만나볼 수 있었다. 온라인으로 관람한 두 편까지 포함하면, 총 16편의 장편영화를 만나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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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관람한 14편의 영화 중에는 기대치를 뛰어넘는 굉장한 작품들이 많았다. ‘이상해도 몹시 괜찮은’ 영화들이었다. 얄팍한 시간과 비루한 체력을 온전히 영화제에 쏟아부은 데 대한 일종의 보상인 건지도 몰랐다. 물론 이상해서 안 괜찮은 작품도 있었지마는···. 영화제 아니면 어딜 가서 이런 영화를 보겠나, 라며 매번 합리화를 해버리는 식이니 크게 아쉬울 건 없었다.

 

거기다가 14편의 영화 중 절반 이상을 만족스럽게 본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제에서 취향에 맞는 영화를 만나기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가 늘 한정되어있는 탓이다. 부천에서 만난 14편의 영화 중에는 1970년대 고전 영화도 있었고, 1999년생 감독의 첫 데뷔작도 있었으며 아일랜드, 러시아, 일본, 한국, 대만, 미국, 스페인, 리투아니아 출신의 영화도 있었다.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영화제가 끝난 지금에서야 돌아보니 엄청나게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을 만났다.


이번 부천영화제는 이례적으로 새로운 일을 많이 경험한 영화제이기도 했다. PRESS 신분으로 처음 영화제에 참석했고, 설경구 특별전으로 <불한당>을 다시 관람했다. <불한당> 상영이 끝나고 나서는 설경구 배우와 변성현 감독의 메가토크가 진행되었다. 설경구 배우에 대한 애정이 한층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4열에서 관람한 그는 정말이지 헉 소리가 나올 만큼 멋있었고, 정장이 잘 어울렸다. 몇 년 만에 관람한 <불한당> 역시 끝내주게 멋있는 영화였다.

 

TV 프로그램 <방구석 1열>로만 접해오던 주성철 영화평론가를 진행자로 마주하는 행운도 누렸다. <불한당>을 본 다음 날에는 생애 처음으로 심야 영화 3개를 연속 관람했다. 12시에 시작해 새벽 5시가 조금 넘어서 끝났다. 또 그간 코로나로 엄두도 내지 못했던 감독님과 배우분들의 친필 사인을 드디어 영화표에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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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천영화제를 야무지게 즐길 수 있었던 데에는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 일정 변동 덕도 컸다. 기존에 예매했던 영화를 취소하고, 다시 새로운 영화를 예매하고, 또 마음을 바꿔 취소, 예매, 취소, 예매···. 그렇게 매번 취소 수수료만 영화 값만큼 나오는 일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 부천영화제는 방문 예정일 수 자체가 처음보다 이틀이나 늘어났다.

 

처음에는 5일만을 방문하기로 했던 것이 영화제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줄줄이 이어 만나다 보니 그만 신이 나버린 것이다. 근무 시간을 무리하게 조정해서라도 방문 가능 일자를 최대한 늘렸다. 그 외의 변동사항도 물론 많았다. 영화를 앞서 관람한 사람들의 평을 대충 훑어보고 직전 날 일정을 바꾸는 일은 매 영화제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욕심스레 계획한 오전 영화도 늦잠을 자느라 못 간 경우가 태반이었고 말이다.


이왕 모든 계획이 망한 김에, 부천영화제에 대한 글쓰기 계획도 고쳐먹기로 다짐했다. 본래 마음에 드는 세 작품만을 소개하려고 했으나 소개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작품들을 너무 많이 만나버렸기 때문에 이 지면을 빌려 올해 부천영화제에서 만난 보석 같은 작품 여섯(3+3)을 소개한다.

 

 

 

<곡비> The 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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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부천영화제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코 <곡비>다. 심야상영의 피날레를 장식한 이 영화는 과연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이었다. 부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서 <곡비>를 검색하면 아이콘 가이드로 ‘섹스’ ‘장기’ ‘좀비’ ‘고문’ ‘하드고어’가 나온다.

 

부천에서 만난 최고의 하드코어 작품인 만큼 관객은 <곡비>를 통해 완벽한 지옥도를 체험하게 된다. 영화를 보다가 상영관을 나서는 관객들이 속출하기도 했으니 이쯤 되면 이 영화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여러모로 문제작이 될 만한 여지가 충분함에도 <곡비>는 개의치 않고 몰아붙인다. 정말이지 쉴 틈도 주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 정도 뚝심이면 장인의 경지에 오른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일 테다.


내가 <곡비>를 흥미롭게 본 건, 이 영화가 공포를 조성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악인들은 좀비와 광인 사이에 걸쳐져 있다. 악인(人)이라고 표현한 건, 감염된 이들이 여전히 생각하고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人)이기 때문이다.

