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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어른이 된다는 건 –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영화]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주는 것

by 백승원 에디터
2026.08.2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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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오피니언은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애매한 힘에 큰 책임?


 

새로움이 늘 설렘으로 이어지는 건 않는다. 어른에게 새로움이란 오히려 낯선 것에 적응'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견뎌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스파이더맨은 제작사와 시대에 따라 서사도 캐릭터성도 달라졌다. 그래도 '고독한 도시의 영웅'이라는 키워드만은 빠지지 않는다. 다만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이른바 톰스파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시리즈 초반에 그는 네드, MJ와 같은 친구 혹은 어벤져스의 동료와 함께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활달한 소년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미스테리오가 그의 정체를 세상에 폭로한 뒤, 피터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부탁해 스스로를 모두의 기억에서 지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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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어느 시리즈보다 고독한 스파이더맨(피터 파커)의 삶을 그려낸다. 그의 존재는 사회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평범한 학교생활은 꿈꿀 수조차 없고, 허름한 창고를 개조해 밤낮없이 일에만 몰두한다. 함께 MIT에 가자고 약속했던 네드와 MJ의 SNS를 몰래 들여다보는 게, 그가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뉴욕은 스파이더맨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받는 것과 함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해가 지날수록 그가 짊어진 책임은 커지고, 그 무게를 나눌 사람은 없다. 도시 전체가 그의 영역이지만 정작 피터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우스갯소리로 다른 히어로와 비교하면 ‘애매한 힘에 큰 책임’인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마블 유니버스에서는 '애기 감자'만한 시련일지도 모르지만, 소년 영웅에게는 꽤 버거워 보인다.

 

 

 

성체가 되기 위한 몸부림


 

스파이더맨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이번에도 설렘과는 거리가 멀다. 두통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쓰러지고, 다음 날 아침 거미줄로 엉긴 고치 안에서 눈을 뜬다. 그동안 장치를 손목에 채워야만 뽑아낼 수 있던 거미줄이 이제는 손목에서 저절로 나온다. 감각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예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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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슈터로 거미줄을 쏘는 데 익숙했던 피터에게 유전자 변이로 얻은 각성은 오히려 걸림돌이다. 몸에서 나오는 거미줄은 아직 손에 익지 않았고 웹슈터와 함께 쓸 수도 없다. 불안정한 거미줄과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 여기서 오는 두통을 그대로 안은 채 여전히 도시를 지켜야 한다. 감정이 격해지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눈의 흰자위가 검게 물들고 이성이 사라지는, 이른바 '프레데터 모드'까지 발동한다. 피터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제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피터에게 영감을 준 건 브루스 배너(헐크)의 억제장치다. 그의 수업에 몰래 찾아가 특정 DNA를 억제하는 장치의 이론적인 부분을 검증한 피터는 다시 작업실에 돌아와 장치를 제작한다. 화면 한쪽에서는 거미가 성체가 되기 위해 탈피하는 장면이 나오고 비위가 상한 피터는 그대로 영상을 꺼버린다. 마치 자신의 변화를 꺼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억제장치가 완성되고 DNA 억제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오랜 시간 유지되지 못하고 장치는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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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그레이를 붙잡아야 하는 임무는 계속되는 와중 능력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 난관에 봉착한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사이, MJ가 그의 약점임을 알게된 진은 그녀를 표적 삼아 피터를 궁지로 몰아간다. 급한 대로 MJ를 데리고 퍼니셔의 근거지로 피신한 피터는 다시 억제장치를 손본다. MJ의 도움으로 힌트를 얻어 억제장치로 능력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MJ는 피터에게 나타난 변화를 꼭 막아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피터는 유전자 변이로 달라진 자기 모습이 통제할 수 없는 괴물과 같다고 토로하지만, 오히려 MJ는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저 변하고 있는 좋은 사람으로 보여.

 

거미는 자라는 동안 수차례 허물을 벗는다. 탈피는 성장의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약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이는 피터가 스파이더맨으로서 더 강해지기 위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결국 성체,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데 필요한 과정으로 보인다. 물론 어른에게도 체면 구길 일은 생긴다. 낯선 거미줄이 아직 손에 익지 않아 MJ를 데려다주는 길에 일일이 거미줄을 말로 컨트롤해야 하는 일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어른이 되어주는 것


 

영화 후반, 진 그레이가 그토록 'V-max'를 찾아 헤맨 이유가 드러난다. 진에게는 자신과 같은 초능력을 지닌 언니 세라가 있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려진 두 자매는 서로가 유일한 기댈 구석이었다. 능력을 다루는 데 조금 더 능숙했던 세라는 동생에게 사용법을 가르쳐주곤 했다. 평소처럼 공원에서 능력을 연습하던 때, 이들의 존재를 알아챈 데미지 컨트롤이 세라를 납치한다. 진은 세라의 도움으로 추격을 따돌리지만, 그 뒤로 줄곧 언니를 찾아 헤맨다. 세라는 실험 도중 강한 텔레파시로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그것이 바로 'V-max'였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스파이더맨은 진 그레이를 붙잡아 데미지 컨트롤에 넘긴다. 그러나 곧 국장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챈다. 이와 함께 데미지 컨트롤이 두 자매의 능력을 착취한 정황도 드러난다. 한편, 진은 언니와 똑같은 실험대에 앉아, 능력을 복제하기 위한 실험을 당한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 천장 환풍구에 붙은 상표에 'V-MAX'를 보게 된다. 'V-MAX'가 암호가 아니라 언니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본 시점임을 알게 된다. 같은 곳에서 같은 고통을 겪다 죽어간 언니를 떠올리며 진은 폭주한다. 억제 장치는 무력화되고, 능력이 미치는 범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넓어진다. 이성을 잃은 진은 국장과 그 관계자들을 모두 없애려 한다.

