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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나락도 락이다 -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 2026 [공연]

아무것도 되지 못한 자의 락앤롤

by 채수빈 에디터
2026.09.1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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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락도 락이다.”


      이 문장에 온몸으로 깊이 공감하게 될 줄이야. 이것은 록 페스티벌 후기를 빙자한 나의 퇴사일기다.


      지난 6월 말,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을 저질렀다. 퇴사를 했다. 사람들이 왜 퇴사했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모든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다름 아닌 ‘뮤지컬’ 때문이다.

       

      흔히 새로운 세상을 만나려면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들 말한다. 내 견고한 껍질을 산산조각 낸 것이 바로 뮤지컬이었다.


      꿈이 현실이 되는 세상을 목격한 후, 태어나 처음으로 내 인생에 욕심이라는 것이 생겼다. 매일 뮤지컬을 숨 쉬듯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무엇보다 저 무대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싶다는 열망이 차올랐다. 이 뜨거운 열망에 비추어보니, 안전한 자리에 안주해서는 절대로 그곳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내 세계가 얼마나 좁고 납작했는지를 매일 실감했다.


      게다가 지난 1년간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로 활동하며 다채로운 문화와 사유들을 접할수록, 내 삶에 스스로 균열을 내야겠다는 확신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때부터 나의 무모한 방황이 시작되었다.


      30대를 코앞에 두고 다시 대학에 들어갈 결심을 한 것이다. 수백 번 망설이다 일단 문제집을 샀다. 목표는 교육대학교 진학이었다. 막막하다가도 ebs 선생님들의 다정한 강의를 차근차근 따라가니 조금씩 길이 잡혔다.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면 왠지 모르게 울컥하기도 했다.


      갈수록 현역 시절보다 모의고사 점수도 잘 나왔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무언가에 성실하게 몰입하는 감각 자체가 좋았다. 퇴근 후 독서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정시 퇴근하는 날보다 가벼웠다.


      하지만 순조롭게 굴러가고 있음에도 외면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 길을 택한다 해도 무수한 기다림 끝에 겨우 임용이라는 바늘구멍 앞에 설 뿐이며, 그 결과조차 내가 진정 바라던 삶이 아닐 수 있다는 현실의 무게를 뒤늦게 이해했다. 실패의 무게가 이제 20대 초반의 그것처럼 가볍지 않았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보다도, 그저 세상이 내 이상에 맞춰 돌아가길 바랐을 뿐이라는 것을.


      결국 호기롭게 시작한 공부를 두 달만에 엉엉 울며 내려놓았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훨씬 잔인했다. 책을 덮고 꼬박 한 달 동안은 길을 걷다가도, 물을 마시다가도, 멍하니 앉아 있다가도 덜컥 눈물이 쏟아졌다. 지독한 실연을 당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 때늦은 수능 준비는 소중한 깨달음을 남겼다. 수능을 다시 치겠다고 덤빌 만큼 현재에 결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결핍을 뼈저리게 확인한 덕분에, 나는 그보다 더 두려웠던 일을 단숨에 내디딜 수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소위 ‘무작정 퇴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환승 이직을 권하지만, 그것에도 유효기간이 따른다.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할수록 퇴사는 감행하기 어려워진다. 나는 다소 엉뚱하고 거친 방식으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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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사 후 잠시 숨이라도 고르고 싶었건만, 온전히 쉬어본 날은 손에 꼽힌다. 얼떨결에 연이어 면접을 치렀고, 기다렸다는 듯 복잡한 집안일들이 나를 덮쳤다. 서른 직전의 아홉수가 이런 걸까 싶어 매일 밤 눈물이 흘렀다. 분명 열심히 살아보려 온몸으로 발버둥 쳤는데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마침 그때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에 오게 되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한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은 다양한 신의 뮤지션들이 모인 종합 뮤직 페스티벌이다.


      화려한 라인업만큼이나 관객들도 저마다 선명한 개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조금 길어도, 관객들의 패션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굳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티셔츠가 아니더라도 다들 자신을 온 힘껏 드러내고 있었다. 요즘 힙한 불교 티셔츠부터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셔츠, 인형과 굿즈가 쏟아질 듯 매달린 가방, 아예 인형탈을 쓰고 온 사람. 이번 페스티벌 테마색인 보라색으로 맞춰 입은 이들까지, 저마다의 색깔로 빛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중 내 눈에 들어온 건 ‘나락도 락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였다. 장난스러운 문장이지만 결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마냥 즐기러 왔다기보다는 응어리진 마음을 토하는 심정으로 왔기에, 나는 이 말을 주문처럼 곱씹으며 공연장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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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선해진 날씨라지만 아직 밖에 오래 있기에는 버거운 날이었다. 그럼에도 함께 간 동생과 내 가슴을 사정없이 울린 것은 야외 스테이지에서 펼쳐진 공연들이다.


      이중 기억나는 3개의 무대만 꼽아보자면, 가장 먼저 드래곤포니를 말하고 싶다. 드래곤포니는 야외 페스티벌을 위해 태어난 밴드 같았다. 보컬의 청량한 음색, 질주하는듯한 경쾌한 비트, 청춘을 외치는 노랫말까지. 초록 잔디를 넘어 저 푸른 하늘 위에 풍덩 드러눕는 듯한 해방감에, 세트리스트가 줄어드는 게 야속할 지경이었다. 그들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오후 3시 반으로 예약해 두었던 귀가 버스 표를 주저 없이 저녁 7시로 미뤄버렸다.