 

<곡비>의 세계관을 지배하는 변종 바이러스는 인간 내면에 잠들어 있던 폭력성과 가학성을 과발현시킨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은 비감염자를 발견하는 즉시 가학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고문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의식은 남아있되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곡비>의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비감염자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은 과연 좀비의 특성이라 부를 만한데, 이들은 좀비보다 훨씬 공포스럽고 영악한 ‘무언가’다.


 

좀비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주로 텅 빈 영혼의 무생명체 덩어리로 묘사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욕망의 대상에 집착하고 새디즘과 폭력성으로 무장해 고문과 강간을 자행한다.

 

- 프로그램 노트 中

 


그렇다면 <곡비>는 인간의 본성을 끄집어내는 작품인가? 인간의 본성은 폭력성에 기반하는가? 정작 영화는 이 질문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곡비>는 그저 정상적인 사람도 괴물같이 변해버리는 괴물 같은 바이러스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본성이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바이러스에 걸리기만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광기에 휩싸이는 것이다.

 

극단적인 폭력성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인간 개개인이 지닌 특성이나 성품이랄 것은 완전히 납작하게 눌러진다. 그것은 일반적인 좀비 영화의 설정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지만, 감염자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곡비>는 독자적이고 입체적인 세계관을 확보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또 다른 점은 <곡비>가 무려 감독의 첫 데뷔작이라는 사실이다. <곡비>는 각본, 연출, 편집까지 도맡았다는 감독 롭 자바즈의 장편 데뷔작이다. 첫발부터 이런 엄청난 작품을 내버리다니···. 앞으로 그의 행보가 내심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곡비>의 엄청난 선정성과 수위를 고려한다면, 다시 말해 이 같은 폭력적 세계관이 다음 작품에도 꾸준히 유지된다면 나는 어김없이 부천영화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정식 개봉을 했다간 온갖 논란에 휩싸여버릴 것만 같은 이 문제작을 영화제에서 만났다는 것이 내심 반갑기도 하다. 심야상영의 마지막 순서를 장식한 작품답게 <곡비>는 한여름 밤의 질퍽한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굉장한 영화였다.

 

 

 

<베스퍼> Ve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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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퍼>는 <곡비>와는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영화다. 이 경이로운 SF 영화는 지구 생태계가 붕괴한 이후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암울한 시대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10대 소녀 ‘베스퍼’다. 베스퍼는 병든 아버지와 함께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는 그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베스퍼가 세상살이의 이치를 깨우치도록 돕는다. 의식불명으로 보이는 아버지와 소녀 가장인 베스퍼가 특정 매개체를 통해 소통하는 방식은 초반부터 이 영화에 엄청난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중세의 어느 시점으로 회귀한 듯한 <베스퍼>의 세계관에는 여전히 권력의 사슬이 존재한다. 마을에서 자원을 독식하고 있는 독재자와 그 절대 권력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사람들. 영화에서 이 같은 주종관계의 설정은 흔한 것이지만, <베스퍼>가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 규정짓기 어려운 인물관계가 여러 갈래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영화에 미지의 생명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일 테고, 공동체 밖에서 살아가는 베스퍼가 필연적으로 마을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까닭일 것이다.


인간에게 복종하도록 만들어진 생명체가 자신의 길을 벗어날 때, 이 영화는 비로소 시작된다. 권력에 억압받는 존재였던 두 주인공이 힘을 합치고 나아가는 순간은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희망’에 관한 것임을 암시한다. 이로써 <베스퍼>에는 절대 권력에 저항하는 다양한 인간상이 등장한다. 그것은 마을에서 착취당하는 어린 노동자이기도 하고, 베스퍼 자신이기도 하며,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이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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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후 진행된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제작자는 <베스퍼>를 통해 ‘모든 문화와 연령대에 울림을 줄 수 있는 보편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전했다. 영화 자체는 어두운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더라도 인류가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싸울 수 있다는 희망, 세계의 순서와 서열, 변화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이다. 새로운 르네상스의 씨앗이라고 명명하는 이 영화는 주인공 베스퍼가 단순히 시대의 희생양이 아니라 스스로 생존하고 나아가는 인물임을 명시한다.


