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일요일이었다. 일찌감치 집을 나서 1달 만에 또 머리를 깎은 뒤, 성북 04를 타고 성신여대로 넘어갔다. 여전히 햇발은 강했으나 가을바람이 아련듯 불어오다. 까딱 못 알아볼 뻔한 바람의 뒤꽁무니를 치어다보았다, 초가을은 온 지 모르게 지나쳐버리기 일쑤였으니까. 성신여대의 카페에서 작업을 좀 하다가는 미아리 고개를 걸어 올랐다. 여간해선 버스로 지나치기 십상인 미아리 고개 꼭대기엔, 머리 위로 차가 지나다니는 다리 밑에 생뚱하게도 극장이 있었다. 오늘의 연극, ‘페이백’은 이곳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 막을 올린다.
극장의 위치가 위치이니만큼, 들어가기 전부터 호기심이 잔뜩 당긴다. 내부는 그리 넓지 않은데, 마치 다리 밑에 벽을 쳐둔 느낌. 머리 위로 차 지나는 소리가 들리려나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이곳에 극장을 처음 세운 사람은 무엇을 기대하며 삽을 펐을지 궁금해지다.
오늘 연극, 페이백은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묘사하며, 상생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기를 권한다. 시놉시스를 읽곤 잔뜩 긴장했다. 흔한 교훈으로 빠지면 지루할 테고, 교조적 태도로 나선다면 반감이 앞설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과도한 기우에 불과했고, 이 연극은 양측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는 판단을 독자에게 일임했다. 그래서 편안하고, 흡족한 연극이었다.
연극의 주된 갈등 구도를 보통 보편의 육식주의자와 신념을 지닌 채식주의자의 대립이라고 하자. 그러나 이 연극은 어느 한 가지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그저 냉정하게 그들을 그려낸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니 연극은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내 머리에 자리한 ‘핍진성 레이더’가 잠잠히 쉬었고, 그러므로 나도 편안히 눈앞에 펼쳐지는 것들을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더없이 좋았다고 하겠다.
여고생 하나가 할아버지 댁을 찾는 것으로 극이 시작했다. 양계장을 운영하는 할아버지는 손녀를 위해 오늘 닭 한 마리를 잡겠노라 으스댄다. 손녀는 수년간 채식을 유지해 왔기에 기겁하지만, 학교에 제출할 체험일지 때문에 도축 과정을 직접 보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게 쉬울 리가 없지. 누구라도 튀겨진 닭이 아니라, 살아서 홰를 치는 닭을 보노라면 가책이 밀려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감정이 계속해서 가슴을 찔러대느라 버거워 외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주 오랜만에 어린 시절 생각을 한다. 시골의 장점으론 아파트 대신 전원주택에 사는 것을 꼽겠는데, 당시 우리 집은 400평이었다. 슈퍼마켓 하나를 제외하곤 그 어떤 편의시설도 없는 농촌이었지만, 그 기억은 선물 같아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풍경이 선하다. 물론 그 땅이 아직까지 남아 있지는 않다. 야금야금 팔다가는, 하마 예-전에 벌써 ‘카라마조프’ 돼버렸다. 아- 아쉬워라.
그래도 그때 마당 한 켠에는 자그마한 과수원도 있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담장 아래로 자두나무 하나가 있었다. 그 집터는 동네 사람들에게 “구 교회”라고 불리었는데, 새집을 짓느라 허물기 전에는 마당의 바른쪽에 폐허가 된 교회 건물도 있었다. 녹이 슨 종을 쳐보겠다고 철탑을 오르다가 야단맞던 풍경은 이제 희미하다. 그 앞에 윽수로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고 그 둥치에 진돗개를 묶어놓은, 전형적이지만은 않은 시골집 풍경이었다.
할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간단한 목공과 철공 정도는 직접 하셨던 것 같다. 나무로 직접 병아리 집을 지으셨고, 열저항이 높은 싸구려 전구를 여러 개 달면 겨울에도 따뜻했다. 거기다 병아리 100마리를 넣고 키워, 나 어머니 뱃속에 있을 적에 다 고아 잡수셨다고 전해 들었다. 덕분에 평균 신장 150cm에 달하는 소인국 우리 집에서 그나마 내가 남자 신장 평균에 달하는 기적을 일으켰을 것이다.
