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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그는 허공의 한 지점을 바라보다가 검지를 들어 올린다. 무언가 보였나. 혹은 들렸나. 소리라기엔 너무 가늘고, 빛이라기엔 손끝에 먼저 닿는 것이 있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천천히 손을 움직인다.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가는 것처럼, 이미 그어진 것을 다시 더듬는 것처럼. 중간중간 멈춰 손목을 조금 낮췄다가, 다시 조용히 올린다. 어릴 적 하얀 도화지 앞에서 무엇이든 그려도 괜찮다고 믿었던 손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마지막에는 손바닥으로 허공을 한 번 쓸어내리고, 손끝에 남은 것을 가슴 가까이에 잠시 옮겨 붙인다.


손끝에 남은 것이 빛인지, 소리인지, 오래전의 기억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그 감각을 따라가다 문득 아주 오래전의 도화지 앞에 섰다.


초등학교 때, 무슨 이유였는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사람의 형태를 잘 그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미술부에 들어갔었다. 그때의 기억이 뭐 얼마나 나겠냐마는, 어느 한순간만큼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다름 아닌 내 제멋대로의 말 한마디였다. 아마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던 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자유화 그릴래요!”


그러면 나는 늘 하얀 도화지 앞에서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묘사하고 싶은 물건을 마음껏 스케치했다. 스케치했다는 말도 너무 고급지다. 그냥 막 그려버렸다! 내가 그리 잘하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못 그리지도 않는 그림을 한참 붙들고 있었던 이유는 사실 그냥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가장 큰 자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주 조금 더 큰 어른이 된 지금, 그렇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해도 희열을 느꼈던 그때만큼 기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지금은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단순하고, 또 일이 복잡해졌다. 무언가를 형용하는 데, 특히나 무형의 것을 오늘도 보고 내일도 볼 수 있는 곳에 담아 놓는 일에 4B 연필로 그은 획이 아니라 ‘글자’가 꽤 유용한 도구임을 이제는 알아버렸다.


특히나 음악 안에서 그림을 그려야만 할 때, 글자는 이토록 유용한 도구가 된다. 활자로 각인해도 좋고, 등장시키고 싶은 주인공을 불러와도 좋고, 아름다운 선을 그어도 좋다. 특히나 가사가 없는 클래식 곁이면 어떤가? 그야말로 선의 향연이다.


그러니 우리는, 7월 22일의 밤에는, 새 도화지를 하나 열어두어야겠다. 어떤 선을 먼저 따라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네 개의 현이 제멋대로 길을 만들고 그 길이 다시 소리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면, 그 앞에서 오래오래 그려보아도 좋겠다. 이제 그 선을 따라가 볼까. 먼저 드뷔시다.


 

 

드뷔시, 현악사중주 g단조, L.85


 

 

 

1악장


첫 시작이 굉장히 ‘색다르다’는 느낌이 있다. 어디서 기이함을 느꼈던가? 왠지 스타트라인이라면 0에서 시작하거나, 그러니까 정말 아무것도 없는 채로 서서히 커져야 하는데, 뭔가 중간 지대에서 이미 결정된 상태로, 어떤 일이 발발한 바로 그 지점에서 노래가 시작된 기분이랄까?


긴말할 필요 없이 지금 당장 떠나야만 한다고 말로만 재촉하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자리에서 일어나버리는, 그런 행동력이 눈앞에 가득하다. 그들은 과연 어디로 향하려 하는 것일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몸으로 말하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볼 수 있을까?


2악장


이봐, 또 도입부의 피치카토 소리 크기가 ‘초면’이다. 이렇게까지 두터운 상태로 나타날 수도 있구나? 나무토막이 어리숙한 춤을 추고, 노래할 것이다. 악기들이 혼자 남아 있을 때와 모여들었을 때, 그 사이에서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빙글뱅글 요상한 춤도 출 것이다. 꽤 빠르고, 상당히 리듬감 있게! 피치카토가 연달아 나타나는 구간에는 다 같이 박수를 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흥미롭다!


3악장


이 악장이 나타남과 동시에 갑자기 김이 모락거리는 차 한 잔과 당신만 남아 있게 되었을 때, 크게 놀라지 말라. 원래부터 우리 사방은 꽤 조용한 편이 아니었던가? 그래, 번잡한 것은 뒤로 두고 제멋대로인 채로 잠들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꽤 담담한 노래를 부를 적에 우리는 어떤 단어를 붙여볼 수 있을까? ‘애처로움’, ‘애달픔’, ‘위안’, ‘서글픔’, 어쩌면 ‘원망’의 말도 손 안에 담아볼 수 있겠다. 복잡하게 뒤엉킨 생각이 내 눈앞에 나와 소리의 몸을 얻은 건 아닐까 하며, 상상하지 못한 것들을 가련히 내려놔보자. 이 곡을 예습하며 나는 이 3악장의 끝자락에 가장 큰 기대를 가져보기로 했다.


