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학창시절의 친구들에게는 좋아하는 연예인이 한 명쯤 있었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가장 많았고, 때로는 솔로 가수나 배우를 좋아하기도 했다. 예쁘고 멋진 TV 속 그들은 좋아할만한 이유가 넘쳐났고, 자연스레 10대 소녀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늘 설레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였다. 문제는 내가 이런 연예인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연예인에 대한 나의 무지를 처음 인지한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고학년이 되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삼삼오오 모여 좋아하는 가수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러나 TV 속 그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게 누구인지 자꾸만 물었고 친구들은 이 사람도 모르냐며 갸우뚱 했다.
중학생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물론 친구들과 다른 이야기도 하며 잘 지냈지만,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던 나는 임의로 내가 좋아한다고 말할 아이돌 그룹을 하나 정해 대답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부터 큰 관심은 없었고 그저 공감대 형성을 위한 답이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그 그룹에 관해 이야기하고 노래를 듣다 보니 나중엔 정이 든 건지 꽤나 친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름 음악도 챙겨 듣고 친구와 함께 콘서트도 다녀왔지만 뭔가 열성적으로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 행위를 나서서 하진 않았다. 그 마저도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아예 관심이 끊겨 아이돌이나 연예인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 덕에 최근엔 차트 역주행으로 엄청나게 화제가 된 한 가수와 그의 노래를 내가 처음 알았다고 하자 말도 안된다며 친구들에게 거센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나는 단 한번도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취미를 가질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살면서 정말 많은 종류의 취미를 가졌지만 그것에 사람이 관련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애초에 사람에게 큰 흥미를 가지는 종류의 성격도 아니지만 같은 인간으로써 열정적으로 좋아할 만큼 매력적인 인물을 딱히 찾지도 못했다. 화면 속 신기루같은 사람들보다는 내 현실에 존재하는, 내 주변 사람들이 훨씬 중요했다. 그 덕에 연예인을 보고 멋있고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많지만 늘 거기서 끝이었다. 더 이상의 관심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내게 마치 사고 같은 일이 찾아왔다. 나는 원래도 영화나 애니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최근엔 오랜 시간 진득히 앉아서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영화보다 20분 정도로 짧고 가볍게 볼 수 있는 애니에 손이 자주 갔다. 밥을 먹을 때나 씻을 때 가볍게 틀어 두었다가 미련 없이 끌 수 있는 것이 꽤나 큰 장점이었다. 그렇게 이것 저것 보다가 우연한 추천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화면 속 사람에게 빠진다는 기분을 느꼈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실 속 사람은 아닌 캐릭터에게 말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특별한 기대를 품고 본 애니메이션도 아니었고, 더 멋진 캐릭터가 나오는 애니도 많이 봐왔지만 늘 거기서 끝이었다. 그러나 마치 어떠한 계시처럼 나에게 내려진 이 감정은 그 후 애니는 물론 원작 만화도 찾아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평생 살 일이 없다 여긴 굿즈들도 서치하고 구매했다. 원하는 굿즈가 있나 중고장터를 들락날락 거리고, 때로는 일본의 중고마켓도 서치했다. 캐릭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 여러 sns를 검색하고 정보를 찾았다. 캐릭터의 사진도 보이는 대로 저장하고 심지어 캐릭터의 생일까지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특정 연예인이나 캐릭터의 생일을 축하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광고를 걸거나 카페를 개최하는 것이 늘 신기했다. 만나지 못할 존재가 그렇게 좋을까 궁금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나의 변화는 재미있으면서도 스스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어떤 것을 봐도 끌리지 않던 마음이 한 순간에 이렇게나 바뀔 수 있는 걸까. 평생을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몰랐는데, 나에게도 최애가 생겼다고? 최애라는 단어는 나에게서 가장 먼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몰두해보고 싶은 마음에 나도 최애가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보긴 했지만 그 뿐이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최애가 생기길 바랄 때는 아무리 해도 끌리지 않던 마음이었다. 난 그저 애니를 보았고, 그 캐릭터를 만났고, 마치 사고처럼 그대로 치여버리고 만 것이다.
처음 느끼는 덕질이란 것에 거창하게 적었지만 사실 지금도 뭔가 엄청난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정보를 찾고, 굿즈를 몇 개 구매해본 정도이다. 모든 것을 불태우며 열성적인 덕질을 하는 이들에겐 별 것 아닐지 모른다. 이 감정이 언제까지 갈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나 인생 첫 덕질을 시작한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또 재미있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건, 엄청난 활력이 되어주니 말이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나의 최애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할 사람이나 공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유명하다면 유명한 만화이지만 그럼에도 팬덤이 최근까지 활발하진 않아서일까. 덕분에 인생 첫 덕질을 하는 신참으로서 뭘 해야할지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애가 생겨서 가장 좋은 점은, 이제 덕질을 하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닐까.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이 한 걸음 더 넓어지게 만들어준 최애에게 뿌듯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