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아트인사이트의 15번째 오프라인 모임은 전시 초대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5인의 내부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개최한, 제1회 기획전을 겸한 이번 모임에 나는 손님으로 간다. 비가 내렸고, 가방 없이 외투 바람으로 쭐래쭐래 다녀왔다. 아무래도 조금 추운 날씨였다.


성수는 과연 사람이 많았다. 비 내리는 성수동 카페 거리는 인파의 우산 다발로 알록달록들하였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이솝 앞 팝업스토어 거리를 살포시 빠져나와, 한적해진 길을 따라 이따금 들리는 카페 ‘할아버지 공장’마저 지나친 성수의 끝자락에 낯익은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건물 측벽에 잘 보이지 않게끔 달린 작은 문을 열어, 전시 단장으로 한창인 카페 ‘맷멀’의 지하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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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의 오프라인 모임은 여느 때나 수다에서 만담으로, 잡담에서 사담으로, 가벼운 이야기에서 짐짓 깊은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굽이굽이 이어지는 물결 같은바, 끝없이 피어 쏟아나는 대화의 개울인지라. 부러 짓궂게 일축해버리자면 실컷 수다 떠는 곳이란 말씀이다. 원체 수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오프라인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할 마련이었는데, 더러 친숙한 얼굴 몇에 반가운 얼굴 몇몇들과 인사하고 지정된 분단에 가 앉았다.


평소와 달리 4일에 걸쳐 진행되는 모임이거니와, 기획전 초대의 성질을 지닌 까닭에 일전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초대되었다. 전시회의 한 가운데, 그림에 둘러싸인 채 삼삼오오 모여 앉은 우리네 모양새가 어설피도 어여뻤다. 늘 그렇듯 옅은 어색함과 수줍음을 차마 눌러 담은 채 시간 반가량 만담을 털어놓고선, 출품 작가를 중심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신의 그림을 등지고 앉은 작가 앞에서, 그림에 관하여 기탄없는 문답을 주고받는 건 귀하고도 낯선 일이다. 여느 작가는 한없이 부끄럽다는 듯이, 또 여느 작가는 바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자기 작품을 소개해주었다. 작품을 소개하는 그들의 태도는 그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일치하는 듯했다. 수줍게, 또는 당당하게. 왜 그렇지 않을까, 작품은 자기 자신의 투영이고 모사이며, 그 자신의 일부이자 전체인 것일 테니 말이다.

 

 

 

1. 작가 MIA, 에디터 이서연


 

작가명 MIA, 이서연 에디터는 온통 파란색으로 치장된 ‘The Blue : bench (부제, 슬픔에 관하여)’라는  책을 가져와 우리 앞에 펼쳐 보였다. 양옆으로 펼쳐 보이는 구조로 된 이 책은 그녀의 첫 작품이었는데, 좌우편의 그림 한 귀퉁에는 각각 동사와 부사가 적혀 있었다. 좌측과 우측의 그림을, 그리고 좌측의 동사와 우측의 부사를 조합해 읽으며, 능동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낯선 구성의 책이었다.


책의 양편을 각각 넘기면 왼편의 ‘잊는다’, ‘웃는다’, ‘춤을 춘다’, ‘사랑한다’라는 낱말들에, 오른편의 ‘모두’, ‘꿈속에서’, ‘깊이’, ‘오래’라는 수식언이 달라붙고 풍경은 변화한다. 양편을 고루 넘기며 책을 읽어내려 가다가 문득 ‘사랑한다’라는 낱말에 눈이 매여 우측 페이지를 처음부터 다시 펼쳐보았다. ‘사랑한다, 오래.’ ‘사랑한다, 깊이.’ ‘사랑한다, 꿈속에서.’ 글귀가 흐르는 파란 벤치에는 개와, 슬픈 눈의 사내와, 노인이 왔다가 간다. 페이지와 시간의 흐름을 타고서, 왔다가는 어디론가 가버리더라는 것이다. 그쯤 책의 부제를 느껴 버리곤, 책이 가리키고자 한 무언가는 눈동자를 통해 가슴 깊은 곳에 성큼 들어와 버린다. 어딘가 조금 슬퍼졌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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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A, The bench, 2022

 

 

작가는 곧잘 또 다른 책인 ‘The Red : Table (부제, 사랑에 관하여)’를 소개해주었다. 더 레드에는 앞전 책에서 눈에 띄던 동사와 부사의 워드 플레이가 없었다. 꽤 흥미로운 작법이었던 터라, 의뭉스러운 눈을 하고선 작가를 치어다보았다. 작가는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책을 들려주었다. 좌측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고, 우측에는 창문과 시계가 걸려 있다. 좌측 장을 넘기면 여인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시계를 보고, 턱을 괴고, 커피를 마신다. 우측 장을 넘기면 시계의 시침만이 움직이고, 창문이 열렸다 닫히고, 햇살과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라지고, 커튼이 펄럭였다.


