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피자 이야기
‘피자의 역사가 책을 쓸 만큼 중요한 무게를 지닌 걸까?’ 하고 시작부터 솔직한 고백을 드러낸 저자는 음식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피자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음식 역사학자로 저명한 ‘루카 체사리’가 파스타에 이어 이번엔 피자 이야기를 들고 왔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이야기는 피자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역사 되겠다. <피자에 담긴 세계사>는 만인의 마음을 훔친 피자의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어떤 식으로 이동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인지를 생생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특히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 유럽으로 퍼져나간 피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면서 거기에 얽힌 사람과 문화에 대해서도 아주 자세히 설명한다.
끊임없이 교류하는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모양을 갖추게 된 피자. 그 한 조각 속에는 사회, 정치, 서사가 한데 얽힌 300년짜리 방대한 삶의 흔적이 압축되어 있다. 이 책은 시대, 지역, 취향, 재료, 문화가 깃든 시대 흐름을 타며 변화해온 피자의 유연성을 높이 사면서도 피자가 꿋꿋이 자기 본질을 지켜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알면 알수록 비범한 음식인 피자.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렵다. 이 책은 어디에서도 들은 적 없었던 이야기, 피자에 대한 A to Z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마르게리타에 얽힌 사연을 아십니까
피자, 그중에서도 정통 피자를 논할 때면 항상 등장하는 ‘마르게리타’. 이 마르게리타의 서사는 모순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유한 왕국의 수도 ‘나폴리’는 화려한 저택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도시이자 빈민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곳이었다. 화려함과 거리 위의 절박한 삶이 함께 공존했다. 그 모순 속에서 피어난 음식이 바로 피자였다.
고용 상태가 불안했던 하층민들은 채소 위주의 식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에 왕국은 낮은 가격의 밀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정책을 펼쳤다. 때문에 밀가루, 올리브유, 채소와 같이 최소한의 재료로만 만드는 음식의 등장은 피자사에 있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허나 이 피자에 대한 초기 역사는 드러난 바가 없어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피자 장수는 군밤이나 생선구이, 포도주를 파는 이들과 경쟁했던 거리 행상 중 한 명에 불과했다는 점, 그들은 가게를 가지고 있거나 도시를 돌아다니며 피자를 팔았다는 점, 수많은 변화를 거쳐오늘날까지 살아남아 피제리아 영업을 이어가는 곳이 드문드문 있다는 점까지는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당시 각종 기사글이나 작가의 글 속에 묘사된 피자에 대한 설명이 있긴 하지만 더 많은 것들이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기록의 공백이 너무나 커서 피제리아에 대한 의문점은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나폴리 피자가 대대로 이어져온 그 전수 과정은 실로 방대해서 재구성하기도 어렵다고.
희미한 이야기들 중에서도 강렬한 사건은 존재한다. 마르게리타 왕비 얘기다. 사람 이름을 피자 이름으로 붙였다는 건 전에 얼핏 들은 적 있다. 첫아이를 낳을 때가지 나폴리에 머물기로한 마르게리타 왕비. 그러던 차에 ‘라파엘레 에스포지토’라는 이가 가게 이름을 아주 노골적으로 이탈리아 왕비 피제리아라고 바꾸게 된다.
자기 이름대신 마르게리타 왕비의 이름을 가게 이름으로 지은 건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몇 년 뒤 나폴리에 머물던 왕비가 그를 궁전으로 불러 그의 피자를 맛본다. 그가 왕궁에서 만든 피자 세 판 중 한 판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마르게리타 피자다.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바질이 올라간 색은 마치 이탈리아 국기 같았고 동시에 이탈리아를 향한 경의처럼 보였기에 왕비는 이 피자를 마음에 들어했다. 이때다 싶었던 피자 장인은 피자에다 ‘마르게리타’라고 잽싸게 이름을 붙인다.
