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셔터가 내려가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 그곳에는 무엇이 남을까.
가게와 골목, 오래 쓴 집기들은 그대로 있지만 사람의 활동이 멈췄다는 이유로 그 공간은 비었다고 여겨진다. 쓸모를 판단하는 기준도 대개 인간의 필요에 맞춰져 있다. 신유물론은 이 익숙한 시선에 질문을 건넨다.
인간의 삶은 수많은 사물과 환경에 기대어 이루어지고, 그 존재들은 사람이 움직이고 관계 맺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쇠퇴한 시장을 다시 살펴보는 일은 그곳에 남아 있는 존재들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관계의 가능성을 살피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생활용품의 강연 시리즈 ‘시장에 선 철학자’는 백운시장에서 이런 질문을 함께 나누는 자리다. 이곳에서 새로운 활동을 꾸리려면 공간을 어떻게 쓰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떤 관계를 맺을지 생각해야 한다.
이번에는 오이코스 인문학연구소의 심귀연 소장이 신유물론을 주제로 백운시장을 찾았다. 익숙한 시장을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며, 이곳에서 함께 살아갈 방식을 묻는 시간을 가졌다.

1. 시장에서 다시 묻는 공생의 조건
인간끼리만 잘산다고 세상이 돌아갈까? 심귀연 소장은 우리가 매일 드나드는 ‘시장’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공생을 읽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상인과 손님이 왁자지껄 물건을 사고파는 현장. 자세히 보면 그 안엔 농산물을 키워낸 토양과 날씨, 운송 수단과 각종 도구까지 빽빽하게 얽혀 있다. 공생을 인간만의 리그로 한정하던 시각을 깨고, 우리 삶을 밑받침하는 비인간 존재들로 시선을 넓히자는 게 이번 강연의 핵심이다.
심 소장은 신유물론의 눈으로 인간과 사물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는지 풀어냈다. 배추, 저울, 쓰다 버린 옷가지와 비닐봉지처럼 익숙한 사물들이 등장했다. 사물의 가치를 ‘인간에게 유용한가’로만 따지던 오만을 내려놓고, 존재들이 맺는 관계 자체에 주목하자는 얘기다.
어려울 때 새벽 시장을 찾으면 치열한 사람들의 숨결에서 힘을 얻곤 했다는 심 소장. 한때는 사람이 떠난 빈 거리에서 생명력이 깎여 나가는 듯한 쓸쓸함을 느꼈다. 하지만 닫힌 셔터와 덩그러니 남은 물건들을 바라보며 문득 시장의 활기를 오직 ‘사람의 활동’으로만 가둬두었던 자신의 시선이 좁았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 시장식 관계 맺기가 누구에게나 쉬운 건 아니다. 가격표가 명확하고 타인의 개입 없이 쇼핑하는 마트가 훨씬 편하고 공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장에서는 상인의 권유에 매번 답해야 하고, 옆 손님이 받는 덤을 못 받으면 왠지 손해 본 기분도 든다. 정확한 셈을 선호하는 이들에겐 이런 불확실성이 꽤나 피곤한 변수다.
“시장에 오면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덤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많이 가져갔는데 저는 못 가져가는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가장 공정한 것은 마트라는 생각을 그때는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점점 공부를 해가면서, 우리가 계산 속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 그런 것들이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데 너무 정확하고 합리적인 것들만 따졌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시장에 익숙해지면서 숫자로 다 설명되지 않는 관계의 가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단골’이다. 자주 얼굴을 마주하다 보면 서로의 식습관부터 집안사정까지 자연스레 스며든다. 외상을 터주거나 음식을 나누고,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손님이 대신 가게를 지키기도 한다. 거래가 쌓여 신뢰가 되고, 서로의 일상에 깊숙이 관여하는 관계가 되는 셈이다.
