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종이인간은 무얼 선택했나. - 장줄리앙의 종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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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줄리앙 작가의 초대로 종이세상에 다녀왔다. 종이세상은 종이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그곳은 인간부터 생물, 건물, 이동 수단 등 모든 게 종이로 만들었다. 어릴 때 놀던 종이인형은 쉽게 찢어질 정도로 매우 약했는데, 그곳의 종이인간부터 모든 것들이 단단해 보였다. 크기도 소형부터 초대형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나보다 키가 훨씬 큰 종이인간도 있었다. 비현실적이며 작품일 뿐인 세상이 이상하게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 그의 작품을 활용한 장줄리앙☓누누 리빙제품을 본 적이 많았다. 특히 쿠션이 마음에 들어서 알아보다가 자연스레 그의 유명세를 알게 됐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쿠션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긴 했지만, 예술 작품으로써의 특별함은 없었다. 그림을 볼 줄도 모르는 까막눈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내 눈에는 그저 단순하게만 보였다. 많은 사람이 열광하게 만든 나만 모르는 그 매력이 궁금했다. 그에 대한 호기심을 품던 중에 장줄리앙의 전시 문화초대를 받았고, 같이 갈 사람과 스케줄을 확인하자마자 신청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작품이 좋아졌다.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주 세밀하거나 화려한 작품만 특별한 게 아니었다. 단순한 그림체와 색감도 특별한 작품을 탄생시킨다는 걸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
장줄리앙 작가의 작품은 누구나 쉽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내가 느낀 단순한 그림체와 색감은 대중에게는 친숙함으로, 예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편안함이 되었다. 여기에 위트까지 겸비하여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2022년부터는 국내 팬들과 교감할 수 있는 전시회를 진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서 열렸던 대규모 회고전 《그러면, 거기》, 경주에서 진행한 《여전히, 거기》 등은 약 30만 명의 사람이 관람했다.
그의 매력은 친숙함, 편안함, 위트만으로도 충분히 넘치지만 진짜 매력은 따로 있었다. 본 작품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두 번, 세 번 보면 더 깊은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것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묘미가 강렬했다. 이것이 그의 작품에 반한 이유다.
ⓒJean Jullien
《장줄리앙의 종이세상》은 퍼블릭가산에서 25년 3월 30일까지 열린다. 처음에는 전시회 장소를 알고 의아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있는 건물이었다. 그 동네는 산업단지로 오피스건물만 가득한 곳이며, 금천패션아울렛거리가 있다. 전시회장이 있을 법한 동네가 아니다. 검색해 보니 최근에 지어진 복합쇼핑몰이었다. 업무시설과 주거시설, 상업시설, 전시홀과 강연홀이 있는 건물이었다. 세 개 동이 이어져 있었고, 아파트 단지처럼 잘 관리한 정원이 곳곳에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점은 조형물이었다. 곳곳에는 초대형 페이퍼피플들이 있었다. 눈치를 보며 퇴근하는 듯한 모습의 종이인간, 퇴근하는 기쁨의 춤을 추는 듯한 종이인간은 이 동네 특성을 잘 표현했다. 전시회 현수막에도 시계 초침처럼 얼굴이 겹치면서 서서히 표정이 변하는 종이인간은 직장인의 얼굴을 나타내는 듯했다. 전시홀에 입장하기 전부터 종이인간들이 있으니, 그들의 환대를 받으며 종이세상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줄리앙의 종이세상에 입장하자마자 나는 앨리스가 되었다. 동시에 초등학생의 내가 떠올랐다. 냉장고 측면에 붙어있던 버섯모양 집 스티커를 보면서 앨리스처럼 슝- 들어가 신비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자주 했다. 머릿속에서만 떠돌던 상상을 이렇게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시홀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앙은 첫 번째 섹션인 ‘페이퍼 팩토리’라는 테마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 만난 종이인간은 대형 설치작품 보라색 종이인간이었다. 금방이라도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 것만 같았다. 보라색 종이인간 뒤에는 가위질하고 있는 다른 종이인간이 있었다.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그 종이인간은 우리들의 일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여러 종이인간과 색을 칠하고 있는 다른 종이인간들이 보였다. 귓가에는 공장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똑같은 형태와 색을 가진 종이인간들이 걸려있었다. 바람 부는 장치까지 있어서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는 종이인간들이 펄럭댔다. 정해진 틀에 맞게 오리고, 그리고, 칠하고, 건조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공장처럼 규칙에 맞게 찍어내어 종이인간들이 탄생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벽면에는 동물들이 종이인간에 의해 탄생하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종이인간이 동물을 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유전자변형 기술로 새로운 식재료를 탄생시키는 우리 사회가 떠올랐다.
