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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무해한 사람은 아무 말도 보태지 않는다 - 낮과 밤은 서로에게 [영화]

김종관의 <낮과 밤은 서로에게>(2026)를 보고

by 최은파 에디터
2026.11.0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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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영화 <낮과 밤은 서로에게>의

      에피소드 구성과 결말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오랜만에, 무해한 영화


       

      요즘 사람들은 무해한 것을 찾는다. 『트렌드 코리아 2025』는 이 흐름에 '무해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작고 연약한 것에서 위안을 얻는다는 진단이다. 판다 한 마리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날 사람들이 울었고, 예능에 나온 돌멩이 하나가 '반려돌'로 불렸다.

       

      그런 영화를 오랜만에 봤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에서는 누구도 죽지 않고 무엇도 무너지지 않는다. 악역도 없다. 에피소드 제목에 '불륜'이 붙어 있는데도 그렇다. 네 쌍의 남녀가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떠날 뿐이다.

       

      다만 이 영화의 무해함은 모난 데를 깎아 낸 순함과 다르다. 인물들은 엉뚱하고, 서로를 경계하고, 끝내 헤어지기도 한다. 무해한 쪽은 인물이 아니라 영화가 그들을 대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누구도 판정하지 않는다. 그런 무해함에 뜻을 붙여볼까 한다. 무해함의 정의: 「1」 해로움이 없음. 「2」 남의 이야기에 함부로 이름 붙이지 않음.

       

       

       

      2. 골목 카페 '서로'


       

      카페에서 옆 테이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다들 한 번쯤 있지 않을까. 휴대전화를 보는 척, 커피를 젓는 척하면서. 모르는 사람들의 이별 한 토막, 첫 만남의 어색한 침묵 하나에 괜히 마음이 쓰인다. 끝은 모른다. 저 둘이 어떻게 됐는지 알 길 없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그 옆 테이블을 79분짜리 영화로 만들었다. 주택가 골목에 작은 카페가 있다. 이름은 '서로'. 일하는 사람은 사장과 직원 둘뿐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동안 네 쌍의 손님이 차례로 이 카페에 앉았다 간다. 이야기는 모두 이 카페의 테이블 위에서 오간다.

       

      뼈대는 감독의 전작 <더 테이블>과 같다. 영어 제목도 아예 ‘The Table: Day and Night’이다. 다른 점은 계절이 흐른다는 것이다. 영화는 계절을 자막이나 풍경으로 알리지 않고 옷으로 알린다. 반팔 차림으로 들어오던 손님들이 어느새 겉옷을 걸치고 앉는다.

       

      네 편은 단편소설집의 목차처럼 읽힌다. 인물도 사건도 이어지지 않는다. 같은 카페를 지나갔다는 것만 같다. 사건은 하나같이 작다. 작아서 남의 이야기로 밀어낼 핑계도 없다. 옆에서 엿들었든 직접 앉았든,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둔 대화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어 봤다.

       

       

       

      3. 네 개의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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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의 카페에서 현오는 시계 속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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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카페에서 유진은 간밤의 일을 떠올린다.

       

       

      첫 번째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두 사람이 끝내 마주 앉지 않는다. 시계 장인을 꿈꾸는 현오(주종혁)는 낮에, 유진(김민하)은 밤에 카페를 찾는다. 현오는 시계 속을 들여다보며 작고 정교한 세계를 이야기하고, 유진은 간밤에 겪은 일을 조곤조곤 털어놓는다. 어떤 할머니가 유진의 신발을 한 짝씩 전부 가져가 버렸다. 듣는 내내 속으로 외쳤다. 뭐야, 할머니 내 신발 내놔요. 유진은 맨발로 운동화를 든 채 집으로 돌아온다. 같은 밤, 신발 한 짝만 남은 꿈에서 깬 현오가 창밖으로 그런 유진을 내려다본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꿨다. 유진은 스위스로 떠나고, 현오는 스위스에 가기를 꿈꾼다. 둘이 다시 만날지는 영화가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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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미는 영민의 얼굴을 붙잡고 세상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 '아직 나인 사람들'은 리듬부터 다르다. 중학교 때 같은 학원에 다녔던 상미(한선화)가 카페에 앉아 있던 영민(장률)을 발견하고 맞은편에 앉는다. 상미는 자기가 모든 것을 기억한다며 세상의 비밀을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사람들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그 비밀 가운데 하나다. 영민은 당황하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처음엔 엉뚱하게만 들리던 말이 쌓일수록 질문 하나로 모인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아직 내가 나로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한선화는 종잡을 수 없는 상미를 과장 없이 밀어붙이고, 장률은 그 말들을 받아내는 얼굴로 균형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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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하던 첫 만남이 어느새 웃음으로 바뀐다.

