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무심코 빛과 마주하며 살아간다. 고즈넉한 카페 안으로 한낮의 볕이 들어올 때나 더 선명한 사진을 찍기 위해 밝은 곳으로 이동할 때, 그리고 가끔은 버스 안으로 들이치는 뜨거운 햇빛을 피하고자 자리를 옮길 때도.
그러나 그런 순간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일같이 당연하다는 듯 찾아오는 빛은 이미 우리네 삶에 너무나도 익숙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빛이 어떤 모양으로 펼쳐지고 깨지는지, 누구의 어깨 위로 내려앉는지, 시간이나 계절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바쁜 도심 속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처럼 우리의 곁을 맴돌 뿐이다.
하지만 여기, 그 모든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는 한 사람의 카메라가 있다.
현재 그라운드시소 센트럴에서는 표기식 작가의 <빛은 어떻게 떨어졌길래 모두 다르게 반짝여서> 사진전이 진행 중이다. < biT >
그러나 개인 작업과 상업 작업을 바삐 넘나들면서도 작가가 매번 다시 눈길을 돌리고 마는 곳은 언제나 자연이다. 바람이 부는 나무, 꽃이 핀 거리, 그 사이를 여유롭게 건너다니는 길고양이들 같은 존재들.
이번 전시는 그런 작가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심 속의 자연, 특히 한강을 중심으로 찍은 460여 점 이상의 방대한 빛의 기록을 선보인다.
<표기식 사진전: 빛은 어떻게 떨어졌길래 모두 다르게 반짝여서>는 총 8개의 짧은 챕터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중 첫 번째 챕터인 ‘나무가 서 있다, 여전히 그 자리에’는 관람객이 가장 처음으로 전시를 마주하는 장소인 만큼 작가의 작업관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넓은 벽면이 온통 각양각색의 나무 사진들로 가득하다. 붉고, 파랗고, 앙상했다가 다시 푸르러지는 나무들은 언뜻 보기엔 제각기 다른 나무들로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단 한 그루의 버드나무다. 작가는 여러 계절 동안 같은 위치를 고수하며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의 모습을 끈질기게 기록해왔다.
모든 것이 바쁘게 스쳐 지나가는 현대 사회에서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하나의 나무를 일 년 동안 찍으면서 알게 됐어요.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구요.”라는 작가의 말처럼, 오랜 시간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강인함이 전시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무가 서 있는 풍경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기면 순식간에 밤이 찾아온 듯 어두워진 공간이 나타난다. 작가가 수년간 찍어온 사진들을 활용해 새벽부터 밤까지 각 시간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에서, 그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새벽녘의 모습을 보여주는 ‘어두운 밤과 밝은 꿈’, 밝아오는 아침을 찍은 ‘아침의 위로’, 강렬한 저녁의 ‘노을은 매일 녹아내린다’와 다시 찾아온 밤의 ‘모든 건 희미하지만’ 네 가지의 챕터다.
그중 특히 새벽과 밤을 담아낸 두 전시장은 마치 실제 어둠이 내려앉은 듯 검은색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 공간 안에 담긴 자연, 예컨대 나무껍질과 숲, 들꽃, 하늘과 같은 존재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늘상 마주치는 익숙한 모습임에도 사뭇 다른 인상을 안긴다.
빛을 다루는 사진전이지만 오히려 어둠에 집중하게 되는 이 아이러니함은 작가의 흑백 사진과 에러가 담긴 컬러 사진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색’이라는 요소를 배제한 채 고요하게 대상의 본질을 비추는 흑백과 의도적인 에러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담은 컬러는 사진의 세계에서는 양극단에 놓인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를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에 담긴 오브제에 집중하고 사색에 잠기게 한다는 점에서는 결국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번 사진전에서 작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그가 오랫동안 담아온 한강 물결 위 윤슬이 담긴 ‘가장 찬란한 빛’ 챕터다.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의 한강과 그 위에 흩뿌려진 빛의 파편. 사람들은 흔히 자연은 변치 않는 존재라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계절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을 띠었던 첫 번째 챕터의 버드나무처럼, 모든 것은 변한다. 다만 자연의 변화는 자유로울 뿐이다.
한강 가까이에 사는 주민으로서 잔잔히 흐르는 물결 위로 빛이 부서지는 모습은 언제나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이었다. 새벽에는 마치 별 가루를 뿌린 듯한 작은 파편들이 쫑쫑거리고, 한낮에는 눈이 멀 정도로 파도치는 광채가 일렁인다. 노을빛에 물드는 저녁에는 온 한강이 주홍빛 갈래로 물들다가 이내 밤이 되면 한강 다리를 밝히는 색색의 조명이 그대로 물 위로 떨어진다.
물은 자연의 거울과 같아서 주변의 풍경을 그대로 비추어낸다. 그리고 수채화처럼 물드는 투명함은 무심코 곁을 지나던 사람들의 마음에마저도 한 방울 아름다움을 남기고 만다.
빛은 어떻게 떨어졌길래 모두 다르게 반짝여서, 이토록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찬란하게 비추는 것일까.
그 해답은 내년 3월 1일까지, 그라운드시소 센트럴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