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관심사는 요리다. 거창하게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거나 어려운 메뉴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다. 푸실리를 삶아 선드라이토마토와 차돌박이를 넣은 오일 파스타를 만들고, 양배추와 고기를 한 팬에 볶아 먹는다. 유부초밥을 만들기도 하고, 제주도 미니 단호박을 쪄서 하나씩 꺼내 먹다가 치즈를 올려 오븐에 굽기도 한다. 이전에는 밖에서 사 먹을 메뉴를 고르는 일이 즐거웠다면, 요즘은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를 떠올리며 오늘 먹을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꽤 즐겁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점심 도시락을 싸보자는 작은 목표도 세웠다. 전날 저녁이면 냉장고를 열어 이것저것 조합해 본다. 남아 있는 채소와 고기를 어떻게 쓸지, 탄수화물은 무엇을 넣을지, 새로 산 재료를 어느 메뉴에 먼저 써볼지를 생각한다. 사실 한 끼를 해결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훨씬 간단한 방법은 많다. 그런데도 굳이 재료를 사고, 손질하고, 조리하고, 다시 통에 나누어 담는 과정이 좋다. 최근에는 그 즐거움의 한가운데에 '제철'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먹는 일에도 계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철 음식이라는 말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마트에는 사계절 내내 비슷한 채소와 과일이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은 계절과 크게 상관없이 구할 수 있다. 여름에도 딸기를 먹을 수 있고 겨울에도 토마토를 살 수 있는 시대에 제철이라는 말은 어쩌면 조금 오래된 생활 방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직접 재료를 사고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한동안 당근라페를 만들어 먹는 데 빠져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당근이 맛있는 시기를 찾아보게 됐다. 요즘에는 미니 단호박을 사다 두고 하나씩 꺼내 먹는다. 그냥 쪄 먹어도 되고, 으깨도 되고, 치즈와 함께 구우면 또 다른 음식이 된다. 같은 재료를 여러 방식으로 먹어보는 동안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먹을까'보다 '요즘에는 무엇이 맛있을 때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이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다르다. 전자가 나의 욕구에서 시작한다면 후자는 바깥의 시간에 관심을 갖는 일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만 생각하는 대신, 지금 이 계절에는 무엇이 자라고 무엇이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제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식탁 위에서 계절의 존재를 다시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재료를 오래 들여다보는 재미
직접 요리를 하면 하나의 재료가 생각보다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호박 하나만 해도 그렇다. 쪄서 그대로 먹을 때와 으깨서 먹을 때가 다르고, 치즈를 얹어 구우면 단맛과 짠맛이 만나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양배추도 고기와 볶으면 한 끼가 되고, 잘게 썰어 다른 재료 곁에 두면 도시락의 한 칸을 채운다.
사 먹는 음식에 익숙할 때 나는 주로 완성된 메뉴를 선택했다. 파스타를 먹을지 샌드위치를 먹을지 고민했다. 하지만 요리를 하면서부터는 메뉴보다 재료를 먼저 보게 됐다. 냉장고에 있는 양배추를 어떻게 먹을지, 남은 치즈와 단호박을 함께 쓸 수 있을지 생각한다. 완성된 것을 고르는 사람에서 재료의 다음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으로 시선이 조금 달라진 셈이다.
그래서인지 장을 보는 일도 전보다 재미있어졌다. 무엇이 유명한지를 찾는 대신 요즘 무엇이 나오는지를 살펴보고, 한 번도 사지 않았던 채소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된다. 요리의 재미는 솜씨가 늘어나는 데만 있지 않았다. 평범해서 지나쳤던 것들을 자세히 보는 데에도 있었다. 매일 먹던 재료에도 각자의 시기와 상태와 맛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 요즘 내가 요리에서 얻는 즐거움은 오히려 그런 쪽에 가깝다.
도시락 한 통이 바꾸어 놓은 하루의 리듬
도시락을 싸는 일도 비슷하다. 일주일에 두 번이라는 목표는 대단할 것이 없지만, 도시락을 싸는 날에는 하루가 조금 일찍 시작된다. 무엇을 가져갈지 생각하려면 전날 저녁의 식사와 다음 날 점심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저녁에 만들어둔 음식을 조금 남겨두기도 하고, 아침에 넣기 좋도록 재료를 미리 손질해두기도 한다.
