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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난 그걸 좋아하는 게 부끄러워요, 당신은요? [만화]

만화 《툇마루에서 모든 게 바뀌었다》, 쓰루타니 가오리

by 정진영 에디터
2026.09.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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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 좋아하세요?”

      난 좋아한다. 하지만 이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다. (여기는 대놓고가 아니란 말인가!) 적당히 친한 친구에게, 심지어는 좀 친한 친구에게도 이 말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다. 적어도 덜 진심으로 좋아하는 척해야 한다. 그냥 좀 유명한 작품들만 본 것처럼, 재미로 찍어 먹어 본 것처럼, 읽다가 한 번도 울어보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이다. 분명 싫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나는 BL 외에도 그런 것들을 몇 가지 더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부끄러우니까.

      만화 《툇마루에서 모든 게 바뀌었다》는 나와 같은 여고생 ‘우라라’가 나온다. 우라라는 남몰래 BL 만화를 좋아하지만, 이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별로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에, 꾸밀 줄을 모르고 별로 관심도 없다. 그뿐일까, 별로 되고 싶은 것도 없다. 서점에서 알바를 하는 것이 전부다. 그런 우라라의 앞에 ‘유키’가 등장한다. 유키는 3년 전 남편을 떠나보면 일흔다섯 살의 할머니다. 유키는 자주 가던 카페가 문을 닫아서 잠시 쉴 곳을 찾아 서점에 들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쁜 그림의 남자애’ 두 명이 그려진 만화를 한 권 덥석 집는다. 만화를 계산해 달라는 유키를, 우라라는 놀란 눈으로 보다가 계산해준다. 사실 유키는 몰랐다. 그것이 BL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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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라라는 내심 궁금하다. 혹시 그분이 잘 읽었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키는 2권과 3권까지 사러오지만, 3권은 재고가 없는 상황이다. 우라라는 자기가 가진 3권을 빌려드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유키에게 내적친밀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 다음에 재고가 들어온 3권을 받으러 온 유키와 대화를 트게 된다. 유키는 친절히 대해주는 우라라에게, 차 한잔하면서 만화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하지만 우라라는 밖에서 BL 이야기를 하는 게 신경이 쓰인다. 그걸 바라보는 시선을 알아서인지 부끄러워서 말을 잘하지 못한다. 이를 눈치챈 유키는 팬케이크를 시켜 함께 먹자고 한다. 카페에서 나와 헤어지는 길, 우라라는 자기 때문에 대화를 거의 못 했다면서 사과한다. “저는 누구랑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어서.” 사실을 오히려 말을 걸어주어 기뻤다는 마음을 전한다. 유키는 그렇다면 자기가 만화를 읽고 문자를 보내도 되는지 묻고 그렇게 두 사람은 번호를 공유한다. 문자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유키의 집에서 대화로, 카페에서 만나서, 만화 이야기를 해나간다.

      우라라는 BL에 관해서 말하는 일이 부끄럽다. (뭐 자랑할 만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BL 만화를 보는 자기 자신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너무 잘 알아서 부끄럽다. 이런 모습은 이후에도 등장한다. 만화를 추천해 달라는 유키에게, 과격한 스킨십이 있는 BL도 조심스레 추천한 우라라. 혹시 거북하거나 싫으시면 읽지 마시라고 말한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창피해하는 우라라 단순히 BL이 부끄러운 것일까.

      우리가 무엇을 좋아할 때, 얼마간 그것과 나는 연결된다. 좀 더 과장하자면, 우리는 좋아하는 것과 하나가 된다. 괜히 그런 밈이 있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 나와 ○○을 한 몸으로 간주한다.' 이건 어쩌면 사랑의 속성일지도 모른다. 다시 우라라에게 돌아가보자. 우라라가 좋아하는 유일한 것은 BL이다. 이를 부끄러워한다면, 우라라는 BL뿐 아니라, 그걸 좋아하는 자기 자신도 부끄러울 것이다. 그래서 계속 남들에게 들킬까 봐 BL 만화책을 숨기듯이 자기도 방 안으로 숨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정작  BL을 좋아하고 아껴하고 때로는 부러워하면서도, 그걸 좋아하는 자기자신은 부끄러워한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예쁜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도, 장차 이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다 창피해.
       
