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지금까지 과학기술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각광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 일명 AI(Artificial Intelligence)는 그야말로 현대 기술의 총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학습, 추론, 문제 해결 등 본래는 인간의 두뇌를 통해 이루어지던 고지능 작업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컴퓨터에게 외주를 준다는 획기적인 발상은 일의 능률을 훨씬 드높였을 뿐 아니라 지금껏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 불가능했던 복잡한 난제까지도 풀어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점차 단순한 수학적 계산을 넘어 기계가 넘보지 못하리라 예상했던 예술이나 감정의 영역까지 침범당하자, 어느 순간부터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위기의식 역시도 빠르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미디어를 살펴보면 알기 쉽다. 초반의 SF 작품에서 AI는 현대 기술의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상징물 정도로 등장했다. 이때의 인공지능은 마치 어린이들이 미래를 상상할 때면 관념적으로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그리듯이 ‘고도로 발달한 컴퓨터라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막연한 판타지에 불과했고,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결국은 ‘인간이 만든 기계일 뿐’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1968년 개봉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 9000처럼 몇몇 작품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선보이며 기존의 고정관념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이후 인공지능의 형태가 무형의 가상 프로그램에서 로봇이나 사이보그 등 인간의 탈을 쓴 형태로 옮겨오며 AI 담론은 또 한 번 크게 변화한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대두되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과 같은 얼굴, 같은 몸을 하고, 학습이 가능하며, 스스로 생각해 판단을 내릴 줄 아는 AI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결국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크기변환][포맷변환]멀 혹은 멀의 세계_표지.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9/20260921171411_tgyygayf.jpg)
에드워드 애슈턴 작가는 봉준호 감독이 제작했던 영화 <미키 17>의 원작소설인 <미키 7>을 집필한 작가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이번 <멀 혹은 멀의 세계(Mal goes to war)>는 그의 SF 계보를 잇는 신작 소설로, 문학수첩 출판사에서 오는 9월 28일 출간될 예정이다. 단순한 공상 과학 이야기로서가 아닌 현실의 윤리와 과학이 충돌하며 파생되는 문제를 주로 탐구해왔던 작가답게 이번 소설 역시도 독자에게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2065년이라는 근미래 배경을 바탕으로 하는 <멀 혹은 멀의 세계>의 주인공은 ‘멀’이라는 자아를 가진 인공지능이다. 유전자 조작, 신체 강화 등 첨단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 시술들을 받으며 원하는 대로 신체와 정신을 개조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날 이러한 변형을 거부하고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주장하는 ‘휴머니스트’ 반군이 나타나고, 발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과학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연방군’과 충돌하며 전쟁이 발발한다.
인간들끼리의 치열한 내전을 비물질 인공지능인 멀은 유유자적 방관하며 구경할 뿐이다. AI 존재들의 표현에 따르면 ‘원숭이’에 불과한 인간들 사이의 싸움에 멀을 비롯한 실리코 아메리칸(자유 AI)들이 끼어들 이유는 하등 없다. 그러나 멀과 다른 AI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육체’라는 존재를 질색하는 친구들과 다르게 그는 그것에 꽤나 관심이 많고, 그렇기에 자주 인간의 전쟁을 지켜보고는 한다는 점이었다.
언제나처럼 전장 위를 떠도는 드론에 들어앉아 싸움판을 지켜보던 멀은 한 가정집에서 거의 숨이 끊어진 여자를 발견한다. AI인 멀이 인간에게 깃들 때는 인간의 몸에 설치된 하드웨어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시술을 받은 육체일 필요가 있다. 멀이 발견한 여자는 전신을 신체 강화 시술로 뒤덮은 사이보그 용병이었기에 멀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다. 망설이던 멀은 잠시 인간의 몸을 경험해볼 요량으로 여자에게 진입하지만, 그 순간의 선택이 멀의 운명을 뒤바꾸는 분기점이 된다.
멀이 육체를 구경하는 그 잠깐 사이 인포스페이스와 멀을 이어주는 통신 탑이 파괴되며 멀은 시체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만다. 전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몸이 붕괴하면 그 안에 들어있는 멀까지도 그대로 지워지는 공동체의 운명이 되고 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기존 몸의 주인이 호위하던 다섯 살짜리 외관의 소녀 ‘케일리’까지 그대로 떠맡게 되면서, 멀의 앞날은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던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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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 혹은 멀의 세계>를 읽다 보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고찰하게 된다. 존재하지만 실체는 없고, 자아는 있지만 눈치는 없는 AI. 살아간다는 표현보다는 ‘학습한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고, 죽는다는 개념보다는 ‘프로그램 삭제’가 더 가까운 그런 존재. 작중 등장하는 어떤 인물보다도 ‘비인간’의 표상인 인공지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이 전개될수록 멀은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그런 멀과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휴머니스트 진영이다. 휴머니스트들은 순수한 인간의 본질을 강력히 주장하지만 그들의 행보에 인본주의는 담겨 있지 않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첨단 시술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린아이고 노약자고 할 것 없이 모두 구덩이에 던져넣어 화형에 처하는 극단적인 처형 방식을 사용한다. 심지어 기술의 도움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연방군과의 전투를 위해 신식 무기나 드론, 신체 강화 등의 기술을 필요한 만큼 이용한다.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비인간과 비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인간. 이 대비는 독자들로 하여금 기존의 상식을 되짚어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더욱이 멀의 변화를 이끌어낸 요소가 영웅심리나 우월감 등 거창한 무언가도 아닌 오롯한 ‘애정’에서 착안한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정이 든다’라는 말. 그것은 언제나 감정과 마음이 있는 존재에게서만 뻗어 나올 수 있는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따뜻한 힘이다. 상대를 계속 생각하게 되고, 걱정하고, 그 곁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 하는 애착. 인포스페이스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고 생겨도 결국 케일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되돌아온 멀이 가지게 된, 디지털 코드와 프로그램만으로는 명쾌히 설명해내기 어려운 것.
과연 우리는 앞으로도 이것을 ‘인간적인’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될까.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차이를 결정짓는 것이 '인간성'이라는 덕목이라면, 미래 사회에서의 그것은 어떻게 정의 내려질까. 이미 훌쩍 다가온 디지털 문명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멀과 멀의 세계>는 생각해보지 못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