우리의 모습이 보였던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종이인간의 탄생 과정에서도 보였다. 우리는 공장처럼 똑같은 곳에서, 비슷한 사람이 한 번에 쏟아지며 탄생하지 않지만, 현대인의 삶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기준에 맞는 스펙을 쌓거나 직업을 갖는다. 심지어 갓생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생활방식까지 사회 기준에 맞추며 살아간다.
불특정 다수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 경력, 생활방식 등을 쫓지 말고,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또는 본인에게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라는 메시지가 보였다.
두 번째 테마는 ‘페이퍼 정글’이었는데, 거대한 종이 뱀이 있었다. 종이세상의 뱀은 우리세상의 뱀과 달리 귀여웠다. 순박한 인상에, 색은 코랄 색과 비슷했다. 몸통과 꼬리에는 앞, 뒤로 작가가 직접 그린 벽화가 있었다. 한쪽에는 인간의 역사가 반대쪽에는 종이인간의 탄생기와 사회가 되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아무것도 없었던 세상에 동물이 생기고 인간이 태어나면서 문화와 건물 그리고 전쟁의 역사, 현재 모습까지 타임라인처럼 담긴 벽화였다. 마지막에는 온 세상이 까맣게 변하고 아무것도 없는 걸로 보아, 환경오염으로 인간이 살 수 없는 지구를 표현한 듯했다. 반대편의 벽화는 지구 종말 후, 지구 반대편 세상을 표현한 듯 보였다. 자연에서 만들어진 종이인간은 우리가 했던 방식으로 사회를 만들어 나갔다. 지구에서 인간의 삶이 끝나고, 지구 반대편에서 자연이 만든 또 다른 세상이 시작된 거다. 막연하게 지구 종말 후, 자연만의 세상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눈으로 직접 보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서글펐다.
마지막 섹션의 테마는 ‘페이퍼 시티’였다. 그 공간에는 종이인간이 사는 도시가 있었다. 곳곳에는 종이인간을 비롯하여 자동차, 르 봉 마르셰 백화점, 백화점을 보고 있는 종이인간, 꽃집, 영화관, 도서관, 카페, 갤러리, 굴뚝, 빌딩, 생물이 있었다. 앞서 적은 대로 모두 종이로 만든 것들이었다. 여기에 도시소음까지 들리니 생동감이 느껴졌다.
쇼핑백을 들고 가면서 만족의 미소를 짓고 있는 종이인간,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종이인간, 선에 맞추어 주차한 자동차, 도로 위 자동차, 피곤한 표정의 도서관 사서 가오리 등을 요리조리 살펴봤다. 영화관에서는 좌석에 앉아 상영되고 있는 영상을 감상해 보고, 카페에서는 의자에 앉아 메뉴판을 보는 척도 했다.
처음에는 초대받아 놀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마지막 섹션을 관람하는 동안에는 낯선 도시에 여행 온 이방인이 된 것 같았다. 나만 다른 외모, 호기심 가득한 눈, 익숙해 보이는 종이인간들 사이에서 어색한 티가 확 나는 모양새가 딱 그랬다.
