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조종하는 좀비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직접 영화관에 찾아가 좀비 영화를 관람하였다. ‘군체’라는 두 글자 제목을 보면서 다른 영화와 색다른 요소가 있지 않을까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영화 <군체>는 연상호 감독이 제작한 2026년도 액션 영화이다. 26년도 7월 기준 누적 관객수 593만명을 기록 중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고수 등이 나온다.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시켜 주고자 줄거리를 요약한다. 서울 도심의 초고층 빌딩에서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가 발생하여 건물이 봉쇄된다. 감염자가 순식간에 불어나는 상황에서 생존자들의 사투가 벌어진다.
좀비의 숙주이자 컨트롤 타워인 구교환은 자기 생각만으로 모든 좀비를 조종한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도 했고 백신도 투여받은 그는 좀비가 인간을 잡아먹는 생난리 속에서도 유유자적 건물을 걸어 다닌다. 어렸을 적 자신의 아버지가 소통의 부재와 오해로 인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여기서 영감받은 그는 인간을 하나의 텔레파시로 조종하여 소통의 오류가 없는 인류를 만들겠다는 오만에 빠진다. 마치 신세계의 신이 된 마냥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는 이유로 뇌사 상태나 다름없는 좀비로 만든다. 작품에서 좀비 군체는 개미의 생활 모습과 유사하다. 낯선 길을 개척하는 행동대장 개미 한 마리가 꽤 살기 좋은 장소를 발견한다. 그러면 개미는 페로몬을 현장에 묻힌 후 자신의 집단으로 돌아간다. 거대한 무리를 이끌고 영역을 넓혀 나간다. 개미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호르몬을 내뿜는 것처럼 좀비는 즉각 다른 좀비들과 생각을 공유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끌리는 생명체에게 더 빠르고 많이 접근할 수 있을까?’ 좀비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다. 뇌사 상태이지만 한 가지 목적은 있다. 컴퓨터에서 새로운 시스템 체계를 다운로드 받으면 부팅 시간이 짧으면 1분, 길면 몇십 분까지 걸린다. 이때 다른 작업을 같이하면 컴퓨터는 과부하 되고 뜨거워져서 팬 돌아가는 소리가 커진다. 좀비는 업데이트 시간 동안 하늘에 있는 신에게 기도하듯 고개를 쳐들고 몸이 굳으며 인간에게 반응하지 않는다.
군체의 사전적 의미는 ‘같은 종류의 개체들이 모여 이룬 집단’이다. 냄새나 소리가 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좀비, 천천히 몰려오는 외국산 좀비와는 다르다. 군체의 좀비는 집단 사고를 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성장한다. 과학자의 기지를 발휘해 잘못된 정보를 흘려 믿게 만들면서 집단에 혼란의 씨앗을 던져준 전지현. 이 작전으로 좀비를 속이는 데 성공했지만 오랜 시간을 끌지는 못했다. 눈앞에 놓인 유인물에 이끌려 곧장 현혹된 좀비 군체를 보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무엇에게 조종당하고 있을까

유튜브 알고리즘과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등 온라인 매체에서 시작된 각종 유행 파도 속에서 우리는 허우적대고 있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하나의 미끼를 던진다. 반응 없이 낚시 추가 가만히 있으면 망한 기획이다. 그러나 한 번 입소문을 타고 퍼지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대어가 올라온다. SNS 광고에 흥미를 보인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어디로 가야 그 옷을 빨리 살 수 있는지, 언제 가야 그 매장에 좋은 좌석을 선점할 수 있는지 경쟁한다. 당장 요즘 유행하는 게 무엇인지 말하라고 하면 10개 이상은 뱉을 자신이 있다. 문구점의 흥행을 일으킨 말랭이, 카페마다 새로운 메뉴가 생긴 두바이 쫀득 쿠키 등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유행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유행에게 덮이며 거대한 산을 이뤘다. ‘우리의 지갑을 어떻게 하면 열리게 할까?’ 사람들의 뇌 속에 자극 장치를 어떻게 하면 건드리고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마치 신종 좀비 바이러스 같다. 한 번 퍼지면 걷잡을 수 없는 감염 사태처럼 몇 달 만에 전 국민을 들썩이게 만드는 유행을 가급적 기피하고 싶다.