병아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갈 즈음까지는 계속해서 삐악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한 마리 300원짜리 노랑 뭉치들. 삐악거리는 게 듣기 좋아 한참을 물끄럼 바라보다가는 기다란 나무 작대기로 안을 휘휘 저으며 웃어대던 것이 기억난다. 순수 악이란 의도도 의식도 목적도 없는 악이었음을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느긋하고 무심하게 “그러면 아-들 죽는데이-” 하셨다. 쓰러졌다가 일어선 병아리가 갑자기 안쓰러워져, 작대기를 담장 바깥으로 던진 게 생각난다. 물론 할아버지가 다시 주워 오셨다. “이눔아, 힘도 장사다. 어케 담장 밖으로 던졌을꼬?”
병아리 100마리가 동시에 삐악거리는 것을 매일 아침 구경했다. 솔직히 다 비슷하게 생긴 놈 100마리가 우글거리는 통에 개중 어느 하나를 기억하겠단 심산은 월리 찾기보다 허황하다마는, 그런데도 어린 마음엔 오늘 눈길에 잡힌 저놈을 기억하겠다고 의미부여하는 게 그저 자연스러운 일인가 한다. 다음 날, 또 다음 날에도 유심히 째려보며, 저놈이 내가 기억하는 그놈이라 멋대로 생각하면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꼬꼬라 불렀다. 언제나 눈 돌린 곁엔 언제 오신 줄도 모르게 할아버지가 서 계셨는데, 할아버지에게 내가 저눔 이름을 붙여주었노라고 까불락거리던 것도 기억난다. 그래, 이렇듯 기억이 선하다. 그게 대여섯 살이었는데 말이야.
그런가 하면 병아리는 죽기도 많이 죽었다. 매일 아침 가보면 몇 마리가 구석에 대가리를 박은 채 가만 멈추어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바짓가랑을 두어 번 붙잡아 당긴들 무용하다. 할배는 무심하게 “다- 그런 기다” 하셨거든. 이렇듯 시크한 대구 남자들의 자연관 아래에서 자라난 셈. 그래서 내가 이따금 무정하단 소리를 듣는가 보오, 할배.
병아리 집 옆에는 싸구려 철근으로 만든 닭장이 있었고, 횃대도 그럴듯하게 놓여 있다. 성인이 약간 구부려야 하는 높이의 닭장이었고, 그 안에 칸막이 없이 10마리 남짓한 닭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이 놈들은 새벽 4시부터 운다. 아침을 알리는 게 아니야, 이것들은 새벽잠이 없는 거야. 그러나 바로 옆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울어 젖히는 게 시끄럽지도 않은지 암탉은 구석에 놓인 짚새기 위에 태연하게 앉아만 있고, 밑을 들추면 매일 같이 똥 묻은 알이 놓여 있다. 그래서 계란 후라이를 자주 먹는다. 어머니는 주로 내게 달걀을 꺼내 오라 시켰다. 닭똥이 묻어있어 만질 엄두를 못 내며 “으 할배, 지지야”라고 하소연을 해도, “허허- 씼거 무-면 돼” 하셨다.
닭장 옆에 가면 진득한 닭똥 냄새로 진동을 한다. 마당이 넓으니 어린 내가 마구잡이로 닭장 문을 열어도 누구 하나 상관하지 않었다. 그놈들은 내가 열자마자 거의 날다시피 빠져나와, 마당을 어슬렁거린다. 수탉은 퍽 고고한 것이 늠름하게 앞장서고, 그 뒤에 다른 닭들이 종종걸음으로 따른다. 나도 같이 따라가면서, 그들이 땅을 쪼는 것을 보았다, 지렁이를 잡아먹었다. 좋아서 만지려 다가가도, 이놈 시끼 벼슬을 홱 하고 돌아버리곤 했다, 내가 아침에 사료를 그리 퍼다 주었는데. 그래도 닭이 참 예쁜 생물이라고 그때 생각했다. 금빛이 도는 갈색 털에, 빨간 벼슬하며, 작은 구슬 안에 노랗게 째진 눈이라. 벼슬이 짧은 대신 얼굴이 오목조목하고, 늘상 앉아 알을 품는 암탉의 자세는 조신했고, 그 품이란 풍덩한 한복 치마를 두른 듯 푸지다. 지금 생각해도 닭은 참 예쁘다.
