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속 돌고 도는 정반합의 원리
기존의 흐름이 ‘정’이라면 이에 반하는 ‘반’이 등장하고, 두 흐름을 포괄하는 새로운 ‘합’이 탄생한다?
예전부터 K-POP 시장에서 돌고 돈다는 변증법의 정반합 원리를 최근 K-POP의 트렌드 주기에 대입해 보면 흥미로운 흐름이 보인다. 예를 들어, 한때 강렬한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앞세운 SM엔터테인먼트의 SMP(SM Music Performance)는 K-POP의 한 흐름을 형성했다. 뉴진스의 이지리스닝 컨셉은 이에 반대되는 자연스러운 스타일링과 부담 없이 듣기 좋은 음악을 제시하며 대중을 사로잡았다.
이때 하나의 흐름이 주류로 자리 잡으면 그 자체가 새로운 익숙함이 된다. 현재는 이지리스닝이 K-POP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면, K-POP의 교과서 같은 칼군무, 3분이 넘는 음악, 일관된 스타일링 등은 이전의 익숙함을 향수로 떠오르게 하며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등장한 ‘A2O LITE’는 정반합이 또 한 번 시작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만든다.
익숙한 듯 새로운 A2O LITE
A2O 엔터테인먼트는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난 이수만 프로듀서가 설립한 기획사다. ‘A2O MAY’, ‘A2O LITE’, ‘A2O SOUL’ 등의 아티스트를 선보였는데, 이 중 특히 주목받은 것은 9인조 걸그룹 ‘A2O LITE’다. 이 기획사에는 소녀시대 써니와 유영진이 프로듀서로 소속되어 있어 초기 SM엔터테인먼트 분위기가 떠오른다는 평가도 있다.
‘A2O LITE’의 ‘NEON’은 음원 공개 약 29시간 만에 멜론 TOP100 1위에 올랐다. 특히 대중에게 빠르게 각인된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음악이 최근 K-POP의 주류와는 다른 방향을 택했다는 점이다. 짧은 러닝타임과 반복적인 후렴, 챌린지에 최적화된 퍼포먼스가 익숙해진 상황에서 ‘NEON’은 3분 28초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 꽉 채운 사운드와 화음, 댄스 브레이크 등을 알차게 채워 넣었다.
‘NEON’이 인기를 얻는 모습을 보면,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전에 없던 것을 창작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이미 익숙해져 잊고 있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을 다시 꺼내는 것 또한 새로움이 될 수 있다. ‘A2O LITE’는 K-POP의 교과서 같은 음악을 다시 가져오며, 한때 당연했던 스타일이 오늘날에는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A2O LITE'가 주목받는 이유는 음악에만 있지 않다. 강한 비트와 칼군무와 대비되게끔, 화장기 없는 메이크업과 통일감 있는 의상으로 새로운 인상을 남겼다. 특히나 센터 멤버를 주축으로 왼쪽과 오른쪽 멤버들의 옷을 다르게 입혀 대칭을 만드는 디테일이 팬들 사이에서 호평받았다.
이처럼 익숙한 것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하느냐를 넘어, 그것이 지금의 대중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NEON’의 화제성은 음악 외의 요소에서도 살펴볼 만하다.
대중이 만드는 자체 챌린지, 자체 바이럴
‘NEON’의 도입부 2인 안무는 팬들이 챌린지를 만들어 내며 자체적으로 바이럴 효과를 이루었다. 해당 안무를 다른 인물들이 추는 것처럼 AI로 합성한 영상이 인기를 얻었는데, 특히 소녀시대 써니가 이수만과 유영진의 AI 챌린지 영상을 업로드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 NEON 도입부 안무의 일부 ('NEON' Official Video 中)
‘NEON’에서 반복되는 가사인 ‘Neon and beyond’가 ‘미혼앤비혼’, ‘위염앤비염’처럼 들리는 말을 덧붙이는 언어유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팬들 사이 비슷한 발음을 가진 단어를 찾아 각자의 방식으로 변주하는 놀이가 자연스레 퍼진 것이다.
또한 무대에서 멤버 영이 ‘분석 중’ 가사를 부르며 여유롭게 포즈를 취하는 동안, 시리가 빠른 랩과 바쁜 동작을 소화하는 파트가 ‘요즘 시리만큼 바쁨’과 같은 밈으로도 쓰이고 있다. 이처럼 프로듀서의 의도와 예상과 달리 대중이 직접 곡을 해석하고, 변형하며 재창작하는 방식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는 과거의 K-POP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정교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되, 무대 밖에서는 AI와 밈이라는 요즘 트렌드와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다음 등장할 ‘합’은?
그렇다면 ‘A2O LITE’가 보여준 흐름은 새로운 ‘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물론 데뷔곡의 차트 성적과 밈의 확산만으로 K-POP의 주류가 바로 바뀌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짧고 간결한 음악이 익숙해진 시장에서 긴 러닝타임과 칼군무, 정교한 보컬 구성이 다시 주목받았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익숙함이 반드시 지루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유행이 돌고 도는 것처럼 몇 년 전 유행이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매력을 얻을 수 있는 것.
이들이 정으로 자리 잡는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완전히 5세대의 포문을 열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수많은 ‘5세대’ 타이틀이 나왔지만, 아직 뚜렷한 세대교체를 인정하지 않는 대중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A2O LITE’가 기존과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며 다음 세대의 등장을 체감하게 했다.
정반합의 관점에서 보면, ‘A2O LITE’가 보여주는 것은 과거의 재현이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과거에 익숙했던 흐름이 오늘날의 감각, 트렌드와 만나 새로운 흐름을 구성하는 과정이다. 이들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하나의 독자적인 흐름을 만들어낼지, 아니면 또 다른 반작용을 불러올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분명한 것은 K-POP의 새로움이 언제나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만 탄생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모두가 한 번쯤 경험했던 것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익숙함이 아닌 새로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