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책 속의 내용이 현재와 맞물리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내게는 <인비인>을 읽을 때가 그랬다.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4대째 의사 가문이라며 자신의 가족을 자랑스럽게 언급하고, 사람들이 증조부인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들춰내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성해나의 기담집 <인비인>을 읽은 독자라면 이 사건을 보며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비인>의 단편들은 ‘어제’ ‘오늘’ ‘내일’ 세 개의 장으로 나뉘어 묶여있다. 그중 ‘어제’로 묶인 세 편의 단편은 친일파와 그 자손들의 이야기다.
친일한 이들은 사망했어도 그 친족은 생존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 미상의 삶을 상상하다 소설이 완성되었다.
- 작가 해설
표제작인 <인비인>은 한 노인이 영화감독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달라’며 쓴 편지글이다. 아시아 최고의 생화학자를 꿈꿨던 그는 열아홉에 창씨개명을 하고 교토대학에 입학한다. 교수를 ‘오야지(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충직했기 때문인지, 그는 교수에게 하얼빈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는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생체 실험을 하는 비밀장소였다. 그들은 임신한 조선인에게마저 온갖 바이러스를 주입한다. 만삭인 여자는 고통스럽게 죽어가며 ‘가타마리(덩어리)’를 낳는다. 그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의 형체가 아닌 괴물이었다.
팔도 다리도 생식기도 없는 괴물에게는 식욕이 전부였다. 가타마리는 동물 사료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도 부족한지, 그가 교수에게 선물로 받은 만년필마저 삼켜버린다. 가타마리를 돌보며 나날이 초췌해지던 그는 결국 괴물을 산 채로 파묻어 죽여버린다.
광복 후,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의원을 물려받는다. 그의 아들 또한 의사가 되어 개인 병원을 차리고 손주까지 얻어 즐거운 노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하얼빈 근린공원에서 생체실험의 흔적이 있는 뼈 무더기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발견된 뼈 중에는 가타마리의 것도 있었다. 그 뼈와 함께, 그의 이름이 각인된 만년필이 세상에 드러났다.
노인은 자신이 1800명을 학살하고 생체실험을 한 전범이라 지목된 것을 억울해한다. 본인이 죽인 것은 가타마리 한 명뿐이니 그 죄만 달게 받겠다고, 내 자식과 손주는 좋은 것만 보며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구구절절 항변한다.
자신은 단지 조수이자 하수인일 뿐이라며 죄를 부정하는 노인을 보면 ‘누가 진짜 괴물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존재, 귀신이나 괴물보다 무서운 존재가 바로 노인과 같은 사람이다. 죄의식 없이 인간의 선을 넘어버리는 다수의 동조자.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볼 기회가 찾아와도 그는 여전히 죄를 부정한다.
‘어제’로 묶인 세 편의 단편 속 인물들은 자신의 과오, 또는 집안의 과오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조상의 과오와 치욕을 아버지는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그는 조부처럼 괴로워했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버지의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그는 술을 끊고, 주말에는 동문들과 골프를 치러 남양주에 갔다.
“그게 조상 죄지 우리 죄인가요.”
그는 고조부의 친일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우리가 그분께 뭐 받은 게 있기나 해요? 그분 소유로 된 땅이라도 한 평 있어요? 있으면 제가 말도 안 해요.”
- 76p,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
이들은 물려받은 부는 누리면서도 죄는 못 본 척한다. 조상의 죄일 뿐이라며 자신과는 선을 긋는다. 자신의 평온과 부귀영화를 위해 대를 이어가며 악행을 저질러도, 사람을 죽여도, 부끄러움이나 죄책감보다는 찝찝함을 느낀다. 잠깐의 찝찝함. 껄끄러움.
어쩌면 배우 하영은 자신이 쓴 사과문대로 증조부의 과오를 몰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아버지는, 그 아버지의 아버지는 몰랐을까. 알고서도 자식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이 정도로는 친일까진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까. 외면해 왔던 그 과거의 행적은 결국 2026년 세상에 드러나 증손녀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친일 행위로 가문이 부를 이뤘다면 국가가 지금이라도 그 재산을 환수해야 할까. 증조부와 조부의 잘못을 그 자손에게까지 물어야 하나. 어느 정도의 친일행위를 해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는가. 적극적 친일의 기준은 무엇인가. 친일파라는 단어보다 민족 반역자 같은 단어를 쓰는 게 더 적확한 표현 아니냐는 등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사안에 따라 모두의 생각이 다르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친일 행적이 있는 조상의 자손이라면 ‘자랑스러움’보다는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한다.
역사는 대패질하듯 말끔히 깎아내거나, 모두가 함구한다고 해서 소거되지 않는다. 죄를 덮은 자리에는 꺼슬꺼슬한 흔적이 남는 법이다. 자업자득을 온전히 믿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언젠가는 죄의식이나 수치라는 방식으로나마 돌아오길 바라는 바이다.
- 작가해설
성해나가 친일인명사전을 보고 쓴 이 작품들은 현재의 사건과 맞물려 또 한 번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무리 덮어두고 모른척해도 결국 드러날 일은 드러나고 만다.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적어도 친일파의 친족이 자신의 집안에 친일 행적이 있음을 모를 정도로 역사에 무지하게 둬서는 안 되지 않을까. 개인에 대한 비판으로 끝낸다면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