그러다간 그날이 왔다. 태중으로부터 100마리 하고도 차고 넘치는 삼계탕을 먹어왔다지만, 도축을 구경하는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할부지는 시크하게 웃으시며, 오늘 득이 삼계탕 묵는 날이데이- 하셨다. 토종닭 삼계탕은 엄청나게 맛있으면서도, “싸제” 삼계탕이랑은 맛의 유형을 아예 달리한다. 나는 좋아라 방방댔지만, 홰를 치는 닭을 보니 웃음기가 싹 사라진다. 닭들이 푸드덕거리는 중에도 할아버지는 모가지를 정확하게 탁- 번개처럼 낚아챈다. 어머니가 도마와 날이 시퍼런 칼을 준비해 두었다. 할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직선으로 척척 걸어오더니 도마 위에 닭 모가지를 쿡 누르고, 바로 칼을 들었다. 나는 할부지!! 하고 소리쳤다.
할아버지가 고개만 든 채 나를 본다. 닭은 여전히 온몸 비틀기를 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다. 그리곤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빨리 고통 없이 보내줘야 이 놈들도 편하다, 말씀하시자마자 목을 탁, 강하고 과단하게 내리쳤다. 단번에 깔끔하게 떨어진다. 솥에는 이미 물이 올려져 있다. 살짝 데치고 어머니는 털을 쫙쫙 뽑는다. 그날 나는 어른들 곁에서 괜시리 떼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무룩해져 삼계탕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설득하거나 다독이지 않는다. “그래, 묵기 싫음 묵지 말기라”, 하셨다. 냄새는 고소했다. 저녁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결국 몇 번 버팅기다가는 내 앞에 놓인 채 식어가는 삼계탕에 소금을 친다. 그리고 마셨다. 구수하면서도 끝맛에 단맛이 도는 국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그때, 아마 나는 이 딜레마를 받아들였다. 좋아하면서도 먹을 수 있는 거구나. 그때부터 닭장을 잘 가지 않게 된 것 같다. 사실 그때부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더 이른 것의 기억이 이리 선명한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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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썰이 길었네. 동물을 좋아하면서도, 일용할 양식으로 삼게 된다는 모순 및 양가 감정의 딜레마인 이 문제. 그러고 보면 인간은 참 희한한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종 간에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을 보면, 뭐랄까, 사랑의 화신 같다고나 할까. ‘세계에 사랑과 어둠을 뿌리고 다니는 우리 로켓단’들. 가끔 최상위 포식자인 곰을 향해서도 예쁘다고 다가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이건 엄연한 본능이라고 본다. 반대도 마찬가지일지는 몸소 동물이 되어보지 않아 말할 수 없지만, 이편 입장에서 논하자면 사랑하는 것을 먹을 수는 좀체 없는 법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한다는 건 책임과 고락을 함께하는 일이니까, 그러므로 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으로 연결되는 일.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가 사랑 앞에 두려움을 느끼어 그를 밀치게 되는 것은, 다른 존재의 고락이 내 안에 연결됨을 느끼는 동시에 그 뒤에 필연히 뒤따르게 되는 책임을 미리 겨워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비단 동물이 아니라 다른 것, 심지어 인간 이성에 대해서도 사랑의 이 한 가지 양상은 마찬가지 모습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 나는 언젠가부터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육식을 받아들인 이상 사랑의 자리에서 그들을 밀어내고, “좋아한다”고 잘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감, 나는 동물과 나 사이 유대의 거리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숱한 관계와 추억과 이별과 체념이 먼저 있어야 했음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이의 눈엔 이것이 언어도단으로 다가가리라는 것을 헤아린다만, 사랑하지 않는 자와 사랑하는 자의 눈이 같은 것을 바라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치의 고통을 대신하여 겪기로 작정한 그들 딴에는, 우리가 비정하게 보일 수밖에. 그러니 사랑이다. 난 그것까지가 사랑의 얼굴이라 생각한다.