밖에서 점심을 사 먹으면 식사는 대개 그 시간에 시작해서 그 시간에 끝난다. 반면 직접 준비한 음식에는 그보다 긴 시간이 들어 있다. 며칠 전 장을 보며 골랐던 재료, 전날 저녁의 준비, 아침에 도시락통을 닫던 순간까지 한 끼 안에 함께 들어온다. 그래서 도시락을 열 때면 단순히 '오늘 점심'을 먹는 것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든다.
아마 요리가 요즘의 나에게 주는 만족도 이런 데서 오는 것 같다. 생활은 대부분 이미 정해진 시간표를 따라 움직인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다시 다음 날을 준비한다. 그 안에서 무엇을 먹을지 직접 정하고 내 손으로 준비하는 일은 아주 작은 영역이지만 분명히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냉장고 안의 몇 가지 재료를 가지고 내일의 한 끼를 만들어두는 것은 생각보다 구체적인 생활의 감각을 준다.
오래된 풍습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나이
제철 음식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풍습들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어른들은 철마다 먹어야 할 것을 이야기했다. 복날에는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몸을 보양했고, 정월대보름에는 견과류를 깨물었으며, 계절이 바뀌면 그때 나오는 나물과 과일을 챙겼다. 어릴 때는 그런 것들이 그저 오래된 관습처럼 느껴졌다. 왜 특정한 날에 굳이 특정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것은 음식에 관한 규칙이면서 동시에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달력을 보지 않아도 시장에 나오는 재료를 통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알았고, 매년 돌아오는 날에는 함께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한 해의 리듬을 확인했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식재료를 언제든 구할 수 없었던 시대에는 더욱 자연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오히려 모든 것을 언제든 살 수 있게 된 지금 그런 감각이 새롭게 느껴진다.
계절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지는 생활 속에서 음식은 여전히 시간을 알려준다. 어느 날 마트에 단호박이 쌓이고, 조금 지나면 다른 과일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을 사 와 먹는다고 해서 대단한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지금이 어느 계절의 한가운데인지 몸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머리로 아는 여름과 입으로 맛보는 여름은 생각보다 다르다.
잘 먹는다는 말의 의미가 달라지는 중
예전에는 잘 먹는다는 말을 맛있는 것을 많이 경험하는 일에 가깝게 생각했던 것 같다.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고, 새로운 메뉴를 먹고, 좋은 디저트를 발견하는 것도 여전히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잘 먹는다는 말 안에 조금 다른 기준이 생겼다.
신선한 재료를 사서 가장 맛있을 때 먹는 것. 남은 재료를 버리지 않고 다른 음식으로 바꿔보는 것. 오늘 먹은 것이 내일의 도시락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단호박을 며칠에 걸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맛보는 것. 화려하지 않아도 이런 식사가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음식의 값이나 희소함보다 원물이 가진 맛을 제대로 느끼는 순간이 좋아졌다.
어쩌면 취향이 생긴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추가하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조금씩 구체적으로 변하는 과정에 가깝다. 지금의 나는 음식에서 새로움만큼이나 신선함을 좋아하고, 완성된 요리만큼이나 좋은 재료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재료가 어디에서 왔고 지금 왜 맛있는지를 아는 일이 조금씩 즐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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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매번 정성스럽게 요리해서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바쁜 날에는 사 먹을 것이고, 귀찮은 날에는 냉장고를 열어보고도 배달 앱을 켤 것이다. 도시락을 일주일에 두 번 싸겠다는 계획 역시 어떤 주에는 한 번으로 끝날지 모른다. 생활의 즐거움을 또 하나의 성실함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가능하다면 지금의 관심을 오래 가지고 싶다. 여름에는 여름에 가장 맛있는 것을 찾아보고, 가을이 오면 또 그 계절에 나오는 것을 사보고 싶다. 좋은 원물을 발견하면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먼저 먹어보고, 남은 것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요리해보고 싶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다 보면 계절을 기억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어느 여름에는 유난히 단호박을 많이 먹었고, 어느 겨울에는 어떤 채소를 자주 구워 먹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은 대부분 지나간 뒤에야 계절이었음을 알게 된다. 봄이 끝나고 나서야 봄이 짧았다고 말하고,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그해의 더위를 기억한다. 그래서 요즘은 그 시간이 지나가기 전에 한 번쯤 맛보는 일이 좋다. 잘 익은 채소 하나를 사 와서 씻고, 자르고, 익혀 먹는 것. 그것만으로 계절을 붙잡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그 안에 있었다는 흔적 정도는 남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