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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끝에서 시작되는 역설, 뮤지컬 '죽음에 관하여' [공연]

죽음이라는 삶의 완전한 끝에 서서야 비로소 깨닫는 삶의 진실

by 이유빈 에디터
2026.08.04 19:07

뮤지컬 <죽음에 관하여>는 웹툰 원작이 가진 옴니버스적 세계관을 무대 위에서 '신'과 '인간'이라는 단 두 명의 배역으로 응축해낸다. 이 세계관에서 신은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신은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망자들이 가야 할 마지막 길을 안내하는 등의 중간자적 모습을 띤다. 망자들은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이 죽었을 때의 모습으로 그 문 앞에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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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온 망자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신을 통해 들은 이후로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들 중엔 세상을 선하게 살아갔던 사람도, 그렇지 않았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죽기 전 그들이 어떤 결의 삶을 살아왔건 신은 모든 망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후자의 이야기, 즉 이생에서 악한 행위를 저지르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신은 마치 가치 중립적으로 듣는 관찰자의 모습을 취하는 것 같지만, 그 신은 그 인간을 자신이 가한 악행에 고통받는 피해자의 위치에 두게 함으로써 그가 행한 죄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악인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선한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다.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나 혼자서 섣불리 단정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뮤지컬 <죽음에 관하여>를 보고 나서는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경계를 떠올려 볼 수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하는 행위가 타자에게 끼칠 영향의 무게를 숙고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곳에 온 망자 대부분은 그런 자들이었다. 즉, 그들은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타자와 촘촘하게 얽혀 있는지를 알고 있거나 혹은 그것에 기반한 삶을 살아갔던 자들이었다. 이때 뮤지컬 <죽음에 관하여> 속에 등장하는 꽤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모두는 각자가 경험했던 누군가 혹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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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올린 사람은 3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였다. 맞벌이셨던 부모님이 퇴근하시기 전까지 나는 외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중 떠오르는 가장 선명한 기억은 할머니가 고무 다라이에 겉절이를 갓 담그시곤 먹어보라며 입에 넣어주시던 모습이다. 나는 할머니가 한 모든 반찬을 좋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내가 청년이 되어가는 만큼, 할머니는 나날이 연로해지셨다. 여유 없이 바삐 보낸 나의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내가 첫 직장에 출근하던 첫 번째 날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뒤로부터 내 마음속은 죄책감으로 가득했다. 할머니가 많이 쇠약해지셔서 음식 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할 때도 할머니는 내가 올 때면 밥을 차려주셨건만, 기꺼이 맛있게 먹어드리지 못했다는 후회이기도 했다.

 

할머니 상을 치르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바라본 창밖의 아득한 풍경  속에서, 나는 내 삶에 갑작스레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외할머니의 부고는 곁에 있던 가까운 누군가를 떠나보낸 내 생의 첫 이별이었고, 그로부터 나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공평한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건조하고 별 의미 없게 여겼던 그 한 문장이 이제는 묵직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던 도중 <집으로> 영화를 다시 조명하는 SNS 게시물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할머니 생각이 나 눈물이 고였다. 그러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 외할머니를 봤다. 꿈에 나타난 외할머니는 정정했던 옛 모습이었고, 집에 모인 식구들을 위해 꿈속에서도 밥을 차려 주고 계셨다. 신기했던 건 그 밥이 맛있게 느껴졌고, 집안을 감도는 분위기가 푸근했다는 점이다.

 

비록 할머니를 더 이상 이 세계에서 볼 수는 없지만,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내 무의식 속에 이렇게 저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좀 더 낭만적인 의미 부여를 하자면, 할머니는 내 꿈속에서 자신의 손주가 행복해하던 그 시절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이 해주고 싶었던 최선의 것을 해주시고 다녀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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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 그중에서도 가까운 이의 죽음은 명백히 슬픈 사건이며, 나의 세계를 통째로 뒤흔들어버린다. 하지만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남아있는 사람들이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유한한 시간만이 주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남은 자들이 절실하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저승의 문 앞에서 신이 망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타인의 고통을 직면하게 하는 저승에서의 풍경들은 우리가 이생에서 살아가며 지녀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무대 위 신과 인간이 나누는 대화는 죽음이라는 삶의 완전한 끝에 서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녀야 할 가장 인간적인 삶의 태도와 닮아 있다.

 

그 역설로부터 우리는 각자에게 남은 삶의 시간 동안 자신의 세계를 어떤 것들로 채워나가야 하는지를 떠올려보면 좋지 않을까. 꿈속에서도 자신이 가장 해주고 싶었던 모습으로 등장했던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를 다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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