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그는 며칠쯤은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서 있기로 했다. 왼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조금 마른 숨 같고, 오른쪽에서 돌아오는 소리는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만 같다. 그는 그 둘 사이를 오래 듣다가, 없는 숨을 참았다.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향하지 못한 채, 누가 들을세라 몸을 잔뜩 움츠리고는 어깨부터 그 좁은 사이에 넣었다.


그냥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그 말들 곁에 서 있었으나 이제야 들켜버린 사람처럼. 발 하나가 조용히 따라 들어가고, 팔은 몸 가까이 접혔다. 그는 그 사이에 선 채, 제 몸 안에서도 무언가 작게 대답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숨을 골랐다.


어쩌면 객석에 앉는 일은, 무대 위 악기들 사이에 조용히 몸을 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즐기는 방식도, 공연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가지각색이겠지만 이 여름에는 먼저 누군가의 말을 따라가 보면 어떨까. 무엇을 그려볼지는 너와 내가 함께 고르면 되고, 그러다 보면 비어 있던 팔레트에도 색이 채워질 테지. 당신은 하늘을 담아볼 수도, 나는 바다를 만나볼 수도 있겠지. 그래, 우리는 경계선 사이에서 인사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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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더하우스콘서트의 2026 줄라이 페스티벌 〈프랑스의 빛〉 가운데, Debussy & Ravel Ensemble 1 : ‘친밀한 대화’는 드뷔시와 라벨의 실내악을 중심으로 꾸려진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바이올린과 첼로, 클라리넷과 피아노, 그리고 피아노 트리오까지. 이날의 프로그램은 거대한 한 덩어리의 음악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악기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주고받는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이 공연 앞에서는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먼저 귀를 조금 낮추어도 좋겠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는지, 누가 뒤늦게 대답하는지, 어떤 악기가 슬쩍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오는지 따라가 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느새 이 음악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서 있게 될 것이다.

 

 

 

드뷔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단조, L.140



 

 

1악장


들리는 대로 묘사해 보자. 떠오르는 대로 생각을 나열해 보자. 이 노래는 생각이 많은 때의 그 깨끗한 번잡함을 닮아 있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와 함께 말을 나누는 와중일까. 글쎄, 나는 바이올린이 혼자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는 무엇인데? 바이올린이 앞에서 말하고, 피아노가 그 말의 뒤쪽에서 몸 안의 반응처럼 따라오는 듯했다. 오히려 언제 뛰쳐나갈지 몰라 은은하게 긴장한 채 뒤에 숨어 있는 내 머리, 내 몸인지도 모르겠다.


바이올린이 말이라면, 피아노는 그 말이 지나간 뒤 몸 안에서 생기는 반응 같았다. 그래,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골칫덩이가 늘 함께하지 않던가. 하나는 누군가 내게 심장이 어디 있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게 손을 짚게 되는 심장 그 부근이고, 하나는 굳이 어디냐 설명하지 않아도 곳곳에 드러나 있는 몸 하나겠다. 이 두 개만 내 마음대로 되어도 참 인생이 간편해질 텐데, 참 말을 안 듣는다.


악기를 다루는 일도 이와 같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그 바람을 품다 보면 어느새 이 악장의 끝자락에 거의 다다라 있다.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우리는 이미 어떤 골짜기로 빨려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2악장


2악장에서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챕터에 다다르니 괜스레 다른 세상에 온 것을 귀가 먼저 알아차린다. 어디서 티를 내는 것일까. 어디에서 세상을 바꾸어 놓는 것일까. 슬슬 바이올린이 장난을 치고, 피아노가 유쾌하게 음을 움직이는 것을 보니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로 한 것만 같다.


대사가 있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단어 하나가 주인공이 되어, 별것 없던 길을 최대한 넓고 풍요롭게 뛰어다니게 만드는 것이다. 그냥 걷는 것보다도 소리를 따라가는 길에 나만의 재미를 심어두면, 모르는 이와도 남몰래 공명할 수 있다. 이 악장은 그런 식으로, 나를 어느 낯선 장난의 가장자리까지 데려다 놓는다.


