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간질간질했다. 손이 근질근질했다. 어제의 이야기를 얼른 털어놓고 싶었다. 우리가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를 했었는지, 내가 금세 잊어버리기 전에 이곳에 담아 당신께 말하고 싶었다.
왼쪽부터 첼리스트 정우찬, 바이올리니스트 정주은, 바이올리니스트 유다윤
클래식 공연이 끝나면, 무대 하나가 끝나면, 관객들의 박수 사이를 뚫고 잠시 대기실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연주자들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담아 인스타그램 스토리나 게시물로 올리는, 그들도 즐겁고 우리도 즐거운 재미난 이벤트가 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올릴 적에는 꼭 그날 인상 깊었던 곡과 연관시켜 추억을 배로 만들고 싶다는 재미난 욕심을 가지고 있어서,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그날의 레퍼토리와 잘 이별하지 못했다. 곡 제목이 뭐였는지, 특히나 영문으로 어떻게 쓰이는지 꼭 검색해야 했다!
8일은 특히나 그랬다. 나는 이날 나를 애먹게 한 라벨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속 특정 ‘바이올린 파트’를 꼭 찾아내기 위해 1악장부터 4악장까지 모두 다시 들어봐야 하는 복습까지 해야만 했다.
아마도 3악장이었던 것 같아서 재생해봤는데, 이런, 전혀 아니었다. 2악장 아니면 4악장이 아닐까 싶어 열심히 구간을 찾아다니며 들어보니, 내가 찾던 정답은 4악장에 있었다. 그것도 절묘하게 숨어 있었다.
얼마나 예쁜 사진을 찍었길래 그리도 오래 찾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이날은 평소보다 사진을 잘 찍지 못했다. 중앙 맨 앞자리였고, 연주자들과도 가까워 카메라를 들었다가 자꾸 내려놓게 되었다. 다행히 마지막 와인 파티에서야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몇 장 건질 수 있었다.
밤 9시가 훨씬 넘은 시간, 공연이 다 끝나고 와인 파티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유다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그 ‘소리’에 대해 물어보려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아마 3악장—3악장은 무슨, 4악장이었다—인 것 같은데, ∞자 모양인데요. ∞의 형태 중 뒷부분, 그러니까 오른쪽 원은 소리가 작고요. 앞부분, 그러니까 왼쪽 원은 소리가 커요. 활을 약간 뒤로 보내실 때 뒷부분 원 소리가 나고, 활이 앞으로 내려올 때는 앞부분 원 소리가 크게 나요.
그런데 그 구간이 어딘지 모르겠는데, 몇 악장인지도 모르겠는데, 저번 금호아트홀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되게 ‘kick’으로 들려요. 그래서 이게 본인의 해석인 건지, 아니면 악보에 그렇게 하라고 나와 있는 건지 궁금해요.”
라고 말했다. 나도 이걸 설명하면서—악장도 틀려가면서—말하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그 지점을 꼭 물어보고 싶었다. 연주자께서는 그 부분이 대략 어디인지 알 것 같다고 말하면서, 본인의 설명을 이어가시기 전 “이런 얘기는 재미없을 텐데 괜찮으실까요…” 하고 운을 띄워주셨다. 재미없을 리가요.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그렇게 ‘대화창’에 접속해 평소 궁금했던 점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특히나 그가 쓰는 바이올린과 그의 조합 사이에서, 나는 그 강력한 ‘힘’이 내재된 번뜩이는 한 방의 음이 어디서 강하게 기인해서 나타난 것인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 바이올린은 작은 소리를 가지고 있고, 연주자 본인이 굉장히 신경을 써서 크게 들릴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와, 전혀 몰랐다.
관객 입장에서는 사실 악기가 힘을 주고 있는 건지, 연주자가 어디를 신경 쓰고 있는 건지 알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음을 던지고, 이날은 울림이 어떻게 다르게 들렸는지 대화를 나눠볼 수 있어서, 나는 나의 오래전 버킷리스트를 가만히 떠올렸다. 예전에 이런 문장을 적어둔 적이 있다.
