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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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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취향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상대가 쓰는 물건, 입는 옷과 주얼리, 자주 가는 공간, 휴식 시간의 취미를 종합해 그 사람의 ‘취향’을 짐작한다. 글을 읽는 동안 나 역시 취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나는 어떤 색을 선호하지?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애용하지? 좋아하는 시간대와 계절은? 나에게는 일상이 되어버린 바람에 무심코 지나쳐 온 것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취향을 짐작할 때 가장 쉽게 사용되는 단서는 옷차림과 소지품이다. 통성명도 하지 않았지만 강의실에서 몇 번 마주친 학생이나 우연히 행선지가 같아서 불편하지만 계속 눈이 마주치는 지하철 맞은편의 사람처럼. 이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알 길이 없지만, 겉으로 드러난 단서들로 우리는 그들의 취향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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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간이라면 어떨까. 공간이야말로 그 사람과 어느 정도의 친밀함이 있어야만 알 수 있는 영역이다.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간 이가 어떤 감각과 분위기를 지닌 공간을 좋아하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렇기에 공간은 누군가의 삶 속의 깊숙한 부분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건은 경제적 여유나 현실적 제약에 따라 차선책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사람의 취향을 100% 대표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공간 역시 돈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야외의 개방된 공간이나 부담 없이 가는 카페와 도서관만 보더라도 그 사람이 가진 감도나 취향을 짐작하기란 제품보다 훨씬 정확한 편에 속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던 중 나는 공간, 그중에서도 카페에 관해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일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카페로 향하는 사람이다. 일이 있을 때는 집보다 밖이 집중하기 좋다는 이유에서, 일이 없을 때는 지인과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보니 제법 많은 카페를 다녀봤고 내가 좋아하는 공간의 기준도 나름 분명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두 번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반면 좋은 카페를 만나면 요일별 아르바이트생의 얼굴까지 외울 만큼 자주 방문한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서두를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걸까.

 

 

 

개방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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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카페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개방감이다. 사전적 정의로는 ‘공간이 개방된 느낌’이라고 하지만, 느낌이라는 것은 결국 몸의 감각으로 전해지는 기운이기에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나에게 개방감이란 자리 간격이 넓어 지나다니는 데 비좁음을 느끼지 않고, 층고가 높아 숨이 탁 트이며, 통창 유리를 통해 시선이 밖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 모든 조건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나는 그 공간의 개방감을 느낀다.

 

감성 카페라는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곳 중에는 막상 들어가 보면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에 초대되지 않는 손님처럼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런 공간은 한 번이면 족하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의도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옆 테이블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간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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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창 유리는 나에게 거의 필수 조건에 가까운 옵션이다. 나는 카페 내부에서 바라보는 외부 풍경까지도 그 공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작은 규모의 카페라도 시선을 둘 수 있는 창이 있다면 웬만해서는 협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낮에는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듯한 따사로운 햇살을 느낄 수 있고, 밤에는 창에 비치는 조명과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특히나 사람 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바깥 풍경이 자연보다 도시인 게 좋다. 사람 사는 골목에 위치하거나 번화가의 중심에 있는 곳이 좋다. 건물이 서로 맞붙은 시티 뷰도 나쁘지 않다. 간혹 SNS에서 화제가 된 대형 카페를 찾으면 대개 물멍 뷰(여기서 물은 대개 바다가 아닌 하천이나 저수지다)나 논밭 뷰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면 주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고 카페 바로 앞에 저수지나 논밭만 덩그러니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역시 십 분쯤 앉아 있으면 금세 따분함을 느끼고는 핸드폰을 들게 만들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다만 건축상을 받은 대형 카페라면 말이 다르다. 그곳에서는 내부 구경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흐른다. 물론 그곳 역시 개방감은 전제되어야 한다.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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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개방감이 좋아도,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카페 내부에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다. 사람도 인상이 좋으면 괜히 성격도 좋을 것 같고 나와 말도 잘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가. 카페 역시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인테리어가 조화롭다면, 그곳에서 마시는 음료의 맛은 왠지 더 좋을 것 같다는 착각을 들게끔 만든다.