제작자는 <베스퍼>의 세밀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있어 여러 해가 걸렸다고 말했다. 식물들의 성별에 관한 연구라든가 미래 기술을 유전학적으로 접근하는 데 방대한 사전 조사가 필요했다고 말이다. 영화의 주요 설정이 미래 기술과 접목되어있는 만큼, <베스퍼>는 발전된 기술을 배제하기보다 그것이 더 많은 생명과 연결될 수 있도록 함께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덧붙여 문화와 사회학, 경제학과 같은 세부 사항까지도 오랜 시간에 걸쳐 조사를 진행했다는 제작자의 말은 <베스퍼>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애정이 담겼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베스퍼>는 또한 음악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이 불멸의 음악은 베스퍼에게 미래를 향한 구원이자 희망으로 다가온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음악의 치유력과 에너지를 믿는다고 제작자는 말했다. 이처럼 <베스퍼>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인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본디 어둠 속에서 빛이 더 잘 보이는 법이 아닌가. 산호초가 사라져가고, 기후가 변해가고, 동물들이 멸종해가고, 지구가 죽어가고, 좀처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 시대에 어두운 잔혹 동화를 택한 <베스퍼>가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혼자가 아닌> You Won't Be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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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천영화제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본 작품을 꼽으라면, 앞서 소개한 <베스퍼>와 더불어 이 영화를 지목하고 싶다. <혼자가 아닌>은 마녀에 관한 영화다. 지금까지 마녀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말레피센트> <더 위치> <제인 도>와 같은 작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혼자가 아닌>은 수많은 마녀 영화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갖는 영화다.


중세의 마케도니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어둡고 아름다운, 그리고 전통적인 틀을 벗어난 마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타인의 목숨을 빌려 삶을 연명해나가는 영화 속 마녀의 모습은 언뜻 기존의 설정과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은 주인공 네베나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깨달아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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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잃어버린 네베나는 여성이면서 남성이고, 노인이면서 아이이며, 인간이면서 동물이기도 하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을 체험하면서 네베나는 감정의 격동을 느낀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설레하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두려워하고···. 그렇게 인간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그(또는 그녀)는 인류의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삶에 서서히 빠져든다.

 

그러나 네베나는 다른 생명체의 지속적인 희생을 통해서만 자신의 생(生)을 이어갈 수 있다. 스스로 변화하고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마녀 네베나의 삶은 그런 의미에서 축복이자 저주이다. 죽음 다음에는 삶이, 삶 다음에는 다시금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네베나의 세계에 탄생과 소멸이 무한굴레처럼 반복되는 이유다.


<혼자가 아닌>은 주인공 네베나가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깨달아나가는 성장영화다. 그와 동시에 ‘혼자가 아닌’ 삶을 꿈꾸는 주인공의 소망이 결코 달성될 수 없는 것임을 암시하는 운명론적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름답고, 비극적이다. 비극성은 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끝내 감동을 주는 건 지위와 성별, 연령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리는 과정에서 공동체와 연대의 가치를 전하기 때문일 테다.

 

<곡비>와 마찬가지로 <혼자가 아닌>은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데뷔작부터 이런 엄청난 작품을 찍어버린 고란 스톨레브스키 감독은 짐작건대 차세대 가장 주목할 만한 감독 중 하나로 떠오르지 않을까.


 

 

<포프란: 사라진 X를 찾아서> POP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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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괴이한 영화가 주를 이루긴 해도, 부천영화제에서는 폭소가 터질 만큼 웃긴 영화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괴상한 동시에 웃긴 영화도 존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포프란: 사라진 X를 찾아서>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로 유명한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신작이다.


사라진 ‘X’를 찾아서 내면의 자아를 회복해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과연 우에다 신이치로의 작품답게 기상천외한 세계관과 전개를 선보인다. 주인공은 자아(이자 잃어버린 X)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른 이의 자아를 되찾아주기도 하고, 과거에 자아를 잃어버린 자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관계의 자아를 회복하기도 한다. <카멈!>만큼 엄청난 반전이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포프란>은 분명 지금까지 관객이 만나본 적 없는 기발한 상상력과 전개를 앞세워 야심 차게 밀고 나간다.


덕분에 상영관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결말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나 가끔은 이렇게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영화가 필요하니까. 코미디와 합쳐진 우에다 감독의 따뜻한 휴먼 드라마가 늘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울리는 이유다.


