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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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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새 한 게임에 빠져있다. 평생 해 본 게임은 손에 꼽고 그마저도 쉽게 몰입하지 못해 중간에 그만두기 일쑤였던 나에게 이 정도로 몰입감을 준 게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1인 개발의 대표작으로도 여겨지며 출시 이후로도 꾸준히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이 게임은 바로 ‘스타듀밸리’이다. 스타듀 밸리는 시골 마을로 귀농한 주인공이 여러 가지 퀘스트를 진행하며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돈을 버는 게임이다. 처음엔 하루에 1000원 벌기도 힘들던 날들을 지나 시간이 지날수록 파이프라인이 구축되며 많은 돈이 쌓이는 것을 보면 소소한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스타듀밸리의 매력을 꼽자면 아마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다. 누군가는 정직한 노동을 통해 쏠쏠하게 쌓이는 돈을 매력으로 꼽을 것이다. 열심히 노동해서 물건을 팔고 그날 밤 쌓이는 돈을 보면 뿌듯함이 저절로 느껴진다. 또 누군가는 주민들과의 교류를 이야기할 것이다. 대화를 나누고 좋아하는 선물을 주면서 호감도를 높이다 보면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나아가 연애와 결혼까지 가능하다.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땐 나를 어색하게 대하던 주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친밀해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왠지 포근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이 게임 최고의 매력 포인트는 바로 ‘시간’이다. 스타듀밸리에는 시간 제한이 있다. 아침 6시부터 다음 날 새벽2시까지만 활동을 할 수 있다. 만약 새벽 2시 전에 침대에 눕지 않는다면 강제로 쓰러져 잠을 자게 된다. 또 다음 날 체력이 최대치에서 많이 깎인 상태로 일어나거나 때로는 돈이나 아이템을 잃기도 한다. 하루 종일 자지 않고 게임을 하게 된다면 퀘스트를 진행하는 속도나 돈을 버는 속도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체력과 시간이라는 제한선이 있기에 게임을 진행하는 나로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수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오늘 하루 농사에 집중을 할지, 재료 수급을 위한 파밍에 집중할지, 그것도 아니라면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호감도에 집중할지 선택해야 한다. 하루에 그 모든 것을 하려면 조금씩 나누어서 얕게 진행을 해야 하고, 한 가지를 선택해서 깊게 이행한다면 나머지 카테고리는 그날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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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들의 현실 속 삶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한계는 당연한 것이다. 현실 속에서도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적절한 시간 쪼개기가 필요하며 때로는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돈과 체력,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시간은 마치 가득 찬 물컵에 넣는 돌멩이처럼 무엇 하나가 추가되면 그 이외의 문제들이 넘쳐흘러버린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게임 안에서도 온전히 나의 자유이다. 무언가에 더 집중한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이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마다 그 선택들이 때로는 아쉽고 뼈아프게 다가온다. 필요한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한 돈이 부족하기도 하고, 마음을 얻고 싶은 마을 주민과의 관계가 지지부진하기도 한다. 특정 계절에만 진행할 수 있던 미션을 놓쳐 그 다음 해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음으로써 대부분 해결된다. 플레이 타임이 길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게임 속 시간을 느긋하게 바라봄으로써 말이다. 꾸준히 플레이하다 보면 결국 돈은 모이고, 호감도도 얻을 수 있으며, 퀘스트들도 깨기 마련이다.


현실 속의 나는 어떨까? 글쎄, ‘몇 년 더 시간을 들이면 되지’라고 쉽게 생각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인생은 마치 게임처럼 정해진 튜토리얼이 있지도, 헷갈릴 때면 찾아볼 수 있는 공략집이 있지도 않다. 또한 게임은 농사를 짓거나 주민들과 교감을 하면 정직하게 얻는 이득이 있는 반면 현실 속 나는 들인 노력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기도 하다. 그만큼 마음은 조급해지고, 더 많은 것을 선택하려 할수록 잃는 것이 생긴다.


게임에서의 시간 제한은 재미의 요소였는데 삶에서는 오히려 부담감으로 다가온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모든 것에 제한이 없는 인생을 상상해본다. 영원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못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무엇도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그걸 꼭 오늘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다. 10년, 100년, 1000년 뒤에도 가능한 일인데 꼭 지금 열심히 해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런 삶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마치 여우의 신포도 같은 발상일 수도 있다. 어차피 삶은 유한하고 난 끊임없이 더 좋은 선택을 고민해야 할 운명이기에 이 유한성이 없으면 살아갈 재미가 없었을 거라고, 소위 말해 정신승리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인생이라는 게임 속에 들어와 있고 더 좋은 플레이를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때로는 무언가에 올인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무엇도 놓치지 못해 안절부절하기도 하지만 어찌저찌 이어오고 있다. 내 삶이 누군가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이라면 그는 최고로 효율적인 플레이를 짜맞추기보단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플레이하고자 하는 유저가 아닐까. 그럼에도 게임을 그만두진 않고, 시간을 내서 들여다보아주는 사람 말이다.


나는 내 삶을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하고 싶은 걸까? 간단하기도, 철학적이기도 한 질문이다. 앞으로도 난 계속 이 질문을 고민하며 살아나갈 테다. 우선은 고민도 좋지만 스타듀밸리를 다시 플레이해볼까 한다. 인생의 작은 압축소에서 오늘은 어떤 것을 선택할까 즐거운 고민을 이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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