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볍게 보려고 시작했던 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약사의 혼잣말>이다. 이 작품은 일본 라이트노벨이 원작으로, 작가는 휴우가 나츠(日向夏), 삽화는 시노 토우코가 맡았다. 원작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까지 매체를 넘나들며 여러 상을 받았고, 대중적 인기뿐 아니라 평단과 업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보기 드문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 마오마오는 홍등가에서 아버지와 함께 약사로 일하던 소녀다.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황궁의 후궁에 하녀로 팔려간 그녀는, 조용히 2년만 버티다 궁을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아이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잇따라 죽어간다는 소문을 듣고, 약사로서의 호기심을 참지 못한 마오마오는 결국 병의 원인을 밝혀낸다.
이 일을 계기로 황궁의 실세인 진시의 눈에 띄어 황귀비의 독 담당 시녀가 되고, 이후 궁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해결하며 황실의 권력 다툼과 오래된 음모를 하나씩 밝혀 나간다.
악역조차 납득이 가는 심리 묘사
미스터리·스릴러답게 긴장감이 있고, 시청자가 단서를 짚어가며 유추할 수 있는 구간들이 잘 짜여 있다. 후궁 안에서 시기와 질투로 서로를 좀먹는 모습은 사실 현대사회에서도 흔히 보는 인간관계의 축소판이다.
이 작품이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등장인물 전원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탄탄한 심리적 개연성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촘촘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중국풍 배경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물들의 심리 묘사를 보면 수상하게 행동하거나 이상한 것에 집착하는 사람, 심지어 악역이라 해도 그렇게 행동할 만한 서사적 이유가 촘촘히 깔려 있다.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황제의 첫 아이를 가진 아둬비의 시녀장이 그 아이를 죽이게 된 사연이다.
그녀는 악의가 있었던 게 아니라, 아둬비 못지않게 그 아이를 사랑한 나머지 계속 꿀을 먹였는데, 영아에게 꿀이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실제로 아직 장내 환경이 덜 발달한 영유아는 꿀 속 보툴리누스균 포자로 인해 영아 보툴리누스증에 걸릴 위험이 있다)을 몰라서 벌어진 비극이었다. 그 후 그녀는 아이 없는 아둬비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리슈비를 죽이려 연회에 독을 탔다가 발각되어 결국 사형에 처한다.
결과만 보면 살인자지만, 그 동기를 따라가다 보면 너무 큰 존경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이런 사건들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데, 그중 러우란비를 둘러싼 이야기는 인물의 욕망과 좌절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그녀의 서사를 보고 나면, 이 작품이 단순히 착한사람 · 나쁜사람으로 인물을 가르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치밀한 떡밥 회수에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일상 에피소드처럼 보였던 사건이나 무심코 지나쳤던 대사, 작은 소품 하나가 수십 화가 지난 뒤 중요한 진실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 볼 때와 모든 사실을 알고 다시 볼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미스터리를 넘어, 여러 사건이 하나의 큰 이야기로 이어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뒤바뀐 로맨스, 그리고 출생의 비밀
이 애니에도 로맨스가 있다. 환관 진시와 마오마오의 관계다.
작화와 배경 특유의 아름다움도 볼거리 중 하나지만, 이 작품과 마오마오라는 캐릭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오히려 로맨스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데 있다. 마오마오는 연애에 별 관심이 없는, 상당히 이성적인 성향이 강한 여성이고, 남성인 진시 앞에서 더 무심하고담담하게 구는 쪽이다. 반대로 진시는 마오마오에 비하면 오히려 더 감정적이고 섬세한 면모를 보인다. 이런 역전된 캐릭터 구도가 흔한 궁중 로맨스물과는 다른 재미를 만든다.
이 역전된 관계 위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진시와 마오마오가 각자 품고 있는 출생의 비밀이다. 진시의 출생은 황실의 권력과 깊게 얽혀 있고, 마오마오의 출생 역시 예상치 못한 진실을 드러내며 큰 충격을 안긴다. 특히 마오마오의 이야기는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비밀이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이루며, 작품의 치밀한 스토리 구성을 보여준다. 또한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원작과 얽힌 뒷이야기
재미있는 비하인드도 있다. 작가 휴우가 나츠는 초기에는 이 작품을 지금처럼 장편 시리즈가 아니라 비교적 짧은 미스터리 중심의 이야기로 구상했다고 밝혔다. 진시 역시 처음부터 핵심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에 변화를 주기 위한 미형의 조연 정도로 설정되었으며, 초반 사건 이후 퇴장(사망)시키는 전개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보다 진시의 인기가 폭발하면서 작품의 방향과 그의 비중이 크게 바뀌었고, 지금과 같은 핵심 인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원작은 라이트노벨답게 일반 소설보다 문장이 쉽고 읽기 편하며, 애니메이션풍 삽화가 중간중간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소설이 원작인 애니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영상화 과정에서는 아무래도 상징적인 장면과 핵심 서사 위주로 정제되기 마련이고, 막상 원작을 읽어보면 "이 디테일이 좀 더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싶은 부분들이 꼭 있다. 아직 원작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애니메이션만으로도 이 정도로 탄탄한 스토리 구조와 섬세한 심리 묘사를 보여준다면 원작 소설의 디테일은 더욱 뛰어날 것 같다.
현재 애니메이션은 원작 소설 4권 정도의 내용을 다루고 있어 앞으로 풀어야 할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보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볼거리가 많다는 점이 반갑다. 다만 지금까지 뿌려 놓은 떡밥들만큼은 끝까지 치밀하게 회수해 주길 바란다. 복선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거나 인기에 기대어 이야기를 무리하게 늘리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을 그동안 적지 않게 봤기 때문이다.
<약사의 혼잣말>만큼은 지금까지 보여준 균형과 완성도를 끝까지 유지하며 만족스러운 결말을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