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작은 시선으로 시작되는 거대한 연결 - 서울세계무용축제 'SIDance2026'

시네쿠아논아트x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ine Qua Non Art X SAL) - [욕망은 혼란을 부른다(Our Desires Make Disorder)]

by 이지연 에디터
2026.09.16 17:51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SIDance2026] 포스터_A2_날짜티켓 수정.jpg

       

       

      사회에는 암묵적 합의가 있다. 이를테면 장례식장에서 오프숄더를 입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전철이 오기 5분 전이어도 화장실에서 줄을 서야 하고, 상사의 차를 얻어 탈 땐 조수석에 앉아야 한다. 뒷자리 문을 열면 자네는 내가 택시 기사로 보이냐는 말을 듣는다. 많은 경우 제약들은 서로 간의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관계를 완만하게 만든다.

       

      하지만 때로는 단체의 평화를 위해 개인이 억압되기도 한다. 시스템이 허락하지 않는 욕망은 마치 구멍에서 툭 튀어나온 두더지 취급을 받는다. 뿅망치로 빠르게 쳐서 감춰버려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제29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이루어진 〈욕망은 혼란을 부른다(Our Desires Make Disorder)〉에서 이처럼 터부시되는 것들을 정면으로 다뤘다. 프랑스에서 온 시네쿠아논아트(SINE QUA NON ART)와 한국의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이 합작하여 필수불가결한(Sine Qua Non) 무대를 만들어냈다.

       

       

       

      로프, 화관의 무게


       

      무용수들은 처음에 후드티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올라온다. 하지만 어둠이 걷히며 몸을 감싸던 옷이 하나둘 사라지고, 원초적인 신체가 드러난다. 무용이라기보다는 제사 의식처럼 보이는 행위를 모두가 반복한다.

       

      그때 무용수 중 일부가 질서를 깨트리기 시작한다. 정해진 틀을 부수고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몸짓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개성을 가지게 된 개인들은 점차 서로를 알아보며 무리를 형성하고, 그룹 안에서 몸을 맞댄다. 그렇게 서로 기대며 의지하다가도 휩쓸리고, 갈등하고, 경쟁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별안간 평상복을 입은 스태프가 무대로 올라온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스태프는 무용수들을 차례대로 결박한다. 자유롭던 몸들이 로프로 묶여 경직되어 버린다. 그런데 통제와 함께 아름다운 화관도 주어진다.

       

       

      2021-nos-desirs-font-desordre-sinequanonart-c-lucie-gagneux-02.jpg

       

       

      자유를 잃었지만 겉모습은 화려해졌다. 두 손마저 뒤로 묶여 상체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 그들은 하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한 자리에 멈춰있지 않고 무대를 넓게 사용하며 복잡한 동선을 선보인다. 그렇게 새로운 방안을 찾아내며 숨통이 트이는가 싶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닫는다. 여전히 상체는 결박되어 있으며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결국 무용수들은 다른 방법을 찾기로 한다. 그들이 선택한 결과는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무대를 가로지르던 '몸'들이 하나 둘 관객석으로 내려온다. 아직 자유로운 하체들이 관객과의 암묵적 경계를 부숴버리고 동선을 확장한다. 그렇게 보란 듯이 벽을 깨트리고 나서 이어진 행동은 '나눔'이었다.

       

       

       

      소통을 통해서 되찾은 자유


       

      무용수들은 객석을 거닐며 몸에 장식되어 있던 꽃과 잎사귀들을 나누어 준다.

       

      생화들은 억압을 상징하는 오브제면서, 동시에 갈구되는 대상물이기도 했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그만큼 버거웠던 '꽃'의 무게를 관객들과 나누며 그들은 점차 자유를 되찾는다. 나중엔 아예 몸의 로프를 풀어버리고서 무대로 달려 올라간다.

       

      정제되어 있던 무대는 어느새 물바다가 된다. 공연 소개에서 잠깐 언급된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이 바로 여기에서 연상된다. 그는 남들처럼 붓으로 '그리지' 않았다.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물감을 '뿌리는'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 방식을 선택했다.

       

      자유로워진 신체들은 자신의 몸을 도구 삼아 물을 여기저기에 흩뿌린다. 그곳에서 슬라이딩하고, 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식물들을 주워서 가지고 논다. 압박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모습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시선으로 시작되는 연결


       

      무용수들은 공연을 시작하기 두 시간 전부터 밧줄을 몸에 감고 대기한다고 한다. 그러니 무대에서의 표현이 전부 연기만은 아닌 셈이다. 그들의 답답함, 압박감, 무력감은 어느 정도 실존한다.

       

      그런 부정적 감정들은 무용수들의 신체 안에 갇혀있다. 어떻게든 밖으로 분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지만, 스스로 해소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공연에서 던지는 질문이 결국 그거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극의 하이라이트에서 주어진다.

       

      결국 진정한 해방은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눈을 맞추는 순간에 강력한 연결이 발생한다.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 것이다. 무용수들은 객석으로 내려와서 관객들에게 직접 생화를 건넨다. 이때 아주 밀접한 거리에서 시선의 교환이 이루어진다. 관객이 그 자리에서 내내 무용수의 고통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구체화되는 순간이다.

       

       

      "욕망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며 결코 자연스레 여겨지지 않는다. 싫든 좋든, 욕망은 정치적이다. 여기서 정치적(political)이란, 넓은 의미에서 도시(polis)의 일, 곧 사회 속에서 함께하는 삶의 모든 것과 관련된 것이다." - 시네쿠아논아트

       

       

      사람들은 낯설거나 불편한 욕망을 마주하면 눈을 돌린다. 가령, 동성끼리면 손을 잡고 포옹을 해도 당연히 우정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퀴어 영화에서 일부 관객들이 명시적인 동성애를 '뜨거운 우정'으로 해석해 버리기 때문에 일부러 섹슈얼한 장면들을 넣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무시는 폭력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덮어두거나 외면하면 그것을 가진 주체는 고립감을 느낀다.

       

      그러니 반대로 고립된 욕망들이 연대하며 자유와 공동체를 향한 진정한 혁명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믿는다. 두려움은 어느새 힘이 되고, 공동체가 새로운 집단적 주체가 되며, 개인을 압도하던 외로움은 해소된다. 변화는 결국 인간 사이의 관계와 감각에서 시작된다.

       

      시네쿠아논아트와 SAL의 〈욕망은 혼란을 부른다(Our Desires Make Disorder〉에서는 연대의 수단으로 '시선'을 사용하고 있다. 강렬하고 뇌리에 남는 퍼포먼스를 향했던 관객들의 시선이, 무대가 끝나고 난 뒤에는 고립된 욕망들을 향해 이어진다면. 아마도 그게 무용단과 주최측이 공연을 준비하며 바랐던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다.

       

       

       

      컬쳐리스트 이지연.jpg

       

       

      이지연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Review] 더현대 '모네展'에 가기 전에 - 한 권으로 읽는 인상파
      2. 02 [Opinion] 겨울은 웨이브투어스의 계절 [음악]
      3. 03 [Opinion] 서브스턴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