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인 티보'는 <케이크>, <유쾌한 아이스크림콘>, <캘리포니아의 도시 풍경> 등 미국 회화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화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1960년대 팝아트와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정물화를 넘어 인물화와 풍경화 등 정통 회화의 감각을 폭넓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웨인 티보의 작품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첫 회고전으로 아시아 최초 대규모 회고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밝고 경쾌한 색채와 친숙한 소재로 대중에게 다가간 그의 그림 속에는 안정적이면서 불안한, 함께이지만 외로운 예상치 못한 낯선 감각들이 숨어 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시선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익숙한 사물에 숨겨진 낯선 감각
웨인 티보의 작품 속에는 친근한 소재들이 자주 등장한다. 진열대에 놓인 케이크와 파이, 가지런히 늘어선 아이스크림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이다. 선명한 색채와 반복되는 사물들은 마치 사진처럼 느껴지게 하여 그의 그림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특히 디저트를 그린 작품들은 20세기 미국의 풍요로운 소비문화를 연상시키며, 광고 속에서 볼 법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오래 바라보면 첫인상과는 다른 낯선 감각들이 드러난다. 반복되는 케이크들과 파이들은 팝아트의 한 영역처럼 이미지 소비에 대한 비평적인 시선을 뜻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사물들의 모양과 크기, 그림자의 방향까지 모두 다르게 보이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줄지어 놓인 신발> 또한 구두는 모두 줄지어 놓여 있지만 색감과 모양 등은 각각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티보의 그림에서 반복은 사물의 개성을 지우기보다 오히려 각각의 차이를 발견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불균형과 변화가 존재한다. 이러한 특징은 상품 이미지의 반복을 활용한 팝아트를 연상시키면서도, 사물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표현하는 회화적 즐거움을 드러낸다. 균형 잡힌 듯하면서도 불균형한 리듬이 캔버스를 채우며, 익숙한 사물들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게 한다.


이러한 표현에는 상업디자인과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했던 그의 경험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티보는 젊은 시절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육군항공대에서 시각자료와 관련된 작업을 수행했다.
대중에게 전달되는 이미지를 제작했던 경험과 회화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는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친숙한 사물을 소재로 선택하면서도 그것을 단순한 상품 이미지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 티보의 회화는 이러한 두 영역이 만나는 지점에 놓여 있다.
달콤함 대신 물감을 쌓다
웨인 티보의 작품 속 음식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질감의 표현이 실제 음식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부드러운 생크림처럼 보이는 표면은 사실 두껍게 쌓아 올린 물감이다. 작가는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임파스토' 기법을 활용해 사물의 질감을 강조했다. 케이크 위에 올려진 크림과 캔버스 위에 쌓인 물감이 시각적으로 닮아 있다는 표현은 작가 특유의 재치로 볼 수 있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대상을 실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물감이라는 재료가 지닌 성질을 활용해 사물의 실재감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케이크와 파이, 각종 사탕들과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까지 손에 잡히면 그 온도가 느껴질 것만 같은 ‘액추얼리즘’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손끝에 질감이 느껴지게 만든다.
관람자는 눈앞의 케이크를 정확히 인식하는 동시에 그것이 캔버스 위에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은 색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1900년대 작품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색감과 밝은 색채를 조합하여 마치 사물이 3D처럼 튀어나와 보이게 만들고 있다. 사물의 색감뿐만 사물의 윤곽과 그림자에도 여러 색을 겹쳐 사용하며 정적이고 고요한 사실적인 형태에 독특한 생동감을 부여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볼수록 서로 다른 색의 형질과 붓의 결이 드러나지만, 조금씩 떨어져 바라보면 하나의 선명한 이미지로 완성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평면적인 모니터나 스크린으론 느껴지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의 두 눈으로만 느껴지는 질감이기 때문이다.

웨인 티보의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가 만큼 어떻게 그렸는가가 중요하다. 그가 그린 디저트들은 맛을 상상하게 만드는 음식인 동시에 색채와 형태, 질감을 탐구하게 하는 회화적 대상이다.
안정과 불안
작가의 세계는 정물화를 넘어 인물화와 풍경화로 확장된다. 그의 인물화에는 무표정으로 앉거나 서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특별한 행동이나 극적인 사건 없이 정적이 자세를 취하고 있어 마치 살아 숨 쉬는 인간이 아닌 사물처럼 느껴지게 되어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특히 <앉아 있는 다섯 인물>은 다섯 명의 사람이 모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어 함께 있어도 외로운 현대인들의 심리적 거리감과 고립을 표현하고 있고, <베티 진 티보와 책>과 , <초록 드레스>는 모두 시선이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그들의 감정이나 내면은 쉽게 읽히지 않아 관람객으로 하여금 불안함을 자아낸다.


반면 풍경화에서는 공간 자체가 불안정해진다. 도시 풍경이 마치 돋보기를 보고 있는 듯 가파른 도로와 빼곡한 건물들이 과장된 원근감 속에 배치되어 있고, 각지고 질서 정연한 도시의 모습과는 달리 굽이지고 비현실적인 경사로 아찔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해변가를 표현한 작품에서도 밝고 경쾌한 색채와는 대비되게 거대한 건물 그림자가 해변 위를 덮고 있어 안정된 일상의 풍경 속에 묘한 불안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를 바라보는 시점 또한 새가 하늘 위에서 바라보듯 한 시점과 과감한 구도로 익숙한 풍경이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놓이게 된다.


인물화와 풍경화에서 나타나는 불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인물화에서는 표정과 자세를 통해 심리적인 거리감이 형성된다면, 풍경화에서는 과장된 원근감과 복합적인 시점이 공간적인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안정적인 구도 속에서 불안정한 감각을 발견하게 하는 그의 회화는 익숙한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웨인 티보의 케이크에는 달콤함이 없다. 적어도 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이 케이크의 맛만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친숙한 사물을 바라보다 보면 그 속에 다채로운 질감과 색채, 질서와 무질서의 공존, 익숙함과 낯선 세계를 향한 화가의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미소 짓거나 의아해할 때가 좋다. 그런 반응은 내 작업의 중심에 있다”
그는 2021년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100세 무렵 완성한 자화상 <백 살 광대>에는 우는 듯 웃는 듯 희미한 미소를 띤 노인이 등장한다. 작은 캔버스 속 노인은 마치 화면 밖으로 걸어 나갈 듯한 모습이다.

삶의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가 광대의 모습으로 남긴 미소. 그 표정을 바라보며 그의 그림에서 발견하지 못하던 달콤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