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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우리가 사랑한 겨울왕국이 무대 위에서 다시 살아났다 - 뮤지컬 '겨울왕국' [공연]

정유지 엘사의 ‘Let It Go’와 박진주 안나, 이창호 울라프가 되살린 동심

by 이소희 에디터
2026.09.1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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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겨울왕국>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2014년은 온 거리에 엘사의 ‘Let It Go’가 흘러나오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겨울왕국 OST cd를 틀어놓고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의 가사를 외울정도로 따라 불렀던, 아렌델을 사랑했던 십 대 소녀였다. 새로운 세계로 용감하게 나아가는 안나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그런 뮤지컬 <겨울왕국>이 마침내 한국 초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예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좋아하는 개그맨 이창호가 울라프로 출연한다니 어떻게 겨울왕국이 무대 위에 펼쳐질까 궁금했다. 그렇게 <겨울왕국>과 함께 자란 아이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뮤지컬 <겨울왕국>의 객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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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익숙한 영화를 무대에서 다시 만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명이 켜지고 어린 안나가 엘사의 닫힌 방문 앞에서 ‘나랑 눈사람 만들래?’를 부르기 시작한 순간, 예상하지 못한 눈물이 났다.


      어릴 적 안나는 그저 언니와 놀고 싶은 천진한 아이이다. 시간이 흐르자 심심함을 견디지 못해 문 앞에서 자전거를 타는 장난기 많은 소녀가 되고, 부모를 잃고 둘만 남은 뒤에는 도울 일이 있다면 말해달라며 언니에게 손을 내미는 어른이 된다. 놀아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어느새 언니의 아픔을 걱정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동안 엘사의 방문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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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보았던 안나의 표정과 몸짓, 노래들이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눈앞에서 되살아났다. 오래전 사랑했던 장면이 현실처럼 펼쳐지자, 그 영화를 반복해서 보던 시절의 나까지 함께 돌아오는 듯했다. 안나가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나는 동안 나 역시 <겨울왕국>을 사랑하던 소녀에서 지금의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문득 실감났다.

       

      어린 시절에는 귀엽고 익숙한 노래로만 받아들였던 장면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그 안에는 가족을 잃고,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홀로 성장해야 했던 안나의 외로움이 담겨 있었다. 오래전 사랑했던 영화가 눈앞에서 되살아나며, 안나의 감정까지 느껴지자 울었던 것 같다.

       

      뮤지컬 <겨울왕국>은 그렇게 어른이 된 나를 어린 시절 사랑했던 아렌델로 데려갔다.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무대 위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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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앞에서 마법이 일어났다. 무대 위에서는 어린 엘사의 손짓 한 번에 눈보라가 일고, 평범했던 공간이 얼음으로 뒤덮이며 순식간에 얼음왕국으로 변한다. 엘사와 안나를 반씩 닮은 마법 눈사람 울라프도 퍼펫(인형)으로 아장아장 걸어나와서 유머섞인 농담을 던진다. 오랫동안 좋아하고 동경했던 화면 속 겨울왕국과 엘사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너무 아름답고 행복한 장면들이라 공연시간 만큼은 마법을 믿고 싶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 정점은 ‘Let It Go’였다. 엘사가 무대 가장자리에 손을 대자, 그곳부터 서서히 얼음이 번져 나갔다. 그 뒤로 반짝이는 얼음왕국과 빛나는 계단이 생겨났다. 노래의 하이라이트 렛잇고를 부를 때 순식간에, 0.5초 사이에 엘사의 의상이 얼음 드레스로 바뀌었다. 가장 놀랍고 아름다웠던 장면이다.

       

      특히 이 장면이 더욱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정유지 배우 덕분이다. 유지 엘사의 목소리에는 엘사의 고독과 강인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허스키함이 살짝 밴 단단한 음색은 객석을 묵직하게 채웠고, 고음도 막힘없이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반짝이는 얼음 드레스를 입고 찬란한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는 순간, 정유지 배우는 우아함과 위엄이 있었다. 그는 과거로부터 벗어나 해방된 기쁨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엘사 그 자체였다. 너무나 고귀하고 장엄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게 뮤지컬이지.’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 때에도 반짝이는 얼음왕국과 엘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잊히지가 않았다. 영화 속 마법을 뛰어넘어, 오직 공연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판타지같은 순간이었다.

