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PRESS] 욕에도 말맛이 있다 - NEW 욕 [도서]

K-콘텐츠 속 가장 거친 언어를 읽는 법

by 오수민 에디터
2026.10.26 14:27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는 말이 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해도 ‘Fuck’과 ‘Shit’은 익숙하고, 중국어로 밥을 먹었느냐고 묻는 ‘니츠판러마(你吃饭了吗?)’는 어쩐지 한국어의 욕처럼 들린다는 이유로 웃음거리가 된다. 프랑스어로 꽃미남이라는 뜻인 ‘si bel homme(시벨롬)’ 역시 한국어의 거친 표현과 닮았다는 이유로 기억되곤 한다. 정작 그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알지는 못하면서, 우리는 욕이거나 욕처럼 들리는 말에는 유독 빠르게 익숙해진다.

       

       

      R1280x0.fwebp.jpg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라”, “지랄하고 자빠졌네.”, “저 좆같은 차를 확 밀어버릴까…”.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사들이다. 극 중에서는 특정한 인물이 특정한 상황에서 내뱉은 말이지만, 화면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그 대사를 따라 하고, 전혀 다른 상황에 가져다 쓰며, 때로는 원래의 맥락보다 새로운 쓰임새를 더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욕은 그렇게 이야기를 떠나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K-콘텐츠가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한국어의 욕도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인사하는 법은 몰라도 ‘씨발’이라는 말은 알아듣는 외국인이 있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이제는 해외에서도 한국어 욕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정확한 뜻은 몰라도 억양과 표정만으로 그 말에 담긴 감정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욕을 나쁜 말이라고 배우지만, 그 어떤 말보다 쉽게 기억하고 널리 퍼뜨린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많은 단어 가운데 하필 욕이 이토록 강한 생명력을 지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NEW욕_앞표지.jpg


      홍수경의 『NEW 욕』은 그 질문에 한국 영화와 드라마로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거나 웃으며 따라 했던 욕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욕망, 시대의 흔적을 읽어낸다.

       

       


      욕에도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욕이 언제나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시발 개웃기다”와 같은 말에는 웃음을 강조하는 감정이 담겨 있고, “미친놈 아니야”라고 할 때는 놀라움이나 감탄이 실리기도 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거친 농담이 반드시 적대적인 감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욕은 때로 감탄사처럼, 때로는 우정을 확인하는 표현처럼 사용된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욕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인물이 내뱉는 한마디의 욕은 긴 설명 없이도 그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전달한다. 분노와 좌절, 당혹감과 흥분을 드러내고, 때로는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나 서열을 보여주기도 한다.


       『NEW 욕』은 이러한 욕의 기능을 불만, 모욕, 혐오라는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불만을 드러내는 욕은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는 수단이 되고, 모욕을 주는 욕은 특정한 상대를 향한다. 반면 혐오를 표출하는 욕은 개인을 넘어 그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적 속성까지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책이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는 이러한 구분을 사전적인 정의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100편이 넘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욕이 실제로 사용되는 상황을 살펴본다. <기생충>, <파묘>, <헤어질 결심>과 같은 영화부터 <더 글로리>, <오징어 게임>, <나의 아저씨> 등의 드라마까지, 익숙한 작품 속 대사를 따라가다 보면 같은 욕이라도 누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는지에 따라 그 의미와 무게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31.jpg

       

       

      가령 영화와 드라마에서 상대를 향해 내뱉는 '쌍년'이나 '씨발년' 같은 표현에는 상대방의 실제 지위와 관계없이 그를 함부로 부를 수 있다고 여기는 태도가 담겨 있다. 한마디의 욕이 긴 설명보다 선명하게 인물의 성격과 관계를 보여주는 순간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같은 욕이 시대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얻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책에서는 '쌍년'이라는 표현이 일부 예술적 맥락에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권위에 저항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재해석되는 현상을 소개한다. 누군가를 낮추기 위해 사용되던 표현이 오히려 굴복하지 않는 사람을 나타내는 언어로 다시 쓰이는 셈이다.


