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그는 손 하나를 귀 가까이에 둔 채 잠시 멈춰 있다. 지난번에는 소리와 소리 사이에 서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사이에서 흘러나온 무언가가 손바닥 안쪽으로 옮겨온 듯하다. 들리는 것은 분명 소리인데, 손바닥 안쪽에는 아주 얇은 빛이 먼저 내려앉는다.

   

그것은 따뜻하다기보다 투명하고, 차갑다기보다 조금 눈부시다. 그는 듣고 있던 것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이미 손안에 들어와 버린 색을 가만히 확인했다.


천천히 손을 얼굴 앞으로 가져와 조그마한 유리 가루 같은 빛이 새어 나갈 만큼만 손바닥을 편다. 그는 손바닥 위를 오래 바라보다가 다른 손으로 그 둘레를 낮게 감싸고, 두 손을 조심히 열어 안에 있던 것을 앞쪽으로 흘려보냈다.

 

빛이라는 것은 대체로 멀리 있는 줄 알았다. 하늘 쪽에 있거나, 유리창 너머에 있거나, 물 위에서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떤 소리는 귀로 들어오지 않고 눈앞에 먼저 내려앉는다. 색소폰의 안개가 손등에 묻고, 하프의 결이 손바닥 안쪽에서 잘게 부서지고, 플루트의 숨은 흰빛이 되어 가만히 떠다닌다.


그러니 우리는, 7월 15일의 밤에는, 팔레트를 하나 들고 가야겠다. 어떤 색을 먼저 덜어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소리가 제멋대로 빛을 데려오고 빛이 다시 소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면, 그 앞에서 오래오래 망설여 볼 수 있도록. 붓까지는 없어도 괜찮다. 손끝에 묻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음껏 그릴 수 있다.

 

 

 

드뷔시, 랩소디, L.98, 색소폰과 피아노 편곡


 

 

 

오묘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악기가 노래를 하는구나. 거인들이 살아가는 마을보다 난쟁이들만의 동네가 떠오른다. 부정적으로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긴 숨 하나가 가져다 놓을 수 있는 이야기를 엿들어 보는 기분. 악기가 노래를 하면 구름 위가 웅웅대기 시작하고 안개 속이 짙어진다.


환상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색소폰에서 나는, 색소폰의 키가 손가락에 곧장 눌리면서 소리와 동시에 따라오는—이를테면 키패드를 누를 때 나는 타격음 같은—악기 자체의 기척도 왠지 모르게 기다려진다. 아마 시작부터 굉장히 들뜨기 시작하지 않을까? 미리 예상된다!

 

 

 

드뷔시, 녹턴과 스케르초, L.26


 

 


음원을 틀고 내가 예습하는 앨범의 표지를 보니, 한 첼리스트가 눈을 감고 연주를 하고 있다. 표정만 보면 잠들어 있는 것만 같은, 어딘가 평온한 모양새로 활을 들고 있다. 들려오는 선율도 마찬가지다. 이 소리를 어찌 묘사하면 좋을까?


대체로 낭만적이기도 하면서, 한 사람을 향한 다정한 세레나데 같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첼로가 들려주는 듣기 좋은 말소리 같기도 하다. 곡이 바라보고 있는 쪽엔 무엇이 있을까? 이른 아침에 한참 산책한 뒤에 먹는 달큰한 사과 한쪽만 한 행복감이겠다. 물론 껍질은 벗기지 않은 채로!

 

 

 

라벨, 하바네라 풍의 소품, M.51


 

 


피아노가 1234—그냥 나도 모르게 음 하나에 붙이게 되는 숫자다—할 때, 그러니까 바이올린보다 먼저 나타나 무엇을 내보일지가 무엇보다 궁금해진다. 건반이 어느 방향으로 떠나갈 것인가? 바이올린이 농밀함을 가볍지만 진득하고 기-다랗게 유도할 때의 고무줄 놀이도 궁금하다.


붓에는 어떤 색이 묻어 있을까. 이날의 라벨을 든 화가는 무슨 색의 앞치마를 하고 있을까. 생각보다 이별이 빨리 찾아오니 분주히 생각해 둬야겠다.