종이인간들과 종이로 만들어진 세상 사이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종이 뱀이 길거리에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고 있고, 종이인간들은 그 뱀을 애완동물처럼 대했다. 처음에는 이 광경이 의미하는 바를 눈치채지 못했다. 전시홀에 입장하자마자 들뜬 나머지 관람순서를 까먹고, 관람한 탓에 ‘얘네는 뱀을 좋아하네.’라는 생각만 했다. 두 번째 섹션을 관람한 후에야 그 의미를 파악했다.
종이인간은 그동안 우리들을 지켜봐 왔으며, 이를 토대로 종이인간을 탄생시키고 세상을 만들어냈다. 그 과정을 종이 뱀에 기록할 정도로 그들에게 뱀은 중요한 존재로 보였다. 즉, 종이인간의 세상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선택을 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우리에게 귀띔을 해주고 싶었던 걸까.
“지구에서 인간의 역사를 이어가려면, 자연과 상생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해.”
“갤러리에 있던 그림 봤지? 그거 우리들의 모습이야. 그렇게 흑백으로 남겨지는 쪽보다는 계속 살아가고 있는 지구의 인간이 되는 쪽이 더 낫지 않아?”라고.
작가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어린 초대받은 기쁨과 내가 상상했던 걸 현실로 경험하는 기분, 그리고 이방인이 되어 여행하는 기분을 온전히 즐겼다. 종이세상에서 나오니, 눈앞에 보이는 것과 피부로 느껴지는 것 모두 기적처럼 느껴졌다.
필자의 tmi
전시를 관람하면서 쉬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다. ‘페이퍼 정글’에서 종이 뱀 머리에 있던 벽화였다. 네모난 종이인간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었는데,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동그란 얼굴을 가진 종이인간들 사이에서 혼자만 네모 얼굴이라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자기얼굴을 혐오까지 하게 되면서 스스로 얼굴을 가격했다. 상처를 남긴 얼굴을 거울로 바라보다가 결국 가위로 동그랗게 오린다. 그 종이인간은 상처투성이인 얼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거울을 바라본다.
그것도 잠시, 또 자기외모에 불만을 느낀다. 그 종이인간은 친구의 패션스타일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모자를 쓰고, 망토를 두르며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냈다. 마지막 공간의 출구 쪽에는 벽화 속 그 종이인간이 있었다. 보라색의 고깔모자와 망토, 동그란 얼굴에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얼굴 모양과 패션스타일까지 원하는 대로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 시선에 안타까움의 필터가 장착돼서인지 그 표정이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그 종이인간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과 비슷했다. 언젠가부터 자신의 외모나 스타일을 다른 사람과 끝없이 비교하면서 성형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패션스타일도 자신의 취향 없이 무작정 따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외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과 자신의 삶을 계속 비교하면서 자존감을 잃어가기도 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니, 필자의 어떠한 면도 비쳤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눈치를 봤고, 말하더라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또는 ‘감히’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는 게 없다는 이유로 또는 나보다 애정이 더 깊은 사람과 비교하면서 나의 애정은 보잘것없다고 평가했다. 끝없이 남과 비교하며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왜곡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칭찬을 들어도 늘 ‘나보다 ~한 사람도 많은데’라며 비교했다. 수용 받은 경험이 별로 없고, 억눌린 채 자란 탓도 있지만, 늘 남과 비교하며 나를 과도하게 낮추는 버릇은 내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나처럼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자기장점을 타인과 비교하여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 멈추라고 말해주고 싶다.
‘타인과 비교’에서 시작하지 말고, ‘나의 마음’에서 시작하여 당당히 좋아하고, 장점을 그대로 수용하자.
당신의 변화도 네모 얼굴이었던 종이인간처럼 ‘타인과 비교’에서 시작하면, 중독으로 이어지거나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서 결국 파멸로 치닫게 된다. 또한 이는 좋은 변화가 아니다. 내 인생의 결말이 파멸되는 걸 원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싶다면, ‘배움과 깨달음’에서 시작해 보자.
(‘배움과 깨달음’에서 시작한 필자의 진정한 성장도 현재진행 중이다.)
[강득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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