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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인정받지 못한 시간은 실패한 시간일까 - 나의 사적인 예술가 [영화]

창작을 대하는 세대 간의 변화

by 이상아 에디터
2026.09.2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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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예술 작품이 오래도록 찬사 받지 못했다면 그 시간은 실패한 시간일까. 반대로 갑자기 누군가가 그 작품을 발견하고 가치를 부여한다면 잊혀 있던 시간은 그 순간 성공으로 바뀌는 것일까.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오랜 세월이 지나 자신의 시를 발견한 젊은 예술 지망생들에게 찬사를 받게 된 에드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그는 젊은 시절 뉴욕에서 시를 쓰는 사람이었지만 오래도록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시에게서 떠나 우체국 직원으로 노년이 될 때까지 일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던 그의 앞에 젊은 예술가 무리의 리더가 나타나 그를 재발견된 거장으로 추앙하며 잔잔하던 에드의 일상에 물결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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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동명 소설을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하여 각색한 이 영화는 영화 평론가 출신인 ‘켄트 존스’가 감독을 맡았고, 상업과 독립 영화를 넘나드는 거장 윌렘 대포와 <패스트 라이브즈>의 그레타 리가 주연을 맡아 열연하였다. 감독은 아르투르 슈니츨러 특유의 날카로운 아이러니에서 매력을 느꼈으며, 배경을 현대 뉴욕으로 옮긴 각본가 ’세미 버치‘가 원작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각색한 것에 마음을 움직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성공한 예술가’라는 정체성


       

      영화는 주인공 ‘에드’의 평범한 일상으로 시작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시인이라 여기지 않으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70대가 맡은 소임을 다하며 건조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나타난 젊은 예술가들의 추앙은 갑작스럽게 에드를 다시 예술가로 만들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에드 자신보다 타인의 인정으로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첫 만남에선 에드의 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말도 더듬을 만큼 그를 열망한다. 그를 시대가 알아보지 못한 예술가로 호명하며 에드가 실패한 시인이 아닌 미처 발견되지 못한 시인이었을 가능성을 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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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그들의 환호를 낯설어 하던 에드 또한 점차 변하게 된다. 그저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일 뿐이라 여기던 자신의 작품을 반가워하다 점차 자신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거워하고, 거부하던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며 다시 새로운 시를 써보겠다 다짐한다. 오래도록 닫혀 있던 ’시인 에드‘라는 정체성이 타인의 인정으로 되살아 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만큼 시는 에드의 곁에 쉽게 돌아와 주지 않는다. 젊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것은 오래전 에드가 남긴 시였다. 현재의 에드를 실제로 만날 수는 있어도 과거와 현재의 사이에 존재하던 수십 년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에드 역시 과거의 예술을 하던 자신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에드는 새로운 시를 내놓지 못한 채 낭독회에서 과거의 시를 낭독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자신의 작품을 다시 사람들 앞에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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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성공한 예술가‘를 만드는 것일까. 계속해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일까? 작품을 통해 명성을 얻은 사람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재발견된 사람일까?

       

       

       

      예술은 인정받아야만 존재하는가


       

      에드의 시는 젊은 예술가들이 발견하기 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듣는 순간 작품 자체가 변한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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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의미로 본다면 배우로 살아가고 있는 ‘글로리아’ 또한 연기라는 예술 범위 안에 살아가고 있다. 남들 앞에서 대표작이라고 꼽을 작품은 없고, 준비하던 연극도 제작비 문제로 엎어졌지만 그녀는 자신이 서는 모든 곳에서 배우로서 최선을 다한다. 설령 그 무대가 오래된 노래하는 바 일지라도 그녀는 일상에서 캐릭터로서 열연하며 현재로서 존재한다.


      에드가 예술의 과거, 글로리아가 예술의 현재를 뜻한다면 ‘젊은 예술가들‘은 어떤 예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예술은 아직 존재하진 않는다.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와 편하고 빠른 현대 기술 덕에 그 어느 시대보다 예술에 대한 지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이 표현하고 싶어 하는 바를 모른다. 과거의 예술을 추앙하며 현대 기술에서 멀어지려는 노력도 해보지만 이미 일상 속에 녹여져 있는 편리함을 쉽게 떨쳐내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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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은 이 영화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뉴욕 예술계에 대한 헌사라고 이야기하며, 각기 다른 예술을 대하는 세 가지의 세대의 열정을 비교하며 서로 다른 형태의 예술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다. 인물들이 살아온 시간과 처한 환경, 계급 위치에 따라 예술은 다르게 작용하며 분리된 시대의 모습을 통찰하는 예술의 진정한 에센스를 전달하고자 영화 내에서 실제 시인들의 목소리를 내레이션처럼 사용하여 살아있는 ‘시’를 전달하고 싶었다 밝혔다.


      세 가지의 세대를 비교하였을 때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 ‘인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영화는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는 대신 그저 살아있는 시를, 숨쉬고 있는 예술을 에드가 다시 시를 찾는 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외부의 기준에 따라 자신이 써내려온 시간을 다르게 바라본 뒤 잠깐 우월감에 젖었다 패배감을 통해 금세 다시 자신의 현실로 돌아온다. 새로운 시를 못쓰게 된 에드의 실패는 재능의 소실보다 지나온 시간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하다.

       

      우리는 과거에게로 돌아갈 수 없고 뒤늦은 인정 역시 살아온 수십 년을 지워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나온 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에드의 뒤늦은 명성은 짧게 스쳐간다. 글로리아는 과거의 자신도, 미래의 자신도 한결같이 같은 ‘배우’로서 바라본다.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첫 낭독회를 향한 혹평에 무너져 내리고 만다.


      잠깐의 이벤트를 지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그들을 보면 표면적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아주 작은 변화들을 남긴다. 에드는 인정받지 못했다 생각하는 자신의 시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읽었다. 글로리아는 젊은 예술가들의 무리에서는 듣지 못하던 혹독한 현실의 쓴소리를 에드를 통해 전해 들은 뒤 진짜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은 와해되는 듯해 보이지만 무리 중 가장 어린 소년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진심 어린 비평을 듣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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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서 뒤늦게 찾아온 것은 어쩌면 명성만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것은 실패했다 생각했던 자신의 시간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놓인 에드의 평범한 일상은 중간 과정을 바라본 관객들에게 더 이상 똑같은 일상이라고 바라볼 수 없다. 그 사이에 우리가 알게 된 사건과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경험과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예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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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나의 사적인 예술가>가 끝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성공한 예술의 형태가 아닌 삶을 지나가는 살아있는 예술 그 자체인 듯하다. 에드는 어쩌면 앞으로도 새로운 시를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때 시를 썼던 그의 시간까지 실패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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