물론 덤으로 대표되는 이 밀착형 교류가 모두에게 편한 건 아니다. 누군가에선 상인의 호의조차 부담스러운 오지랖이 된다. 심 소장은 마트 역시 수많은 비인간 존재와 관계가 얽힌 공간임을 짚어내며, 관계가 어색하고 불편할 땐 그 배치를 가만히 살피고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시장 안의 경쟁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상인들은 신뢰를 쌓고 도우면서도 결국 생계를 위해 서로 겨뤄야 한다. 경제적 자립 없이는 남을 돕겠다는 선의도 허공에 떠돌기 쉽다. 다만 성취를 향한 욕망이 반드시 남을 짓밟는 방식일 필요는 없다. 성취의 결실을 나누는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 내야 한다.
“돈 없으면 나중에 주라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물건을 사가서 음식을 만들어 그 상점에 갖다 주기도 하고, 이런 관계가 형성되는 게 단골이라고 얘기하는 거죠. 주인이 ‘내가 지금 병원에 가야 되는데’ 그러면 ‘내가 가게 보고 있을 테니까 갔다 오라’고 해요. 밥 먹을 때 가면 라면 끓여 먹고 있잖아요. 그러면 단골들은 같이 젓가락 얹어서 라면도 먹고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온 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겠죠.”

2. 배추 한 포기를 둘러싼 촘촘한 세계
지역마다 시장의 풍경과 물가가 다른 이유는 단순하다. 토양, 수질, 햇빛, 기후 같은 자연환경과 물류 시스템등이 결합된 결과다. 지역 시장은 결국 그곳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오랜 시간 얽히고설키며 만들어낸 생태계인 셈이다.
배추 농사만 봐도 그렇다. 농부가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도 날씨가 안 도와주거나 병충해가 돌면 수확은 엎어진다. 농산물 가격도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조건들에 의해 출렁인다. 성패를 오롯이 ‘개인의 노력’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다. 태어난 환경처럼 선택할 수 없는 조건들이 삶을 규정하듯, 성공과 실패를 말할 땐 이런 우연의 요소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가격을 결정할 때 날씨도 시장에 참여를 합니다. 내 노력이라고만 할 수가 없는 거죠.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저는 할 수가 없었던 거고, 다행히 저는 이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마침 여기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거죠. 그런 운이 많이 작용하는데, 그렇다고 그 운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제 노력과 상관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제 삶 자체가 우연에 의해서 결정되는 거라고 얘기하는데, 그 우연에 제 노력 한 스푼을 더한 거죠.”
냉장고, 비닐, 박스 등 너무 익숙해서 배경 취급을 받는 사물들도 사실 우리 삶을 조용히 지탱한다. 시장은 이 비인간 존재들이 복잡하게 움직이는 현장인데도, 우리는 착각하곤 한다. ‘인간이 이 세계를 다 만들었다’고. 인간이 사물을 쓰는 관계뿐 아니라, 사물이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역역학도 함께 읽어내야 한다.
심 소장은 그 예시로 ‘저울’을 들었다. 저울은 거래의 신뢰를 중재하는 핵심 매개다. 하지만 저울 눈속임이나 오류가 발생하는 순간, 상인과 손님 사이의 신뢰는 단번에 깨진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조차 사물이라는 존재를 빼놓고는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조건과 관계를 완전하게 통제하며 살 수는 없다. 농사나 어업을 모르는 도시인이 배추와 생선 뒤에 숨은 관계망을 다 읽어내긴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내가 모르는 존재가 지금도 이 판에 개입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태도다. 심 소장은 주어진 관계를 돌아보고 바꿀 힘은 인간에게 있지만, 세상만사를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은 버려야 한다고 전했다.
