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예술가들은 종종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궁핍한 삶을 보내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곤 한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폴 고갱, 더 말할 것도 없는 빈센트 반 고흐 등등. 그들이 빛나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독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미래를 아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내곤 한다.
반면 생전에 충분한 명성과 업적을 인정받으며 대성공한 인물도 있다. 스페인의 천재 건축가. 바르셀로나를 빛낸 대표적 인물. 에스파냐 카탈루냐 출신의 건축가. 바로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파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며 국제적 찬사를 받기도 했으며, 바르셀로나 건축가 협회 회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대에 와서도 반박의 여지가 없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건축가에 대해서 누구도 집착적으로 증명하려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가우디가 영면에 들고 100년이 지나서야, 그의 삶과 작품을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전기가 출간되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면 시중에 나와 있는 도서들은 대체 무엇이냐 물을 수도 있다. 해당 글에서는 바로 그 차이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려 한다. 아르만드 푸치(Armand Puig i Tarrech)가 집필한 책과 기존 도서의 차별점.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이 '본격적인' 전기라고 보는 이유.
그것은 세 가지로 구성된다.
가우디의 핵심, '종교성'을 포착한 저자
가우디라는 인물에게서 가톨릭을 빼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가톨릭 신자였으며, 동시에 소아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였다. 어릴 적부터 서 있기도 힘들어하며 지팡이를 들고는 했다. 류마티스는 병의 특성상 완치가 없으며 꾸준히 관리해야만 한다. 그럼데도 불구하고 가우디가 치열한 예술가의 삶을 이어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종교적인 힘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기존의 책들에서는 핵심이나 다름없는 '종교성'이 깊이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가톨릭 교리를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는 종교적인 내용을 단기간에 깊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 「안토니 가우디, 삶과 일」의 저자는 작가이자 가톨릭 신부이기도 하다. '아르만드 푸치'는 당대 신약학자로서 예수 연구의 권위자이며, 교황청 산하 성좌 학문기관 질서 평가 홍보국장직을 맡고 있다. 또한 이미 가우디의 대표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신학 자문 위원으로 활동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가우디를 제대로 해석하기에 매우 유리한 이력을 갖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자료의 반복 속에서, 같은 고향 출신의 등장
현재 콘텐츠 시장에서 가우디의 자료는 쳇바퀴의 햄스터처럼 굴러간다. 이미 공개되어 있는 내용들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추천의 글을 쓴 이화여대 건축학과 임석재 교수에 따르면, 스페인 유학 경험이 있는 한국의 건축계 인사들마저도 이렇다 할 새로운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르만드 푸치(저자)는 가우디가 활동했던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 출신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그는 바르셀로나 산 파시아 대학 아테네오(Ateneu Universitari Sant Pacia) 신학부 학장과 총장을 역임했다. 즉, 일반인들보다 미공개 자료나 지역 사료에 접근하기 유리한 위치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르만드는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 전역을 샅샅이 뒤지며 자료를 찾는 열정까지 보였다. 여러 기관과 개인을 통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문서들을 열심히 모았고,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이 바로 해당 도서다.
저자가 자료 조사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레우스 출신이라는 사실은 다른 많은 곳에도 명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의 공증인 에르메네질드 마르티의 입회 아래 작성된 문서(1878년 2월 14일), 레우스의 공증인 플라시드 바세다스가 작성한 문서(1878년 3월 14일), 1910년 열린 가우디 작품 전시회 카탈로그, 가우디가 1926년 6월 7일에 입원하고 6월 10일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된 바르셀로나의 산타 크레우 병원 등록부······.
(21-22p)
책에서는 이미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가우디의 출생지를 21줄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리우돔스 출신이라는 반박 견해까지 두 페이지가량 이어진다.
해당 저서의 주석만 무려 30페이지가 넘는다는 점에서, 더한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웬만한 건축 전공자들만큼 충실한 전문성
건축가의 생애나 예술적인 아름다움에만 집중하다 보면 건축 자체에 대한 설명은 부실해질 수 있다. 이는 몹시나 안타까운 일이다. 가우디의 건물은 당시의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계도에서부터 흘러넘치는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면 건물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다행히도 저자는 건물의 작품성과 조형성에 대한 탐구도 놓치지 않았다. 건축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건물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수준 높은 이해도를 보인다.
책에서 특히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간두셰르의 데레사 수녀원 학교」에 대한 설명이었다. 새로운 성장을 앞둔 데레사 수녀회는 많은 여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커다란 학교가 필요했다. 그렇게 설계 작업은 당시의 다재다능한 건축가였던 가우디에게로 넘어왔다. 그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영성에 담긴 상징성에 깊이 공감하며, 이것을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가우디는 설립자의 교육적 의지와 지식도 충실히 수용하면서, 환기가 잘되어 매우 위생적인 건물을 설계했다. 또한 그는 빛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설계했는데, 이는 창문의 수와 배치 방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정면 파사드가 있는 건물 1층에는 36개의 창문이 있으며, 이것은 세 개씩 12세트로 되어 있다. ······. 이러한 구성으로 인해 학교 건물은 '성' 혹은 '요새' 같은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110p)
학교 건물을 요새처럼 짓는 것은 당시에도 흔한 편이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중세 고딕 양식을 부활시키는 것이 유행이긴 했으나, 가우디처럼 상징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경우는 드물었다.
창문과 네 개의 탑, 총안銃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바로 옆 페이지의 건물 사진을 몇 번이나 번갈아 봤다. '오, 멋있는 건물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던 페이지가 구체적인 정보들로 인해 더욱 활기를 띠었다.
종교, 전기, 건축
가우디에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지상에서의 사명이었듯이, 아르만드 푸치에게도 '가우디 전기' 집필이 하나의 소명이었던 것 아닐까? 같은 가톨릭 신자였으며, 가우디가 활동하던 지역에서 태어났고, 건축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저자. 우연처럼 보이는 여러 조건과 집요한 탐구가 만나 한 권의 기념비적인 전기가 탄생했다.
한 사람의 인생, 그리고 삶의 궤적에 남겨진 성스러운 작품들.
그 모든 내용이 담긴 양장본을 덮고 나면, 당신은 가우디의 옆집에 살던 이웃보다 그를 더 잘 알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