언젠가는 연주자와 함께 악보를 펼쳐놓고 카페에서 길게 얘기해 보고 싶다. 이 부분에서는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어떻게 연습했는지, 무엇을 중점으로 두었는지, 어떤 부분을 신경 썼는지—진득하게 묻고 싶다.
비록 악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궁금한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추적했다. 틀렸을지언정 다른 방향으로 틀어서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랬을까? 사실 내가 왜 이런 궁금증을 갑작스레 꺼내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이날 하콘에서 특별한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겠다.
그날, 7월 8일. 그날의 연주자들은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마이크를 들고 인터뷰라도 한 거냐고? 무슨 소리. 클래식 연주자들은 노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니, 첫 곡부터 마지막 피아노 트리오까지 관객에게 ‘노크’하지 않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한 팀이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본인들이 선보일 그림 한 점을 꼭 손에 쥐고 계시는데, 어쩜 이렇게 다들 말을 조리 있게 잘하실까 싶었다.
그러니 모든 공연이 끝나고 나는, 수업 시간에 질문거리 있냐는 물음에 입만 꾹 다물고 살던 내가, 첼로 연주자를 만나면 “어떻게 그렇게 바닥을 깊게 그을 수 있느냐. 이게 악기 덕분이냐, 본인의 스킬인 거냐”, “왜 색깔이 달라졌나. 민트색의 시원한 분홍빛 바람이 찾아들었다” 식의 물음은 기본이요, 이전 공연에서 같은 곡을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그때와 지금이 왜 다른지에 대한 질문까지 던질 수 있었다.
어찌 그리할 수 있었을까? 연주자들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연주를 했기 때문이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몰랐던 결이 나고. 공간이 달라지니 평소에 내가 알던 울림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더라. 연주자들이 먼저!
하유나(Violin), 황건영(Piano)
드뷔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단조, L.140
드뷔시는 전혀 급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들쭉날쭉한 길을 걷는 중인데, 매우 조율적이다. 꽤 다루기 어려운 밧줄 하나를 능숙히 다뤄내야 하는 타이밍에, 딱 필요한 공간에 적당한 세기로 음을 가져다 놓아줬다.
그냥 왠지 내가 기대한 소리가 저기에 있길 바랐는데, 연주자가 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가져다 놓는다. 그런데 또 부담스럽지 말라고 아주 살짝 고개를 뒤로 한 상태다. 발레리나가 고개를 살짝 뒤로 보낼 때의 그 자세. 피겨스케이팅 선수 또한 옆을 바라보며 그리하는 그 동작. 딱 그 정도로 울림이 이쪽을 바라보지 않고, 비스듬히 기다란 비단 초대장을 내민다. 어찌나 반질반질하던지….
이것만 보면 굉장히 음향 면에서만 지켜볼 포인트가 많았나 싶겠지만, 이날은 연주자의 표정이나 액션도 몰입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하유나 바이올리니스트를 에스메 콰르텟의 바이올린으로 처음 보았을 때는, 많은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에스메’라는 이름에 맞는, 그러니까 팀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어찌 보면 정적인 모습으로 인자하게 이쪽을 향해 웃어주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전혀 몰라봤다. 그는 드뷔시 안에서만큼은 굉장히 달변가였다. 표정 연기의 달인이었다.
내가 지휘자의 검지 손끝을 따라 오케스트라의 합이 따라가거나 동시 진행되는 광경은 목격했지만, 이렇게 실내악의 장면에서 바이올린과 연주자가 동기화되는 장면은 처음 봤다. 눈동자 안에 음이 있고, 선율이 연주자의 표정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대사 없는 오페라를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시시각각 중간을 치고 빠지는 피아노도 말할 것도 없겠다. 건반이 바이올린과 함께 걷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이올린이 끊임없이 빗금 치는 사이를 둥그런 원형으로 재빠르게 배치해 놓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는 노래여도, 중심은 이 땅에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 역할을 저 피아노가 해준다.
