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당시 희생된 사람들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한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해 그 곁에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과 고통을 따라가며, 그날의 폭력이 이후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그렸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죽음이었다.
P.13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사람이 죽는 순간, 혼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다. 만약 그것을 보게 된다면 무섭고 허망할 것 같다. 살아온 과정은 다사다난한데 죽음은 너무나 한순간이다. 앞을 가로막고 있어 쓰러뜨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 벽을 향해 모두가 걸어가고 있다.
삶에는 아름답고 기쁜 순간만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스럽고 화가 나는 순간도 함께 찾아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책 속에서 죽은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설명할 수도 없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증언할 수도 없다. 만약 죽은 사람의 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시신 곁에 머물 수 있다면 어떨까. 제 죽음을 바라보고, 뒤늦게 찾아온 가족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떤 감정을 느낄까.
그 누구도 그들의 억울함을 대신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살아 있는 사람이 기억해야 한다.
역사는 피로 쓰였고, 기억으로 이어진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믿기 어려웠던 것은 사람을 향해 같은 나라의 군인이 총부리를 겨눴다는 사실이다. 나와 같은 사람,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그런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P.77
‘얼굴은 어떻게 내면을 숨기는가.... 어떻게 무감각을, 잔인성을, 살인을 숨기는가.’
역사는 피로 쓰였다고 한다. 과거의 아픔과 성공을 바라보며 우리는 현재를 생각하고 미래를 상상한다. 과거를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나간 일을 계속 들여다봐야 한다. 잘못된 일이 있었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짚어야 하고, 누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벌어진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진실을 가리고 조작한다고 해서 존재했던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작은 틈을 통해서라도 빛처럼 새어 나온다.
한강 작가가 문학을 통해 해낸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반드시 꺼내어 바라봐야 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를 세상에 드러냈다. 쉽게 바라볼 수 없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며,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문학으로 남겼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소년이 온다>를 읽은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기억에 남아있다.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고 과거의 사건도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과거는 현재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은 현재의 선택을 달리할 수 있다. 과거의 폭력을 바라본 사람은 같은 폭력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수 있다. 희생된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그들의 죽음을 단순한 숫자나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곁에 문학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책에서 사건의 날짜와 숫자를 배울 수는 있지만,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는지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소설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가게 한다.
나는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그들의 죽음을 과거의 사건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함께 살아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는 아픈 역사를 꺼내어 바라봐야 한다
이 책을 읽은 것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이었다. 이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느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 권의 책이 이미 지나간 사건을 되돌릴 수는 없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도 없다. 그러나 모르고 살았거나 잊혀가는 역사에 다시 시선을 돌리게 만들 수 있다. 한 나라의 아픔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문학의 쓰임은 아주 크다.
아픔은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그렇다고 그 아픔을 묻어두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꺼내어 바라보고, 직시하고, 보살피고, 반성해야 한다. 한강 작가는 그것을 해냈다. 누군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를 문학으로 꺼내어 세상에 보여주었다. 한국이라는 공간을 넘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그 파장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문학이라는 것이 가진 힘이 새삼 놀랍다.
세상에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폭력이 존재하고, 같은 실수가 반복되기도 한다.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일도, 누군가의 권리를 짓밟는 일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제발 정의가 이기기를 바라게 된다.
더 이상 억울하게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는 일이 과거를 바라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지금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P.115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 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치는 걸 느꼈습니다.’
<소년이 온다>를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하고 무거웠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 것이 이 책을 읽은 사람의 몫이다.
기억해야 할 역사는 기억해야 한다. 잊는다고 아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면한다고 진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에 머무르는 일이 아니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아픔을 기억하는 일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