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왔다. 더 높은 건물을 세우고, 더 긴 다리와 터널을 만들고, 자연을 개발해 더 편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낸 변화가 언제나 인간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생명체와 물질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고 그 영향은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에게 돌아왔다.
도서 <패치 인류세>는 인간이 구축한 산업적 인프라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생태계의 변화를 살펴보며,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책을 읽으며 떠올린 것은 결국 인간의 행동과 욕심,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외면해 온 태도였다.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편리하게 살아가려는 욕망은 환경을 변화시켰고, 그 변화는 인간이 예상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에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인간이 다른 생물종과 환경을 아끼며 공존해야 할 역할을 저버리고,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우선시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한 환경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무엇이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으며 누가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지도 함께 질문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던 욕심
책에서는 제국주의적·산업적 인프라가 생태계의 파열을 부추기는 모습을 다룬다. 인간은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먼저 전쟁과 폭력을 일으키고, 다른 이들의 터전을 약탈하거나 식민지화해 왔다. 더 많은 자원과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타인의 삶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인간 사회의 역사 속에서 반복됐다. 환경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듯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과 거대한 다리, 터널 등을 건설한다. 기술과 자본을 동원해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여파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거나 외면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발전의 결과로 보이는 것이 다른 생명체에게는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모든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에 있지 않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살피고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의 행동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여파는 어디까지 미쳤는지, 지금이라도 되돌릴 방법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릴 수 없다면 최악의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막을 방법이라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만든 환경을 언제나 통제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해 왔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편리함과 이익을 우선시하고, 그 뒤에 발생할 결과는 미래의 문제로 미뤄 둔다. 환경이 파괴되고 생태계에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나타나는 동안에도 지금의 삶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변화는 인간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이 구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와 물질은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움직인다. 그 결과는 인간이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다를 수 있으며, 때로는 인간의 생활을 위협하는 형태로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가 만들어 낸 세계가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
P.12‘인간이 자초한 환경 재앙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에게는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에 어떻게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상세한 고찰이 필수적이라는 확신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계절을 믿을 수 없는 시대
환경의 변화는 더 이상 책 속의 개념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2026년을 살아가는 나는 앞으로 다가올 여름이 두렵다. 10월인데도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더위가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절기는 마법과도 같았다. 처서가 지나면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찾아온다는 의미에서 ‘처서 매직’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제는 냉방 기기를 정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계절의 흐름만으로 날씨를 예상하기가 어려워졌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고 지반이 약해지면서 산사태가 주거지를 덮치는 상황을 누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을까. 위험을 미리 알았더라도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생각으로 넘겼을지 모른다. 눈앞에 닥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위험을 보여 주는 징후를 외면한다면 결국 그 결과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드러난다.
기후 변화는 일상의 모습까지 바꾸어 놓는다. 여름철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극심한 더위는 잠깐의 불편함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이 된다. 모기는 이제 가을에도 쉽게 마주치는 존재가 되었다. 모기도 변화한 환경과 기후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반면 인간은 달라진 환경에 맞춰 생활을 끊임없이 조정해야 한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마음껏 쐬고 싶어 창문을 열었다가 모기가 들어올까 봐 황급히 닫는다. 집 안에는 에어컨과 선풍기, 휴대용 손 선풍기가 있는가 하면 온열 전기매트와 수면 양말, 경량 패딩도 함께 존재한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살아야 하는지 정신이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맞춰 단단히 준비하는 것만이 답처럼 느껴진다.
10도를 훌쩍 웃도는 일교차 속에서 몸도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알레르기와 두드러기는 일상이 되었고 약 없이는 생활에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환경 위기라는 거대한 문제는 이렇게 창문을 여닫는 일부터 옷차림을 고민하는 일, 몸의 상태를 살피는 일까지 우리의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나는 앞으로 여름이 얼마나 더 뜨거워질지 걱정스럽다. 지금보다 더 극심한 더위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환경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운 지금, 기후 위기를 먼 미래의 문제로 미뤄 두기에는 이미 달라진 것이 너무 많다.