마지막 악장의 거의 끝자락이 오면 드뷔시가 째깍거리는 시계 하나를 배치해 놓았는데, 여기서 이날의 바이올린이 거의 고개를 바짝 들고 ‘일어나라’고 신호를 줄 때, 피아니스트가 바이올린과 짧게 짧게 음표를 가지고 놀 적에, 오른손을 무릎과 건반 위, 허공에 띄워놓고 손가락 지문을 한데 모아 왼손이 노래하는 때를 함께 맞추는 장면이 있다. 저도 모르게 쥐게 되는 그 손 모양이 이상하게 기억에 아른거린다. 그 초침 소리만 같은 것을 듣는데 기분이 좋았다. 처음 보는 시계를 만났기 때문이다.
유다윤(Violin), 정우찬(Cello)
라벨,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M.73
이 조합으로 이 곡을 금호아트홀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과거의 나는 무슨 감상을 내놓았더라? 금호아트홀에서 금호문화재단의 두 개의 고악기를 들을 수 있어 기뻤던 기억도 나고, 현에서 피치카토 소리라도 나면 흠칫흠칫 같이 진동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유달리 합—악기와 공간, 악기와 연주자, 그날에만 볼 수 있는 연주—이 잘 맞기도 했다. 두 사람이 음을 서로를 향해 튕겨내면 맞붙기도 무섭게 음악이 돼버렸다. 청중 쪽으로 닿아오기도 전에 순간접착제로 하나가 되어, 입체 스피커 출력 형식으로 라벨을 던져버리는데, 진짜 와 뭘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다른 공연장에서라면? 같은 연주자들의 라벨은 어떻게 들릴까?
1악장에서 가장 또렷했던 건 금호아트홀에서 들었던 라벨과 하콘에서 만난 라벨의 차이였다. 처음부터 시선을 강탈했냐고 묻는다면, 그것보다 더 원초적인 쪽에서 나의 흥미를 가져갔다. 그러니까 8일의 나는 ‘A’를 만난 것이다! 음악 용어가 아니라 그냥 알파벳 중 가장 맨 앞에 있는 영어. 그러니까 악보에서 음표들이 지시하고 있는 ‘ABCD’ 나열이 되기 전에, 음악이 되기 전에 내 앞에 떨어졌다!
그러니까 여기가 녹음 스튜디오라면 내가 사운드 엔지니어가 아니라 마이크가 되어, 연주자보다는 늦게, 녹음실 밖에 있는 사람보다는 빨리 저 결을 듣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잔향이 길게 따라붙지 않은 live한 음표가 내 앞에서 살아나겠구나를 1악장 극초입부부터 체감하게 되니, 내가 이 곡을 어떻게 아는지도 모르게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처음 만나 낯설다는, 이번에 알아보자는 생각보다도 두 사람이 어떤 길을 나아갈지에 대한 호기심만 가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금호 악기에서 나는 음색은 희한하게 내게는 캐릭터적으로 다가와서, 늘상 품고 있던 궁금증을 음악 안에서 길게 증폭시켜볼 수 있었다.
굉장히 살아 있는 상태로 만나는 음표들은 내가 머릿속으로 기억하고 있던 두 사람의 울림보다 훨씬 얇게 들렸다. 내가 기억하는 유다윤 바이올리니스트의 선은 대체로 볼드체 두께, 이를테면 유성매직 정도의 소리를 잘 다뤄내는 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강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네임펜도 엿보였다. 첼로도 그랬다. 눈을 감고 들었다면 이 소리가 바이올린인 줄 알고 큰 착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어깨 위 나무 소리가 났다.
하콘에서 두 악기는 서로에게 막 엉겨 붙지 않았다. 오히려 첼로와 바이올린 사이에 내 손 하나만큼의 여유 공간이 생기니 계단을 오른다. 서로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간다. 2악장을 향해 오른쪽 하늘 방향으로 직진한다. 둘이 달라붙지 않으니 관계성도 달라 보였다.