서민 음식이 왕실의 호감을 사고, 왕비는 이 대중적인 밀가루 음식을 유행시켰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대중적 이미지에 플러스가 된 셈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사건 속에 우리가 모르는 더 재미난 일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게 뭔지는 영원히 모를 거다. 생략된 사건과 주인공들은 아직까지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납작빵이 배달 피자가 되기까지
나폴리식 피자는 수많은 피자 중에 겨우 하나일 뿐, 존재했던 모습 또한 하나의 유형일 리 없을 거다. 피자라는 단어 앞에 별다른 수식어가 붙지 않으면 피자를 ‘납작하게 누른 빵=납작빵’이라고 여겼단다. 나폴리식 피자의 시초도 납작빵일 거라 추청된다. 크고 둥글고 만만한 이 납작빵은 전 세계로 널리 퍼져 나갔다. 장점이 많아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말리거나 구워서 장기간 보관하기가 쉬웠기에 항해자들에게 특히 유용했다고 한다.
비록 화덕이 없어서 반죽을 얇게 펼쳐 구울 수밖에 없던 과거의 궁여지책이었지만 납작빵은 여러 문화권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다양한 유형으로 존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해 화덕이 파괴되자 생존을 위해 튀겨 만든 프리타 피자도 개중에 하나였다. 달콤한 맛이 나거나 속을 채운 형태와 같이 변형된 종류들 또한 지역에서 나름의 전통을 유지하며 음식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피자가 도시 성벽 밖을 넘을 수 있었던 건 이민과 산업 혁신이라는 대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1920~1930년대 사이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해당 지역 인구의 80%를 육박할 정도로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됐었다는 점, 화덕을 제작해온 엔지니어가 최초의 가스 화덕 제품을 개발하면서 작은 규모의 피제리아가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점, 1957년 냉동 피자의 등장이 전에 없던 편의를 제공했다는 점. 이 모든 점들이 맞물려진 결과 피자는 뉴욕을 넘어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뉴저지까지 광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배달 플랫폼의 보급과 소셜 미디어 사용의 증가 또한 사람들의 피자 소비 속도를 촉진시켰고 이제는 어느 음식보다 피자가 보편적인 먹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납작빵은 그렇게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퍼진 음식이자 영화 속 인물이 언제든 집에서 배달시켜 먹는 자유로운 피자가 되었다.
어마어마한 ‘피자 효과’
피자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역방향의 여정’은 책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원래 나폴리 전통대로라면 미국에서도 치즈와 생선을 곁들인 하얀 버전의 피자가 유행했어야 하지만 뉴욕은 당연히 나폴리가 아니기에 신선한 생선을 매일 공급받기 어려웠다.
이주민들이 요리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재료는 단연 토마토였다. 마침 밀봉 가열 살균법이라는 기술 등장으로 수많은 식품의 보존이 가능해졌고 토마토는 저렴한 가격으로 어디든 쉽게 수출될 수 있었다. 껍질 벗긴 홀토마토 통조림은 피자를 포함해 다양한 요리에서 기존 토마토보다 우위에 서며 역으로 이탈리아 본토에서도 가공 토마토 수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민자들은 미국 해안까지 오기 힘든 재료의 결핍을 본토 제품의 방식으로 재현하며 애착 식품을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때 육가공 작업장과 치즈 공장이 한꺼번에 많이 생겨난다. 토마토와 치즈 베이스가 보편적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원래의 전통 피자들은 점점 변방으로 밀려난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사랑했던 토마토와 치즈는 전 세계가 열광하는 필승 조합이 되었고 이는 다시 본토였던 이탈리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집단 내부에서 유지해온 식습관의 파급 효과가 실로 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피자, 어디까지 뻗어 갈까?
*ai 생성 이미지
19세기 말부터 꾸준히 성장해 온 피자 시장. 나폴리 피자만의 정통성은 뿌리처럼 귀감이 될 것이며 우리가 모르는 미래의 피자 또한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도우 위에 올려지지 않은 재료가 많다. 피자인 듯 피자가 아닌 듯, 포용과 혼종과 진화를 오가며 피자는 이색적인 문화 흐름을 낳을 것이다.
최근 길을 걷다 영업을 마친 떡집 앞에 멈춰섰다. 가게문 앞에 붙어 있는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맛있는 피자설기 2천 원’. 매체에서 여기저기 나오고 있는 요즘 그 핫하다는 피자설기였다. 백설기떡을 베이스로 삼고 그 위에 토마토 소스와 치즈와 페퍼로니와 옥수수알이 올려진, 피자인 듯 떡인 듯한 그 묘한 음식을 떠올리며 왠지 조만간 사 먹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직 먹어보지 못한 피자맛 휘낭시까지 떠올렸다.
이쯤되면 피자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우주가 맞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