환경 위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더 살기 좋은 시대를 만들고자 했던 마음이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권을 위협하고 있다. 태어나서 권력을 잡을 일 없이 자신이 태어난 국가에서 이동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산업의 방향을 결정할 권한은 없지만 그 결과로 달라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정작 인프라를 구축할 권리와 지휘권을 가진 이들은 극심한 여름 더위나 겨울 한파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환경에 있을 수 있다. 반면 그 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적었던 시민들은 폭염과 한파,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재해의 영향을 직접 감당한다. 환경을 변화시킬 힘을 가진 주체와 그 변화의 피해를 감당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인류세를 만들어 온 과정에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 결과를 모두가 똑같이 감당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더 많은 자본과 기술을 동원하고 거대한 산업 활동을 결정할 수 있는 국가와 주체일수록 자신들의 선택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익과 편의만을 앞세운다면 그 피해는 결국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인류세를 만들어 낸 자들이 정작 인류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 환경을 변화시킬 힘은 일부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그 결과는 훨씬 많은 사람의 삶을 뒤흔든다. 환경 위기는 자연의 문제인 동시에 책임과 불평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카페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받고, 디저트도 다회용기에 담아 온다. 분리수거를 철저히 지키고 재활용하는 습관을 들였으며, 적정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냉난방 시설을 지나치게 시원하거나 뜨겁게 작동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때로는 회의감이 든다. 내가 이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개인이 실천하는 작은 행동들이 국가의 산업화 과정이나 전쟁처럼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는 활동 앞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개인이 쌓아 온 노력이 더 큰 규모의 환경 파괴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지구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모든 행동이 의미 없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한 사람의 행동은 작지만, 그 행동이 모이면 다수가 되고 공동체가 된다. 그래서 나는 회의감이 들더라도 일회용품을 줄이고 분리수거를 실천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개인의 실천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압도적인 자본과 기술력을 동원하며 세계의 산업과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들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개인에게 환경 보호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거대한 산업 활동과 개발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인식하고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개인의 노력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믿음을 지키면서도,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에는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짓지 않음으로써의 허물기
<패치 인류세>를 읽으며 인상 깊었던 구절은 ‘짓지 않음으로써의 허물기’였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만들었고, 소유했으며, 파괴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데 익숙해져 있다. 더 높은 건물과 더 거대한 시설, 더 편리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을 더 만들어 낼 것인지 고민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가진 것에서 변화를 찾고,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 온 욕심을 돌아보는 일도 필요하다.
때로는 아무것도 더 짓지 않는 것이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더 많이 소유하지 않고, 더 빠르게 개발하지 않고, 지금의 편의를 위해 미래의 환경을 희생하지 않는 것. 인간이 만든 세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충분히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다음을 결정할 수 있다. 모든 문제를 새로운 기술과 시설로 해결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애초에 무엇을 더 만들 필요가 있는지부터 질문해야 한다.
P.355‘이곳은 꾸밈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품격, 매력, 삶만이 공존할 뿐이다. 광장은 이미 아름답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디자인적 결정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지구가 인간의 소유물인 것처럼 행동했고, 다른 생명체가 살아가는 환경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바꿀 수 있다고 여겼다. 지금 내가 편하게 먹고 자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해서 눈과 귀를 막아서는 안 된다. 지금의 윤택한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어떤 존재들이 희생되었는지 직시해야 한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환경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고, 그 결과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현실은 우리가 자연과 맺어 온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다.
지구는 단 하나뿐인 우리의 보금자리다. 인간이 만든 변화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른다면 인간 역시 그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대가 끝났듯이 인간의 시대 또한 영원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미래가 언제까지나 보장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만들었고, 그만큼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무엇을 더 만들어야 하는지 묻기 전에 무엇을 멈춰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 이미 만들어진 세계가 남긴 흔적을 직시하는 것.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삶까지 함께 고려하는 것.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더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 온 방식을 멈추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