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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무와 계피 향은 겨울을 일찍 데려온다죠? - 2026 서울시향 시민과 함께하는 광복절 기념 음악회: 베토벤 ‘합창’

한여름에 미리 만난 12월의 ‘합창’

by 장유진 에디터
2026.08.1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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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세종대극장은 아이맥스 상영관만 같았다. 아직 아이맥스로 영화를 관람해본 적은 없지만, 내가 딱 상상한 만큼, 혹은 그 이상의 넓은 가로형 직사각형이 내 전면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음악회를 다녀와놓고서는 왜 나는 영화를 떠올렸을까?


대부분 예술의전당이나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났던 서울시향을 세종문화회관에서, 그것도 대극장에서 만나게 되니 그 자체로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막 신이 났다기보다는 낯설다는 감정이 앞섰다. 무엇에 생경함을 느꼈던가. 조명도 조금 더 짙게만 느껴졌다. 그러니까 노랑보다는 주황에 가까운 것만 같고, 왠지 그들의 얼굴 아래 드리운 그림자가 더 까맣게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낯선 냄새도 났다. 나무 냄새인 것 같기도 하고, 계피 향 같은 것도 섞여 있는 것만 같았다. 한두 번이나 가봤을까 싶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보다도 더 낯선 공간이 이곳이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하고 노래해야 하니 무대 위에는 사람이 더 많다. 평소 같았으면 동그랗게 모여 있던 그들이 오늘은 네모나게 모여 있는 것만 같다.


16일의 나는 그들이 그 유명한 베토벤 9번을 연주한다길래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이 곡은 연말이 되면 정말 줄기차게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곡이 아니던가. 나는 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적도 없고, 어떤 소절도 제대로 귀에 담아본 적은 없지만 한 해의 끝이 찾아오면 이 곡이 꼭 연주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서울시향 서포터즈가 되었으니 12월에는 이 곡을 듣게 되겠구나. 아주 멀게만 생각했는데, 광복절 기념 음악회에서 이렇게 미리 들어볼 줄은 몰랐다. 미리 들어보는 셈 치자는 가벼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SNS에서 오케스트라 한 단원분의 계정을 통해 이 곡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벅찬 마음’만 같은 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이 곡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인터미션도 없이 이어지는 60분이라는, 이제는 사실 짧게 느껴지는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읽어내야 할 것만 같은 염려 아닌 염려가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내가 어떤 걱정을 들고 이곳에 들어왔는지는 공연이 시작되고 나니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 16일의 나는 대극장의 무심한 공기를 읽었다.


정말 무대 위에 자리한 사람들이 내는, 그러니까 서울시향이 노래하는 소리를 적극적으로 밀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못나 보이게 가려놓지도 않더라. 뭔가 추진력 있게 밀어주지는 않는데 괴롭히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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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서울시향의 소리는 늘 내 머리 위에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든 현악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관악 몇몇이 합을 맞추는 순간에, 지휘자의 손끝에서 소리의 합이 뭉쳐지는 모든 순간에 내 고개 위를 숙- 하고 지나가 창공을 가르거나, 지하 안쪽으로까지 나를 기어코 이끌고 들어갔다.


그걸 한두 번 느낀 게 아니고 정기공연을 관람할 때마다 느꼈으니, 16일의 그들이 어떻게 노래하든 그 소리가 무대의 경계를 넘어 내 자리까지 밀려오지 않을 때에는 ‘아, 오늘의 저 벽들은 이곳까지 소리가 넘쳐흐르는 일까지는 바라지 않는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조예가 부족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바빴을 텐데, 이제는 저들이 노래하는 소리에 아무도 몰래 ‘추억’을 가지고 나니 나도 모르게 저 황토색 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대극장 천장에는 올록볼록한 것들이 한 줄마다 열두 개가 있었고, 각 줄 양끝에는 세 개의 조명이, 그 안쪽에는 여섯 개의 조명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나는 눈으로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세면서, 귀로는 서울시향의 개별 소리를 음미했다.


벽이 그들의 소리가 ‘노래’가 되어 이곳까지 끼얹어지도록 크나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의 커다란 소리가 나를 먼저 덮치지 않으니 그 안에서 각자가 내는 소리를 하나씩 찾아 듣게 되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이 알아서 노래하도록 내버려두는 공간 안에서, 나도 모르게 집중도가 높아졌다.


그래, 바이올린 몇 대가 모이면 이런 소리가 났지. 관악기가 숨을 불어놓는 자리는 저곳이었지. 공간이 그들을 그저 놓아두기로 하니 첼로 파트나 어둑한 소리를 내는 현악기가 가만히 노래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높은 목소리보다 낮은 목소리 앞에서 더 차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가 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왜 이리 편안한지, 왜 왼편의 발끝을 나도 모르게 움직이며 그들의 음표에 반응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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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늘 나보다 큰 무언가 안에서 노래했다. 내가 이름조차 모르던 작곡가의 음악 안에 들어가 있기도 했고, 지휘자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커다란 흐름 안에 있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서 있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들이 네모난 오르골 안에 기꺼이 몸을 들여놓았더라.


웃음이 났다. 내 시야 안에서는 정말 큰 대형 화면처럼 보이는데, 그들은 투명한 돔 안, 장난감 병정의 성 안에서 노래하는 바람에 반강제로 몸집을 줄인 채 거기 있었다. 사람은 저리도 많은데 번잡하지도 않고, 소리마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었다.


나를 잡아먹는 기세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어 있으니,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을 내 양손 안에 담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베토벤이 무섭지 않았다.


교향곡 9번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들어볼 수 있었다. 꼭 무엇을 읽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제는 익숙한 단원들의 얼굴 한 번. 천장에 시선 두 번. 지휘자의 움직임 세 번. 

 

그렇게 듣고 있으니, 나는 어떤 때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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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음악이 글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그냥 그들의 매일을 닿을 수 없는 꿈처럼 여겼던 2024년. 

 

동대문 DDP에서 그들의 소리가 핑크빛에서 오렌지빛 사이의 구름결만 같다고 막연히 느꼈던 내가, 이제는 그들의 몸집을 기억하고 그들의 오늘을 기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


그 생각이 이어지는 틈에 다시금 나무 냄새가 났다. 수정과만 같은 계피 향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그때의 나도, 오늘의 나도 늘 ‘그날’을 잊지 못하는 것을 보니 당분간 나는 이러고 살아가겠구나, 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12월의 ‘합창’을 기다리게 된 오늘이었다.

 

아, 겨울을 기대할 수 있는 여름이라니.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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