“저는 사실 농사를 직접 지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검색을 했어요. 배추가 키워지기 위해서 어떤 과정이 있고, 뭐가 필요하지? 감으로는 잡지만 이렇게 문장으로 정리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적어봤지만, 아마 농부들은 이걸 보면서 더 많은 비인간 존재들을 소환해 내겠죠. 제가 모르는 생선 같은 경우는 더 까마득하더라고요. 용어들이 더 어려워서 플랑크톤도 저한테는 쉬운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3. 배추는 언제 쓰레기가 되는가
밭에서 자란 배추가 마트에서 상품이 되고, 식탁에서 음식이 되었다가, 결국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과정. 심 소장은 이 지점에 질문을 던졌다. 인간의 쓰임을 다하고 부패하기 시작한 배추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까?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서도 미생물은 폭발적으로 활동하고 물질은 계속 변화한다. 인간의 이용 가치는 끝났을지 몰라도, 배추는 또 다른 차원에서 관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어떤 이에게 버려진 물건이 다른 환경에선 새로운 쓰임을 찾듯, 사물의 가치는 불변하는 게 아니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
“버려진 거라는 것은 지금 현재 나에게 필요 없는 거잖아요. 지금 이 책을 오늘은 아주 소중하게 북커버에 싸서 왔지만, 집에서는 버려져 있을 수도 있어요. 다른 책이 제 손에 있는 거겠죠. 관계의 변화예요. 쓸모없음이 아니라 지금 현재 저와 관계를 안 맺지만 나중에 다시 관계를 맺게 될 거란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하게 되는 거예요.”
즉, ‘쓰레기’라는 이름 역시 인간이 편의상 붙인 분류일 뿐인 것이다. 당장 나한테 필요 없다고 해서 그 존재의 가치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심 소장은 상품, 음식, 쓰레기라는 손쉬운 라벨링 뒤에 숨은 관계를 살피고, 익숙한 이름으로 대상의 가능성을 가두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버린다’는 말 대신 ‘돌려보낸다’는 표현을 써보자고 제안했다. 언어가 바뀌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계 맺는 방식도 바뀐다. 한 번 획득한 개념에 대상을 억지로 껴맞추기보다, 변화하는 관계에 맞춰 이해의 틀을 끊임없이 수정해야 한다.
플라스틱 문제도 마찬가지다. 생태적인 삶을 산답시고 플라스틱을 ‘절대 악’으로 규정해 무조건 배척하는 건 얕은 생각이다. 누군가에게, 예컨대 스스로 음료를 마시기 힘든 환자에겐 플라스틱 빨대가 대체 불가능한 필수 도구가 된다. 비닐봉지 역시 필요할 때 요깃거리로 쓰고, 무분별한 낭비를 경계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이 쓰이는 ‘맥락’이다.

4. 공생을 위한 차이와 한계
인간과 비인간이 아무리 얽혀 있다 한들, 서로의 차이까지 뭉뚱그려지는 건 아니다. 인간, 동물, 기계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 고유한 차이를 인정해야 비로소 건강한 관계가 시작된다. 남을 도울 때도 내 기준을 강요하기보다 상대가 처한 조건부터 살피는 게 먼저다.
특히, 심 소장은 ‘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체를 하나의 거대한 의지를 가진 집단으로 착각하면 개인의 목소리는 짓눌린다. 저마다 다른 목소리와 결을 가진 존재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내는 ‘집합체’로 봐야 맞다. 모두가 모든 걸 잘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서로 모자란 곳을 채워가면 된다.
“공동체를 전체주의로 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제가 공동체 연구를 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게 바로 이 지점이었어요. 공동체를 위해서는 희생해야 된다는 말들도 굉장히 많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집합체다. 무수히 많은 목소리들, 무수히 많은 것들이 모여서 예기치 못하는 색깔들을 가지게 될 거라고 얘기하는 거죠. 그 색깔들이 어떻게 무늬로 만들어질지 우리도 모르는 거예요.”