      - 4권 P.57
       
       
      이후 우라라는 유키와 함께 좋아하는 걸 나누게 된다. 그러면서 BL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꺼내놓는다. 2권에서 우라라와 유키는 BL 만화 〈너만 바라보고 싶어〉를 그린 작가를 만나러 일본 만화 페어와 같은 이벤트에 참여한다.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서 여러 문제를 마주한 그들이지만, 결국 작가와 악수도 하고 스핀오프 만화도 받는다. 그때 두 사람의 표정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나아가서 우라라는 유키의 제안에 따라서 그림을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수험 공부를 하면서 만화로 노트 한 권을 채운다. 그리고 그걸로 코믹 마켓에 판매자로 나가보자는 결심도 한다. 즉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걸 고백하고 조금씩 오프라인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우라라의 변화는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되는 변화와 같다.

      이때 유키의 말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BL 만화가 거북하지 않았냐는 우라라의 질문에 유키는 ‘응원하고 싶어진다’고 말한다. 이 만화에서 ‘좋아하는’ 방식은 응원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된다. 마치 유키가 우라라와 함께 코믹 마켓에 나갔을 때 수제 고로케, 테이블보, 얼린 보리차 등 바리바리 준비해온 것처럼. 함께 들뜬 나머지 그를 위해서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마음. 우라라는 유키를 통해서 좋아하는 마음이란, 저런 방식으로 응원하며 표현된다는 걸 지켜봤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변화의 끝은 무엇일까? 제목에서 말한 대로 ‘모든’게 변했으니 우라라는 앞으로 만화가로 평생을 살기로 결심하고 성격이 내향에서 외향으로 바뀌고 그렇게 될까? 그게 정말 우라라에게 최고의 변화일까?

      만화에서는 우라라의 변화를 현실에서 수험생으로서 진학 문제를 고민하고 절친했던 남자아이와의 우정을 되새기는 이야기와 겹쳐 놓는다. 우라라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망설이거나 굳이 나서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아하는 걸 공유하기 시작한 우라라는 친구를 위해서, 자기의 미래를 위해서 조금씩 무언가를 한다. 그게 말 한마디일지라도. 유키처럼 응원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화의 마지막에 가면, 우라라는 무리해서라도 공항에서 떠나는 유키에게 만화책을 전달하러 먼 길을 서둘러 나서고, 그사이에 촉박하더라도 친구의 부탁에 따라 그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간다.

       
      사쿠라는 멋져. 자기에게 소중한 걸 소중히 할 수 있다니
       
      - 4권 P.57
       
       
      우라라가 유키와 함께 좋아하는 마음을 나누면서 겪 변화는 우라라의 삶이 밝아지고 윤택해지는 등의 것이 아니다. 자기를 창피해하지 않게 되면서 당당해지는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으로 연결된 모두를 응원하는 것. 그야말로 소중한 걸 소중히 대하는 것이다. 유키, BL, 친구, 가족을 말이다. 그리고 모든 연결 속의 자기, 역시 좋아하고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만화가 단순히 좋아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자! 고 외치는 만화였다면, 이 만화에 관해서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라라를 통해서 만화는 좋아하는 마음을 공유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그물망'을 보여주고, 이 연결이 지속되는 '응원'이라는 힘을 강조한다. 같이 좋아하는 대상을 응원하고 싶고, 좋아하는 상대 역시 응원하고 싶은 마음. 이 응원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만화는 느리지만, 섬세하고 다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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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마음은 무방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다치기 쉽다. 언젠가 다쳐본 우리는 그것의 흠집을 알게 되면 숨기려고 한다. 그걸 좋아하는 나 자신까지도. 만화는 어쩌면 좋아하는 마음을 껴안은 채 숨은 이들에게 나도 같은 걸 좋아한다고 응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소중히 대하고, 그걸 좋아하는 나 자신까지 소중히 대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만화의 마지막에 가면 우라라의 삶에는 이제 유키는 없다. 유키는 딸이 있는 외국으로 갔고 우라라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전히 만화를 좋아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만 같지만, 우라라의 ‘모든’ 게 바뀌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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