       

       

      세 번째 '이.순.불(이토록 순수한 불륜)'이 가장 웃기다. 인기 웹소설 작가 혜진(심은경)과 독립 영화감독 동남(이희준)의 첫 만남이다. 동남은 혜진의 소설을 영상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혜진은 그런 동남을 처음부터 경계한다. 새침하고 꼿꼿한 혜진과 능청스러운 동남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말을 주고받는다. 불신과 호기심 사이를 오가는 이 줄다리기에는 다른 에피소드 같은 꿈도 이별도 없다. 대화 자체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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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두 사람 사이에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다.

       

       

      마지막 '가을 이야기'는 아슬아슬하고 마음 쓰이는 이별이다. 아이돌 데뷔를 앞둔 나경(전소영)이 오랜 연인 종수(김동휘)에게 이별을 꺼낸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다. 좋아하니까 헤어진다는 쪽에 가깝다. 사람들이 오래 다퉈 온 그 말이다. 좋아하는데 왜 헤어지느냐는 쪽과, 좋아하니까 보내 줄 수 있다는 쪽. 영화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카페를 나서기 전, 두 사람은 누가 먼저 갈지 머뭇거린다. 먼저 돌아서는 건 종수다. 그러고는 자기 뒤통수를 보라고 한다. 얼굴 대신 뒤통수를 남기는 이별이다. 떠나보내는 사람에게 건네는 마지막 배려 같기도 하고, 끝까지 놓지 못한 미련 같기도 하다. 정말 좋아해서 헤어지는 걸까. 영화가 답하지 않은 그 질문을 극장 밖까지 들고 나왔다.

       

       


      4. 탁자 맞은편 자리


       

      김종관의 카메라는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얼굴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눈가와 입술이 프레임 가장자리를 밀어낼 만큼 다가간다. 그중 가장 오래 남는 건 '이.순.불'의 두 사람이다. 서로를 처음 알아가는 사이인데 말의 템포가 묘하게 빠르다. 경계하면서도 박자는 잘 맞는다. 한쪽이 던지면 다른 쪽이 곧바로 받아친다. 그 순간 카메라가 두 얼굴로 확 들어간다.

       

      카페 영화에서 관객은 대개 옆 테이블 손님이 된다. 귀는 열어 두고 몸은 빠져 있는 자리다. 감독도 관객이 카페에 머물며 스쳐 간 이들의 이야기를 엿보는 기분이 들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런데 카메라는 그 바람을 자주 배반한다. 상미의 말처럼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그건 보통 관객이지만, 얼굴이 화면을 채우는 순간 엿보던 사람은 대화 상대가 된다. 말이 끊겨도 시선을 피할 데가 없다.

       

      그 컷이 유독 남는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를 가장 의심하는 쌍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혜진은 까칠한 작가이고 동남은 수상한 감독이다. 코앞에서 보면 둘 다 상대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얼굴이다. 거리가 사라지면 판단도 늦어진다. 김종관의 카메라는 인물을 평가하기 전에 먼저 마주 앉힌다.

       

       

       

      5. 카운터 뒤의 두 사람


       

      감독은 카페 자체가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랐다고 했다. 카페를 사람으로 바꾸면 사장과 직원이 남는다. 네 쌍은 떠나고 둘은 남는다. 네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사람도 이 둘뿐이다. 사장은 커피를 내려 줄 때 화면에 들어온다. 직원은 이야기가 끝나면 나와서 커피잔을 치우고 테이블을 닦는다. 한 편은 사장이 내린 커피로 시작해서 직원이 닦은 테이블로 끝난다.

