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모든 글쓰기가 내 얘기뿐인 것 같다고 느끼며, 문득 누가 나를 그렇게 궁금해할까… 의구심이 든다. 주구장창 내 얘기만 써온 것 같아 몹시 부끄러워진다.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거짓말의 성격을 띠는 것 같다(거짓말? 포장? 과장?). 글은 대개 ‘서론-본론-결론’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결론’에 다다르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도 어떻게든 매듭지어야만 할 것 같은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어떤 문장이 나를 잡아채기도 한다. 내가 “어, 나는 그쪽으로 가려던 게 아닌데…!”라고 말해도, 그 문장은 “에이, 그래도 이게 더 멋있지 않겠어?” 혹은 “근데 이쪽으로 가야 네가 결론을 더 쉽게 낼 수 있을걸?”이라며 나를 끌고 간다.
중요한 것에 대해 쓰자고 마음 먹을수록 문장들은 제멋대로 튀어 나간다.
아무래도 내가 그것들을 통제할 지식이 부족한 듯싶다. 만약 내가 “아니, 이 길이 더 좋아. 왜냐면 이 길은 이러하고 저 길은 저러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할 줄 알았더라면 문장들이 그렇게 날뛰는 일도 없었을 거다. 아니면 너무 멀리만 봐서 그런 걸까. 글을 쓰면서 찬찬히 짚어 나가야 할 것들을 두고, 결말부터 정해 놓으니 그 사이의 것들이 더 방황하게 되는 걸까.
그래서 이번에는 결론이 딱히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싶다. 그렇게 보고 느낀 것을 얘기하다 보면 나오는 것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1. 영업종료
저녁에 상점이 늘어선 거리를 걷고 있었다. 불이 켜진 상점은 많지 않았다. 길은 좁고 공기는 따뜻하고 주변의 건물들은 낮았다. 영업을 마감한 듯했으나 불은 켜져 있는 금은방을 지나는데, 안에서 뭔가 휙 움직이는 모습이 시야 한쪽에 스쳤다. 두세 발 정도 뒷걸음질 쳐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 남자가 여자아이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고 빙빙 돌고 있었다. 남자와 아이의 활짝 웃는 모습에 낮고 높은 웃음소리가 겹쳤다. 뭔가 사적인 것을 봐버린 듯한 기분에 고개를 돌려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2. 타조
우리 동네에 타조 같은 남자가 있다. 남자의 모든 것이 길다. 보통의 사람을 위아래로 잡고 쭉 잡아당긴 것 같다. 심지어 머리도 길다. 긴 머리는 단정하게 묶고 있다. 남자는 무대에 등장하는 전환수마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 항상 끼고 있는 헤드폰도 당연히 검은색이다. 그리고 남자는 달린다. 긴 다리를 흐트러짐 없이 일정한 속도로 교차시키며 달리는 폼이 꼭 러닝화 광고에 등장하는 선수 같다.
동네에는 뛸 수 있는 코스가 그리 많지 않다. 큰길에서 동네로 들어오는 중심 거리를 따라 걸으면, 왼쪽에는 인공 잔디가 깔린 축구장과 공원이, 오른쪽에는 아파트 단지가 하나 나온다. 이 단지의 시작을 알리는 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농협이다. 빛바랜 연두색 건물 안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내겐 동네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농협에서부터는 주민센터, 슈퍼, 카페, 식당, 술집, 안경점, 학원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의 중심가가 이어진다. 이 길은 작고 완만한 언덕을 이루고 있는데, 남자의 러닝 코스는 A: 축구장 둘레의 러닝 트랙, 그리고 B: 동네를 관통하는 얕은 언덕길로 나뉘는 듯했다.
아마 남자뿐 아니라 이 동네에서 산책이나 러닝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택할 길일 것이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기에 남자를 이따금 마주쳤다. 마주쳤다고 하기엔 민망할 만큼 잠깐 스쳤을 뿐이지만. 길쭉한 체형 때문인지, 통일된 색의 옷차림 때문인지, 아니면 그 일정한 뜀박질 때문인지 남자를 볼 때마다 타조가 생각난다. 그 남자는 볼 때마다 항상 뛰고 있는데, 뛰고 있는 모습밖에 안 봐서인지 남자가 걷는 모습이 잘 상상이 안 간다.