 

글을 작성하기 전, 내가 좋아하는 카페들의 사진을 쭉 훑어보았다. 사방이 온통 하얀 인테리어로 깔끔하고 정돈된 인상을 주는 곳도 있었고, 원목으로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내는 곳도 있었으며, 스테인리스 스틸을 활용해서 감각적인 느낌을 주는 곳도 있었다. 색도, 자재도, 분위기도 전부 다른 공간들 속에서 한 가지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곳곳에 조화롭게 배치된 오브제들의 뛰어난 감도였다. 이를테면 기본적인 조명부터 직접 키우는 화분,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된 LP판과 서적, 하다못해 커피 한 잔을 내어줄 때 아래에 놓인 작은 티코스터까지. 사소하지만 하나하나 고심해서 고른 흔적들이 묻어나는 오브제들이 공간 전체의 인상을 완성한다.

 

그런 오브제로 가득한 공간에 있노라면 마치 한 사람이 일구어낸 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 머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공간의 일부를 이루는 물건이야말로 그 물건을 들인 사람의 취향이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색, 소재, 원단, 기능, 그가 추구하는 미덕까지 이 모든 것이 오브제 하나에 농축되어 있으니 말이다. 나는 종종 떠올린다. 이 물건이 이 공간에 들어서기까지의 여정을 말이다. 그것을 고를 때 그는 어떤 마음과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 위치에 두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렸을까. 그렇게 상상하다 보면 그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있는 착각까지 든다.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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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여기까지 왔다면 그 카페는 이미 내가 자주 가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노이즈 캔슬링 덕분에 이 소음 항목은 필수 조건이라기보다는 보너스 점수에 가깝다. 하지만 카공처럼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는 소음이 굉장히 거슬릴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제조 공간이 손님 좌석과 맞닿아 있어서 제조 소음이 에어팟을 뚫고 들어오는 경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비트와 템포 모두 빠르고 음량까지 높아 앞사람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경우, 웨이팅을 할 정도로 손님이 많은데 공간이 울려 대화 소리 자체가 소음이 되는 경우, 진동벨이나 주문 화면의 알림음이 요란하게 울리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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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적당한 소음이나 좋은 음악 선곡으로 오히려 점수를 얻는 카페들도 있다. 음악을 틀지 않았음에도 소리가 울리지 않아 대화 소리가 잔잔한 백색 소음처럼 느껴지는 카페. 혹은 내 플레이리스트 속 노래들이 흘러나오거나 선곡이 너무 좋아서 에어팟을 빼고 자동으로 음악을 감상하게 되는 카페. 전자의 경우에는 반가운 마음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곡을 고른 직원에게 괜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속에서는 이미 카페에 대한 애정을 품게 된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처럼 ‘이 곡만 듣고 나가야지’라는 핑계로 나도 모르게 머무는 시간을 자꾸만 늘리게 된다.

 

후자의 경우에는 핸드폰의 음악 인식 기능을 항시 대기해 두었다가 좋은 음악은 검색해서 재빨리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한다. 그리고 나는 이 행위를 ‘음악을 주워 온다’고 표현한다. 이 행위는 주로 일반 카페보다 LP 카페(혹은 바)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게 주워 온 음악 중에는 여전히 자주 듣는 곡들도 있다. 기억나는 곳 몇 군데만 말해보자면 을지로 평균율에서 들었던 ‘Don’t Play That Song – R.B. Greaves’와 하우스오브바이닐 망원점에서 흘러나왔던 ‘아침만 남겨주고 – 김현창’이 있다. 카페의 음악은 있으면 좋고 없다 해도 그만인 요소이지만, 결국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상기되는 카페는 손님을 단골로 만드는 법을 이미 알고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카페를 고르는 기준을 한참 늘어놓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수많은 공간 중에서도 카페라는 장소 하나를 고르는 것조차 이렇게나 사람의 취향이 듬뿍 들어가는 일인데,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취향의 영역을 지나쳐왔나. 그러니 본인의 취향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어렵다면 주변에 있는 것들부터 둘러보자. 지금 손에 쥔 핸드폰, 지금 입고 있는 옷, 지금 머무는 공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선택할 때 본인이 설정한 나름의 기준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돌아보자. 그러다 보면 결국 본인이 좋아하는 것, 추구하는 것, 원하고 닮고 싶은 것들은 무엇인지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취향을 안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신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순간을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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