일전에는 라벨을 노래하는 듀오처럼 보여서 꽤 잘 맞는다는, 굳이 따지자면 친밀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성마른 공기 속에 있는 이날은 나름 사이가 좋지만 그렇다고 막 서로에게 다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이 제 할 일을 해내는, 일반적인 형제 같은 관계성이 음 안에 들려와서 뭔가 재밌었다. 1악장의 마지막 근방에서는 그렇게 아름답게 합을 맞춰나가면서… 선을 살짝 뒤로 보내고 바닥면에 부드럽게 착륙시키면서, 서로 안 쳐다본다.
2악장은 가까운 자리에서 몸으로 맞은 피치카토의 시간이었다. 아잇, 자존심 상했다. 첫 시작에 첼로가 되게 크게 피치카토를 하는데, 그걸 나는 분명히 잘 알고 있었는데, 이날의 첼로가 앞에서 거의 장풍을 쏘니까 나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며 놀라고 말았다. 아니, 두 악기가 어느 정도로 공간을 울려냈냐면 마룻바닥에 닿아 있는 내 왼쪽 발의 복숭아뼈가 다 울릴 정도였다.
이 악장은 귀로 닿아오는 1악장의 직선적인 쌓아 올림보다는 꽤 복잡하게 사방으로 다양한 표현 형태로 들이닥친다. 어느 정도로 다채롭냐고? 그러니까 우리가 하얀 공간에 공 하나를 두고, 그것이 음악이 될 때까지 작은 공을 던져야 한다. 연주자들이 던지는 공에는 긋는 음, 두드리는 음, 대각선 방향으로 바늘을 찌르는 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음, 섬세한 깃털이 달린 리본을 왼쪽 하단이나 상단면으로 들여다 놓는 음이 있다. 그걸 다 주워 담느라 귀가 터질 뻔했다.
3악장은 낮은 노래가 나를 천천히 가라앉히는 시간이었다. 아까 내가 전하기를, 이곳은 꽤 긴 그림자를 보여주기보다 애초에 태어난 형태를 가릴 것 하나 없이 그대로 목격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일러두었다. 이런 공간일수록 악기가 낮은 노래를 부를 때, 그러니까 바닥면에 가라앉아 나지막한 선을 그려줄 때를 가장 깊게 감상할 수 있다.
첼로가 먼저 노래할 적에는 평평하게 땅을 골라주고, 바이올린이 뒤따라와서는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게 도와준다. 음역이 높아질수록 듣는 이는 천천히 추락한다. 바이올린이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 소리를 내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안개 사이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내가 은연중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멀리 있어서 기억이 난다. 첼로가 일렁이기를 이어받고 바이올린이 긴 노래를 부르는 시점에는, 어깨선까지 내가 가라앉고 있구나. 압박감 없이 뭔가를 내려놓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편안함을 느꼈다.
4악장. 그러니까 나는 앞선 3악장을 만난 후, 갑자기 리듬을 타기 시작하는 4악장에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나 아직 그… 명상센터에 있는데. 두 사람은 이미 자리에서 먼저 타코 축제에 가 있다. 어쩔 수 없다. 라벨이 그렇게 써놨는데 뭐 어쩌겠냐면서…. 어차피 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익숙하게 마지막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악장에서 내가 멈춰 선 지점이 있었다. 유다윤 바이올리니스트의 라벨 소나타에서만 볼 수 있는, 특히나 눈에 띄는 음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일까? 불현듯 지나가는 바이올린이 무한대 모양으로, 그런데 벽에 가까운 방향에 있는 오른쪽 작은 동그라미와 관객 쪽으로 소리를 보내는 방향의 큰 동그라미가 함께 그려지는, 그 누워 있는 8자 모양으로 절묘하고 빠르게 공기 중을 타고 되돌아오는 휘파람이 있다. 그 모양이 이상하게 귀에 북마크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그 기억을 불러일으켜 놓으니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짚어두었던 지점에 또 한 번 체크 표시를 해두었다. 들어도 들어도 안 질린다.