 

 

 

라벨, 서주와 알레그로, M.46


 


 

 

나는 이 곡이 서주와 알레그로라길래, 라벨에게도 서주와 알레그로가 있구나. 나는 크라이슬러만 있는 줄 알았지, 하고 생각했다. 하프와 함께 걷는구나. 마룻바닥에 나타난 요술상자는 어디에 놓이게 될까? 갖가지 소릿빛이 쏟아질 터인데, 나는 누구와, 그러니까 어떤 악기와 함께 이 길을 걷게 될 것인가?


붙잡을 새도 없이 흩어져 버리는 것들 속에서 뭐 하나 붙잡아보려면 꽤 애를 써야 할 것이다. 소리를 붙잡을 수 있는 손수건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주머니 속에 넣어둘 텐데!


지나온 곡들 중에 보라와 군청이 담겨 있는 밤의 정취도 엿보인다. 그야말로 청아한 소리들이 피어나는 공간일 터인데, 곳곳에 은근히 외로움이 스며 있다. 합을 맞춰 가는 순간이지만, 개별로도 존재하는 시간이 아니던가? 그 사실을 하프가 홀로 노래할 적에 꼭꼭 짚어주지 않을까.


잊을 수 없는 풍경이겠다. 물론 자기를 잊지 말라는 듯 잇달아 나무를 데려다 숲을 그려 놓는 악기들의 은근한 플러팅도 마찬가지다.

 

 

 

드뷔시, 시링크스, L.129


 

 

 

드뷔시가 나타났다. 오묘한 하얀 기운이 저곳에서 서서히, 다만 느긋하지 않게 이곳으로 일렁인다. 그가 누구일까? 함부로 추측할 수 없도록 오히려 거리를 벌려준다. 반투명한 장막이 내려온다. 내 안이 조용해질 때까지.

 

 

 

드뷔시, 플루트, 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 L.137


 

 


1악장


앞선 곡이 있었기에 백지 상태로, 거의 다 지워버린 채로 자리할 수 있다. 신기하다. 플루트와 비올라, 그리고 하프가 함께 노래할 수 있구나. 고개를 높게 들어 올리지 않아도, 오히려 아래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노래해도 전해질 소리 그림은 다 전해진다.


음을 듣는 일은 이만큼이나 아름다운 일이구나. 부드럽게 일러준다. 직접 손을 뻗어 짚어주는 것도 아니고, 그들은 그냥 어딘가를 계속, 꽤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그쪽을 향해 고개만 살짝 돌려보면, 그곳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소리로 기지개도 펴고 편지 봉투도 열어 볼 것이다. 이런 생각도 들겠다. 그날, 연주가 태어나는 그 순간, 내가 소리를 마음 안에 잘 담아볼 수 있을까. 그냥 공기까지 붙잡아둘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2악장


무슨 감정을 들여다보려 조금 내려앉아 온 듯한, 약간의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선율이 이 악장에 펼쳐질 것이다. 자리에 앉아 마음속으로 꽤 많이 신이 나겠다 싶었다. 뭘 그려보지? 얼마 전 보았던 오후 3시 무렵의 청계천 장면을 떠올려야 하려나.


햇빛이 물 위에서 별자리가 되었었지. 밤하늘이라기에는 눈이 꽤 많이 부신데, 보름달 옆을 지키는 별무리를 떠올려봐도 좋겠다. 마침 우리가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이때는 밤이 다 늦은 시간이기도 하지 않은가.


3악장


가장 처음 나타나는 것이 몸집을 키운 내 알람 소리 같기도 하겠다. 빨리 일어나라고 어찌나 재촉을 하던지. 하얀 황소가 나타나 내 사방을 둘러싸고 일렁일렁! 중간부터는 오히려 작아져 올망졸망 움직인다. 어찌 보면 귀엽고, 달리 보면 짓궂은 장난들이 넘나든다. 귀엽겠다!