3악장


1, 2악장을 나름의 재미로 걸어왔다면, 3악장에서는 미묘한 구석과 어느새 깔려 있는 향기를 음미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내가 그들과—바이올린과 피아노—거의 같이 가거나 아주 조금씩은 앞지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내가 그들의 구름 위에 올라타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봐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 놓은 것이다. 어디일까. 글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체 모를 낯선 곳에 놓였다기보다, 이전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자리 안에 들어와 버렸다고 보는 게 쉽겠다. 이를테면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만나 시곗바늘이 되어버린다는 것. 드뷔시는 이런 노래를 쓰기도 했다는 것. 나는 그걸 들어버렸다는 것!

 

 

 

라벨,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M.73


 

 

 

1악장


드뷔시의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생각과 몸의 안쪽에서 서로를 건드렸다면,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는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본다. 둘뿐인 말은 때로 더 친밀하고, 그래서 더 날카롭다.


엮여 들어갈 것이다.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에게서 눈 한 번 떼지 않고, 깜빡이지도 못하고, 관객을 다 옆에 둔 채 오로지 소리만으로 도화지 위를 짙게 눌러놓을 것이다. 그래, 채색을 한다기보다 뚜껑을 열지 않은 물감 하나를 들고 하얀 종이 위에 자국을 내는 것이다.


방향은 자유로울 수 있겠다. 높은 소리를 내는 악기는 손 하나만큼 더 높은 곳에 위치하여, 조금만 발을 들어 올리면 잡힐 것 같으면서도 끝내 붙잡히지 않는 자리에서 노래할 것이다. 첼로는 오히려 가까이 있으면서도 곁을 내어주겠지만, 어째선지 두 손 안에 만져지지는 않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옆에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일뿐인데, 그들은 나의 소소한 방해 공작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서로를 향해 소리를 엮어내고 있다. 소리로 하는 뜨개질만 같다.


2악장


뜨개바늘이 잘못된 곳으로 향했나? 튕기는 듯한 소리로 바느질을 할 수 있다면 믿으시겠나. 정말 한 코 한 코 직접 땋아야 한다. 이 악장에서는 두 악기가 서로를 밀어내는지, 아니면 더 깊이 끌어당기는지 헷갈리는 순간들이 생긴다.


중간 지점에는 반드시 첼로가 구덩이를 파는 듯한 구역이 있다. 정우찬 첼리스트의 버전으로 그 구역을 지날 때의 마룻바닥이 궁금하다. 바닥에 손바닥을 꼭 붙여 놔야지. 얼마나 진동하게 될지, 그들이 만들어내는 바닥은 어떤 곳일지 관찰하는 재미가 상당할 것이다.


끈질기게 몰아붙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 방향은 바깥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악장의 긴장은 달아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한 것에 가깝다.


3악장


이 악장의 시작을 첼리스트가 어떤 마음으로 담아낼지 먼저 가서 기다려보면 참 좋겠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저 연두색 첼로가—그러니까 연둣빛 잎사귀를 연상시키는 저 악기가—무슨 노래를 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진다. 가장 사람 냄새가 날 것 같기도 하고, 가장 악기만 같을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보일까. 멀리서 급히 울리던 신호음이 아주 느린 동물이 되어, 가장 조급해야 하는 때에 길을 잃은 사람의 얼굴 표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문도 모른 채 지금 서 있는 그곳에 그냥 서 있어 볼 수도 있고, 눈을 콱 감아버릴 수도 있겠다.


구름에 구름을 더해보기도 하자. 울적함에 고요가 끼얹어질 때까지. 그 고요가 끝내 무엇을 데려올지 모른 채로, 조금 더 오래 서 있어 보자.


4악장


갑자기 왜 첼로가 이 시작에 시동을 걸기 시작하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나도 알 수 없다. 3악장에서 이토록 정적이다가 나랑 합의도 없이 정신을 먼저 차리는 이가 나도 모르게 원망스럽다면, 그게 정상이다. 나도 그리 느끼고 있다!


다만 유심히 그들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서로만 향해 있던 시선과 고개가 이쪽으로 넘어왔음이 보인다. 뭐야, 어느새 우리도 참여자가 되어 있다. 이 길에 내가 언제 합류하기로 했었나? 동의를 했던가 싶겠지만, 나는 앞선 곡으로 미리 일러두었다.


