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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파리와 ‘Psycho Killer’ 사이 - 파리의 사생활 [영화]

도시의 풍경보다 오래 남는 릴리안의 얼굴

by 임지우 에디터
2026.07.1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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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시사회에서 <파리의 사생활>을 만나보기 전까지, 약간의 걱정이 앞섰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말만 들어도 이미 익숙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멜리에’의 몽마르트르, ‘비포 선셋‘의 센 강, '미드나잇 인 파리'가 그려낸 황금빛 야경까지. 영화 속 파리는 오랫동안 낭만의 도시로 소비되어 왔고, 어떤 작품에서는 내용보다 도시의 이미지가 먼저 기억되는 공간이 되곤 했다. 파리의 아름다움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를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파리의 사생활>은 그 익숙한 공식을 세련되게 비껴간다.


본 작품이 그린 파리는 이제껏 봐왔던 '파리 영화'들과 사뭇 달랐다. <파리의 사생활>에서 랜드마크의 등장은 찾아볼 수 없다. 도시는 배경이 아니라 릴리안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비추는 환경이며, 그의 내면을 가시화하는 하나의 장치로서 기능한다. 릴리안이 오가는 거리와 카페, 밤이 되면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이웃들의 파티와 층간 소음. 파리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리듬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클리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접근은 프랑스 영화 특유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할리우드 영화가 사건의 전개와 갈등해소를 중심으로 관객을 이끈다면, 프렌치 필름은 인물이 살아가는 시공간이 감정에 어떤 결을 만들어내는지 오래 주시하는 특징이 있다. <파리의 사생활> 역시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형을 취하지만, 끝내 영화가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릴리안의 내면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릴리안 역의 조디 포스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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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2회 수상에 빛나는 조디 포스터의 연기는 압도적이다. 그녀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파리의 사생활>이 첫 프랑스어 주연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퍼포먼스였다. 조디 포스터는 “프랑스어로 연기할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영어로 말할 때와 달리 목소리 톤이 더 높아지는데, 그게 나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준다”라고 언급했다. 그에게 이번 작업이 단순한 언어적 도전을 넘어, 배우로서 또 다른 영역에 진입한 특별한 작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릴리안은 정신과 의사라는 워크에식과 개인의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자 끊임없이 애쓰는 인물이다. 레베카 즐로토프스키 감독은 연출 작업에 있어 "이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과 갈등, 유머를 불러일으키는 대사로 이루어져 있다. 대사와 음악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가 핵심"이라고 전했다. <그랜드 센트럴>, <타인의 아이들> 등 80년대생 프랑스 감독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구축 중인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지적인 대사와 리드미컬한 연출을 보여줬다.


덕분에 관객은 릴리안이 무너지는 순간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시간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파리의 사생활>은 미스터리 영화라기보다 한 사람을 관찰하는 영화에 가깝게 느껴진다. 사건은 분명 존재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것은 범인의 정체보다 릴리안의 표정과 그가 걸었던 파리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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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반복해서 등장하는 전설적인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Psycho Killer'는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를 압축하는 하나의 모티프다. 'Psycho Killer'의 제목만 놓고 보면 범인을 암시하는 스릴러의 배경음악처럼 보이지만, 즐로토프스키 감독은 이 오래된 명곡을 훨씬 역설적인 방식으로 요리한다. 'Psycho Killer'는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에서 영감받아 탄생한 곡이다. 가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


 

I can't seem to face up to the facts

사실을 직시할 수가 없어

I'm tense and nervous and I can't relax

너무나 긴장되어, 진정할 수 없어

I can't sleep 'cause my bed's on fire

잘 수가 없어, 침대에 불이 나서

Don't touch me, I'm a real live wire

건드리지 마, 난 고압 전선이니까


Psycho killer

사이코 살인마

Qu'est-ce que c'est?

그게 뭐지?

Fa-fa-fa-fa, fa-fa-fa-fa-fa, fa

Better run, run, run, run

빨리, 빨리, 빨리, 빨리

Run, run, run away

빨리 도망치는 게 좋을걸

 


타인의 불안과 충동을 이해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릴리안은 사건에 가까워질수록 환자의 균열뿐 아니라 자신의 균열과도 마주하게 된다. 노래가 반복될수록 영화는 '사이코 킬러가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그리고 타인을 이해한다는 행위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다.


흥미로운 것은 'Psycho Killer'가 영어와 프랑스어를 오가는 노래라는 점이다. 미국 밴드가 만든 곡이지만 두 언어가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리듬은 미국 배우 조디 포스터가 프랑스어를 자신의 언어처럼 체화한 이 영화의 결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작품 속 릴리안 또한 ‘파리에 정착한 미국인’이라는 설정이 존재하는데, 이방인의 정서를 가진 캐릭터와 교차점이 보이는 듯하다. 삽입곡과 캐릭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계를 넘고, 영화 역시 그 경계 위에서 인물의 정체성과 불안을 구축한다. 캐스팅부터 대사와 연출, 사운드트랙까지. 레베카 즐로토프스키 감독의 정밀한 설계가 묻어나는 부분이다. 


<파리의 사생활>은 새로운 시대의 ’파리 영화‘를 앞서서 선보였다. 도시를 살아가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그를 통해 비로소 도시를 이해하게 만든다. <파리의 사생활>은 파리를 가장 파리답게 담아내는 동시에, 한 인간의 내면을 끝까지 응시하는 영화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미스터리의 해답이 아니다. 릴리안의 얼굴과 파리의 공기, 그리고 반복해서 울려 퍼지던 'Psycho Killer'가 서로를 들추며 만들어낸 하나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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