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꿈 - 나탈리 카르푸셴코 전

글 입력 2022.12.30 17:5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_포스터_세로형.jpg

 

 

 

자연과 같은 숨을 쉬는 아티스트, 나탈리 카르푸셴코


 

002_2차 가공 불가.jpg

 


사진은 흥미로운 매체다. 한 사람이 찍는 사진을 보면 그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지 알 수 있다.

 

같은 공간을 같은 시간 동안 머물러도 그동안 촬영한 사진을 보면 우리 각각이 세상을 얼마나 다르게 보는지 알 수 있다. 무엇을 사진으로 남길 만큼 인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포착하는지. 한 장, 두 장 모인 사진은 그것을 찍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나탈리 카르푸셴코의 작품에서 거대한 혹등고래와 그 아래에서 헤엄치는 사람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사진 속에서 사람은 특정한 자세를 취하거나 표정을 짓지 않고 그저 자연 속 일부로 그 자리에 있다.

 

거대한 자연에 내던져진 모습이다. 아무 정보 없이 사진을 볼 때부터 나탈리는 자연, 그중에서도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자연에 순응하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긍정하고자 하는 작가로 느껴졌다.


실제로 사진작가이며 환경운동가인 나탈리는 열여덟 살부터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해 현재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열리는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에서 그의 작품 20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총 다섯 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009_2차 가공 불가.jpg

 


첫 파트인 ‘Ocean Breath’는 그 제목처럼 바다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모여 있다. 포스터에도 사용된 혹등고래와의 사진을 비롯해 푸르고 투명한 바닷속에서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파트 ‘Angel’은 천사나 요정와 같은 신화적 존재를 향한 나탈리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순서다. 빛과 물,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풍경을 여기서 만난다.


세 번째 파트인 ‘Rising Woman’에서는 여성과 자연에 내재한 에너지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죽음과 탄생 모두를 끌어안은 자연과 닮았다. 네 번째 파트 ‘Wild Breath’는 앞선 파트와는 조금 결이 다르게 거대한 자연 속 사람보다는 일상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많다. 작품 속에서 모델들은 치타, 닭, 물소 등 동물의 곁에 머물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마지막 파트 ‘NATALIE’에서는 작품이 아닌 사람 나탈리 카르푸셴코를 만난다. 환경운동가이자 아티스트, 해양 옹호자, 고래 투어 가이드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과 일상을 들여다보고, 전시를 보는 관람객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게 꾸며진 공간이다.

 

 

 

물에서 시작되어 물로 돌아가는 것


 

004_2차 가공 불가.jpg

 


나탈리 카르푸셴코가 자신의 작업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삼는 것은 ‘물’이다. 이번 전시도 끝까지 보고 나면 물속에 깊이 잠수했다가 나온 느낌이 들 정도로 바닷속 또는 해안가가 배경인 작품이 많다.


들어가자마자 어둑어둑한 푸른색 공간이 기다리고 있는 ‘Ocean Breath’ 파트는 나탈리의 물이 어딘가에 담겨 있는 형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무한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우주와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탈리가 카메라에 담는 물은 대부분 바다다.

 

경외심이 들 정도로 깊고 푸른 바닷속에 아무 장비 없이 잠긴 사람의 모습은 자연의 시간 앞에서 사람의 시간은 그저 찰나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묘한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사진 속에서 나체인 사람들은 자신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

 

 

011_2차 가공 불가.jpg

 

 

물은 순환을 상징하기도 한다. 물은 투명하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무언가를 정화하고 증발해 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생명체는 물 없이 살아갈 수 없으며 최초의 생명체 역시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물 없는 지구를 지구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것들이 물을 매개로 이 지구를 돌고 또 돈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는 나탈리의 영상 작품 ‘워터 드롭’은 물의 순환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한 여성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폭포가 되고, 폭포는 바다로 흘러가며 거기서 다시 여성이 탄생한다.


물은 여성과도 연결된다. 물이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듯이 모든 사람은 한때 어떤 여성의 몸 안에 있었다. 이 부분을 인식하고 나면 나탈리가 피사체로 삼은 사람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관련된 작품을 주로 ‘Rising Woman’ 파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Rebirth of Woman’이라 이름 붙인 사진은 발리 해안가의 물이 고여 있는 바위 구멍 안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누운 여성들의 모습을 담았다. 자연과 어우러진 여성의 모습에서 여성의 곡선과 자연의 곡선이 얼마나 닮았는가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한다.

 

 

 

삶을 받아들이는 일


 

013_2차 가공 불가.jpg

 

 

나탈리의 작품 속 자연은 다정하고 따뜻한 인상은 아니다. 오히려 범접할 수 없이 거대해서 압도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보며 편안함을 느끼는 까닭은 사진 속 모델들이 모두 편안한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에서 물속에 있는 사람은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는다. 물을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인 모습이다. 다른 사진에서도 사람들은 자연을 배경이나 도구로 삼는 대신 자기 자신을 자연에 맡긴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나탈리의 태도가 읽히는 부분이다.


사실 산다는 것은 발버둥 치는 일의 연속이다. 세상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걸 부추기기도 한다. 계속해서 현재의 나를 뛰어넘어 더 나은 나로 거듭나야 한다고. 나탈리 카르푸셴코의 사진전은 그런 조급한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

 

그게 이 전시를 보는 1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일지라도.

 

 

012_2차 가공 불가.jpg

 

 

공간과 사진, 음악이 잘 어우러진 그 1시간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 꿈은 내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꿈이다.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도록 설계된 세상의 법칙을 깨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모든 것의 시작이자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 죽음 후에야 가능한 일을 나탈리는 사진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그 1시간 동안의 꿈에서 현실의 삶을 좀 더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얻어간다.

 

 

[김소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