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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클래식 작품에서의 인종주의,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①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by 최수인 에디터
2026.07.25 18:00

 

 

정말 좋아하는 작품임에도 오피니언 주제 선정에서 매번 탈락했던 작품들이 있다. 바로 인종주의적인 장면이 부분적으로 등장하지만, 지금까지 여전히 클래식 레퍼토리로써 상연되어 오고 있는 작품들이다.

   

단적으로 작품에 대한 분석과 찬사만 남기기에는 현대의 시선으로 관람했을 때 올바르지 않은 부분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짧게만 다루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얕게 훑고 지나간 것 같아 아쉽고. 또 고전이 ‘고전’인 이유가 있는데 무작정 해당 부분을 수정하거나 자르고 바꾸는 각색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원작자의 작품에 대한 예의에 어긋날까 봐서.


그러다가 이번에 오페라 〈마술피리〉를 다시 관람하며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이 더 커지게 됐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로 유명한 〈마술피리〉에도 인종차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막상 대사를 뜯어보며 읽다 보니 너무나도 분명하게 존재했다. 이때 생각했다. 한 작품 한 작품씩 분석할 것이 아니라 묶어 분석해야겠구나.


물론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품들이기에 좋은 점에 대한 코멘트도 함께하겠다. 논란이 될 법한 부분이 존재함에도 상연되는 것은 그 이유가 있으니까. 백 년 이상 된 작품에서 인종차별적인 부분을 굳이 끄집어내는 이유도,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는 알고 좋아하자는 취지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



가장 먼저 설명하고 싶은 작품은 발레 작품 〈페트루슈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했으며,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발레단 뤼스에 의해 초연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페트루슈카〉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마슬레니차 축제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세 명의 꼭두각시 인형이 주연으로, 각각 ‘페트루슈카’, ‘발레리나’, ‘무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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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Natasha Razina, VaganovaToday (Mariinsky Theatre)

 

 

축제가 한창인 와중, 꼭두각시 공연이 시작된다. 인형이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면 그들은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페트루슈카와 무어인의 방이 극중극으로 등장해 인형들이 움직이며 감정을 느끼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페트루슈카는 발레리나에게 반하지만, 발레리나는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곧이어 무어인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발레리나는 그와 함께 춤을 추는데, 그런 둘의 모습을 본 페트루슈카는 질투심에 무어인에게 싸움을 건다. 페트루슈카는 축제 틈바구니에서 결국 무어인의 칼에 맞아 죽는다. 그 시체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자, 인형을 움직이던 사람은 시체가 인간이 아닌 인형이라는 것을 보여주어 모두 안심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페트루슈카의 영혼이 등장해 그를 놀라게 한다.


〈페트루슈카〉는 ‘무어인’을 등장인물로 두고 있다. 그 때문에 사진에서 보았듯 백인 배우의 얼굴을 까맣게 칠하는 ‘블랙 페이스’ 분장을 해 왔는데, 이는 현대에 와서 구시대적이며 인종차별적이라는 논란을 크게 일으키는 부분이다. 과거, 백인 배우가 흑인을 연기하며 희화화하고 과장된 춤과 노래를 했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블랙 페이스는 흑인 혐오와 인종 차별의 심볼로 작용하기에, 2000년대에 들어서며 발레단들 역시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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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Dave Morgan, DanceTabs (English National Ba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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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Dance Magazine (San Francisco Ballet)

 

 

백인 배우에게 페이스 페인팅을 하지 않고 아예 흑인 무용수를 캐스팅하거나, 검은색이 아닌 파란색을 칠해 인종적 특징을 최대한 없애려 하는 등 비주얼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으나 결론적으로는 모두 새로운 질문을 피해 가기 어려웠다.


겉으로 보이는 첫 번째 문제점은 블랙 페이스였지만, 작품 내 각본에서의 문제점도 존재했다. 〈페트루슈카〉의 무어인은 코코넛을 깨려다가 깨지지 않자 코코넛에 절을 하며 숭배하고, 결국에는 페트루슈카를 칼로 찔러 죽이는 어쩌면 멍청하거나 야만적이라고 할 법한 캐릭터다. 이는 과거의 스테레오타입을 희화화하는 지극히 인종차별주의적인, 백인 작가의 흑인 캐릭터이다.


