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마저 잃어버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정말 사랑한다면 붙잡아야 할까, 놓아주어야 할까?
타쿠토 죽은 사람은 대체... 누구의 것일까요?
진짜 사랑은 상대를 편히 보내주는 것일까, 붙잡는 것일까. <상자 속의 양>을 보며 처음 든 생각이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오토네와 켄스케는 죽은 아들과 똑닮은 7살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입양하게 된다. 아들 '카케루'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카케루의 기억을 가지고, 똑같은 말투를 구사하는 휴머노이드의 등장에 오토네와 켄스케 부부는 행복을 되찾는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카케루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이상 행동을 본 오토네와 켄스케는 점점 혼란에 빠져간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이는 곧 사랑의 기적처럼 느껴진다. 친구, 가족, 연인... 진심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그 기회를 거절할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아마 거절하지 못할 것 같다.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그 대상이라면 어떨까. 내가 켄스케가 된다고 가정해보자. 나를 잊지 못해 나와 똑같은 휴머노이드를 만들고, 그 존재를 계속해서 키운다면... 나는 조금 많이 슬플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지만서도, 미안함과 질투심이 나를 갉아먹을 것 같다. 사랑을 느낄 수는 있어도 그것은 진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방식이 틀렸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진실을 알면서도 사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조금 이기적인 존재라, 내가 견디기 위해 상대를 붙잡을 수밖에 없다.
오토네 괴로움이나 슬픔 같은 건 없나요?
오사나이 마음이 없으니까요.
만약 그런식으로 보였다면 그건 당신의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보내느냐, 붙잡느냐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에서 어린왕자는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여러가지로 정성스럽게 그려진 양들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고, 어린왕자는 건네받은 상자에 자신이 원하는 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만족한다. 결국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오토네와 켄스케가 카케루의 선택과 혼란 역시 그런 것이다. 어린왕자에게 필요했던 건 잘 그려진 양이 아닌, 자신이 직접 상상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빈 공간이었다. 오토네와 켄스케는 휴머노이드를 입양하고, '카케루'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를 죽은 카케루처럼 대하며 자신들의 상상을 대입한다.
카케루 어쩌다가 늦었어?
켄스케 파친코를 했는데 구슬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거든…. 미안하다, 잘못했어…. 미안해….
카케루 괜찮아.
하지만 오토네와 켄스케는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휴머노이드 카케루의 모습에 큰 혼란을 느낀다.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그저 카케루와 닮기만 한 로봇이 아닌 '빈 공간'이 아닐까. 그리운 아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받아들이지 못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빈 공간. 이야기는 휴머노이드인 카케루를 통해 상실을 맞이한 부부가 들고 있는 상자 속의 '양'을 변화시킨다. 이야기의 끝에서 오토네와 켄스케는 죄책감을 고백하고 또 다른 상상을 담은 상자를 닫는다. 껍데기를 붙잡는 것이 아닌 카케루를 진정으로 놓아주기를 선택한다.
카케루 걱정하지 마.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계약은 종료하는 거로 해요.
(...) 어둠에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의해오토네의 마음속에 상기되고, 카케루의 죽음을 비로소 받아들인다.
오토네 고마웠어. 이제는... 가도 돼.
휴머노이드 카케루의 겉모습은 분명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존재가 오토네와 켄스케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는 결국 그들의 마음에 달려있다. 이는 동시에 카케루가 더이상 눈 앞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존재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눈앞에 존재하는 카케루의 분신이 있다고 해서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야기의 끝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더라도, 마음으로 그 존재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양은 정해져있는 정답이 아니라 내가 찾아가는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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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영화 <상자 속의 양> 시나리오를 엮은 각본집에는 자칫 놓치기 쉬웠던 등장인물 설정은 물론 특별수록 코너가 포함되어 있다. 영화의 정해진 러닝타임에서 벗어나 대사 하나 하나를 곱씹는 과정에서 이 책이 영화 속의 '상자'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된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와 달리, 모든 것을 상상해야 하는 시나리오에 독자인 나만의 양을 끼워둔다. 틈틈이 빈 공간에 무엇을 넣을지는 내가 결정하게 된다. 이야기가 전하는 메세지처럼,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눈앞에 있지 않아도, 만질 수 없어도. 마음으로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믿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