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국 각지에서 소나무가 말라가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소나무재선충병은 과거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보고되었으나, 지금은 경기와 강원 등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해가 확산되는 배경 중 하나로 따뜻해진 한반도의 기후를 짚는다. 재선충을 옮기는 하늘소와 같은 매개충의 활동 반경이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후 변화도 문제지만, 소나무재선충이 한반도에 살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북미에서 살아가던 이 재선충은 20세기 초 감염된 목재를 통해 일본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동아시아에 터전을 잡았다. 결국, 목재를 운반하는 인류의 산업 활동이 불러온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인류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생태계에 영향을 초래하는 사건들이 속속 발견되는 지금, 몇몇 인류학자들은 ‘패치 인류세’라는 개념을 통해 동시대 생태계를 읽어내고자 한다.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뒤바꿀 만큼 커진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지구를 바꾸었다는 거대한 설명만으로는 눈앞의 소나무가 말라가는 과정을 충분히 알기 어렵다. 목재가 이동한 경로와 곤충의 생태, 기온의 변화가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맞물렸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패치 인류세』는 바로 이와 같은 구체적인 관계에 주목한다.
애나 로웬하웁트 칭을 비롯한 네 저자는 인간이 만든 인프라와 다른 존재들의 활동이 얽히며 형성된 장소들을 들여다본다. 댐과 운하, 단일 작물을 기르는 경작지 등은 저마다 다른 생태적 조건을 만들어낸다. 이곳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조각보처럼 불균등한 인류세의 모습을 드러낸다. 책 제목의 ‘패치’는 이처럼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규모로 일어나는 현상을 살피기 위한 개념이다. 더욱이 각각의 패치는 선박과 물길 등을 통해 연결되기에, 한 지역에서 시작된 변화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 중 눈길을 끄는 것은 하노이의 쥐들이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던 시기, 식민 지배자들은 자신들이 거주할 지역에 현대식 하수도를 건설했다. 유럽식 목욕탕과 화장실을 갖춘 도시는 그들이 자랑하는 문명의 수준을 보여줄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하수도에서 쥐들이 번식하기 시작했다. 쥐는 배관을 따라 이동하며 프랑스인들의 생활 공간까지 들어왔다. 위생적인 도시를 만들려던 계획은 정작 그 도시를 쥐가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쥐의 입장에서 보면 하수도는 이동과 번식에 유리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인간이 설정한 시설의 목적과 다른 생명체가 그 시설을 이용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다. 이처럼 쥐의 움직임까지 따라가 보면, 도시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에도 인간의 계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식민 지배자들이 지상에 그려놓은 질서는 지하에서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었다.
부레옥잠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한때 세계 각지의 식물원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 식물은 빠른 번식력 때문에 관리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었다. 식물원 밖으로 내던져진 부레옥잠은 강과 운하, 저수지 등으로 퍼져나갔다.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기 위해 들여온 식물이 어느새 물길을 가로막는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관상식물과 방제 대상이라는 서로 다른 이름 사이에는, 그것을 옮겨 심고 버린 인간의 선택이 놓여 있다.
그런데 저자들은 부레옥잠을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수면을 뒤덮은 군집은 물의 흐름과 산소량을 바꾸고, 물속에 그늘을 만든다. 이러한 환경은 일부 생물에게 불리하지만 모기 유충과 같은 존재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한다. 부레옥잠 역시 다른 생물들이 살아가는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인프라라는 말을 통해 도로와 건물만을 떠올렸던 시선이, 식물이 구축하는 환경으로까지 넓어진다. 하나의 생명체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그 환경을 바꾸고 있었다.
책은 인간이 만든 조건에서 촉발되어 인간의 의도와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효과를 ‘이탈’이라는 개념으로 살핀다. 이때 이탈은 도시 바깥의 야생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쥐와 부레옥잠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시설과 이동 경로를 통해 번성했다. 나아가 이탈 효과를 일으키는 존재에는 생명체뿐 아니라 이산화탄소와 방사성 물질도 포함된다. 인간이 특정한 용도와 장소에 묶어두었다고 생각한 것들은 물과 바람, 생물의 몸을 거치며 예상하지 못한 곳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해서 생태계의 피해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부레옥잠이 어떤 생물에게 서식 환경을 제공한다는 사실과, 다른 생물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사실은 함께 살펴야 한다. 우리가 유용하거나 해롭다고 분류해온 존재들은 어떤 조건에서 그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그 이름을 붙이기 전후의 관계를 길게 따라간다는 데 있다. 인간에게 불편함을 주는 생물의 모습에서 인간이 환경을 바꾸어온 방식까지 엿보게 한다.
더욱이 그 관계에는 인간 사회의 역사도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유럽의 식민 지배는 사람들의 영토를 빼앗는 동시에 동식물과 미생물을 이동시켰고, 원래 그곳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생존 조건까지 바꾸었다. 하노이의 하수도 역시 누가 그 시설을 누릴 수 있었는지 살펴보면 식민지의 권력관계를 드러낸다. 인프라를 계획하고 이익을 얻은 사람들과, 삶의 터전을 잃고 변화를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을 모두 ‘인류’라는 이름으로 묶어 같은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생태계의 변화를 읽는 일은 자연을 바라보는 일이면서, 그 변화를 가능케 한 사회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자들은 현장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일을 강조한다. 지구 평균기온과 탄소 배출량은 위기의 규모를 알려주지만, 그 수치만으로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같은 시설이 들어서더라도 지역의 역사와 생물의 특성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말라가는 소나무를 이해하기 위해 나무 안의 선충과 숲을 오가는 곤충, 숲 바깥의 목재 운송을 함께 살펴야 하듯이, 하나의 장소를 이해하려면 그곳에 얽힌 여러 존재의 움직임을 따라가야 한다.
이러한 탐구에 예술과 인류학이 함께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책의 바탕이 된 ‘페럴 아틀라스’ 프로젝트는 현장의 생태적 변화를 글과 지도, 이미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한다. 저자들은 원주민들의 경험과 예술적 표현에도 귀를 기울인다. 과학적인 관찰과 그곳에서 오래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살피면서, 우리가 익숙한 분류만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서로 다른 지식과 감각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인간 너머의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과도 맞닿아 있다.
다만 ‘패치’와 ‘이탈’, ‘인식론’ 같은 낯선 개념들이 이어지는 만큼, 용어를 이해하는 데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구체적인 생명체의 모습이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하노이의 쥐나 부레옥잠처럼 눈앞에 그려볼 수 있는 사례들은 중요하다. 추상적인 개념을 다시 삶의 장면으로 돌려놓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위기를 다루는 이 책이 관찰과 묘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는 점이 마음에 남는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행위에도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담겨 있다.
다시 소나무로 돌아오면, 말라가는 숲의 풍경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작은 재선충의 몸에는 대륙을 건너온 목재의 이동과 달라진 기후, 매개충의 생태가 겹쳐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숲은 이와 같은 관계들이 오랜 시간 쌓여 만들어진 장소인 셈이다. 재선충을 막는 일과 함께 그것이 이곳에 이르게 된 경로를 살피는 일도 필요하다. 눈앞의 피해를 낳은 관계를 이해할수록,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치 인류세』는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를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펴보길 권한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만든 환경에서도 수많은 생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우리의 생활이 그들과 어떤 경로로 이어지는지 헤아리는 것. 다른 생명체와 공존할 방법을 찾는 일도, 말라가는 소나무 한 그루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경남도민신문, "소나무재선충병 확산 심각…“시급한 대책 마련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