어디까지 관계를 맺을지 선을 긋는 ‘한계 설정’도 공생의 필수 조건이다. 인간은 모든 일을 다 할 수도, 모든 관계를 끌어안을 수도 없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가능성을 내려놓는 뜻이다. 때로는 특정 관계를 잠시 보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를 파괴하는 관계라면 단호하게 끊어낼 줄도 알아야 한다. 물론 상황이 바뀌면 다시 이어질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
돌봄이란 결국 취약한 존재들이 서로에게 기대는 일이다. 보호하는 자와 보호받는 자의 위계질서를 깨고, 서로의 의존성을 인정할 때 진짜 돌봄이 시작된다. 비인간 존재와의 공생을 고민하는 일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일과 정확히 닿아 있다.
“다만 우리가 이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죠. 함부로 쓰지 말자. 사물이든 인간이든.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오래. 그러다가 나하고 결이 안 맞으면 관계가 끊어지고, 어느 날 그리워요. 그럼 다시 관계가 맺어지는 거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관계가 나를 훼손시킨다. 그 관계는 지속하면 안 되는 거예요. 사물이건 뭐건.”

5. 타자를 이해하는 번역의 과정
질의응답 시간에 흥미로운 질문이 나왔다. “산이 나를 부른다”는 산악인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에 대한 것이었다. 질문자는 처음엔 인간의 욕망을 자연에 투사한 허세쯤으로 여겼지만, 직접 암벽을 오르며 바위의 촉감을 느낀 뒤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진짜 자연과의 교감에서 나온 표현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다.
심 소장은 인간이 자연과 맺은 감각적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런 표현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연이 보내는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응답하는 과정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표현으로 ‘부른다’라는 표현을 쓸 뿐이지, 어쨌든 산이 부르기는 하니까 갔었고, 그 사람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서 받아들이고 응답했을 거예요. 그런데 아마 산이나 나무나 숲은 다른 식으로 뭔가 자극을 줬겠죠.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게 현상학적 방법인데, 현상학은 이미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듣지 못했던 사실을 다시 발견하게 해주는 거잖아요.”

비인간 존재를 연극으로 표현할 때의 어려움을 토로한 질문도 있었다. 인간의 몸짓으로 사물을 표현하다 보면 결국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다시 덮어씌우게 되지 않느냐는 고민이었다. 심 소장은 단호하게 답했다. “타자를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물의 낯섦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태도가 핵심이다.
심 소장은 집에서 함께 사는 고양이와의 소통을 예로 들었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한국어로 1:1 직역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행동과 반응을 눈에 담다 보면 오가는 감각적 이해가 생긴다. 상대를 나와 똑같은 존재로 착각하지 않으면서도, 관계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이다.
물론 사물을 인간의 언어로 대변하는 과정엔 필연적으로 ‘오역’이 개입한다. 내가 해석한 틀을 절대적인 정답으로 고정해선 안 된다. 대상이 가진 고유한 존재 방식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내 감각과 기대를 일방적으로 투영하는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사물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물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하는데, 결국 제 언어로 번역한 거잖아요. 제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거거든요. 이 부분을 어떻게 해야 될까? 이게 한계인 것 같아요. 일단 한계라고 받아들여야죠. 우리가 낯설고 기괴하다고 느끼는 것을 좀 받아들이는 거예요. 우리는 어차피 타인의 몸도 낯선 몸인데 사물의 몸은 얼마나 낯설까? 똑같이 이해는 못 하지만 가까워질 수는 있으니까요.”
심 소장이 강연 내내 강조한 건 결국 하나다. 관계를 조심스럽게 맺고, 그 관계가 끊임없이 변할 수 있음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사람도, 사물도 단 한 번의 판단으로 규정짓지 말고 서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계속 관찰해야 한다. 생태적인 삶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오늘 내 일상에서 만나는 존재들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일이다.
한편, 이번 자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한 '길위의 인문학' 사업에 선정되어 진행되었다. 또한, 문화예술교육 전문단체 '아트다락'과 쌍문동 카페 '숲오'가 협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