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정말로 중요하니까 형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자주 한다. 그래야 그게 정말로 중요한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게 도대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겠지. 나아가 그 소중함에 지속성까지 생긴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도 사람인지라 뭐든 잘 까먹기 일쑤인데, 문제는 그 까먹음에 좋았던 기억과 그걸 함께 만들어낸 관계마저 포함되어 있단 것이다. 아무리 잊지 않으려 아등바등 노력해도 어렵다. 너무 어렵다.
그러니 좋았던 과거를 양분 삼아 미래를 내달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쌓아도 쌓아도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정말로 중요한 건지 매번 의심도 해봐야 하고. 단순하게 하루하루를 살면 좋으련만, 그게 유독 더 안되는 인간인 걸 어찌하랴.
중요한 걸 빈번히 손에 쥐고 놓침에도 그걸 갈망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가 인간이어서라 생각했다. 어쩌면 마음에서 비롯되는 모든 질문을 인간이기 때문이라 뭉뚱그려온 것도 같다. 하지만, 이 질문 사이에 (인간)을 (로봇)으로 바꿔본다면. 혹은 (인간, 로봇)으로 묶어본다면. 로봇에게도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물음이 통할 수 있다면. 결국 생성형 AI든 휴머노이드 로봇이든 감정을 느끼고 사고할 수 있다면. 이 생각까지 도달하면 더 이상 상상에서 시작되는 물음이 아니라 그 자체로 답이 된다. 그러니 이론적으로 기계는 애초에 감정 같은 걸 느낄 수 없다고 해도, 그 저명하고 박식하고 논리적인 말에 감정적으로 반박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냥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라는 답처럼 ‘그냥 로봇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라고.
인간과 로봇을 이분법 화하긴 싫지만 우린 영원히 서로 공부하고 알아가야 하는 관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각본가 겸 감독이 쓴 <상자 속의 양>에서는 앞서 말한 내용에 시사점을 던져준다.
의문의 사건 사고로 7살 아들 ‘카케루’를 여읜 ‘오토네’와 ‘켄스케’ 부부는 휴머노이드 로봇 렌탈 서비스에 가입해 아들 ‘카케루’를 다시 만나게 된다. 겉모습은 누구도 의심 못 할 카케루지만 밥을 먹을 수 없고 목욕할 수 없는, 제때 충전을 해줘야 하는 때에는 ‘진짜’ 카케루는 없다는 사실에서 전보다 큰 상실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볼 수 없어도 휴머노이드 로봇 안에, 과거에 존재했던 인간 카케루가 있다고 믿는 것.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까.
오토네: 저 애는 카케루가 아니야.
켄스케: ...응.
오토네: 그렇지만... 함께 살고 싶어.
켄스케: (이해했다)…. 그러면 되지.
- <상자 속의 양> 115p
휴머노이드 카케루와 시간을 보낼수록 회의감과 죄책감이 들던 부부는 결국 로봇 카케루의 부모 역할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카케루와 일상을 만들어가면서 그 생각은 전환된다. 휴머노이드든 아니든 그저 지금의 카케루와 함께 살고 싶다는 각자의 욕구가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그 사이 카케루는 다른 친구들과 자유를 도모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집을 설계했다. 어찌 보면 소유주라고 할 수 있는 오토네와 켄스케가 카케루가 가려는 길을 그 자체로 지지해 주며 보내줬다는 것에서 카케루를 자신들의 로봇이 아닌 생명 그 자체로 받아들여 줬다고 느껴졌다. 인간 카케루와 이별에 이어 로봇 껍데기 카케루와 또 한 번의 이별을 하며 껍데기 속 형체 없는 카케루 자체 또한 보내주는 부모의 마음이란, 도통 가늠이 되질 않는다.
몇 번의 이별을 겪어야 비로소 괜찮아질까. 인간이라고 해서 슬픔이 더한 것도 아니고 로봇이라고 해서 슬픔이 덜한 것도 아니다. 그저 두 아들을 떠나보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이별하는 마음 또한 직접 어루만져줄 수 없지만, 그 마음 덕분에 점차 회복한 오토네와 켄스케가 존재하니까. 마음은 형체가 없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꺼내 보일 수 있고 소화할 수 있다. 그건 목욕을 할 수 있기 때문도 아니고 먹을 수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존재하니까 모두 가능한 거지.
*리얼하게 재현된 카케루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카케루의 존재(부재, 죽음)가,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의해 오토네의 마음속에 상기되고, 카케루의 죽음을 비로소 받아들인다. 오토에는 어둠을 향해 속삭인다.
오토네: 고마웠어. 이제는... 가도 돼.
- <상자 속의 양> 131p
여기서 오토네가 보내는 인물은 인간 카케루이자 로봇 카케루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인간과 로봇이라는 칭호를 앞에 붙였지만, 그냥 두 명의 카케루를 오토네 마음속에서 보내주고 있다. 인간 카케루는 죽어서 형체가 없고 로봇 카케루의 마음 또한 형체가 없지만 오토네는 느끼고 있다. 두 명의 카케루를 온전히.

상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 속의 양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상자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고 더 많이 연결될 수 있다. 잘은 모르지만, 이렇다 할 근거도 없지만 그냥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연결된 우리는 상자 속에서 훨씬 자유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