       

       

      까맣게 얼어붙어 버린 별

      "너는 포기밖에 남은 게 없어"

      이대로 눈을 감기는 싫어

      마지막 내 하얀 입김을 토해


      드넓은 우주 안에 나 숨 쉴 곳 어디에

      지친 나를 안아줄 지구 어디에

      어두운 나를 비춰줄 태양 어디에

      I don't know I don't know

       

      지구소년 - 드래곤포니 中

       

       

      그다음 생각나는 건 크라잉넛이다. 가장 평범한 노래가 오히려 ‘말달리자’라는 생각이 들만큼, 그들의 무대에는 묵직한 위로가 있다. 막연한 ‘파이팅’이라는 응원보다 말없이 등을 툭 쳐주는 투박한 위로가 더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크라잉넛의 노래들이 꼭 그렇다. 특히 내가 애정하게 된 노래는 ‘다음에 잘하자’.

       

       

      샴페인 풍덩 테킬라 원샷

      생맥주 마셔 인생 즐겨

      어차피 모든 게 잘 안될 거야

      다음에 잘하자 테킬라 원샷


      후회하지 마

      어차피 우린 처음부터 가진 게 없었잖아

      이 음악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춤을 추고 싶어

       

      다음에 잘하자 - 크라잉넛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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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체리필터는 우리가 버스 표를 저녁으로 미루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다. 앞선 무대들이 이토록 뜨거운데 체리필터를 차마 놓칠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mp3에 담아 듣던 노래들을 어른이 되어 실제 가수의 라이브로 듣는 경험은 각별했다. 그리고 그들이 여전히, 어쩌면 예전보다 더 단단하고 건재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전율이 일었다.

       

       

      다만 이렇게 잠든 그대 가슴에

      사랑한다 새기고 잠시 세상은 잊을게


      다만 이렇게 그대 곁에 있으니

      지난날을 노 저어 희망의 돛을 펼치네


      믿었다 믿는다 내가 나를 믿었다

      세상 모든 게 나를 꺾으려고 했다


      잊었다 잊는다 생각처럼 안 된다

      거친 바람에 눈물이 식어만 갔다


      멈췄다 그대를 만난 순간

      커다란 가시가 박혔던 내 심장 아픔은 사라져

       

      피아니시모 - 체리필터 中

       

       

      맑은 하늘이 거들어준 이날의 공연들이 유독 좋았던 이유는, 다 함께 목청껏 부를 수 있는 노래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누구나 아는, 이른바 ‘국민가요’가 찾아보기 힘들다. 알고리즘과 아티스트별 팬덤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음악을 듣는 시대에, 수백 명이 같은 멜로디를 공유하고 심지어 함께 따라 부르는 경험은 흔치 않다. 저마다 재치 있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치켜들고,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흙먼지를 날리는 관객들의 모습은 마치 운동회를 보는 듯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사운드 플래닛에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은, 관객들이 하나로 묶이는 순간이 생각보다 짧았다는 데 있다. 이전에 갔던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는 야구장처럼 관객들을 전광판에 비춰주는 포토타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낯선 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자각하며 웃음 짓는, 일종의 ‘인류애 충전’ 시간이었다.


      반면 사운드 플래닛에서 떼창이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찾아오던 차분한 정적은, 음악 외에 관객들을 엮어줄 교감의 장치가 다소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유추해 본다. 물론 이날 마련되어 있던 레슬링 존처럼, 거칠고 본능적인 에너지도 흥을 올려줄지 모른다. 하지만 낯선 타인과 좀 더 눈을 맞춰보고 싶었던 내게는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는 높은 확률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다. 서로 이름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고민을 안고 이곳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분 동안 같은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한 무리가 된다. 이것이 페스티벌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살짝 아쉬웠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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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이날 만족도를 매긴다면 주저 없이 10점 만점에 200점을 줄 것이다. 특히 나는 ‘락앤롤’이 너무나 절실했다. 이날 내 마음을 두드린 노래들은 성공한 자들의 노래가 아니다. 넘어지고, 도망치고, 버티면서 기어이 다시 달려가는 사람들의 찬가였다.


      체리필터가 모든 공연의 끝마다 외치는 말이 있다.


      “We are rock and roll, baby!”


      ‘락앤롤 정신(Rock n Roll Spirit)’의 핵심은 반항, 자유, 그리고 기성의 권위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태도라고 한다. 계속해서 나락을 마주했던 나는 락앤롤 정신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나는 수능을 포기했고, 직장도 그만뒀고, 다음 목적지도 선명하지 않다. 그야말로 아주 그럴듯하게 나락을 치고 있다. 하지만 나락도 락인 사운드 플래닛의 흙먼지 속에서 그것들은 왠지 훈장이 되었다. 오후 3시 반이면 돌아가려던 나는 저녁 7시까지 남아 목이 아프도록 노래를 부르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 보고 싶다는 용기가 솟아올랐다.


      지금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무언가에 몰입하며 성실하게 부딪히던 그 감각이 내게는 여전히 너무나 소중하다. 반드시 대단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처음 바라보았던 그 세계를 향해 분명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무대 위 모든 뮤지션들은 ‘젊었다’. 눈빛이 초롱초롱했고 더없이 뜨거웠다. 나를 포함해 사운드플래닛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그 거침없는 젊음에 아낌없이 열광하고, 속수무책으로 전염되어갔다. 지금 내 눈이 왠지 그들과 닮아 보인다는 건,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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