나는 인간 군체가 아닌 생존자이고 싶다.
좀비들의 숙주는 구교환이었지만 지금 우리의 숙주는 누구인가?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는 것은 알고리즘과 온라인 플랫폼인 것일까.
오늘의 내 행적을 되새겨보자. 남들이 좋다고 하길래 따라 사본 음식과 옷, 음악이 과연 나의 올곧은 선택인지 의문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지만 여기에 내 개성과 의지를 담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세상은 거대한 자본 속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데 낯선 아이템을 만들어낸다. 레트로를 통해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기성세대들이 한창 때 입었던 옷들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파격적인 패션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떤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챌린지를 시작하고 밈이 만들어진다. 이는 곧 바이럴 마케팅으로 넘어가고 사람들의 손과 발을 움직이도록 조종한다. 내 취향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누군가 철저히 의도한 계략이었다. 좀비들이 정보를 업데이트하며 인간에게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과 새로운 유행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의 군중심리는 다를 바가 없다.
영화 <군체>의 좀비들은 숙주의 생각에 따라 조종되고 본능에만 충실하다. 뇌사 상태로 빈 껍데기만 돌아다니는 것이다. 좀비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현대인의 일상을 보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대다수의 회사인은 아침마다 침대에서 벗어나기 싫지만 먹고 살기 위해 출근한다. 커피 수혈로 잠시 에너지를 얻으며 점심시간까지 달린다. 직장 동료들과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주제로 소통하며 이야기보따리를 쏟아낸다. 머리를 식힐 겸 심심하면 릴스나 쇼츠를 시청한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삶에 지친 냄새가 가득 찬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쑤셔 넣고 집으로 향한다. 씻고 저녁을 먹으면 금방 하루가 저문다. 나의 여가 생활은 즐기지도 못한 채 하루는 갔고 진정 내가 원하고 바라는 건 무엇인지 생각할 기력이 없다. 나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이 어느덧 아침 해가 떴다. ‘아, 이 빌어먹을 해가 또 떴구나.’
우리는 똑같은 패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나쁘거나 이상한 게 아니다. 모두가 같은 환경에 놓여졌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힘들어도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고, 지치니까 짧고 자극적인 도파민에 더 절여진다. 생각을 그만하게 되고 정해진 쳇바퀴 안에서 죽을 때까지 달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문득 ‘오늘 하루에 내가 소리 내 웃어본 적이 있던가?’ 회의감에 빠진다.
좀비가 되지 않는 방법

유행은 가면 갈수록 부활 속도가 빠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하여 나타난다. 유행을 따라 하는 게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유행에 발을 들이대는 것이 오로지 나의 의지와 선택에 의한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 태어난 아이들과 AI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의 차이가 크다. 알고리즘이 발달하여 온라인에 접속만 해도 나의 취향과 기호에 맞는 온갖 상품들이 화면을 도배한다. 같은 나이대가 좋아하는 옷이라며 어느 온라인 플랫폼에 가더라도 졸졸 따라다닌다. 광고가 지겨울 때가 많다.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온전히 의지해서는 안 된다. 알고리즘은 그저 참고만 할 뿐이지 이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는 건 자기의 역할이다. 영화 군체의 좀비들은 누군가가 내린 명령에 따를 뿐이다. 다양한 인간상을 가진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단체 생활을 피할 수 없다. 사회화된 동물이자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지만 군중심리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매사 신중히 짚어봐야 한다.
오늘 내가 먹은 음식과 입고 있는 옷들은 모두 나의 올곧은 선택으로 나에게 돌아온 것인가? 내가 무언가를 고민할 때 나의 가치 판단에 영향을 주는 건 무엇일지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자. 인간 군체로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자기 의지와 사고를 잃지 않는 것이 유일한 생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