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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가을에 더 취하게 만드는 클래식 [음악]

무더운 여름을 견뎌낸 우리에게 건네는 세 곡의 위로

by 강효정 에디터
2026.09.0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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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소중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를 넘은 여름의 무더위가 가시고 아침과 밤으로 선선한 공기가 불어온다. 마치 ‘이번 여름에도 무사히 잘 보내느라 수고 많았어.’라며 토닥이는 듯하다.


      폭염과 열대야가 몇 주간 지속될 때 밤마다 소원을 빌었다. ‘제발 사람이 살 수는 있게 해줘야 하지 않느냐’라며 따졌다. 무겁고 찐득한 여름 늪에 빠져 허덕이던 나에게 어느 날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동네 가로수 나무에서는 매미들이 마지막 발악을 지르며 여름을 보내기 아쉬워한다. 아직 숲은 푸르지만 자연은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한다. 여름에 멈춰 있는 줄 알았더니 자연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가을은 낭만의 계절이다.


      서늘한 공기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때 마음을 한층 북돋아 줄 클래식을 들으면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음악이 주는 힘은 강하다. 힘든 날을 보내온 우리는 음악에서 위안과 공감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의 가을을 한층 빛내줄 세 곡을 소개한다.

       

       


      01. 슈만 – 피아노 협주곡 Op.54

      Robert Schumann – Piano Concerto in A minor, Op.54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그가 남긴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이다. 1845년 드레스덴에서 초연됐으며, 당시 피아노를 연주한 사람은 슈만의 아내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이었다.


      슈만의 음악은 내게 가을을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로 데려온다. 쓸쓸한 멜로디가 마음을 고독하게 만들었다가도 아름다운 음률이 다시 마음을 녹인다.


      나약한 나비가 가을바람을 이겨내며 사랑을 찾아 나서는 따뜻한 음악처럼 느껴진다. 손민수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슈만 피아노 협주곡에서 29분 10초부터 그 장면이 그려진다. 나풀거리다가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감동적인 선율. 상대방이 다칠까 봐 조심스레 다가가는 당신의 모습도 연상된다.


      차가운 가을바람을 맞으면서도 끝내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나비처럼, 이 음악에는 여린 마음과 그 안에 숨겨진 용기가 함께 있다.

       

       


      02. 쇼팽 – 발라드 4번

      Frédéric Chopin – Ballade No.4 in F minor, Op.52


       

       

       

      쇼팽의 발라드 4번은 1842년에서 1843년 사이에 작곡된 곡으로, 네 개의 발라드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 쇼팽은 이 곡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붙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듣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장면과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이 곡은 언제 시작하였는지도 모르게 연주가 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노을 지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과거의 한순간으로 빠져들고 만다.


      인생의 고독함을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했다.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영상을 보다가 9분 50초부터 가슴을 훅 치는 감동이 밀려온다. 초반부에는 쇼팽이 접신한 듯 강약 조절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더니, 3분의 2지점부터 강렬하게 휘몰아치며 고독을 정면 돌파한다. 인생은 원래 고달프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럼에도 중간마다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있었던 아름다운 순간은 마음속에 남는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노을 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과거의 한 장면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03.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Sergei 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세 곡 가운데 가장 서정적인 대서사를 그려낸다.


      이 곡의 탄생에는 작곡가가 겪은 깊은 창작의 위기가 있었다. 라흐마니노프는 1897년 교향곡 1번의 초연 실패 이후 심각한 창작 슬럼프를 겪었고, 한동안 작곡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후 의사 니콜라이 달의 치료를 받으며 다시 작곡을 시작했으며, 그 과정에서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달에게 헌정됐다.


      한 사람이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음악이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처음 곡이 시작될 때 같은 음이 반복되면서 점점 소리가 커진다. 어떤 큰일이 터질 것 같은 위화감과 분위기를 조성하다가 오케스트라가 들어오며 대장정의 서막이 열린다.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러시아 빙판 공터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다. 맞바람을 이겨내며 꿋꿋이 걸어가는 고된 사람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게 바로 나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마다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떠올리고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상처를 직접 꺼내어 마주 보며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강해진다. 마침내 22분 30초에 다다라서 위로의 눈물을 흘린다. 살갗이 까지도록 시린 찬바람이 잦아들고 구름 틈으로 햇살이 비치며 몸에 온기가 들어찬다.


      우울증을 겪던 작곡가가 되려 사람들에게 희망의 손길을 건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무너진 사람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는 걸 음악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가을에 음악을 듣는 이유


       

      어떻게 그 당시 작곡가들은 이런 명곡을 만들 수 있었을까.


      시대가 수없이 흐른 지금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위로하며 즐겁게 만들어준 음률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문화와 환경은 변했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여전히 같다. 사랑하고, 외로워하고, 상처받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난다. 수백 년 전의 음악이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맞은 가을바람은 그 무엇보다 값지고 소중하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곧 다가올 겨울바람이 우리를 차갑게 얼리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아침에 일어나 집 안으로 드는 따뜻한 햇살 한 줌을 들이키며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을 가꾸어 나간다. 좌절하고 슬플지라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이 있기에 두렵지 않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나 역시 세 곡을 다시 들었다. 이상하게도 글을 쓰는 내가 더 많이 위로받았다.


      슈만을 들으며 여린 마음으로도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쇼팽을 들으며 지나온 시간 속에도 분명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음을 회상했다.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시린 바람을 맞으면서도 계속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다 음악이 끝날 때쯤에는 눈물이 났다. 슬퍼서만은 아니었다. 힘든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온 내가 조금 대견했고, 다시 앞으로 걸어갈 원동력을 얻어 들떴다.


      가을의 서늘한 분위기에 자칫 고립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세 곡을 바친다.


      당신의 가을이 덜 고독하기를. 한층 빛나기를.


      매서운 겨울이 지나면 싱그러운 봄의 싹이 돋듯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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