시간이 흐르고, 일자가 바뀌는 일상의 연속, 그녀는 줄곧 테이블에 앉아 있고 맞은 편은 시종 비어 있다. 우측 장이 시간의 흐름이라면, 좌측 장은 일상의 흐름이다. 여인은 책을 읽거나, 시계를 보거나, 커피를 마신다. 하루 온종일, 또는 반나절, 또는 서너 시간 동안. 당신 마음속에 있을 ‘기다림의 모습’에 따라 여인의 일상은 천차만별로 구성될 것이다, 당신이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 그대로. 그리고 나는 그렇게나 기나긴 기다림의 이유에, 사랑 말고는 걸맞은 것을 떠올리지 못했다.


에디터 저마다의 작품 해석이 흡족하였는지 작가는 연신 즐거워했다. 감상을 유도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서사류 작품과 달리, 그림책은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무궁무진할 수 있기 때문에 저 이의 즐거움이 어설프게나마 이해되는 듯했다. 마지막 작품으로 그녀는 ‘나는, 이제 Ca va’를 펼치었다. ‘이제 괜찮다’는 뜻이란다. 배경의 창백함에 대비되며 원색 파스텔의 색감이 강렬히 도드라졌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것 같은데, 편지를 받고 읽어 내려가는 여인의 모습이 페이지를 따라 묘사된다. 여인에게 도착한 편지를 꺼내는 장면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니 웬 편지 하나가 고이 접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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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A, 나는 이제 Ça va, 2024

 

 

곱게 쓰인 편지, 이번만큼은 내 이야기 아닐 줄로 알았던 누군가의 독백이 가슴을 또 한 번 쿡 찔러들었다. 애정했던 친구를 향한 독백, 내가 가장 친한 친구와 연락하지 않은 지 어언 3달 가까이 지나있었으니, 저기 편지의 수신인과 발신인의 자리로는 또 한번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강제로 끌어당기어졌고, 편지의 낱말들이 그 친구의 입과 목소리를 통해 내 안에 낭독되기 시작했다.


‘나를 설명해야 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혀서,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 네가 싫었어.’ 나는 네게 자주 그런 사람이었지, 설명을 바라고 요구하고 다그치는 그런. “그런데 말야.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고, 잠깐만 혼자일 시간을 달라고 말하라는 게 그렇게 무리한 부탁이었을까. 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일상에서 숨듯이 사라졌고, 어느 날 불쑥 제멋대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군다. 그런 네가 싫어서, 나는 뜸들이며 아직 선뜻 재회하지 못한다.” 어느새 나는 책과 이야기하며, 편지의 주인공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각각 편지의 발신인일 작가의 이야기와 수신인일 나의 이야기가 아주 잠깐만 얽어 들었다. 잠깐 롤플레잉을 하는 듯이 대화를 하려 들다간, 민망하여 와하하 웃었다.

 

 

 

2. 작가 나른, 에디터 장의신


 

작가와의 대담은 3개 분담이 30분씩 세 명의 작가와 돌아가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두 번째로 만난 작가명 나른, 장의신 에디터와는 구면이었는데 일전 문화초대로 배포되었던 그녀의 책 ‘몸의 언어’을 리뷰로 쓴 적이 있어 잠깐 그때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대 신청 당시가 에디터 활동 초창기였고, 책이 발간된 게 2020년이었으니 여기서 지나 보낸 시간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몸의 언어’는 제목이 가리키고 있듯 섹슈얼한 이미지로 구성된, 연인 간 사랑에의 솔직한 소묘이다. 이 연작은 그림과 함께 배치된 글이 백미인데, 전시 구성의 특성상 글 전문을 함께 누릴 수 없음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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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 〈다정함〉, 2019, 디지털 드로잉, 200 × 200mm.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고 솔직한 일상 묘사에 관해서는 작가의 집필 의도를 궁금해하기 마련이었는데, 이미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왔다는 듯 작가는 덤덤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 연작은 길었던 연애의 끝, 실연의 아픔 속에서 시작됐다고 그녀는 말했다. 글과 그림에 물씬 묻어나는 로맨틱한 사랑의 속삭임들에 미루어, 한없는 사랑의 열락과 기쁨 속에서 그려졌을 줄로 알았지만, 오히려 그 소중했던 기억들을 추억하고 기리기 위해 작업되었다는 그녀의 말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작가는 작품 ‘잃은 것’의 옆에 새겨져 있는 글귀를 가리키며 창작 당시를 회고했다. ‘잃은 게 너 하나뿐이었다면, 이렇게 슬프지도 않았을 거야.’ 기나긴 연애가 끝났다는 것은, 너뿐 아니라 너로 말미암은 모든 것도 함께 끝나버린다는 것, 그때 내가 나로서 누렸고 또 누릴 수가 있었던 모든 특별한 감정까지도. 그게 아쉬워서, 또 고통스러워서 작업을 시작했고 연작이 끝날 때쯤 고통도 함께 멎었노라고 말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연애에 대해 일정 달관한 모습이 엿보이는 듯했다. 작가는 이 모든 것들이 크게 특별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법한 사랑의 단상이라 말하며, 바라건대는 이 도화지 위에 각자 자신의 사랑을 불러일으켰으면 바랄 게 없겠다고 말한다. 지금의 것이든 이제는 가버린 과거의 것이든. 그 말이 끝나자 우리는 각자의 지난 연애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만담이 사담이 되는 순간이었고, 그건 언제나 어렵사리 마련되는 만큼 즐거운 일이다.

