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뉴웨이브 2026
한국음악의 지금을 만나는 '수림 뉴웨이브'가 10주년으로 돌아왔다. 매년 하나의 키워드를 통해 다양한 전통음악을 만나볼 수 있는 공연으로, 올해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10인의 전통음악 창작 예술가를 수림문화재단의 시선으로 주목한다. 판소리, 가야금, 서도소리, 해금, 거문고, 타악, 생황, 피리를 갖춘 다양한 라인업은 매주 목요일, 11월 5일까지 김희수아트센터 SPACE1에서 공연된다.
그 두 번째 만남은 가야금 연주자 이준의 'Golden Hour'였다. 사실 가야금은 나에게 생소한 악기이다. 평소 팝송이나 가요를 즐겨듣는 나에게는 가야금 소리는 한국 사람으로서 알고는 있지만, 온전히 그 소리에 집중해서 들어본 경험은 많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악기였기에 오히려 그 진가가 더욱 궁금했다. 가야금은 과연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그리고 전통악기를 지금의 음악으로 풀어내면 어떤 모습일까.
엇 - 만남과 흩어짐의 사이
올해 수림뉴웨이브의 주제어는 '엇'이다. '엇'은 '어긋나게', '어긋난'이라는 의미로, 엇박이나 엇모리처럼 전통음악에서 리듬감이나 흥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불규칙하면서도 중심을 잡는 '엇'은 귀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익숙한 흐름에서 벗어난 뜻밖의 감각. 10인의 예술가들은 과연 이 '엇'을 어떻게 해석했을지 기대가 된다.
이준 연주자는 이 '엇'을 비켜진 시선과 경계, 혹은 그사이의 상황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보편적으로 '골든 아워(Golden Hour)'는 중상 이후 1시간, 즉 생사가 걸린 일촉즉발의 시간을 의미하지만, 태양의 일출 후 30분과 일몰 전 30분처럼 붉은 노을이 가장 아름답게 물드는 때를 골든 아워라고 하기도 한다.
낮과 밤, 삶과 죽음 사이. 서로 정반대에 위치한 것들의 경계선이자 동시에 그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와도 같다. 석양을 보고 탄생한 이 곡은 그렇게 붉은 빛의 아름다움을 나누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두 번째 곡과도 연관된다. '찰나'는 사찰가의 '인수순약 격석화(인간의 삶은 찰나와 같고, 돌을 부딪쳐 일어나는 불꽃처럼 순간이다.)'에서 따왔다. 인연의 길이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짧은 순간일지라도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처음 공연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콘트라베이스였다. ''퓨전 음악일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전통음악 공연에서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악기였기 때문이다. 장구와 가야금, 콘트라베이스의 합주로 시작된 곡에서는 세 악기 모두 손으로 연주하며 도입부를 열었다.
장구는 채로 연주하는 악기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손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어딘가 투박하면서도 날 것처럼 느껴졌고, 동시에 정겹기도 했다. 악기의 질감과 진동이 소리만으로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멜로디보다는 음악을 받쳐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콘트라베이스가 뜻밖에 눈과 귀에 들어온 것도 인상적이었다. 성인 남성의 키와 맞먹는 웅장한 몸집이었지만 의외로 밝고 가볍게 느껴졌다. 익숙한 악기와 예상하지 못했던 악기가 한 무대에서 만나면서 생기는 낯선 조합 자체가 어쩌면 이 공연에서 말하는 ‘엇’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었다.
12현 전통 가야금 - 낯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
공연에서 처음으로 가야금에 온전히 집중해서 들은 음악은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인 ‘영의 세계’였다. 이준은 12현 전통 가야금으로 산조를 연주한다. 가야금 산조는 한 명의 연주자가 가야금을 연주하고 장구 반주가 함께하는 형태로, 느린 장단에서 시작해 점점 빠른 장단으로 넘어가며 음악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기악 독주곡이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가야금은 차분하고 단정하며 소리가 여리고 가늘다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생각보다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현을 뜯으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단순히 맑고 예쁜 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닌, 때로는 거칠고 날카롭게 튀어나오기도 했다. 가야금 특유의 떨림이 주는 애절함은, 본래의 가야금 산조의 의미(흩을 산)이 아닌, 새로운 해석(실 산)의 의미를 담기에 충분했다.
아마 내가 가야금 산조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음악인만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단순히 고운 소리를 내지 않고, 훨씬 다채로운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엇박과 정박 사이에서
결국 크게 생각해 보면 이번 공연 'Golden Hour'는 삶에 대한 압축과도 비슷했다. 인생은 아슬아슬한 엇박과 정박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인연들 혹은 감정들과 만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한다. 낮과 밤처럼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들 사이에도 그 사이를 이어주는 경계가 존재한다.
찰나의 순간은 짧지만, 그 잠깐의 순간들이 우리의 인생을 더욱 다채롭고 소중하게 만든다. 어떤 만남은 아주 짧게 지나가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어떤 순간은 별것 아닌 것처럼 지나갔다가 나중에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Golden Hour’에서 말하는 찰나와 경계 역시 그런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느리거나 빠른 템포 모두를 흥겹게 담아내면서도, 여리지만 단단한 가야금의 특유의 떨림은 이 '엇'이라는 주제를 담아내기에 더없이 알맞은 악기였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 가야금은 그저 ‘알고 있는 한국의 전통악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조금 달라졌다. 가야금의 소리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소리를 다시 들으면 한 번쯤 귀를 기울이게 될 것 같다.
어쩌면 낯선 음악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를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