      '또라이' 역시 비슷하면서도 다른 변화를 보여준다. 상대를 비하하는 말이었던 '또라이'는 오늘날 때로 남들과 다른 발상이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람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불한당>의 '혁신적인 또라이'라는 표현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그라미처럼, '또라이'는 때로 인물의 엉뚱한 매력과 개성을 설명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기존의 부정적인 의미를 완전히 지우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NEW 욕』이 단순히 욕의 종류나 뜻을 정리한 책이 아님을 드러낸다. 욕을 사용하는 인물과 상황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독자는 그 말이 지닌 감정뿐 아니라 관계의 질서와 시대의 변화까지 읽어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언어를 다룬 책인 동시에 대중문화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욕은 번역될 수 있을까


       

      욕이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라면, 그 감정은 다른 언어로도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까.


      한국어의 ‘호로새끼’와 ‘엿 먹어’를 영어로 옮긴다고 생각해 보자.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거부한다는 의도는 비슷한 표현으로 전달할 수 있겠지만, 그 말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어 온 문화적 맥락까지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다.

       


      Oldi_20261025_164655_581.JPG

       

       

      특히 '호로새끼'처럼 출생과 가족관계에 대한 낙인을 담은 표현은 혈통과 가족 질서를 중요하게 여겨온 사회의 가치관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엿 먹어' 역시 마찬가지다. 『NEW 욕』에서는 '엿'이 과거 남녀의 성기를 가리키던 표현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엿 먹어라'는 그만 떠들고 성교나 하라는 무시와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상대를 골탕 먹이거나 곤란하게 만들겠다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 기원을 따라가면 성적인 금기와 모욕의 역사가 드러나는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 뉴욕에서 생활한 저자의 경험은 한국어의 욕을 다른 언어와 비교해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진다. 한국어에서는 서로 다른 감정과 맥락을 담아내는 여러 욕이 영어에서는 비슷한 표현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호로새끼'는 영어의 'Bastard'와 비교할 수 있다. 두 표현은 구체적인 쓰임새에는 차이가 있지만, 출생이나 혈통을 근거로 상대를 비하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엿 먹어'는 영어로 'Go fuck yourself'라고 옮길 수 있다. 말의 기원과 문자 그대로의 뜻은 다르지만, 상대를 무시하고 경멸하며 조롱하는 감정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반면 상황이 '엿같다'고 표현할 때에는 'That sucks'가 더 어울린다. 같은 욕이라도 누구를 향해,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표현으로 번역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NEW 욕』의 매력이 드러난다. 저자는 한국어 욕을 이야기할 때는 익숙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영어 욕을 설명할 때는 서양의 영화와 드라마를 예로 든다. 덕분에 독자는 낯선 표현의 뜻을 외우기보다 등장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그 말을 내뱉었는지 떠올리며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욕이 사용되는 장면을 함께 살펴보는 과정은 서로 다른 언어의 욕을 비교하는 일을 한층 쉽고 흥미롭게 만든다.


      욕을 번역한다는 것은 단순히 거친 단어를 다른 언어의 거친 단어로 바꾸는 일이 아니다. 말이 만들어진 문화적 배경을 온전히 옮길 수는 없더라도, 그 말이 사용된 상황과 상대에게 전달하려는 감정은 살려야 한다. 같은 욕이라도 맥락에 따라 다른 표현으로 번역되는 이유다.


      언어마다 욕의 표현과 쓰임은 다르지만, 그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서로 닮은 지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국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에서도 성적인 표현은 욕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영어의 'Fuck'부터 한국어의 '씹'과 '좆'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가장 사적인 행위와 신체를 가리키는 말들은 때로 가장 공격적인 언어로 사용된다. 왜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행위가 누군가를 모욕하는 말이 되었을까.