 

 

 

3. 작가 유사사, 에디터 오예찬


 

마지막으로 작가명 유사사, 오예찬 에디터의 그림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찬 에디터와는 지난 분기 피드백 모임으로 구면인 사이였는데, 당시 연재하고 피드백 나누었던 ‘Jellyfish Monologue’ 연작이 아닌 개별 작업물로 전시에 참여했다. 일전의 작품, 일명 ‘해파리 연작’이 불분명한 경계선 위에 몽환적으로 뭉개어낸 파스텔 색감이 인상적이었다면, 이번 출품작 ‘어슴푸레한 눈 맞춤’은 펜의 터치감과 모노톤, 그리고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는 오브제가 얼른 눈에 띈다. 잘 수 놓인 펜의 감촉은 자주, 알 수 없이 마음을 톡 하고 건드리고는 눈동자 끄트머리를 달칵 걸어 자기 쪽으로 잡아당긴다.


지난 피드백 모임을 통해 알게 된 건 작가 유사사의 창작 방식이 지니는 고유함이다. 짧게나마 들은바 그녀는 자신의 내면과 그 안에 어리는 심상들을 표현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가인데, 내면으로 잠수하듯 빠져 들어가 심상 깊은 곳으로부터 이미지를 영글어내는 식으로 작업한다. 그녀의 그림은 대개 그녀의 내면을 추상한다. 그곳은 실체가 없고 불분명하므로 언제나 흐릿하고, 작가는 이를 각 다른 방식으로 작품 속에 구현한다. 해파리 연작에서는 그것을 불분명한 경계선과 몽환적인 색감으로 표현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림 위에 얇은 종이를 덧대는 식으로 구현해보았다고 전한다. 채 알아낼 수 없고 포착해 낼 수 없는 내면의 모호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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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중은 일전의 대담에서도 그랬듯 문답을 주고받으며, 알알이 꽉 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한 수다하는 사람이라 분량에서는 웬만큼 지지 않는 편인데,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 걸려 있는 그림이 계속 신경 쓰이는 까닭에. 마치 다른 데 신경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저쪽에서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이라기엔 아리송하고, 미묘하다기엔 분명하게 아름다운, 아슬아슬한 매료의 감정. 이 감정이 내겐 너무 드물어 흘금흘금 곁눈으로 보다간, 결국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좌중의 양해를 구하고 그림에 아주 턱을 괸 채 눈을 똑바로 맞추어보았다. 내 눈에 갈고리를 걸어둔 것은 ‘선잠’이었는데, 그 안에서 뭐라도 찾아낼 수 있을 것처럼 오래 바라보았다.


선잠의 세계는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었다. 네모나게 프레임 된 검은 바탕, 사람의 내면에 존재할 심연이자 모든 알 수 없는 심상들이 피어나는 우리의 우주로부터, 흙과 습지와 풀과 꽃과 별들이 하얀 백지를 향해 피어나고 있었다. 사물이 뻗어나와 자리한 이 하이얀 공간을 우리의 의식이라고 말해두자면, 바탕인 이 의식을 이루는 백지, 그 종이가 지니는 우둘투둘한 펠트의 감촉이 나는 가장 먼저 좋았다. 다음으로 사물들의 배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사물들이 연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상태에서 절묘하게 정지해있다. 넘치어 안타깝지도 모자라 쓸쓸치도 않은 백지와 그림의 구성비, 즉 여백과 오브제의 구성비가 보는 이의 마음을 흡족하게 채워든다. 그 다음에야 펜의 날카로운 물성이 마침내 가슴을 톡 하고 건드리던 것이다.


