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따라 쓰는 시간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어 글을 쓴 지 이 년 차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하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단단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일은 좋아서 시작했지만,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주제를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가던 날도 있었고, 이미 많은 사람이 다룬 이야기를 또 쓰는 건 아닌지 고민하기도 했다. 정보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문장을 고쳐 쓰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한 달에 한 편 이상 글을 올리면서 자기검열도 심해졌다.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됐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셀프 큐레이션을 위해 이전에 적었던 글들을 하나씩 다시 읽어보니 그 시간이, 그때의 불안과 긴장들이 제일 먼저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 감정들이 예전만큼 날카롭게 남아 있지는 않았다. 항상 아쉬움이 남는 글만 쓴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읽다 보니 나는 사람들에게 바라던 마음을 내가 하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늘 바라던 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찾고, 더 자주 좋아하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글을 고르고 고르다 보니 소개하고 싶은 글이 전부 음악과 공연, 음향에 관한 것이었다. 아마도 좋아하는 것을 다룰 때 가장 솔직한 문장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그중 몇 편을 다시 엮어 소개해 보려 한다.
*
소리를 따라 느끼는 공간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5121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청음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영화관을 자주 다녔다. 같은 영화라면 가능한 한 돌비 사운드 상영관을 선택했다. 화면의 크기나 좌석 위치보다도 소리의 밀도와 방향감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방식에 따라 장면의 인상이 달라진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기에 점점 음향에 대해 욕심이 났다. 특히 영화 위키드를 돌비 관에서 보고 나온 날, 단순히 좋았다는 감상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왜 다르게 들리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돌비 애트모스의 작동 원리와 상영관의 스피커 구조를 찾아봤다. 객체 기반 음향이 무엇인지, 천장 채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왜 소리가 위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정리해 보았다. 하나하나 내용을 찾다 보니 영화를 ‘보는’ 경험이 사실은 절반 이상 ‘듣는’ 경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술적인 설명을 전문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관객의 관점에서 이해한 내용을 풀어 쓰려고 했으나, 정보의 나열처럼 느껴져 조금 아쉽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도 소리가 궁금했던 사람, 상영관을 선택할 때 사운드를 기준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콘텐츠라도 어떤 환경에서 경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남을 수 있다는 점을 나누고 싶었다.
그녀의 사계절은 페스티벌로 흐른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6217
좋아하는 것은 혼자 해도 좋지만, 함께할 때 조금 더 또렷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페스티벌을 꾸준히 다니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시작됐다. 나는 공연을 볼 때 사운드와 무대 구성, 곡 목록의 흐름에 집중하는 편이고, 그 친구는 현장의 분위기와 계절감, 하루 전체의 리듬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장면을 기억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친구와의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느낀 건, 페스티벌이 단순히 하루짜리 이벤트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라인업이 공개되는 순간부터 이미 경험은 시작된다. 어떤 날에 갈지, 누구와 갈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포함된다. 예매에 성공했을 때의 안도감, 이동 동선을 미리 계산하는 과정, 공연 사이의 공백 시간까지 모두 그날의 일부다. 무대 위의 몇 시간이 중심이지만, 그 시간을 둘러싼 준비와 기다림이 기억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또한 페스티벌은 취향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오래 좋아했던 팀을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무대에서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경험이 동시에 일어난다. 음원으로만 듣던 곡이 현장에서 다르게 들릴 때도 있다. 스피커를 통해 크게 울리는 소리, 주변 관객의 반응, 날씨와 시간대가 모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같은 공연도 매번 다르게 남는다.
이 글은 페스티벌을 한 번쯤 가보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현실적인 참고가 될 수 있고, 이미 여러 번 다녀본 사람에게는 자신의 시간을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은 끝나지만, 그날의 공기와 장면은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반복이 쌓이면 하나의 계절이 된다. 누군가에게는 페스티벌이 그렇게 삶의 일부로 흐르고 있다는 점을 담고 싶었다.
아무튼, 좋아하는 걸 붙잡는 일 - 아무튼, 레코드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367
나는 여전히 음반을 손에 쥐는 방식을 좋아한다. 스트리밍으로 언제든지 원하는 곡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지만, 레코드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올리는 순간에는 조금 다른 집중이 생긴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다른 준비의 시간이 있다. 한 면이 끝날 때까지 자연스럽게 자리를 지키게 되고, 중간에 곡을 건너뛰는 일도 줄어든다.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시간을 단단하게 만든다.
《아무튼, 레코드》를 읽으며 이 감각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미 아끼는 마음으로 보던 시리즈였고, 무엇보다 ‘레코드’라는 단어 자체가 오래 붙잡아온 취향과 맞닿아 있었다. 책은 특정 장비를 설명하기보다, 왜 누군가는 여전히 이 매체를 포기하지 않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태도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글을 쓰면서 나 역시 처음 레코드를 사던 때를 떠올렸다. 음질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음악을 소유한다는 감각이 좋았던 것 같다. 커버를 펼쳐보고, 크레딧을 읽고, 물리적인 흔적을 남기는 방식. 디지털 환경에서는 빠르게 흘러가던 음악이 조금 더 오래 머무는 느낌이 있었다. 그 과정이 번거롭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반복하고 있는 이유를 정리해 보고 싶었다.
이 글은 음반을 수집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오래 붙잡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꼭 효율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 시간이 더 걸려도 선택하는 방식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것을 붙잡는 일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반복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한국 록의 60년을 다시 듣는 일 – 로크 200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416
노웨이브 출판사의 책을 꾸준히 읽어왔다. 음악이라는 장르를 아주 친절한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처럼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출판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크 200』은 노웨이브에서 한국 록 60년의 흐름을 정리한 책이다. 단순히 대표곡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대의 분위기와 함께 음악을 배치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는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대신, 실제로 음악을 다시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1960년대의 록과 1990년대의 록은 전혀 다른 질감을 갖고 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변주된다. 같은 장르 안에서도 세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책의 연표를 따라가며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들으며 기사를 적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익숙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뮤지션들도 다시 들어보니 새롭게 들렸다. 이전에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장면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안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일부만 알고 있었다는 걸 느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이 글은 추천이라기보다 정리에 가깝다. 책을 매개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다시 듣는 경험을 기록한 셈이다.
한국 록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입문서처럼 읽힐 수 있고, 이미 여러 팀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한 번쯤 흐름을 다시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이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따라 듣는 일이라는 점을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밴드의 노래를 다시 한번 들어보길 바란다.
*
좋아하는 것을 따라 쓰기 시작한 글들이 어느새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 되었다. 잘 쓰고 싶은 마음보다, 오래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남았다. 기사를 쓰는 내내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리고 왜 여전히 그것을 붙잡고 있는가. 라고 계속 되뇌었다. 아마도 그 질문을 반복하는 동안 조금씩 단단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을 자주 들여다보고, 다시 듣고, 다시 읽는 일은 생각보다 멀리 데려간다. 이 글들이 누군가의 취향을 재촉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각자의 소리를 따라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