일전 닭의 일화 말고도 마당에 풀어 놓고 키운 그 숱한 개와 강아지며, 마치 주막을 드나들듯 숱하게 왔다가 또 떠나는 길고양이들 하며, 어디서 날아든지 모르지만 마당에 눌러앉은 오리까지, 동물과 관련된 나의 일화는 셀 수 없다. 심장사상충이란 게 유명해지기 전에는 들개가 밤 몰래 씨를 뿌려 태어난 꼬물이 여덟이 하룻밤에 몰살되기도 했고, 수명이 다하여 죽은 성견의 자리에는 또 다른 개가 자리했으며, 매일 같이 인사하던 길고양이가 어느샌가 보이지 않아 궁금해질 즈음, 동네의 모 할머니가 시끄럽다고 밤중에 쥐약을 뿌려 그 씨를 말렸다는 이야기를 건너 듣는다. 이별이 많았고, 정을 주는 만큼 이별은 고통스럽다.
그뿐일까. 태풍이 몰아치는 밤과, 한 겨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 바깥의 문 없는 집에 웅크린 개를 생각함은 어떠했던지. 사랑하는 것은 연결되어버리는 일. 개를 집에 들이면 안 되냐고, 베란다에라도 올리면 안 되냐고 물어도 어른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묵묵부답인 그 얼굴의 완고함에 원망도 해보았으나, 할아버지 말씀은 이랬다. ‘사람은 날 때부터 집 안에 있어 약하지만, 쟤들은 안 그렇다고. 그러다가 딱해서 한두 번 쟤네를 지붕 아래로 피신시켜주면 그 다음 여름 태풍 때도, 그 다음 겨울 설한 때에도 개들은 그칠 줄 모르고 베란다를 향해 꼬리를 치게 될 거라고. 너한테는 배려겠지만, 쟤네한테는 새로운 괴로움이 되어버릴 거야. 끝까지 책임질 수 없으면, 냉정해져야 해.’ 이제는 그 말을 십분 이해한다. 그리고 아예 사랑이 샘솟지 않다면 몰라, 싹트는 사랑을 가슴으로부터 밀어내는 게 어떤 일인지를 기억한다.
오롯한 사랑이란 책임질 각오를 수반한다, 그것까지가 사랑이라 나는 ‘좁게’ 믿는다. 그러므로 사랑은 고민을 수반해 마땅하다. 끝까지 책임질 각오, 즉 머리와 가슴으로부터 용솟음치는 감정을 저울질하는 것. 그저 감정에 내맡겨서 될 일도 아니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스스로 책임을 받아들이는 일은 아름답지만, 다른 자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그 단어를 사랑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이다, 그 둘은 매우 밀접하니까.
할아버지는 개들을 집 안에 들일 생각이 없었다. 말 못 하는 짐승과 인간이 한 이불 덮고 살려면은 씻는 것부터 배변하는 것까지 하나하나 전부 다 짊어져야 할 일인데, 그 정도의 수고를 능히 져야 할 이유는 마땅치 않다, 그 사랑을 기꺼이 짊어지기로 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개들을 그저 방치하고만 있던 건 아니셨으니, 여름이면 지붕을 보수해 차양을 좀 더 길게 늘이고, 겨울이면 헌 이불을 가득 넣어두셨다. 그건 분명 좋아하는 마음의 일이다.