       

       

       

      디즈니 재질, 박진주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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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안나는 '디즈니 재질'의 박진주 배우가 연기했다. 박진주 안나는 영화 속 캐릭터가 화면을 깨고 현실로 나온 듯했다. 말괄량이 같은 솔직함과 장난기,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통통 튀는 매력이 표정과 몸짓에 살아 있었다.

       

      목소리 역시 안나 그 자체였다. 맑고 생기있는 음색에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설렘이 가득 담겨 있었고, 목소리 속에서 안나의 들뜸과 엉뚱함 사랑스러운 성격이 읽혔다. 안나의 감정을 섬세히 불어넣은 목소리였다.

       

      그렇다고 진주 안나는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여준 것은 아니다. 모두가 두려워했던 엘사의 마법을 유일하게 멋지다고 생각하고, 끝내 언니를 포기하지 않았던 단단한 마음의 안나까지 표현해냈다.

       

      박진주 배우는 풍성한 표정과 유쾌한 몸짓, 감정이 살아있는 맑은 목소리로 독자적인 안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랑해 온 캐릭터가 실제 사람의 몸과 목소리를 얻어 눈앞에서 노래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마법같았던 이창호의 울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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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호 배우가 연기한 울라프는 공연 내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퍼펫 인형임에도 움직임과 표정이 놀라울 만큼 생생해서,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조종하던 배우가 얼마나 꾸준히 몰입해 연기했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뚱땅뚱땅 걸어 다니는 걸음걸이부터 천진난만한 표정과 말투까지, 울라프가 등장할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자칫 긴장감이 무거워질 수 있는 순간에도 그는 능청스러운 유머로 분위기를 환기시켰고, 특히 어린이 관객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공연장 곳곳에서 들려올 때면 나도 덩달아 더 크게 웃게 됐다. 그 순간만큼은 객석에 앉은 어른들도 모두 어린이가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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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사랑산악회 유튜브 콘텐츠를 이끌던 개그맨 시절부터 이창호를 지켜봐 온 내게 그의 울라프는 다른 의미로도 다가왔다. 수많은 부캐를 만들고, '쥐롤라'를 통해 뮤지컬을 향한 애정과 가능성을 보여주던 사람이 마침내 대형 뮤지컬 무대에 정식 배우로 서 있었다.

       

      울라프를 보며 실컷 웃다가도 문득 그 안에서 이창호 배우가 걸어온 시간이 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의 문을 계속 두드린 사람이 마침내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법은 엘사의 손끝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라프로 무대에 선 이창호 배우의 존재 자체가 내게는 이 공연의 또 다른 마법이었다.

       

       

       

      진정한 사랑이 얼음을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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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왕국>의 메시지는 ‘진정한 사랑이 얼음을 녹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왕자와 공주의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얼어붙은 안나를 구한 것은 엘사를 향한 안나의 희생이었다. 작품은 익숙한 동화의 공식을 깨고 언니와 동생의 사랑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녹아줄 수 있는 거야.”

       

      울라프의 이 말은 작품을 관통한다. 진정한 사랑은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녹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대의 곁을 지키는 마음이었다. 안나와 엘사는 서로를 지키는 선택을 통해 오랫동안 자신들을 가두었던 두려움과 오해까지 녹여낸다.

       

      마지막에 다시 울려 퍼진 ‘Let It Go’ 역시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는 엘사가 홀로 세상과 단절된 채 불렀던 노래였지만, 뮤지컬에서는 안나가 먼저 노래를 시작하고 엘사와 아렌델 사람들이 함께 부른다. 혼자만의 해방을 선언하던 노래가 모두의 자유를 축복하는 노래로 확장된 것이다.

       

      그 장면은 우리에게도 과거의 상처와 타인의 시선, 자신을 옭아매던 편견에서 이제는 자유로워져도 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이 작품은 영화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사랑했던 장면에 새로운 감정과 의미를 덧입혔다.


      공연장을 나선 뒤에도 반짝이는 얼음왕국과 자매의 사랑 이야기가 오래도록 남았다. 어쩌면 나는 마법을 다시 믿게 해줄 장면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했던 인물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동안 어린 시절의 나도 함께 돌아왔고, 그때의 설렘과 행복 역시 다시 살아났다.

       

      뮤지컬 <겨울왕국>은 어린이에게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마법을, 어른에게는 잊고 있던 동심과 사랑의 의미를 되짚어주는 공연이다. 어린 시절 <겨울왕국>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아렌델의 문을 다시 열어보길 바란다. 그곳에서 오래전에 두고 온 자신의 동심과 다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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