4악장


대체로 밝은 날에 하는 얘기는 아니구나. 그걸 4악장에 와서야 선명히 눈치챘다. 그렇다고 그리 어둡진 않다. 그냥, 먹구름 뒤에 있는 분홍빛 혹은 주황빛을 머금은 구름이 있지 않은가? 딱 그 풍경이 나보다 높은 곳에 자리해 있을 것이다.


불규칙한 크기로 소리를 나풀나풀 밀고 당기는 구간도 있다. 오리무중 속에서 어떻게든 제 길을 찾아낸다. 바닥 쪽으로 무언가를 파헤쳐 나가는데, 그들이 그때를 어떻게 지나갈지 궁금증이 생긴다. 뭐든 좋다. 그려볼 수 있는 것은 다 이 안에 새겨 넣어보자! 가능한 한 치밀하게!

 

 

 

라벨, 현악사중주 F장조, M.35



 

 

1악장


부담감은 조금 덜고, 여유와 기쁨은 가까이 둔 채, 네 결의 목소리를 따라갈 시간이 찾아왔다. 뜨거운 열기를 가득 머금은 아스팔트 위, 흰 운동화 위 하얀 신발 끈을 강하게 여미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머리끈 하나로 동여맨 머리끝이 찰랑였다.


몸을 일으켰다면 응당 무엇을 해야겠는가?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며,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내달릴 생각 말고, 보이는 것들을 낯설게 눈에 담아보자. 하나씩. 혹은 한 움큼씩. 늘 말했지만 뭐든 좋다! 이 도화지 앞에서는 불필요한 선을 그었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뭐 하나 빼어나지 않은 것이 없을 테니!


2악장


긋는 것보다 튕겨내는 일이 이렇게까지 매력적일 필요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난 나무 조각들이 가득할 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구덩이를 깊게 파지 않고 은근한 회오리를 가져올 때도 그러하다.


조금 전의 무서운 줄 모르고 튀어 오르던 것들이 반복되는 동그라미들 사이로 자취를 감출 것이다. 다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처럼 어깨를 한층 움츠리고 있다가도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3악장


왜 길게 아프려 할까?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누군가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인가? 염려하는 모습일까나. 그냥, 이맘때쯤에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네모난 공간을 내어줄까. 조막만 한 시간을 떼어줄까. 별 하나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기 바로 그 직전까지.


4악장


얼마나 힘을 주려고 할까? 극히 빠르게 날아가려나?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까? 꽤 깊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그들이 무슨 대화를 주고받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 좋겠다. 그리고 보다 자유롭게 날아보자!


두 곡의 사중주가 지나간 자리. 손끝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 선이 남아 있을 것이다. 무엇을 그렸는지 또렷이 말할 수는 없어도, 하얀 도화지 위에 무언가가 지나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겠다. 드뷔시가 먼저 그어둔 선 위로 라벨이 다른 방향의 선을 겹쳐놓고, 우리는 그 사이에서 각자의 자유화를 완성해보면 된다. 조금 삐뚤어진 선이라도 괜찮다. 음악 안에서는 때때로 그런 선이 가장 오래 남으니까.



2. 2026_줄라이_포스터.jpeg

 

 

더하우스콘서트의 2026 줄라이 페스티벌 〈프랑스의 빛〉은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프랑스 음악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음악 축제다. 2020년 베토벤부터 2025년 스트라빈스키까지 단일 작곡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온 줄라이 페스티벌은 2026년부터 시선을 조금 더 넓혀, 하나의 국가가 품고 있는 음악의 결을 따라간다.


그 첫 주제로 선택된 것은 프랑스 음악이다. 드뷔시와 라벨을 중심으로, 사티와 프랑스 6인조, 프랑세, 메시앙까지 이어지는 음악들이 7월의 여러 밤을 각기 다른 빛으로 밝힌다.


제1183회 하우스콘서트 July Festival : Debussy & Ravel Ensemble 3 - Quartet Horizons는 2026년 7월 22일 수요일 오후 8시, 대학로 예술가의집 3층에서 열린다. 이날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은 드뷔시의 현악사중주 g단조와 라벨의 현악사중주 F장조, 두 곡이다.


드뷔시의 곡은 이든 콰르텟의 정주은·이소영, 임지환, 정우찬이 연주하고, 라벨의 곡은 백주영, 안수경, 신경식, 김민지가 맡는다.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첼로. 같은 네 개의 현으로 출발하지만, 그 위에 그려질 선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갈 것이다. 이제 그 선의 방향을 함께 따라가 보아도 좋겠다.



Program


Debussy, String Quartet in G minor, L.85

이든 콰르텟 : 정주은·이소영(Violin), 임지환(Viola), 정우찬(Cello)


Ravel, String Quartet in F major, M.35

백주영·안수경(Violin), 신경식(Viola), 김민지(C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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