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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낯선 얼굴들을 따라가며 - 환희의 얼굴 [영화]

안녕, 모순의 동반자들

by 정선민 에디터
2026.09.1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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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소설의 목차처럼 네 개의 챕터 제목이 차례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영화를 네 부분으로 나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나니 마치 한 권의 연작소설집을 영상으로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네 개의 이야기를 지나는 동안 환희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계속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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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소설가의 집’에서 환희는 소설가 난영의 집을 불쑥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자신을 다정하게 맞아주는 난영에게 감동했다며 눈물을 터뜨리고,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 같다는 고민까지 털어놓는다. 누군가의 호의를 너무 간절하게 기다려온 사람처럼 보여 안쓰러우면서도, 상대를 당황스럽게 만들 만큼 관계의 선을 잘 지키지는 못하는 인물 같았다.


      그러다 한밤중에 다시 난영을 찾아온 환희는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난영이 화가 난 채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될 뿐이다. 환희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왜 그렇게까지 돈이 필요했는지도 영화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환희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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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프랑스 요리처럼’에서는 새로운 인물, 기정이 등장한다. 환희와 함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기정은 메뉴를 직접 만들어 맛보며 연습할 만큼 자신의 일에 진심이고, 일한 지 얼마 안 된 환희를 살뜰하게 챙기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든 이곳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다. 예전에 일했던 직원이 다시 나타나자 자신의 자리가 없어질까 전전긍긍하며 사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비싼 와인까지 준비한다.


      자신만 빼놓고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다 울음을 터뜨리는 기정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영화는 제주의 풍경을 참 아름답게 담아내는데, 그 풍경 속에 홀로 서 있는 기정은 오히려 더 외로워 보였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기정의 쓸쓸한 얼굴이 대비돼서인지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기정은 예전에 일했던 직원이 돌아오면 자신이 잘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예상과 달리 가게를 떠나는 사람은 환희다. 이전에 근무하던 백반집을 그만둘 때 더 좋은 곳에서 일하게 됐다고 말했고, 불어를 할 줄 아는 모습을 보면 환희 역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데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를 잃을까 불안해하는 기정을 지켜본 뒤 환희는 스스로 가게를 떠나고, 다시 예전에 일했던 고등어 백반집으로 돌아가 사장님이 차려준 저녁을 말없이 먹는다.


      정말 기정을 생각해서 내린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장면의 환희는 타인을 생각해서 자신이 원하던 자리를 미련 없이 떠나는 사람처럼 보였다. 1장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또 달라, 환희에 대한 인상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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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꿈과 희망의 나라로’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던 환희는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건넨 목돈의 존재와 통장 비밀번호를 우연히 알게 되고, 다음 날, 환희는 그 통장을 들고 은행을 찾아가 예상 밖의 선택을 한다.

       

      앞선 두 이야기를 지나며 환희에게 조금씩 연민과 호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이 장면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환희가 힘들게 살아왔고 기댈 곳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선택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도 이에 대해 별다른 이유를 설명하거나 환희를 변호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벌어진 일을 그대로 보여주고 지나갈 뿐이다. 앞선 두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환희의 모습에 당황스러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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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4장 ‘환희의 얼굴’. 몇 년이 흘렀고, 푸르른 여름의 제주가 아닌 추운 겨울의 서울에서 환희는 난영의 북토크가 열리는 북카페를 찾는다. 하지만 조금 늦게 도착한 탓에 북토크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책을 읽으며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난영과 다시 마주하지만, 난영은 처음에 환희를 알아보지 못한다. 반면 환희는 난영의 책 서문에 언급되는 소녀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난영에게 직접 확인하려 한다.


      그건 너가 아니라고 말하는 난영. 난영에게 환희는 이제 얼굴조차 바로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지만, 환희는 북토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확인하고 싶을 만큼 자신이 난영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가 중요해 보였다. 결국 환희는 난영의 말을 받아들이기보다 그 소녀를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마저 읽겠다고 하고, 영화는 책을 덮는 환희의 얼굴에서 끝난다.

       

      영화를 보는 동안 환희를 알 것 같다가도 계속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순간에는 외롭고 조금 부담스러운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다른 순간에는 주변 사람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고,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야기마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 나타나면서 환희에 대한 인상도 계속 달라졌다.

       

      그래서 영화 막바지에는 ‘환희의 얼굴’이라는 제목도 처음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다. ‘환희’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밝고 기쁜 감정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정작 영화 속 환희의 얼굴에는 외로움과 불안, 기대와 실망 같은 여러 감정이 머문다. 영화는 그중 어느 하나를 골라 이것이 진짜 환희라고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환희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챕터가 바뀔 때마다 시간과 장소가 훌쩍 지나가고,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비워둔 채 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던 이 여백도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환희를 쉽게 단정 짓지 않게 만드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끝내 환희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오히려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한 가지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다가, 전혀 다른 얼굴을 발견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 <환희의 얼굴>은 환희를 이해시키기보다 계속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네 개의 이야기를 지나고 나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낯선 얼굴이 한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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