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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에세이 왜 읽는지 모르겠다고요? - 편집자 이연실의 '에세이 만드는 법' [도서]

에세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by 윤선주 에디터
2026.08.24 14:30

에세이는 비문학, 잡문으로 불린다. 출판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장르이고 젊은 독자들이 선호하는 장르이지만 ‘문학이 아니다’ ‘잡다한 문장이다’라고 선이 그어지는 장르이기도 하다. 어떤 독자들은 “난 에세이 안 읽어.”라며 거리를 두기도 한다. 감정이 과잉된 감성 에세이, 자기계발서스러운 뻔한 조언을 하는 에세이, 인플루언서의 신변잡기 에세이를 꺼리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에세이를 독서 목록에서 빼놓기에는 좋은 책들이 많다. <에세이 만드는 법>은 좋은 에세이를 책으로 만들어온 20년 차 편집자이자 출판사 ‘이야기장수’의 대표인 이연실이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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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에 가본 독자라면 이연실의 얼굴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독서도 기세다’라 적힌 티셔츠를 입고 거대한 홍보 간판을 어깨에 메고서 ‘기세 좋게’ 쏘다녔으니. 작년 도서전에서는 인간 화환이 되어 나타났었다. 한 번 마주치면 잊기 힘들 정도로 기세 좋게 일하는 사람. 이연실은 기세라는 단어와 딱 어울리는 직업인이다.


문학동네 에세이 팀 편집자 시절에는 노벨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김훈의 <연필로 쓰기>, 이슬아의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등을 편집했고, 이야기장수에서는 현재 베스트셀러인 김이나의 <일상주의자의 감각>과 중증자폐 아들을 둔 시한부 아버지가 쓴 <안녕, 피터팬>, 한국 최초의 여자 형사가 쓴 <형사 박미옥> 등을 편집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상을 받기도 전에 책의 가치를 알아보고 국내로 들여왔을 정도로 보는 눈이 있고, 박미옥 형사가 있는 제주도까지 내려가 3년간 설득해 책을 만들 정도로 끈기도 있는 편집자다.


이 편집자는 어떤 마음으로 에세이를 만들고 있을까. 놀랍게도 이연실은 에세이를 싫어했다. 문학동네 국내 문학팀에 입사해 두 달 만에 새로 신설된 비소설 에세이팀으로 발령되자, 이연실은 좌천됐다고 생각했다. 국문과 출신에 소설을 쓰던 사람이 ‘비소설’팀이라니. 소설이 아니라 구분 지어지는 에세이팀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신입사원 이연실은 팀장을 찾아간다. “저 왜 비소설 팀으로 가요? 전 소설이 좋은데요? 우리 회사는 소설이 메인 아니에요?”


팀장은 비소설 에세이를 편집할 줄 알게 되면 소설이든 인문서든 논픽션이든 그림책이든 다 만들 수 있으니 버티라 조언한다. 좋아하는 이야기와 사람을 죄다 책으로 만들 수 있게 될 거라는 말에 마음을 바꾼 이연실은 어느새 에세이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에세이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살아온 대로, 경험한 만큼 쓰이는 글이 에세이다. 삶이 불러 주는 이야기를 기억 속에서 숙성시켰다가 작가의 손이 자연스레 받아쓰는 글이 에세이다. 그러나 원고는 이렇게 붓 가는 대로, 살아온 대로 쓰일지라도, 에세이를 편집하는 사람은 결코 책의 꼴과 운명이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 

 

에세이 시장은 이를테면 ‘진정성’의 전쟁터이다. 어느 에세이나 저자가 다 직접 해 본 이야기이고 유일한 경험담이며 간절한 인생 스토리이다. 이 전쟁통에서 불량품이 아닌 뇌관을 준비하고 재미와 감동이라는 도화선을 독자의 마음에 정확하게 연결해 불꽃을 터뜨리는 일은, 결국 편집자의 몫이다. 

 

- 23쪽

 


유명 인플루언서와 연예인이 책을 낸다고 잘 팔리는 책이 될까. 이들의 팔로워와 인지도가 그대로 구매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좋아요와 구독은 무료이기 때문이다. 팬들의 굿즈로 전시되는 것에 만족하는 한철 장사꾼이 아니라 ‘에세이 편집자’라면 한 사람의 삶과 일의 핵심을 꿰뚫는 ‘키워드’가 있어야 한다. 그걸 찾는 것이 편집자의 일이다. 


에세이 편집자는 글을 쓰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던 생활의 달인들도 책으로 끌어들인다. 신선한 기획은 서점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인터뷰, SNS 그리고 거리에 있고, 자신의 일과 삶을 예술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 빛나는 글이 있다. 물론 생활인과의 책 만들기는 기성 작가와의 책 만들기보다 험난한 구석이 있다. 원고가 없는 상태에서 함께 원고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고민을 같이 하는 것 또한 편집자가 해야 할 일이다.