연주를 꽤 훌륭히 해내버리는 연주자들은 우리를 그냥 어느새 자기네 흐름 안에 끌어다 놓는 것이다. 입 밖으로 나오기 전의 물청색처럼, 말이 되기 전의 색과 소리 안으로.

 

 

 

드뷔시,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프리미에르 랩소디, L.116 


 

 


관악기로 만나는 드뷔시는 어떤 얼굴일까. 클라리넷과 피아노가 단둘이 노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포근하겠다 싶은 마음은 들지만, 내가 어떤 곳에 이끌리게 될지 쉽게 상상되지는 않는다. 선명한 줄거리보다, 잠결에 스며드는 색과 공기가 먼저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장소는 하나 있겠다. 일단 몸을 다 덮고도 남을 아주 새하얀 이불과 침대는 필요하겠다. 내 팔과 다리가 그들 사이에 파고들었을 때, 녹아내리다 못해 녹아들어가 얼굴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파묻어버리는 곳. 그 자세로 있다 보면 어찌 잠이 찾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재미난 꿈이 이어질 것이다. 오색의 구름, 나는 연분홍색 하늘을 머금은 하얀 것을 바라고 있으나, 저마다의 재미난 생각들이 세상 위를 동동 떠다니게 만드는 관악기와 피아노의 소리를 음미해 보자. 드뷔시의 포근함은 그저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어서, 어느 순간에는 잠결의 틈으로 전혀 다른 풍경을 밀어 넣을지도 모르겠다.

 

 

 

드뷔시, 피아노 트리오 G장조, L.3


 

 

 

1악장


이제 세 명의 말을 들어볼 차례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함께 놓이면 음악의 결도 달라진다. 한 사람이 먼저 문을 열고, 다른 이들이 뒤따라 들어오며, 어느새 방 안의 공기가 달라지는 순간. 드뷔시의 피아노 트리오는 그런 식으로 다정한 문 앞에 우리를 세워둔다.


피아노가 문고리를 잡고 아이보리색 대문을 열어줄 때부터, 듣자마자 기분이 좋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악기 두 대가 뒤따라오는 길에 햇살이 들이치니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얹힌다. 기쁜 일이 찾아들 것이라는 섣부르고 즐거운 예감. 당분간은 아무 일도 없는, 마음 편한 채로 집에 되돌아갈 걱정 없이 있어도 그만인 시간.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다정함은 마냥 안전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문은 열렸고, 빛은 들어왔고, 세 악기는 각자의 자리에 앉았지만, 그 방 안의 물건들이 모두 제자리에 놓여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악기 세 대가 무슨 합을 맞춰 가고 있나. 그 광경 자체를 음미하는 데 시간을 다 써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보이기보다, 음악 안에 풍덩 몸을 던지기보다, 다정한 말들이 오가는 때를 음미해 보자. 이 악장에서는 무언가를 해석하려는 마음보다, 그저 좋은 자리에 앉아 있는 마음이 먼저 찾아온다.


2악장


이 악장 처음에 현악기가 피치카토로 신호를 줄 텐데, 나는 문득 그 음들에 2345를 붙이고 있었다. 그냥 나도 모르게 이삼사오 하고 덧붙이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의 것들에는 한들바람을 타고 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떠올랐다.


뮤지컬이나 연극을 관람해 본 적이 있다면, 주인공이 어떤 사건 속에 휘말리기 전 혹은 어떤 결심을 하기 전, 책상 앞에서 잠시 누리는 평화로움을 상상해 보자. 이 곡에는 세 명의 주인공을 떠올려야겠다. 아무래도!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첼로가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아직은 큰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방 안을 가볍게 오가는 장면 말이다.


다만 그 평화로움에도 아주 작은 장난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의자 다리를 살짝 밀어두었거나, 책상 위의 종이 한 장을 몰래 뒤집어 놓은 것처럼. 그래서 이 악장은 편안히 흐르면서도, 어딘가에서 금방 웃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3악장


가냘픈 마음에서 시작된 마음도 안아주고, 중심을 잃은 와중에도 찾게 되는 애달픔도 품어주는, 든든한 다정함이 노래가 되어 있다. 아마 이 악장을 마룻바닥에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내 마음이 가장 크게 흔들리지 않을까.