정말 끝이 다가올 적에는 도대체가 어디를 봐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첼로에 시선이 쏠리면 바이올린이 옆에서 난리가 나고, 바이올린을 악보 너머로 빼꼼 들여다볼 참이면 첼로에서 하단 방향으로 유성우를 내리꽂는다. 어디에 좌표를 놔야 할지 한참 헤매다 결국 마이크가 놓여 있는 마룻면을 바라보기로 합의했다.
정말 즐길 수 있는 구간을 많이도 새겨놓으신 라벨 씨다. 맨 앞, 그것도 한가운데 앉으니 두 악기에 달려 있는 현이 내가 듣는 음보다 얼마나 두꺼운지, 저 얇아 보이는 몸통에서 어떻게 저런 많은 기척들이 나는 건지 체감하게 해주었다. 그게 이날 하콘에서 들은 라벨의 친밀함이었다.
김상윤(Clarinet), 김재원(Piano)
드뷔시,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프리미에르 랩소디, L.116
아니, 처음 입장하실 때는 따뜻하게 웃어주시며 인사해주셨는데, 이게 웬걸. 두 연주자의 지문이 노래에 닿자마자 눈빛이 그야말로 돌변하셨다. 눈 안에 순식간에 ‘예민함’의 기색이 담겼다.
그 집중의 방향 그대로 피아노와 클라리넷 안에 첫 눈맞춤의 미소가 담겨 있다. 아, 이 다정은 어느새 악기 소리 안에 담겨 있다. 연주자들이 건넬 수 있는 가장 너그러운 인사를 전달해주기 위함이구나.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를 정말 가까이서 만나보니 처음 보는 길이 있었다. 숨 하나 섞여 있지 않은 악기 소리 위에 반투명한 형태의 일직선 숨길이 있다. 숨이 고요히 지나가는 길이다. 약간 모닥불이 타닥이는 소리처럼, 산 중턱의 시냇물이 지나갈 때 내는 웃음소리처럼, 은은히 깔려 있는 백색소음이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안 그래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와중인데, 어디까지 우리를 달래 놓으시려고….
정주은(Violin), 정우찬(Cello), 박진형(Piano)
드뷔시, 피아노 트리오 G장조, L.3
피아노가 가볍게 운을 띄워주면, 바이올린이 나름의 바람을 들고 이곳에 찾아든다. 날 좋은 계절의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의 정취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비슷한 기운이되, 조금 더 나무 기둥만 같은 악기 길을 같이 걸을 것이다.
이날은 박진형 피아니스트를 좋아하는 지인 분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 날이라, 피아노에 특히나 궁금증이 있었다.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 있던 저 까맣고도 하얗기도 한 저 악기에서는 어떤 빛이 날까? 신기했다.
두 대의 현악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선을 그어냄과 동시에 합창하면, 피아노가 그 곁을 마냥 함께 가는 게 아니라 공존한다. 어딘가 모르게 홀로 서 있다는 느낌도 들면서, 정체 모를 우아함 속에 담겨 있는 든든함이 은빛 회색을 띠고 있었다. 저렇게도 울림이 빈 공간 사이를 떠오르면서도 ‘우아’한 형태로 잔향을 길게 이끌어낼 수 있구나. 그 홀연함이 신기했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함께 합을 맞출 때, 내가 특히나 기분이 좋았던 건 음 안에 ‘설명할 필요 없는’ 공명점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두 현악기가 은은함을 내비쳐 놓을 때, 살짝 뒤에서부터 선율을 이쪽으로 천천히 데려다 놓을 때, 동일한 시작선상에서 출발하여 신호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두 갈래로 갈라져 피아노를 가운데에 두고 삼각형을 메워 나갈 때의 그 장면!