현대에 와서 자주 보이게 되는 육식과 채식의 갈등, 사육과 동물권 사이의 논쟁은 꽤 치열하다. 채식파는 완전 산업화됨으로써 갈수록 가혹해지는 사육·도축 환경을 지적하며 동물권을 빙자해 육식의 야만성을 비판하고, 육식파는 육식이 자연 본능이라 응수하는 동시에 장바구니 물가로 반문한다. 합의점이 없을 이상의 논쟁 사이, 공통의 대지가 없을 따름에는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만 이상의 일화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건, 이 다름이 결국 사랑의 유무에서 출발하리라는 의외의 사실이다. 나는 이 논쟁의 본질이, 어쩌면 이처럼 소박한 사실에 놓여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는 마치 개와 소의 차이에 대한 과거의 논쟁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개에 대한 사랑이 인제 와 보편화됨에 따라 슬며시 자취를 감췄지만 말이다. 유럽이 식용 개를 혐오하고, 인도가 소를 신성시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사랑해 버리는 순간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되는 것. 눈빛과 눈빛 사이 고통이 연결되는 일.
내게 있어 개는 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는 동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아기와 같듯, 동물에 대한 각자의 입장은 첨예히 다를 수 있다. 연극에서도 이러한 대립 구도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고스란히 구현되고 양측의 입장에 아무런 치우침 없이 그저 드러낸다. 판단은 우리의 몫으로 넘겨진다. 그래서 좋았다. 두 입장은 어느 한 가지의 일방적 타당함으로 ‘승리’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극 중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가시눈을 뜬 채로, 도축 당할 닭이 불쌍하지 않냐고 묻는다. 할아버지로서는 영문을 모를 일이다. 닭을 팔아 아들 키워 장가보냈고, 그 돈으로 손녀딸을 보았으니, 그 생계의 기나김과 자부심만큼 손녀의 흰 말은 아득히 멀리 있었으리라. 그의 뇌리에 닭은 이미 생계 수단이자, 가축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실로 닭을 불쌍하다 여길 수 있었다면, 그의 생계와 그 생계로 이루어진 그 삶은 지독한 자기 부정에 빠졌을 것이다, 손녀가 언급하기 한참 전에 말이다.
나는 이 문제에 사람의 심리적 방어기제가 강하게 자리해 있음을 생각한다. 그건 의식으로 쉽게 껐다 켤 수 있는 것도 아니리다. 다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감해지기를 택한 대가로써, 동물의 사유화 및 도구화가 그에 대한 합리화와 함께 순환 논리를 이루곤 끝없이 자가 증식될 수 있으며, 그 결과로써 인간은 제동기가 부러진 광차처럼 갱도의 아래로 끝없이 추락해 잔인함의 막장에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적 지점일 것이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온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닭을 살찌우게 하려고 목에 깔때기를 꽂고 사료를 때려 박았다. 마치 거위 간을 키우는 것처럼. 이 일화가 곧 이상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인간의 심리적 제약을 이해하지만, 그 결과까지 모조리 수용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입장은 지양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대립항, 이 맥락에선 채식파의 객관적 의의, 어느 한 가지 입장을 피력하고 보호하기 위한 자기 보존 논리가 아니이며, 그러한 논리로서는 부정키 어려운 가치중립적 의의가 발생하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논지가 좀 딱딱해졌는데, 쉽게 표하자면 ‘견제자의 필요성’ 정도로 풀어헤칠 수 있을 것 같다. 단, 그 반대에 있어서도 이 사안은 마찬가지로 적용되리라 생각한다, 잔인할 정도로 공평하게. 나는 인간 이성을 그리 낙관하지 않고, 모든 주체는 자신의 신념에 아주 밀접히 결부되어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성찰하기를 주문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과업으로서 기대될 수는 있으나, 범용히 기대하기는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립자, 안티테제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내게 채식주의자는 이 문제에 있어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대립 주체이고, 그로써 우리는 역사적 변증으로 그 다음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어느 한 가지 신념의 승리가 아니라, 대결과 균형의 결과로써 우리는 제3의 길을 향해, 즉 누구도 의도치 않은 지점으로 불시착하듯 다가가고 있을 것이다.
- 분량 조절 실패로 2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