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할 수 있는 가장 적확한 뜻으로 언어와 언어 사이를 매개해 주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만났다.
언어의 마술사이자 본업 천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가수 스텔라장과 번역가 황석희!
섬세한 감각으로 일상을 노래하며 공감을 일으키는 스텔라장은 불어, 한국어, 영어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싱어송라이터 가수이다. 동화같이 아름다운 음색으로 귀를 황홀하게 하고 예민한 표현력으로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을 가진 스텔라장은 2025년 4월,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무려 10곡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수록되어있는 모든 곡이 제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데, 앨범과 곡 소개부터 시선을 묶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담았다는 것이 모나고 제멋대로인 이번 앨범 곡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그 하나뿐인 매듭이 이들을 한 앨범 안에 핏줄처럼 강하게 묶어주길 바란다.”
- [STELLA II] 앨범 소개
그가 쓰는 글과 가사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언어만 잘 구사한다는 게 아닌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동시에 지닌 그는 한국어와 영어, 불어를 섞으며 글자 속에 숨을 불어 넣어주고 그 숨들은 곧 아름다움으로 번진다. 그리고 반짝이는 표현을 듣는 이에게도 정확히 가닿게 하기 위해 이번 앨범에서 새롭게 시도한 것이 유튜브 컨텐츠 속에 있다. 바로 또 다른 언어 천재, 번역가 황석희와 합동 가사 번역! 아, 이 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신성한 콘텐츠를 언제고 얼마든지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니. 좋은 세상이다.
번역가 황석희는 익히 알려진 ‘스타 번역가’로, 지금까지만 해도 600편이 넘는 작품을 번역한 번역의 대가이다. 단순히 글자 그대로를 번역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이가 의도하는 의미가 꽂히게 전달되는 번역을 한다. 전혀 모르는 언어가 귀에 닿아도 작품을 향유함에 있어서 언어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게 언어의 존재감 자체를 없애준다. 번역 없는 세상은 상상되지 않는다. 번역이 없는 순간 모르는 언어는 치명적인 결함 정도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예 작품 자체를 시작할 엄두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확한 의미 전달 외에도 황석희만이 구사해내는 언어적 재치는 빠지면 섭섭할 정도로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스텔라장 유튜브 채널 (*stellajangtv)에 지금까지 둘이 함께한 콘텐츠는 총 2편이 올라왔다. [STELLA II] 앨범 속 [what makes you], [land of what might have been] 노래 두 곡을 같이 번역하는 콘텐츠로, 두 개의 영상 중 그 역사적 만남의 시작이었던 [what makes you] 번역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능수능란하게 언어의 파도를 타는 두 사람의 만남에서 가사번역을 통해 볼 수 있는 삶의 영광을 같이 얻어보고자 한다. 앗 자연스러운 영어공부는 덤!
“A constant lack of energy is eating me inside”
끝없이 내 안을 잠식하는 무기력
“I’m searching for a reason I don’t even want to find”
찾고 싶지도 않은 이유를 찾아 헤매려
직역하면 “끊임없이 에너지가 없음이 내 안을 잡아 먹고 있다, 내가 찾고 싶지 않은 이유를 찾고 있다.”이다. 영어 자체로 발음했을 때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표현도 정확하게 한국어로 옮겨놓으려면 단어부터 조사, 부사 선정부터 말맛을 살릴 수 있는 표현에 대해 딮은 고민에 빠진다. 또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직역 투 안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처음 등장하는 표현인 ‘constant lack of energy’를 한국어로 옮기려니 초장부터 막혀버렸다. 그대로 번역하자니 어색하고 뒤에 ‘is’가 나오니까 주어를 명사 형태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constant’라는 형용사로 시작하니 도통 단어를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이때 황석희 번역가님은 이를 ‘끝없는 무력감’으로 번역했고 이는 ‘만성 무기력증’이라는 단어의 떠올림에서 왔다. 당연히 명사를 꾸며주는 형용사이기 때문에 붙여 해석해야 한다거나 주어-동사 순서로 이루어져 있는 문장에 얽매인다거나 했던 생각을 단숨에 바꿔주었다. 문장 형태로 있어도 얼마든지 단어로 번역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위 두 가사를 이어서 보면 황석희가 번역할 때 노랫말 속 라임을 놓치지 않으려 한 점을 찾을 수 있다. 무기‘력’과 헤매‘려’가 그 증거다. 단순히 영화 대사나 줄 글처럼 노래를 번역하는 게 아니라 번역하는 언어가 실려있는 매체의 특성도 고려한다는 점 덕분에 번역을 더 정밀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broken balance can no longer tell what’s wrong and right”
이 망가진 거울 이제 뭐가 옳고 그른지도 모르겠어.