 

 

 

라벨, 치간느, M.76


 

 

 

이 밤을 매듭짓기 위해, 바이올린과 피아노 한 대가 라벨의 시니컬한 리본 하나를 들고 나타날 것이다. 이날 지나온 곡들 중에는 그나마 매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침묵과 긴 동행을 이어 나갈 것이다. 치고 빠지는 때를 놓치지도 않고, 유리의 빛을 데려다 놓고는 피아노와 한데 엮어 놓을 것이다.


꽤 즐거운 리드미컬함이 독특한 색감으로 텐션 있게 이어지겠다. 화려함! 절묘한 밀당! 따라잡기 어려운 걸음걸이! 무엇보다 가장 높게 떠오르는 소리 결정들! 얼마나 갖은 장난을 칠지, 제멋대로 나아가버릴지 엄청 기대된다!


이렇게 제 스타일에 딱 맞는 연주를 하게 된 이날의 바이올린도 꽤 운이 좋아 보인다. 본인이 고른 선곡이려나? 신기한 일이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적에는 왜 이렇게 대담한 선율이 배치되었을까 싶었는데 맞다…… 이 축제는 끝나려면 그야말로 한참이지 않은가? 뜨거운 한낮의 기운이 한밤까지 이어진다!

 

 

2. 2026_줄라이_포스터.jpeg

 

 

모든 곡이 끝나고는 손끝을 바라봤다. 떠나가지 못한 빛이 남아 있던가? 그는 그것을 털어내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두기로 했다. 색이 마르면 자국이 되고, 자국이 길어지면 언젠가는 선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더하우스콘서트의 2026 줄라이 페스티벌 〈프랑스의 빛〉은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프랑스 음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음악 축제다. 2020년 베토벤부터 2025년 스트라빈스키까지 단일 작곡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온 줄라이 페스티벌은 2026년부터 시선을 조금 더 넓혀, 하나의 국가가 품고 있는 음악의 결을 따라간다.


그 첫 주제로 선택된 것은 프랑스 음악이다. 드뷔시와 라벨을 중심으로, 사티와 프랑스 6인조, 프랑세, 메시앙까지 이어지는 음악들이 7월의 여러 밤을 각기 다른 빛으로 밝힌다.


제1176회 하우스콘서트 July Festival : Debussy & Ravel Ensemble 2 - 빛의 팔레트는 2026년 7월 15일 수요일 오후 8시, 대학로 예술가의집 3층에서 열린다.


이 공연에는 드뷔시의 〈랩소디〉 L.98, 〈녹턴과 스케르초〉, 〈시링크스〉, 〈플루트, 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가 놓인다. 여기에 라벨의 〈하바네라 풍의 소품〉, 〈서주와 알레그로〉, 〈치간느〉가 이어진다. 이수빈, 박지혁, 여하정, 브랜든 최, 임동민, 견나현, 신경식, 여윤수, 김재원, 아클리 희석이 함께한다. 


색소폰과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하프와 관악기, 그리고 다시 바이올린까지. 이날의 무대에는 악기들이 저마다 다른 색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어떤 소리는 안개가 되고, 어떤 소리는 유리 조각이 되고, 어떤 소리는 밤의 가장자리까지 멀리멀리…… 오래 빛날 것이다.

 

 

Program


Debussy, Rhapsodie (랩소디), L.98 (arr. for Saxophone and Piano)

브랜든 최(Saxophone), 김재원(Piano)


Debussy, Nocturne et Scherzo (녹턴과 스케르초), L.26

여윤수(Cello), 아클리 희석(Piano)


Ravel, Pièce en forme de Habanera (하바네라 풍의 소품), M.51

견나현(Violin), 아클리 희석(Piano)

 

Ravel, Introduction et allegro (서주와 알레그로), M.46

이수빈(Harp), 박지혁(Flute), 여하정(Clarinet), 임동민·견나현(Violin), 신경식(Viola), 여윤수(Cello)


Debussy, Syrinx (시링크스), L.129

박지혁(Flute)

 

Debussy, Sonata for Flute, Viola and Harp, L.137

박지혁(Flute), 신경식(Viola), 이수빈(Harp)


Ravel, Tzigane (치간느), M.76

임동민(Violin), 아클리 희석(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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