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KMU의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에 빠져 있다. 이 곡은 처음 알게 된 건 TV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하단에 나오는 가사를 읽으며 라이브 공연을 시청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나왔고, 그걸 보는 나도 울고 있었다. 가사는 삶에 화창한 날만 있을 수 없고, 슬프고 아픈 날도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내용이었다. 아주 유려한 시적인 문장도 아니고, 절절한 감정이 담겨 있는 게 아닌데도 눈물이 흘렀던 이유는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이 노래처럼, 뜬구름처럼 떠다니는 생각이나 감정을 기막히게 정리해주면 속이 시원하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공감되는 무언가에 쉽게 마음을 뺏긴다.
이번에는 책 ‘계절의 이유’ 표지를 감싸고 있던 띠지에 마음을 뺏겼다.
속절없이 흐르는 계절 속에서 찾아낸 삶의 온기. 그 시리도록 애틋하면서도 사려 깊은 기록. - 정유희
편집장
행복하기만 한 삶도, 슬프기만 한 삶도 있을 수 없다. 내가 찾고자 할 때 행복도, 고통도, 그곳에 있다. - 계절의 이유 중에서
내 마음을 100% 읽은 문장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글머리를 읽기 전부터 이미 눈빛은 신뢰도 100%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기우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끝까지 실망하지 않았다.
작가의 글은 읽매, 읽을수록 매력적이었다. 담백하고 미사여구가 없는데, 이상하게 읽는 내내 유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세상을 그림처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이고은 작가는 원래 일러스트 작가였다. ‘두식앤띨띨이’라는 팀명으로 이정헌 작가와 함께 일러스트 작업 활동을 했다. 그래서 ‘해가 눕기 시작했는지’처럼 모든 순간을 생명력있게 보고, 문장으로 표현했던 거다. 수채화 같은 문장들에 내 마음도 파스텔 색감으로 물들었다.
보통 책 표지를 펼치면 시작하는 글이 나오거나 바로 본문이 나오는데, 이 책은 여러 장의 삽화가 나왔다. 각 계절의 절정기일 때, 만나는 풍경을 담은 삽화였다. 화사하고 포근한 삽화들을 보면서 책장을 넘기니 작가가 겪은 계절들은 어떤 계절이었는지 궁금했다. 이런 삽화를 그린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그 사람의 계절은 모두 행복했으리라 여겼다. 짐작대로 작가의 어릴 적 이야기는 봄처럼 밝고 여름처럼 생기가 넘쳤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여름의 물놀이 추억이었다. 물놀이하던 어린 그녀가 배가 고파질 때 엄마에게 달려가면, 고기를 상추에 싸서 입에 넣어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오물거리며 다시 물놀이했다는데,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여름 추억이 떠올랐다.
여름마다 부모님, 동생과 함께 해수욕장에 갔다. 내 동생은 바다에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바다에 들어가 놀면, 그제야 동생도 용기를 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동생은 까르르 웃으며 물놀이했다. 동생의 행동 패턴을 눈치채면서 더 씩씩한 체하며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나도 작가처럼 배가 고파지면,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러면 엄마는 라면을 끓여주셨다. 맛조개를 먼저 잡은 날에는 맛조개도 들어 있었다. 물이 빠졌을 때는 길쭉한 구멍에 맛소금을 넣어 맛조개를 잡았다. 쑥, 고개를 내미는 맛조개를 손으로 잡으면, 우리는 환호했다. 해수욕장에서 부모님의 얼굴은 나와 동생처럼 해맑았다.
화사한 삽화를 보며 짐작했던 것과 달리, 작가가 지나온 계절은 모두 행복하진 않았다. 행복한 추억이 있는 여름에도 몰래 울어야 했던 슬픈 순간이 있었고, 긴 추위처럼 시리게 아픈 시절도 있었다. 투병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슬픔에 잠식된 채 살다가 겨우 마음을 추스르자,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던 그녀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파스텔톤이었던 글은 흑백으로 변했다. 위태로워 보여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하나, 둘 파스텔 색감으로 다시 물들여지는 게 보였다. 작가는 일상에서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며 다시 일어날 힘을 키웠다. 계절마다 관련된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그 계절의 색이 짙어진 풍경을 그림으로 기록했다. 자신과 닮은 풍경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희망을 품었다. 이런 그녀만의 방식이 참 좋았다. 힘든 계절에 놓여있음에도 한결같았던 그녀의 시선이 좋았다.
작가는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갈 거라며, 함께했던 이들에게 기억의 조각들을 남겨줘서 고맙다고 적었다. 기억의 조각들 몫도 있지만, 나는 그녀의 기량 덕분이라고 본다. 기억의 조각들이 아무리 차고 넘쳐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모든 계절을 반짝이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
내게 기억의 조각들을 남겨 주어서 고맙다고. 그 조각들이 모여 결국 나의 삶을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던 것은 사실 내 내면의 계절을 기록하는 일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중략) 꽃이 지는 이유가 다시 피기 위함이듯, 내 삶의 계절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이유 또한 더 단단한 나로 거듭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두려움 대신 설렘으로, 다음 계절이 내게 건넬 새로운 이유를 기다려 본다.
- 계절의 이유 '계절의 이유' 中
나는 작가처럼 상실의 아픔을 겪어본 적은 없다. 반려견을 키워 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선이 비슷해서였다. 나도 한때는 상처투성이인 기억은 꺼내어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멀리서 보니 그 기억마저 추억이라는 걸 알게되면서 상처뿐이었던 기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주하면 더 아플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화창한 날만 있길 바랐지만, 힘든 나날이 계속되면서 다가올 계절을 무서워한 적도 있었다. 내일이 오는 것마저 두려웠다. 내 삶이 온통 불안과 우울로 도배된 줄 알았는데, 소소하게 힐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이 내 안에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고,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후, 아주 작은 것에 의미 부여하는 면을 장점이라 생각하고 글로 기록해 보기도 했다. 작가의 장점이 나의 장점과 닮았다.
대개 의미 부여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의미 부여도 있다. 그 의미부여는 때론 사람을 살리고, 지나온 계절을 반짝이는 필터로 씌워준다. 정말 운이 좋으면 몰라도, 보통 인간이 겪는 계절은 늘 아름답진 않다. 그러나 별거 아닌 것에 힐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 아름답지 않았던 계절도 반짝거린다. 나의 계절들이 반짝거리냐, 반짝거리지 않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