영어에는 balance 뜻이 두 가지이다. ‘균형’과 ‘저울’. 반면에 한국어로 balance는 보통 ‘균형감’으로 해석된다. 나도 처음에 당연히 ‘망가진 균형감’이 옳고 그름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균형’이라는 말을 ‘저울’로 바꾸고 나니 스텔라장의 본래 의도와 가까워졌다. 균형 잡힘의 여부나 옳고 고름의 정도를 따지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균형을 판단할 수 있는 저울 자체가 망가졌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판단 자체가 서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어 표현에 ‘저울’이란 뜻이 없어도 영어 본래의 의미를 가져오는 것이 원작자의 의도에 맞물린다면 과감히 단어를 그르고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나 올바르게 해석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가가 타인의 작품을 음미하는 데 훨씬 도움을 준다.
“what gives your little heart that bravery to face today?”
네 조그만 마음이 용감하게 오늘을 맞서게 하는 건 뭐야?
‘heart’는 직역하면 ‘심장’이다. 이를 두고 스텔라장은 황석희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심장’ 대신에 ‘마음’을 택한 이유가 있으세요?” 이에 황석희는 “영어를 정말 잘하는 사람은 여기다 심장을 써도 안 어색하거든요?”라고 답한다. 답변을 들은 스텔라장은 더 긴 답이 필요하지 않고도 공감의 리액션을 덧붙인다. 영어에서는 ‘heart’는 신체적 기관인 심장뿐 아니라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으로 한 번에 쓰인다. 하지만 한국어에서 ‘심장’은 신체적 기관을 칭하고 다른 상징적 표현으로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래서 황석희도 심장이 누굴 맞선다는 표현은 한국에 없다고 하며 ‘심장’ 대신 ‘마음’으로 번역한 것을 설명한다. 아주 직역투인 것은 이상함을 바로 알아챌 수 있지만 교묘하게 애매한 직역들이 있다. ‘heart’도 통용적으로 많이 쓰이는 친근한 표현이다 보니 직역과 번역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역시 한국인 정서에는 ‘마음’이 더 와닿는다. 내 ‘조그만 심장’은 심장의 크기만을 가늠하게 하지만 ‘조그만 마음’은 이 어려운 세상에 맞서서 앞으로 삶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그려보게 한다.
사실 두 사람의 열성적인 팬은 아니다. 평소 보통의 마음에 존경하는 마음을 더해 가지고 있는 정도다. 이 둘에게 위로를 받고 감탄을 외친 순간이 확실히 존재한다. 스텔라장이 노래할 때 언어마다 머금은 온도가 다르다. 한국어 노래할 때는 옆집 언니가 가려운 구석을 시원하게 긁어주며 잔잔하게 위로해주는 느낌이 나고 영어로 노래할 때는 당당하고 멋진 커리어 우먼이 내 앞길을 응원해주는 느낌이 난다. 그리고 프랑스어로 노래할 때는 우아하고 고풍적인 그의 목소리 덕분에 달콤한 낮잠 속으로 미끄러지는 기분이 든다. 세 가지 언어로, 어쩌면 더 많은 언어의 방식으로 노래하는 스텔라장이 전하는 노래의 물결은 평생 녹슬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석희의 번역은 단번에 따라웃을 수 없다거나 공감할 수 없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같은 시간에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소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덕분에 울고 웃은 적이 많다. 그의 언어 감각이 1%도 닳지 않았음 한다.
스텔라장의 목소리가 있다면 나는 언제고 마음이 너른해질 수 있고 황석희의 번역이 있다면 간단한 것도 다차원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들은 언어의 장벽 따위 결코 방해요소가 작동하게 두지 않는다. 그 든든함이 몸서리치게 와닿는 날이면 스스로 언어에 대한 욕심까지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