 

진과 세라는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다. 부모는 둘을 버렸고, 사회는 이들 자체보다 능력에만 관심을 가졌다. 낯선 힘 앞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을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바르게 자랄 기회 대신 착취할 방법만 궁리했다. 진이 품게 된 불신과, 사회를 향해 터뜨린 폭력은 어쩌면 어른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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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피터도 어른의 보호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다만 그에게는 큰엄마 메이가 있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누군가를 돕는 일이 결국 모두를 돕는 일이라는 것도 메이의 가르침이다. 그녀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피터를 지탱하는 부모와 같은 존재로 기억된다. 시리즈마다 아이언맨과 닥터 스트레인지가 그의 멘토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고독해 보이는 이번 시리즈에서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퍼니셔(프링크 캐슬)가 그 자리를 채운다.


너는 정말 특별한 아이야.

∙∙∙(중략) 그러나 때론 세상은 네가 특별하다는 이유만으로 아주 괴물 같은 짓을 하기도 하지.

그런 날이 오더라도 이것만은 절대 잊지 마.

너는 특별해서 소중한 사람이 아니야.

너는 그냥 너라서 소중한 사람이야.

 

중요한 건 피터 역시 진 그레이의 어른이 되어준다는 점이다. 폭주한 진은 피터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그 안에서 마주한 건 피터와 메이의 대화다. 메이는 조카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안 뒤에도 그를 그저 소중한 조카로 대했다. 동시에 히어로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무게에 온전히 공감해 주었다. 집과 돈만이 유산은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야말로 무엇보다 값진 상속이다. 어느새 피터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진이 앉아 있다. 메이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이제 피터가 앉아 있다. 소년이었던 스파이더맨은 그렇게 누군가의 어른이 됨으로써 '어른'에 한 발짝 다가선다.

 

한편, 진 그레이를 죽여 능력을 무효화하려던 퍼니셔는 멀리서 그녀를 저격한다. 그러나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를 먼저 알아챈 스파이더맨이 그녀를 감싸며 대신 총을 맞는다. 치명상을 입고 죽음을 예감한 순간에도 그는 진에게 어서 도망치라고 외친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의 핑거 스냅 이후 사라져가던 소년이 아이언맨의 품에서 죽고 싶지 않다며 몸부림치던 장면이 겹쳐 보인다. 그 잔상과 함께 어른의 무게가 뼈아프게 느껴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영화 초반의 피터는 혼자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메이와 아이언맨을 죽으며 의지할 어른을 모두 잃었고, 모두가 그를 잊어버렸으니 혼자인 게 당연했다. 그렇다고 그 상실이 다시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벼랑 끝에선 피터는 고립을 택한다. 그렇게 '피터 파커'라는 자아는 지워지고 도시의 그림자 같은 영웅 '스파이더맨'만 남는다. 여전히 흔들리는 정체성 앞에서 둘 중 어느 쪽이 진짜 자신인지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I'm both.

둘 다 나야.

 

자연스레 토니 스타크가 자신이 아이언맨임을 세상에 밝히던 장면이 떠오른다. 피터는 마침내 스파이더맨과 화해한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면서 '여러 개의 나'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러므로 약함과 악함 또한 자기의 일부이며, 이 또한 안고 살아가야 한다. 결말에서 진짜 빌런은 '데미지 컨트롤'임이 밝혀진다.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직처럼 보이지만, 브루스의 말처럼 무엇이 좋고 나쁜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위험을 차단한다는 명목 하에 사실 누군가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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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 도움으로 피터는 무사히 깨어난다. 그러나 병원 앞에는 그의 회복을 기다리며 응원하는 팬들이 몰려 있어 섣불리 빠져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프랭크가 대신 복면을 쓰고 스파이더맨 행세를 하며 창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피터는 병원을 나선다. 거리의 시민들은 퍼니셔를 스파이더맨으로 착각한 채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낸다. 군중 속에 섞여 든 그는 온통 스파이더맨인 붉은 세상 속에서 홀로 초록 점퍼를 입은 채 ‘피터’로 서 있다. 우연히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스파이더맨의 시그니처 포즈를 취해보지만 거미줄은 나오지 않는다.

 

영웅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모두를 돕는 것이라는 메이의 말은 어쩌면 피터에게만이 아닌 세상을 향한 외침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피터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또 다시 누군가를 돕고, 그건 바로 모두를 돕는 일이 될테니 말이다.

 

회복을 위해 오랜만에 휴가를 만끽한다. 여전히 그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적지만, 동료 경찰의 아들 이름부터 하나둘 기억하기 시작한다. 우연히 마주한 네드에게 가명 대신 자신을 피터라고 소개한다. 역시 스파이더맨은 고독한 영웅보다 '친절한 이웃'이 더 잘 어울린다.

 

 


 

Life's a bitch

삶이 고달파도

 

And then you live again

그럼에도 살아가야지

 

Tragedies and wins

승리와 비극은 동시에 오고

 

Breakups with your friends

친구들과 멀어지기도 하지

 

- Steve Lacy, 「Oh Yeah?」

 

 

17살에 만났던 소년과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른을 향해 달려간다. 마음 터놓을 곳이라고는 AI뿐이고, ‘애매한 힘에 큰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낀다. 가끔은 피터의 철부지 같은 모습에 혀를 차기도 하고, 아이같이 장난감을 사 모으는 자신이 더 철부지 같기도 하다. 스파이더맨 대신 미스테리오를 혼내주고 싶다는 상상도 한다. 영화 한 편에도 여전히 울고 웃는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 다른 유니버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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