       

      두 사람은 이야기 도중에 끼어들지 않는다. 같은 꿈 이야기에도, 감시당한다는 고백에도, 헤어지는 연인에게도 한마디 보태지 않는다. 대화가 끝난 자리에 나타나 남은 잔을 치울 뿐이다.

       

      '이.순.불'에서 혜진은 처음 커피를 마실 때는 잔 바닥의 꽃 모양을 못 봤는데, 다 마시고 나니 보이더라고 말한다. 꽃은 잔을 끝까지 비운 사람에게만 보인다. 그리고 비워진 잔을 마지막으로 집어 드는 사람은 직원이다. 무엇이 남았는지 가장 먼저 보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직원은 그걸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테이블을 닦는 손은 방금 거기 앉았던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흔적을 지우고 다음 손님을 위한 자리를 비운다.

       

      그렇다고 직원이 배경으로만 남지는 않는다. 영화 중간, 직원에게도 이야기가 생긴다. 상대는 카페의 손님인 청각장애인 연인이다. 두 사람은 수어로 대화한다. 영화 내내 옆 테이블에 앉아 엿듣던 관객이 처음으로 듣지 못하는 대화다. 수어를 모르는 관객에게 이 커플의 사랑은 손과 얼굴로만 남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키스한다. 소리도 빛도 없는 자리에서 두 사람이 가장 가까워진다.

       

      네 쌍의 이야기는 다 들려주던 영화가 이 이야기만은 들려주지 않는다. 남의 잔을 말없이 치우던 사람에게도 자기 테이블이 있었고, 그 테이블의 대화는 관객 몫이 아니다. 엿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 이 영화가 사람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는 방식이다.

       

      요즘 말하는 무해함이 나를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이 둘의 무해함은 남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클로즈업이 관객을 대화 상대로 끌어당긴다면, 카운터 뒤의 두 사람은 판단을 내려놓는 법을 보여준다. 김종관은 어떤 사랑이 옳은지 말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보태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끝까지 프레임 안에 둘 뿐이다.

       

       

       

      6. 서로에게, 그다음


       

      감독은 제목을 이렇게 설명한다. 첫 이야기에서 한 사람은 낮에, 한 사람은 밤에 있다. 마지막 이야기의 두 사람은 같은 자리에 있다가 서로에게 낮과 밤이 된다. 만나지 못한 둘이 꿈으로 이어지면서 시작해서, 함께 있던 둘이 갈라지면서 끝난다. 네 편이 하루처럼 돈다.

       

      제목을 다시 읽으면 문장이 끝나 있지 않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가. 건네는지, 비켜서는지, 기다리는지 알려 줄 동사가 없다. 감독은 그 자리에 '바라보다'와 '이해하다'를 넣었다. 낮과 밤만큼 다른 타인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카페 이름을 겹쳐 읽으면 더 소박한 답도 나온다. 낮의 현오도 밤의 유진도 '서로'에 왔다. 낮과 밤은 서로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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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빈칸을 한 번 더 연다. 동남이 혜진의 소설을 찍는다. 촬영장은 카페 '서로'이고, 찍는 건 불륜 이야기다. 에피소드 제목에 붙어 있던 불륜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되는 이야기로 돌아온다. 카메라 앞에는 사장과 직원을 닮은 배우들이 서 있다. 진짜 사장과 직원은 그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네 쌍의 이야기를 지켜보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구경하는 자리에 선다.

       

      그때 공간의 조명이 모두 꺼진다. 인물들이 그대로 멈춘다. 극장에서는 누를 수 없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군가 눌러 버린 것 같다. 움직이는 건 카메라뿐이다.

       

      상미는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고 했다. 모두가 멈춘 카페에서 끝까지 멈추지 않는 시선은 둘이다. 카메라, 그리고 그 뒤에 앉은 나. 판정은 끝내 내려지지 않는다. 다음 테이블에 누가 앉을지, 영화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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