흑인 무용수를 캐스팅하거나 블랙 페이스가 아닌 블루 페이스, ‘아바타 페이스’를 한다 하더라도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 필요한 부분들이기 때문에 각색도 쉽지 않다. 각본을 유지하며 이름과 외견을 바꾸어, 캐릭터성은 살리되 인종적 특징을 주지 않도록 각색하는 방향도 생각해 봄 직하나,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해볼 지점이 있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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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브누아, 페트루슈카 무대 디자인

 

 

논란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과 더불어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발레 작품 중 하나다. 대본과 무대 디자인을 맡았던 알렉산드르 브누아의 그림 역시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아기자기하고 매력적인 무대 디자인은 축제의 시끌벅적함과 동시에 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쌓인 눈에 반사되는 태양 빛까지 연출하고 있는 듯하다.

 

 

 

모차르트, 〈마술피리〉



유명한 ‘밤의 여왕 아리아’가 등장하는 모차르트의 걸작 오페라 〈마술피리〉. 조수미의 밤의 여왕 아리아는 들어봤더라도, 오페라 전체를 보지 않는 한 인종차별주의 요소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술피리〉에는 모차르트 특유의 유머와 재미있는 멜로디, 고음의 기교까지 등장하는 음악적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익살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여자 주인공으로 밤의 여왕의 딸 파미나, 남자 주인공으로는 왕자인 타미노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체적인 구도는 자라스트로와 밤의 여왕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에서 타미노와 파미나가 고난과 시험, 역경을 딛고 연인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변 인물 중에는 자라스트로의 부하로 파미나를 짝사랑하는 ‘모노스타토스’가 등장한다. 그는 자라스트로를 배신한 뒤, 자라스트로에게 복수할 기회를 엿보는 밤의 여왕에게 파미나를 얻는 조건으로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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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 Drésa가 디자인한 모노스타토스의 의상 디자인, 1922년.

 

 

모노스타토스는 흑인으로 등장한다. 파미나가 그를 ‘Mohr’로 지칭하고, 모노스타토스 역시 자신을 아리아에서 ‘Schwarzer’라 부르는 등 극 중 직접적으로 나오는 바 있다. 무대미술 이미지 역시 살펴보면 모노스타토스의 캐릭터는 검은 얼굴에 아프로헤어로 설정된다. 또한 극 중 그의 악역으로서의 행동은 지극히 고정관념을 강화할 법하다.


〈마술피리〉의 모노스타토스에 관련된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인종차별적인 단어가 들어가 있는 대사를 개작하기도 하고, 캐스팅을 백인으로 해 보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대안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캐스팅을 백인으로 했을 때는 또 다른 문제점을 목도한다. 흑인이 맡을 수 있는 배역을 백인이 맡아 자리를 빼앗는다는 문제다.


이에 따라 인종적인 부분은 최대한 겉으로 보이지 않게 제외하고, 해괴하거나 못생기게 분장시켜 파미나가 싫어할 명분과 또 다른 등장인물인 ‘파파게노’와 서로 희한하게 생겼다며 멀리하는 맥락에 맞도록 하는 추세다. 혹은 모노스타토스가 아닌 다른 인물에 흑인 캐스팅을 하기도 하며 백인 위주였던 기존 오페라 작품에서의 인종적 다양성을 늘린다.


이 두 작품의 예를 비교했을 때 어떻게든 작품이 자주 상연되는 것이 여러 가지 각색 방안과 대안을 찾아내는 데에는 유리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두 작품 모두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여러 시행착오를 밟아가는 과정이 눈에 보였다.


인종 다양성이 낮은 한국 사회 특성상 인종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낮아, 한국 공연장에서는 원작 그대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올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보수적인 측면에서 ‘원작 존중’으로 수용은 가능하나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클래식 공연에서의 발전은 더딜 것이다. 초연이 되었을 당시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한 뒤 인종주의를 꾸준히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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