 

 

<하얀 차를 탄 여자> The Woman in the White 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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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차를 탄 여자>는 부천영화제와 함께한 마지막 날, 첫 번째 관람 작으로 만나본 영화였다. 원래는 <매드 갓>이라는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리는 부천을 이른 아침에 도착하는 건 역시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빠르게 <매드 갓>을 포기하고 30분 뒤 상영이 예정되어있던 <하얀 차>를 급히 예매했다. 갑작스레 일정을 바꿔 관람하게 된 <하얀 차>는 애초 보려고 했던 <매드 갓>보다도 훨씬 큰 만족도를 선사하며 - <매드 갓>은 온라인으로 관람했다 – 부천에서의 마지막 날을 더없이 만족스럽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얀 차>는 스릴러물이다. 평범한 스릴러물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거침없이 뜯어내고 재조합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놀라운 스릴러물이다. 다각도에서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이 흥미진진한 추리극은 상상과 현실과 추측이 마구 뒤섞인 채 관객에게 매 순간 ‘Another Story’를 선사한다. 사건이 난항에 빠지면 ‘처음부터 다시 돌아가’는 과정을 밟으며 끊임없이 의심과 추적을 반복하며 말이다.


덧붙여 <하얀 차>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거듭 뒤바꾸고 어긋나게 함으로써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과감하게 증명해 보이는 영화다. IF의 나열과도 같은 이 영화는 가해자들의 뒤틀린 범죄극이자 피해자들의 처절한 복수극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피해자들 간 연대의 이야기이며 구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양한 시점으로 극을 완전히 다르게 구성하는 방식은 <라쇼몽>의 그것을 연상케 하지만, <하얀 차>는 여성의 이야기와 목소리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영화와도 뚜렷한 차별성을 보인다.


2부작으로 기획된 드라마를 이어붙였다는 이 영화는 <곡비> <혼자가 아닌>과 마찬가지로 역시 감독의 첫 데뷔작이라고 한다.


 

 

<잔고: 분노의 적자> Jango: Unchar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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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영화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준 영화는 바로 <잔고: 분노의 적자>였다. <잔고>는 나의 마지막 부천 관람 작이기도 했지만, 깜짝 상영과 특별 상영을 제외하면 일반상영으로서도 부천영화제의 마지막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제목부터 어딘가 이상한 이 영화는 ‘부천의 총아’로 불리는 백승기 감독이 연출했다. 그가 ‘부천의 총아’라 불리는 이유는 첫 장편영화 <숫호구>를 시작으로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오늘도 평화로운>, <인천스텔라>, <잔고: 분노의 적자>까지, 연출한 5편의 작품이 모두 부천영화제에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잔고: 분노의 적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패러디한 영화다. 내가 <잔고>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크게 2가지인데, 첫 번째는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토록 거침없는 원작 서부극을 어떻게 한국형 병맛 코미디로 승화시켰느냐가 궁금해서였다. 무엇보다 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뻔뻔스런 제목을 보고선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잔고>는 뻔뻔한 영화다. 그 지나친 뻔뻔(Fun Fun)함은 번번이 관객을 웃음바다에 빠뜨리고, 상영관을 왈가닥 뒤집는다.



‘텍사스 어딘가’라는 자막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노예와 (소리는 진짜 같은) 말을 탄 노예상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제목에서 연상되듯 서부극으로 출발한다. 물론 그들이 끌려가는 그곳이 ‘인천 어딘가’쯤으로 느껴져도, 100% 영어인 영화의 대사를 굳이 자막을 읽지 않아도 이상하게 알아들을 수 있다 해도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채플린에서 타란티노를 망라하는 끝없는 패러디와 기상천외한 작명 센스, 시치미 뚝 뗀 웃음 속에 결국 영화가 담고자 한 것은 여전히 계속될 영화의 소중함과 영화를 만들고 보는 이들에 대한 위로이다. 지난 몇 년간 광풍처럼 휩쓸고 간 낯선 시간이 남긴 변화 속에서 ‘이제 영화는 끝났다’ 말하는 시대에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전통적인 B급 정서로 무장하고 돌아온 영화. 


- 프로그램 노트 中



그렇다. 이 영화는 <장고>의 형식을 빌려왔지만, 백승기 감독의 손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작품임이 틀림없었다. 원작 <장고>를 재밌게 보았든 보지 않았든, 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잔고>만의 기상천외한 전개 방식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잔고>가 관객의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이 영화가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강타한 극장가의 침체,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고단함, 독립예술영화가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 거대 자본에 의해 산업이 돌아가는 실정, 거기다 환경오염 문제까지. <잔고>는 제법 묵직한 사회적 주제들까지도 특유의 뻔뻔함과 결부시켜 명확한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찰리 채플린의 슬랩스틱을 떠올리게 하는 <잔고> 속 무성 장면은 그래서 더욱 뭉클하고 찡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떠올리게 했던 <잔고>의 마지막 장면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뻔뻔한 이 영화가 결국 영화에 대한 제작진들의 애정과 사랑과 열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서부극과 무성 영화와 콩글리시 대사와 온갖 패러디, 그리고 밈이 난무하는 이 영화는 가히 백승기 감독의 최고작이라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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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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