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살구, 개동백, 개연꽃, 개여뀌, 개나리···. 보통 식물 이름에 붙는 접두사 '개'는 '야생 상태의',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 정도의 뜻이 있다. 이 뜻을 알고 나면 개양귀비도 어찌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유추할 수 있다. 개양귀비는 양귀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 더 작은 데다 마약 성분이 없어 진통제로도 쓸 수 없다. 원예용으로 기르는 경우도 있지만, 워낙 흔한 탓에 외국에선 쓸모없는 잡초 취급을 받기도 한다. 바람만 불어도 씨앗이 흩날려 온 들판을 가득 메울 수 있는 왕성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라는 개양귀비꽃은, 어쩌면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자연법칙을 따라 필연적으로 노인이 되는 인간을 비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혈연 바깥의 유류분
캉탱 쥐티옹 작가의 그래픽노블 『꽃은 거기에 놓아두시면 돼요』는 '코클리코(Les Coquelicots: 개양귀비꽃들)' 요양원을 배경으로, 주인공인 간호사 '에스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은 질병, 부상, 노환 등으로 홀로 생활하기 어려워 간호사나 요양보호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용변 처리부터 식사, 목욕까지 전부 타인에게 맡겨야 하는 힘 없는 노인들은 위협적이거나 유해하진 않으나, 그렇다고 그들을 찾는 사람도 많지 않다. 자식들은 바빠서 자주 찾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곁에서 그들은 가장 오래 보살피는 이들이 간호사 소냐와 에스텔이다. 에스텔은 입소자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고 그들의 가족과도 마찰 한번 빚은 적 없는 훌륭한 간호사지만, 뒤에서는 간밤에 숨을 거둔 노인의 자잘한 유품을 훔쳐 보관하는 습관이 있다. 시몽 어르신의 인형, 슈발리에 부인의 빗. 앙드레 어르신의 스크램블 게임판 글자 중 'W', 우아레뜨 부인의 목걸이, 기구 부인의 펜, 모리스 부인의 브로치, 비네 어르신의 십자말풀이, 쉬잔느 부인의 귀걸이까지. 에스텔이 하루도 빠짐없이 돌보고, 먹이고, 씻기고, 웃게 하고, 안아드리던 노인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그들의 가족들이 와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그다음 날 또 다른 어르신이 입소하고, 같은 일이 반복된다.
내 나이가 서른셋인데 내가 애정을 가졌던 사람의 시신만 벌써 수백 구를 봤어. 누구도, 진짜 어느 누구도 괜찮냐는 말 한 마디로 우리를 챙겨준 적 없어. 그래서 내가 어쨌게? 그래, 내가 나 자신을 챙겨주기 시작한 거야. 소소한 추억거리를챙겼다고. 나도 이 정도 유품은 받을 자격이 있잖아!
누군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사람이 나라면, 무엇이 되어 줄 수 있을까. 가족이자 친구이자 유모가 되겠다고 아무리 다짐해도 나는 그에게 삶이 끝에 다다랐음을 매일 알리는 존재일 뿐이다. 서로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애써 모르는 체하며 최선을 다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울 수밖에 없다.
아편 없는 진통제
에스텔은 시신에서 유품을 챙기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제르마노 어르신 손녀의 게임기로 어르신과 손녀인 척 게임 채팅을 주고받고, 자신이 프랑스 대사라는 토마 부인의 망상에 동조하여 상태를 악화시키고, 소피 부인의 섬망 속 옛 연인 행세까지 한다. 그 이유는 에스텔이 생각하는 요양원 간호사로서의 사명이 진실과 망상 중 무엇이 고통을 주는지 파악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노인들이 보고 있는 망상을 현실로 인정해 주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어떤 행동이든 서슴지 않는다.
실패했던 과거와 달리 마지막으로 옛 연인과 함께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소피 부인의 말에 에스텔은 안락사 약물을 주사해 소피 부인이 행복한 장면 속에서 영면에 들 수 있도록 돕는다. 이어서 토마 부인이 망상에서 잠시 깨어나 초라한 집과 공장에서 일생을 보낸 과거의 후회와 고통을 멈춰달라고 애원하자, 에스텔은 또다시 같은 약물을 사용한다. 이로써 토마 부인은 영원한 대사님으로 남게 된다.
코클리코 요양원은 강한 독성조차 없어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약하디 약한 개양귀비들의 군집이자 밭이다. 에스텔은 그들이 개양귀비임을 상기시키고 상처 주기보다 차라리 양귀비라고 속이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자신이 양귀비라고 믿는 이들에게서 나온 '가짜' 아편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고 영원한 환상 속에 머물게 하는,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다.

노화라는 이름의 개화
양귀비는 색마다 꽃말이 다르다. 흰 양귀비는 잠과 망각을, 붉은 양귀비는 위로와 위안, 몽상을 뜻한다. 본 작품에서는 빛바랜 청회색과 흰색을 위주로 흑백에 가까울 정도로 절제된 색채 이미지가 나타나지만, 예외 없이 반드시 붉은색으로 표시되는 요소가 한 가지 있다. 바로 요양원 노인들의 몸을 뒤덮은 검버섯이다. 이곳에 입소하는 사람 중 대다수는 치매, 뇌경색, 중풍 등 중증질환을 앓고 있고, 자 죽음이 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노인이라면 자연히 생기는 검버섯이 노인들이 서로 함께 늙어가며 죽음을 기다리는 동지라는 위안이자 위로를 전달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치매를 앓는 요양원 노인들의 흰머리와 작품 내 전반적으로 깔린 하얀빛의 이미지도 흰 양귀비의 꽃말을 연상케 한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녀가 자신을 사후세계로 데리러 온다며 울부짖는 212호 노인과 과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된 기억을 붙잡고 있는 토비 부인을 생각해 봄 직하다. 마지막에 에스텔이 몇 컷 만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되어 요양원에 들어가 간호사에게 자신이 누군가의 애인이었으며, 프랑스 대사이기도 했다가 마녀, 손녀딸, 천사가 되었다고 이야기할 때까지도 자신이 간호사였다는 진실만은 잊어버린다.
제목 '꽃은 거기에 놓아두시면 돼요'는 제르마노 노인의 장례식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그 가족들이 하는 말이다. 소냐는 제르마노 노인의 놓인 꽃들 사이에 게임기를 넣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요양원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화사한 꽃이 노인의 관을 둘러싸는 장면은 소외된 노인의 바람을 이루어주는 듯하다. 요양원을 탈출해 마음껏 달리는 소피 부인이 마지막으로 밟은 꽃밭과 같은 색채다.

물론 에스텔의 개입은 의료인의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가 맞다. 노인들의 망상을 바로잡기는커녕 조장함으로써 치매 재활을 방해했다는 점은 반박할 수 없다. 그러나 노인의 행복을 우선시한다면 그 개입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경계 역시 모호하다. 양귀비가 될 수 없는 개양귀비에도 꿈꿀 권리가 있다면, 늙고 병들어 기억마저 희미해진 사람에게도 마지막까지 자신이 믿고 싶은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지 않을까.
결국 『꽃은 거기에 놓아두시면 돼요』가 묻는 것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뿐만 아니라 죽음이 오기 전까지 한 사람의 꿈을 어디까지 지켜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