3. 무적
역에서 중학생쯤 돼 보이는 남자애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는데, 뒷목이 새까맣게 탄 그 애들은 우산을 꺼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비를 맞아도 괜찮아 보였다. 비를 맞고 있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교 시간인지 역에는 그 나이대의 애들이 꽤 많이 있었다. 어쩐지 나이와 성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내겐 그들이 전부 친구일 것만 같았다. 아니면 무서울 것 하나 없다는 듯한 태도가, 거칠거칠한 음성이 이루는 합창이 그들을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가 저 아이 같고, 이 목소리가 저 목소리 같은 와중에 동떨어진 아이들이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 그중 한 명은 커다란 자전거 바퀴 두 개를 한 손에 한 개씩 들고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종아리마저 새까맣게 타 있었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것도 정말 남자 중학생 같다고 생각했다. 저 아이는 왜 자전거 바퀴를 들고 있는 걸까, 자전거가 고장난 걸까, 남자애들은 참 자전거를 많이 타는데 왜 여자애들은 자전거를 많이 안 탈까, 생각했다. 아, 여자애들은 치마를 입지 참.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여전히 근무복이 치마인 직장이 생각났다. 지연입장 안내를 위해 급히 오르내리던 계단에서 어정쩡하게 숙인 자세로 이동할 때 보폭을 좁히던 치마의 조임이 생각났다. 2층에서 근무를 할 때 1층 로비에서 치마 안이 올려다 보일 수 있으니 여자들은 2층의 유리 난간에 너무 붙지 말라던 말도 기억났다. 문득 나도 중학교 때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면 좋았을 텐데, 그을린 뒷목과 종아리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했다.
4. 시를 찾는 아저씨
도서관에서 다급하게 시를 찾는 아저씨가 있었다. 3층 종합자료실이었다. 한 아저씨가 (도서관 기준으로) 조금 소란스럽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문학·철학 서적 등이 있는 코너였고, 오른쪽으로 책이 가득 찬 서가를 따라 좁게 난 통로의 한쪽 끝에 내가, 중간쯤에 그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다. 표정으로 보나 발걸음으로 보나 화장실을 찾는 게 분명한데, 왜 여기서 찾는 거지, 생각했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고, 아저씨는 내게 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대뜸 “시는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어떤 시를 찾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시든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까? 통로의 반대쪽 끝을 가리키며 저쪽에 있다고 말씀드리자 아저씨는 부리나케 그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급했는지 고맙다는 말도 몇 걸음 멀어진 뒤에야 들렸던 것 같다.
시를 그렇게 전투적으로 찾는 사람은 살면서 처음 봤다. 시에 목숨이라도 달린 것마냥.
5. 2026년 10월 26일
프랑스에서는 시위가 폭동으로 변질되고 있고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누구는 자전거를 타고 팔레스타인을 보여주고 나는 여기 앉아서 뭘 하고 있나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에그타르트를 먹고 한 번도 실패를 겪어보지 못한 채 그만큼 큰 도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락하지도 비상하지도 못한 채 이렇게 그저 그렇게 있다. 어느 연극을 보러 가서 우리 시대에 드라마 라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보고 몇 년 전 들었던 전공수업이 생각났다. 포스트 어쩌구에 대해서 말하던 수업에서 그런 비슷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는데 우리는 더 이상 드라마가 존재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또 이렇게 그저 그렇게 앉아있는 나를 보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왜냐면 세상에는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고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해 행동할 수는 없고 그러니까 나는 그 무엇에도 개입되지 못한 채로 우리 동네에 뛰어다니는 타조처럼 그렇게 섞이지 않는 장소와 시간 속에서 어찌됐든 어딘가를 향해 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게 무 드라마가 아니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쟁과 시위를 나의 무기력함을 멋있게 설명하는데 이용한 것이고 그런데 내가 그럼 전쟁과 시위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거냐. 어떤 걸 해야 맞는 거고 어떤 걸 해야 잘한 거고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 것이고 난 언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