      그 답의 일부는 사회적 금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성은 오랫동안 개인의 사적인 영역이면서 동시에 도덕과 규범, 통제의 대상이었다.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웠던 표현일수록 그것을 입 밖에 내는 행위는 강한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성적인 욕이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말은 놀라움이나 분노를 강조하는 감탄사처럼 사용되지만, 어떤 말은 상대방의 성적 행위나 정체성을 수치스럽게 만들어 모욕한다. 특히 여성의 성을 비난하는 표현에는 사회가 오랫동안 여성에게 요구해 온 규범과 이중잣대가 남아 있기도 하다.


      이처럼 욕의 기원을 살펴보는 일은 단순히 오래된 말의 뜻을 알아보는 작업이 아니다. 어떤 말이 욕이 되었다는 것은,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나 행위를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가장 거친 말에서 발견하는 것


       

      욕을 재미있게 읽는 것과, 모든 욕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NEW 욕』은 독자에게 더 많은 욕을 익히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욕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대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말을 다시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평소에도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거친 말을 사용하곤 한다. 웃음을 강조하거나 놀라움을 표현하는 욕에는 익숙하지만, 누군가의 장애나 성별, 사회적 위치를 비하하는 표현은 가급적 입에 올리지 않으려 했다. 그 차이를 막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NEW 욕』의 3장을 읽으며 비로소 그 불편함에 구체적인 이유가 생겼다.

       

       

      Oldi_20261025_212418_471.JPG

       

       

      '병신', '걸레', '따까리', '아줌마', '-충'. 이 표현들은 단순히 분노를 터뜨리는 말과는 달랐다. 어떤 말은 장애나 성별처럼 개인이 지닌 속성을 모욕의 근거로 삼고, 어떤 말은 평범한 호칭에 비하의 의미를 덧씌운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농담일지라도, 누군가를 낮춰 부르는 방식에는 그 사회가 오랫동안 공유해 온 편견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욕과 농담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욕이 사용되는 상황과 관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가볍다고 해서 그 말이 지닌 사회적 의미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욕을 통해 친밀함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과, 어떤 욕은 그 자체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한다.

       

       


      우리가 욕을 기억하는 이유


       

      인간은 때로 거친 말로 감정을 표현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답답함을 해소한다. 욕이 지닌 표현의 기능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표현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면, 그 말을 이전과 똑같은 무게로 사용할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NEW 욕』은 익숙한 영화와 드라마 속 대사를 통해 욕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독자는 욕의 기원과 쓰임새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동시에, 자신이 평소 사용하던 표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욕은 인간의 가장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무엇을 낮게 평가하는지 보여주는 언어다. 그래서 욕을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드러낸다.


      우리는 욕을 나쁜 말이라고 배우지만, 무엇이 욕이 되는지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성과 신체, 출신과 나이, 사회적 지위까지. 욕이 되어버린 말들을 따라가다 보면 한 사회가 무엇을 금기시하고, 누구를 낮춰 보았는지가 드러난다.


      『NEW 욕』을 읽고 나서도 우리는 여전히 욕을 사용할 것이다. 친구의 농담에 웃으며 거친 말을 내뱉을 수도 있고, 화가 나는 순간 무심코 욕을 중얼거릴 수도 있다. 다만 그 말이 어디에서 왔고, 누구를 향해 어떤 의미로 사용되어 왔는지 알게 되었다면 이전과 똑같이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욕의 기원이 그 말의 과거를 설명한다면, 욕을 사용하는 방식은 그 말의 현재를 보여준다. 오늘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은 훗날 어떤 시대의 얼굴로 남을까.

       

       

       

      PRESS 오수민.jpg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오수민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PRESS] 둥글고 말랑말랑한 상실 - 지상의 밤
      2. 02 [PRESS] 고양이를 따라 들어간 하루키의 세계 [전시]
      3. 03 [PRESS] 가장 뜨거운 계절은 왜 가장 오래 남는가 - 여름을 닮은 우리 [전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