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으로 훔쳐볼 수 있는 일기장
월말이 되면, 블로그를 수시로 들락날락하곤 한다. 곧 친구들의 일상 블로그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멀고도 가까운 친구들이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구경한 후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단다. 같은 이의 일상이지만 솔직하고 진솔한 코멘트들은 인스타그램과는 분명 다른 재미가 있다. 마치 친구들의 일기장을 열어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각종 SNS로 소통하는 우리는 타인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자신의 일상 또한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특히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동영상 미디어의 중심적 개편으로 개인 유튜브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브이로그(Vlog)' 붐이 일었다. 일반인을 비롯해 연예인까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지만 많은 사람이 그 단순한 일상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에 빠져들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다양한 체험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며 묘한 연대와 소소한 재미를 느낀다.
브이로그의 공급이 늘어나며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중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완벽해서 오히려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일상들도 존재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과장되게 꾸며진 듯한 모습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처럼 작위적인 '보여주기 식' 브이로그를 꼬집고 풍자하는 2차 콘텐츠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에 사람들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영상보다 완벽하진 않아도 '진짜 일상'을 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갈증은 무거운 영상에서 벗어나 찰나의 날 것을 가볍게 공유하는 새로운 기록 트렌드로 이어졌다.
셋로그(Setlog)
출처: 셋로그(Setlog) App Store 캡쳐
얼마 전, 분할 브이로그가 유행했다. 친구들과 동일한 시간대의 장면을 촬영하여 분할된 화면에 동시에 기록하는 짧은 브이로그로, 각종 릴스와 쇼츠에 대거 등장했다. 저마다의 사회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는 재미로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다 이 형식을 이어받아 새롭게 출시된 앱이 화제가 되었다. 셋로그(Setlog)는 1시간마다 약 2초간의 영상을 촬영하여 그룹 멤버들과 공유하는 브이로그 기록 앱이다. 올라온 멤버의 영상에 이모지와 댓글을 통해 반응을 주고받을 수 있다.
셋로그는 빠르게 인기를 얻으며 10대 및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이용자가 급증했다. 9일 기준 애플 앱스토어의 '전체' 및 '소셜 네트워크' 카테고리에서 무료 앱 다운로드 1위를 차지했다. 셋로그의 사용자가 급증한 이유 중 하나는 낮은 진입장벽이다. 화려한 편집 기술을 통해 영상을 제작할 줄 몰라도 괜찮다. 그저 틈틈이 영상을 찍으면, 하루가 끝난 뒤 자동으로 그날의 총집합인 '하루로그'를 만들 수 있다. 단순한 이용법으로 부담이 적지만, 결과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재미는 소소하지만 확실하다.
비리얼(Bereal)
출처: 비리얼(Bereal) 공식 홈페이지 캡쳐
비리얼(Bereal)은 2020년 출시된 프랑스의 소셜 네트워킹 앱이다. 하루 중 무작위로 알람이 울리면, 유저들은 2분 안에 듀얼 카메라를 활용해 앞과 뒷면을 동시에 촬영하여 다각도의 모습을 단 한 장의 사진에 담아 업로드해야 한다.
보정이 없는 기본 카메라와 시간제한은 작위적으로 꾸밀 틈을 주지 않아,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공유한다. 연출 없는 순간 포착이라는 특징이 MZ세대를 타겟으로 단단히 사로잡았다.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의 사진을 업로드 하기 전까지 다른 사람의 게시물을 볼 수 없기에, 친구의 사진이 궁금하다면 자신의 사진을 업로드를 해야만 한다.
또한 자신의 팔로워가 몇 명인지 공개되지 않는다. 보편적인 SNS에서는 팔로워 숫자에 대한 내재된 강박과 비교가 존재하지만, 소규모 네트워크 중심인 비리얼에서는 그런 부담감을 떨치고 진정하고 솔직한 소통이 가능하다.
우리는 왜 타인의 일상을 궁금해할까?
이들의 매력은 순간 포착된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이다.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즉각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서로 간의 친밀감을 더 높여준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까이 있는 듯이 느껴져 물리적 거리감을 극복하고 정서적 유대를 부여하기도 한다.
우리가 타인의 평범한 일상을 궁금해하는 이유는 결국 '공감을 통한 유대'와 '안도감'에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비칠 수 있는 SNS 속 꾸며진 사진보다도, 가까운 사람과 연결된 작고 평범한 일상의 울타리 안에서 깊은 안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완벽한 하이라이트 모음집보다도 사람 냄새 나는 진짜 삶의 조각들에 마음이 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낀다. 심혈을 기울여 화려하게 꾸며낸 피드보다도, 애정하는 대상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꾸밈없는 일상에 대해 더 관심이 간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완벽한 나'에서 벗어나, 서로의 편안하고 솔직한 모습을 그대로 수용할 때 우리는 더 깊은 안정감을 얻는다.
나는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