이 노래 안에서도 라벨에서 만났던 것과 닮은, 작게 휘어 돌아오는 선이 있었다. 음원으로 예습할 적엔 몰라봤던 바이올린의 선이다. 그 선을 몇 개의 획으로 나누어 그릴 수 있다면, 획마다 달리 보이는 모양을 즐겁게 음미했을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듣기만 해도 만족감을 주는 노래 안에서, 세 대의 악기가 음표 한 발자국도 쉽게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집중도가 한눈에 보였다.
2악장 초입부의 북소리를 닮기로 한 지점에서도 그렇다. 장난스럽고, 별다를 거 없어 보이는 포인트를 어찌나 하나씩 다 짚어나가는지. 그 바이올린의 또박거림. 첼로의 부드러운 유영, 피아노의 별소리. 피아노가 특히나 건반으로 현악기에서만 날 법한 그 특유의 감각을 살려서 함께 리듬감 있는 구간을 또랑거리게 살려 놓는다. 피아노 건반으로 이렇게 본인 개성을 살리면서 절묘하게 합을 맞춰나가니 신기했다.
당신과 내가 이 대화의 주인공임을 눈치챈 게 3악장에 들어와서였다. 2악장이 끝나갈 무렵부터 첼로가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에 대한, 어떤 감정선을 만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뭔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러니까 소리 끝에 ‘사람’이 보여서 기분이 이상했다.
연주자들이 프로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만 할 수 있는 걸 뻔히 다 아는데, 물러나는 지점과 다시 이쪽으로 다가오는 때에 잠시잠깐 머무는 선택 안에서 사람이 보였다. 첫 시작 음을 가져다 놓을 때의 신중함. 서로의 악기에 귀 기울이며, 어떤 것도 다 뒤로 한 채 음악을 노래하는 이들이 향하는 길을 가만히 바라보니, 소리 끝이 서로에게 없었다. 합의 방향은 모아질지언정, 가지런히 예쁘게 모아 담아 앞으로 보내더라.
아, 깨달았다. 나는 이 대화 밖 관찰자가 아니라, 화자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이었다. 이토록 조심하는 목소리가 이곳에 달하더라. 무대 위의 세 사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어여쁘게 앉아 간청하는 얼굴로…. 이때 나는 하콘에서 처음으로 눈을 감고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앞에서 사치스럽게 잠시잠깐 까만 곳에 가 있었다.
그 마음을 이제야 눈치채고 말았으니 4악장으로 들어와서는 기분이 2배로 이상해졌다. 영원히 일방향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궁금증 하나를 손에 들고 악보도 모르고, 관련 배경 지식도 없지만 귀와 눈으로만 음악의 문을 두드리고, 모르는 이에게 물음표를 띄웠는데, 난생처음으로 저 악기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야기를 나눠보자 먼저 손을 내민다.
그 마음이 다 느껴지는 ‘흐름’ 안에서 곡의 가장 높은 지점까지 향했을 때, 눈을 많이 깜빡이게 되었다. 모르겠다. 서로를 궁금히 여기고 무엇에 닿아볼 수 있을지 그저 상상해보는 순간이 요 근래 많지 않아서였을까.
어떤 공연에서든지, 무엇을 보든지 무대가 막을 내리면 꼭 있는 피로감이 있는데 이날은 그게 하나도 없었다. 우리를 이토록 반짝반짝 바라보면서,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 품에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나는 동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짜 오늘 얼마나 신이 났었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9일 아침에 일어나서는 무려 6시 40분에 일찍 출근길에 올랐다.
입이 간질간질했다. 손이 근질근질했다. 어제의 이야기를 얼른 털어놓고 싶었다. 우리가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를 했었는지, 내가 금세 잊어버리기 전에 이곳에 담아 당신께 말하고 싶었다. 이런, 이제 보니 연주자들은 그날의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나는 당신께 말을 걸고자 한다. 어떤가. 당신도 이 대화창에 접속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