대략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일전 그림이 야기한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대화는 아직 한창인 와중이었고, 그림과의 대담을 마치며, 상념에서 빠져나오면서 나는 대뜸 “불안이었구나”라고 말했다. 작가 유사사는 무슨 불안을 말하느냐고 물어주었다. ‘그림을 면밀히 들여다보기도 전, 주변시에 걸리는 찰나로부터 나는 사랑에 빠질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러나 곧 이별하게 될 것을 또한 동시에 인식해 버렸기에, 그래서 불안했던 것이라고 나는 답했다. 그녀는 몹시 기뻐하는 듯 보였다. 왜 아닐까. 작품은 자기 자신의 투영이고 모사이며, 그 자신의 일부이자 전체인 것일 테니 말이다.


그림을 구매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지만, 선뜻 그럴 용기가 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그림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다양한 모습, 다양한 층위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누군가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그림을 아무렇지 않게 구매하는 반면, 나는 충분히 매료된 그림의 구매를 망설일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미련거리는 나를 위해, 작가는 웃으며 굳즈가 마련되어 있다고 말해주었다. 기꺼운 마음으로 엽서 5장과 책갈피를 구매해 집으로 돌아왔고, 눈높이의 벽에 투박하게 붙여놓은 채 오래 바라보며 오늘 글을 써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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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가방을 들고 가지 않은 탓에, 코트 주머니에 고이 모셔 둔 엽서를 염려하면서 쭐래쭐래 집으로 돌아왔다. 전시명 ‘틔움’에 관해 작가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건 덤이었다. 거기에 거창한 이유를 대볼 법도, 휘황찬란한 수식언을 가져다 대볼 법도 하겠다만, 신당역 환승 통로 기나긴 길의 중간쯤에 이르러 고개를 저었다. 나로서는 그게 그다지 화려한 것이라기보담, 소박하고도 질박한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3명의 작가와 함께 보낸 시간 동안 가장 자주 들은 말은 ‘표현하고 싶었다’이다. 작가 MIA는 인간관계 가운데에서 느낀 바 감정과 이별의 정서를, 나른은 연애 관계에서의 가장 진솔하고도 특별한 감정을, 유사사는 자신의 고유한 내면과 그 심상 속의 풍경을. 너무 보편적이지만, 그만큼 잘 공감되는 감정. 드러내고, 설명하고, 표현해내고, 이해받는 것. 다만, 그 간절함의 깊이 만은 개인마다 다른 것이다. 표현하고, 이해받기를 원한다는 것. 누군가는 말로써 그렇게 할 것이고 또는 글, 리뷰와 수필로써, 혹은 그림으로써 그렇게 할 것이다. 개중 무엇으로 가장 잘 이해받을 수 있는가는 미리 알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무엇이 가장 간절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거기에 기울여 슬며시 녹아난 시간, 딱 그만큼은 정직히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작년 9월 즈음부터 준비해왔다고 한다. 그럼 나는 그것을, 그것이 지닌 진심을 8개월 만큼의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써낸 글이 저마다 2시간, 4시간, 8시간, 14시간, 2달, 4달 만큼의 진심을 담아내었던 것을 기억하며, 저 시간의 깊이를 이해한다. 진심은 그저 진실한 마음 그것만을 가리키기 때문에, 진심이 비로소 무게를 획득하는 부분은 그것이 얼마나 진실된가에 달린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깊고 기나 길 수 있었던가에 달렸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깊이는 내게 충분히 전달된 것 같다. 그래서 나 또한 시간과 품을 들여 오늘 글을 써낸다. 너무 길어 어쩌면 읽기에 벅찰, 하지만 눈을 기울여 들여다볼 때 직설적인 감상들로 올올이 들어찬 이것으로써. 언제나 그랬듯, 기나긴 글을 통해서 나는 그것을 나타낸다. 나 또한 그것을 길이로, 들여낸 시간의 길이로만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게 작가가 스스로 틔워내고자 한 ‘자신만의 것’이고, 그것이 내게 닿아 틔워낸 바일 것이다.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말을 이토록 길게, 긴 진심으로 전한다. 고마웠다. 오늘의 문화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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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나른
3번의 턴 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담화팀?이었어요ㅎㅎ 다정한 리뷰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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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5 17:50:17 2
이영
안녕하세요 에디터님, 작가 mia입니다. 저의 작업이 에디터님의 언어와 표현으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새로운 기분이 들어요. 그때 나눈 대화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렇게 정성껏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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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6 12:50:1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