거기다 정 남매의 조합이라면 또 그 느낌이 다르겠다. 얼마나 따뜻하려나. 무슨 결이 그려지게 될까. 하염없이 기대만 할 수 있어 많이 기쁘다. 기대할 수 있다는 일은 생각보다 큰 즐거움이라서, 아직 오지 않은 소리 앞에서 먼저 마음을 넓혀두게 된다.


4악장


마지막 악장을 듣는 일은 끝을 향해 가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좋은 끝은 늘 시작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처음 문이 열리던 순간, 아이보리색 빛이 들어오던 순간, 세 악기가 방 안에 들어와 저마다의 표정을 나누던 순간까지.


난 이렇게 분위기를 남다르게 만드는 도입부에 오묘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이별을 만나기 앞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연주자들이 세련되게 ‘안녕’을 말하면 그 길을 지켜보는 내내 괜히 섭섭해지는 마음이 든다.


이 세상은 마음을 연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야박하여 시작과 끝을 가까이 붙여 놓는다. 그것도 예쁘게 웃으면서! 그러니 마지막 악장을 듣는 일은 끝을 향해 가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이 음악에 마음을 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된다. 드뷔시의 피아노 트리오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어쩌면 화려한 감탄보다, 아까 문을 열고 들어왔던 그 아이보리색 빛의 잔상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은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다. 어느 악기의 말이 먼저였는지, 누가 누구에게 대답했는지 끝내 다 알 수는 없었으나, 이상하게도 몸 안쪽에 작은 문 하나가 열린 것만은 분명했다. 소리는 끝난 듯하면서도 어딘가에 남아 있었고, 그는 그 남은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가만히 짚어보았다.


7월은 숫자가 오른쪽으로 흐르는 계절이다. 비가 내리고, 여름은 벌써 이만큼이나 찾아왔다. 이제는 당분간 만나지 못할 봄을 등지고 만난 계절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페스티벌을 즐겨야지!


모른 척 지나쳤던 이름이 어느새 가까운 말이 되는 시간. 악기들 사이에 서고, 들리는 대로 상상하고, 끝내 나도 그 음악의 일부였음을 알아차리는 시간. 그러니 이 여름에는 한 번쯤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보아도 좋겠다. 말이 되기 전의 색으로 듣는 드뷔시와 라벨의 친밀한 대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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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우스콘서트의 2026 줄라이 페스티벌 〈프랑스의 빛〉은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이어진다. 2020년 베토벤부터 2025년 스트라빈스키까지 한 명의 작곡가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축제는, 2026년부터 그 범위를 한 나라의 음악으로 넓힌다. 그 첫 주제는 프랑스 음악이다. 드뷔시와 라벨을 중심으로, 사티와 프랑스 6인조, 프랑세, 메시앙까지 이어지는 음악의 흐름이 7월의 여러 밤을 지난다.


제1169회 하우스콘서트 July Festival : Debussy & Ravel Ensemble 1 - 친밀한 대화는 2026년 7월 8일 수요일 오후 8시, 대학로 예술가의집 3층에서 열린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드뷔시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단조,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드뷔시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프리미에르 랩소디, 피아노 트리오 G장조로 구성된다. 하유나, 정주은, 유다윤, 정우찬, 김상윤, 김재원, 황건영, 박진형이 무대에 오른다.

 

 

Program


Claude Debussy (1862-1918)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G minor, L.140

하유나(Violin), 황건영(Piano)


Maurice Ravel (1875-1937)

Sonata for Violin and Cello, M.73

유다윤(Violin), 정우찬(Cello)


Claude Debussy (1862-1918)

Première Rhapsodie for Clarinet and Piano, L.116

김상윤(Clarinet), 김재원(Piano)


Claude Debussy (1862-1918)

Piano Trio in G major, L.3

정주은(Violin), 정우찬(Cello), 박진형(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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