때론 작가와 술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책이 될 만한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슬아 작가를 처음 만난 술자리에서 이연실 편집자는 그림을 그려달라 부탁한다. 이슬아 작가가 그려준 것은 벌거벗은 여자가 책을 읽는 그림이었다. 왜 발가벗은 그림인 걸까 물어보니, 누드모델로 일한 적이 있어서 사람의 몸에 관심이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편집자는 술에서 깬다. 작가 이슬아가 해온 노동과 엄마 이야기를 담은 책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이날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AI가 쓴 글로 책을 내면 되니 작가는 필요가 없다는 둥, AI가 교정 교열을 볼 줄 아니 편집자도 필요 없을 것이라는 둥 말들이 많다. 하지만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알게 되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책을 만드는 긴 과정에는 편집자의 수고가 들어간다. 한 사람의 삶에서 책이 될 법한 이야기를 발견해 기획하고, 작가를 다독이고, 책에 걸맞은 제목을 뽑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엄청난 책이 나왔음을 홍보하는 매력적인 띠지를 만들고, 보도자료를 만들고, 디자이너와 마케팅팀과 작가 사이에서 이견을 조율하는 그 모든 과정은 책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어렵다. 


에세이 편집자가 그만큼 책에 마음을 쓰는 이유는 에세이가 한 사람이 가진 ‘삶’과 ‘결’을 그대로 드러내는, 적나라하고 무서운 장르이기 때문이다.

 

 

책을 파는 일, 특히 에세이를 판다는 것은 과격하게 말하자면 ‘작가가 제 삶의 일부를 파는 일’이다. 작가의 경험과 삶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잊을 수 없는 부분을 내다 팔아야 한다. 나는 책 만드는 과정에서 그 두려움과 무게감, 그로 인한 파장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와 동시에 작가가 삶의 일부를 떼어 내 만든 책이 외면받지 않고 잊히지 않도록, 어떻게든 독자에게 선택받는 에세이를 만들려 노력한다.

 

- 63쪽

 

 

편집자가 쓴 이 책에도 담당 편집자가 있을 것이다. 이연실이라는 편집자에게 ‘에세이 만드는 법’을 써달라고 제안한 사람은 누구일까. 평소엔 보지 않던 판권지를 펼쳐본다. 편집 - 사공영, 백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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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실은 이 책의 ‘나오는 글’에 편집자의 이름을 언급한다. 마감에 맞춰 글을 써내지 못하고 자학할 때 할 수 있다며 응원해주고 책을 완성해 준 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세상에 편집자 없는 책은 없다. 이 작은 책도 훌륭한 편집자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편집자란 이런 사람들이다. 저자가 자학하고 작아질 때 끝까지 편이 되어 주는 사람. 묵묵히 기다려 주는 사람. 그러나 내가 도달해야 할 목표점과 마감을 잊지 않도록 등대가 되어 주는 사람. 그리고 그 모든 사정과 핑계를 돌파하고 끝내 책 한 권을 완성해 내고야 마는 사람.

 

내게 그런 편집자가 되어준 사공영 편집자님에게 감사한다. 나 역시 내 작가의 작은 이야기들을 대작, 인생작으로 여기며 계속 에세이 편집자로 살아가고 싶다.

 

- 209쪽

 


에세이 읽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연실 대표의 출판사 ‘이야기장수’에서 나온 에세이를 읽어보길 권한다. SNS 감성글도, 인플루언서나 연예인의 굿즈 같은 에세이도, 직업인이 자기 홍보를 위해 포트폴리오처럼 쓴 알맹이 없는 에세이도 없다. 세상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내보이는 ‘속이 꽉 찬’ 에세이가 많다. 비문학이라고 선을 긋고 넘겨버리기엔 아쉬운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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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박미옥 – 박미옥

 

대한민국 최초 여성 강력반장인 박미옥이 쓴 에세이. 탈옥수 신창원 사건,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건, 만삭 의사 부인 살해 사건, 한강변 여중생 살인사건, 숭례문 방화사건 화재감식 등 굵직한 사건들을 맡았던 박미옥이 궁금하지 않은가. 드라마 <시그널>의 김혜수가 맡은 차수현 역은 박미옥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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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 이랑

 

삶에 지친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동생은 글을 썼다. 언니에 대한 기억을, 엄마와 딸들의 역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가난과 죽음, 슬픔, 불안을 노래하는 아티스트 이랑의 책.

 

 

인생을 바꾸는.jpg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 이슬아

 

자기계발서 같은 제목이지만 에세이다. 월 구독료 만 원을 받고 이메일로 글을 써서 보내는 ‘일간 이슬아’로 문학계에서 존재감을 키운 작가 이슬아가 ‘이메일’로 인생을 바꾼 에피소드와 자신의 비기를 썼다. 어떻게 메일로 사람을 설득하는지. 어떤 메일을 받고 자신이 설득되었는지. 그중엔 이연실 편집자에게 받은 메일도 있다. 『내일모레 오전 9시까지 원고가 도착하지 않으면 이슬아 작가님은 제 생일을 축하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무시할 수 없는 독촉 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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